• Daum
  • |
  • 카페
  • |
  • 테이블
  • |
  • 메일
  • |
  • 카페앱 설치
 
카페정보
카페 프로필 이미지
가나안 신자와 초보 신학생
카페 가입하기
 
 
 
카페 게시글
교회사(church history) 일본 개신교의 한국 개신교 흡수(1)
장코뱅 추천 3 조회 253 23.12.06 08:45 댓글 17
게시글 본문내용
 
다음검색
댓글
  • 작성자 23.12.06 08:53

    첫댓글 댓글1)

    미국 회중교회는 19세기 한국에 선교사를 파송하지 않았으며, 조선의 회중교회는 1886년 일본 조합교회의 조선지역 교단으로 창설되었다. 1904년 러일 전쟁 승리 이후 일본 조합교회는 미국 회중교회와 결별하였다. 일본 조합교회가 1910년 한일 합방 조약 이후 조선을 전도지역으로 선정하고 서울, 평양 등지에 조합교회를 설립하였다. 일본 제국주의의 패망 때까지 조선의 복음화라는 명분 아래 일본의 황국신민화 정책의 앞잡이 역할을 하다가, 1921년 조선 총독부로부터의 예산 지원이 중단되면서 조선 회중교회라는 이름으로 명맥을 유지하였다. 이후 일본 조합교회는 1941년 일본 기독교단에 흡수된후 현재까지 일본 기독교단의 일부로 남아있으며, 1945년 일제의 패망에 따라 조선 회중교회는 감리회와 대한예수교장로회 등 교단에 흡수되거나 해체되었다.

    출처: 한국어 위키백과
    https://ko.wikipedia.org/wiki/%ED%9A%8C%EC%A4%91%EA%B5%90%ED%9A%8C

  • 23.12.06 10:14

    회중교회=조합교회인데, 저 때 당시의 조합교회가 친일의 길을 걸었네요. 교파 명칭은 그럴싸 한데 황국신민화에 앞장서는 추태를 보인 것이 안타깝습니다.

  • 23.12.07 07:45

    @노베 공감합니다ㅠㅠ

  • 작성자 23.12.06 09:17

    성결교회의 연회

    1921년 4월, 교역자 총회기구설립을 위한 “교역자간담회”를 조직하였고, 1924년, “교역자회”로 변경 발전하였으며, 1929년, “연회”로 개편되었습니다.

  • 23.12.06 10:25

    그런 모임이 연회이군요. 잘 알겠습니다.

  • 작성자 23.12.06 09:20

    한일동조론

    일본 입장에서는 일선동조론(日鮮同祖論)이라고 합니다.
    ------------------------------------

    일본인(日)과 조선인(鮮), 즉 한국인은 같은 조상(同祖)에서 나온 동족이라는 이론이다. '동조동근론'이라고도 한다.

  • 23.12.06 10:27

    넓은 위미에서 황인종, 몽골로이드이겠지만... 진짜 조상이 같은 것은 아닐텐데요. 어거지로 짜맞춘 식민지 합리화 논리이지요.ㅠㅠ

  • 23.12.07 07:45

    @노베 공감합니다.

  • 작성자 23.12.06 09:25

    조선혁신교단(朝鮮革新敎團)


    일제는 1930년대부터 대륙으로 진출하기 위해 황국신민화정책을 강화했으며 그 일환으로 등장한 것이 신사참배 강요였다. 이 정책은 일부 그리스도교도들의 저항에도 불구하고 마침내 한국 그리스도교의 교단 차원에서 수용되었다. 그후 일제는 종교단체법 등을 제정하면서 종교탄압정책을 더욱 강화했다.

    일본기독교조선교단의 전신은 1942년 3월 조직된 일본 그리스도교 조선혁신교단(朝鮮革新敎團)이다.

    이 혁신교단은 일제가 전시하의 종교통제를 위해 한국 교회의 지도자들 중 일제에 타협적인 자들을 뽑아 조직한 교단이었으며, 의장은 전필순(全弼淳)이었다. 이들은 성서 중에서 〈구약성서〉의 모세 5경과 〈신약성서〉의 〈요한의 묵시록〉을 불온사상으로 간주하여 삭제했다. 전시상황이 더욱 악화되자 〈구약성서〉는 전부 폐지하고 〈신약성서〉도 4복음서만 남기고 나머지는 전부 삭제했다. 그리고 4복음서도 당국이 허가한 해석의 범위에서만 설교할 수 있었다.

  • 작성자 23.12.06 09:26

    1943년에는 성결교(聖潔敎)·안식교(安息敎)·동아기독교(東亞基督敎) 등의 재림(再臨)사상을 위험사상으로 간주하여 이 교단들을 해산시켰다. 그리고 남아있던 감리교를 중심으로 하여 장로교와 구세군 등을 포섭하고 일본 그리스도교 조선감리교단으로 명칭을 변경했으며 총리에는 감리교의 정춘수를 임명했다. 또한 일요일의 오후 집회와 수요일의 집회를 금지시키고, 청년회·사경회·아동집회 등을 모두 해산시켰으며 교회 안에는 황국신민서사·황도실천·전도보국(傳道保國) 등의 표어를 강제적으로 달게 했다.

    1945년에는 마침내 일본기독교조선교단을 창립하여 완전히 일본 그리스도교 교단에 예속시켰으며 교단의 최고 책임자인 통리에는 김관식을 임명했다. 그러나 이 교단은 1개월도 채 안 되어 일제의 패망으로 자동 해산되었다.

    출처: Daum 백과
    https://100.daum.net/encyclopedia/view/b18a1530a

  • 23.12.06 10:44

    @장코뱅 본문에서 읽고 Daum 사전으로 또 복습하는 효과가 나네요. 더 이해가 잘 됩니다.

  • 23.12.06 10:46

    세속 국가가 식민지가 되니 침략국가의 종교가 한국 개신교를 병합해 버렸네요. 게다가 신사참배까지 시키고ㅠㅠ 이런 불행한 역사가 다시는 반복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 23.12.07 07:46

    매우 공감합니다.

  • 작성자 23.12.07 14:52

    공감합니다22

  • 23.12.06 18:53

    감리교회가 아주 열일을 했군요. 앞장 서서.ㅠㅠ
    1930년대에도 혁신교단이라고 이름 붙인 것이 이질적으로 느껴집니다. 현재가 까마득한 과거가 되면 다 구식이 돼버리니 해 아래 새 것이 없다는 성경 말씀이 아주 정확하군요. 함부로 혁신 혁신 하는 것도 조심스럽네요.
    일제 하 기독교의 상황을 소상히 정리해주셔서 큰 도움이 됩니다. 감사합니다.

  • 23.12.07 07:46

    네, 공감합니다.

  • 작성자 23.12.07 14:52

    공감합니다22

최신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