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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 [ 白頭大幹 ]
* 위 치 : 강원 강릉, 평창
* 산행일시 : 2023년 07월 02일
* 교통편 : 안내산악회 (좋은사람들)
* 산행코스 : 삽당령-석두봉(인증)-화란봉(인증)-닭목령-고루포기산(인증)-능경봉(인증)-대관령(27.1km/12시간)
* 출발지점 : 강원도 강릉시 왕산면 목계리 산 460-84 주변
* 도착지점 : 강원도 평창군 대관령면 횡계리 14-111
* 산행시간 : 03:00~13:26 (산행 10:26분/휴식시간:1시간 31분)
* 산행속도 : 3.24 km/h
* 산행거리 : 28.94km
* 날씨 : 맑음
* 기온 : 24
* 약수터 정보 :
* 조망점 : 정상
* GPX 트랙 : 별도 첨부
* 100대 산 정보 :
* 산행난이도 : 고도차:중 , 거리:상
* 주요 볼거리 : 능선길. 정상조망.
백두산에서 시작되어 동쪽 해안선을 끼고 남쪽으로 흐르다가 태백산 부근에서 서쪽으로 기울어 남쪽 내륙의 지리산에 이르러 우리나라 땅의 근골을 이루는 거대한 산줄기의 옛 이름이다.
오늘은 전체 구간에서 마지막 2구간이 남은 구간을 가는 것이다.
때마침 코로나로 남들은 이미 다 끝났었는데..!
난 이제야 걸려서 힘들게 1주일을 견디다가 취소를 했는데.
지인이 괜찮다고 가도 된다고..!
그래서 힘들면 중간에 중탈 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산행을 시작했다.
현재 몸상태는 보통 때의 약 60~70% 수준이 아닌가 한다.
장거리를 갈 수 있을까..!
전날 3km 산행을 해봤는데.
힘들기는 하지만 그래도 천천히 가면 될 것 같기도 하고..!
그래서 취소했던 산행을 진행하기로 했다.
다음 주에 백두대간이 끝나는 시점이라서 그렇다.
[삽당령] 삽답령 揷唐嶺 680m
삽당령은 강릉시 왕산면 목계리와 송현리의 분수령으로, 이 고개를 넘을 때 길이 험하여 지팡이를 짚고 넘었으며 정상에 오르면 짚고 왔던 지팡이를 버리고(꽂아 놓고) 갔다 하여 '꽂을 삽(揷)'자를 써 삽답령이 되었다고 전한다. 또 다른 유래는 정상에서 북으로는 대기(大基)로 가는 길과 서쪽으로는 고단(高丹)가는 길로 세 갈래로 갈라지는 삼지창과 같다고 하여 붙여진 지명이라 한다 이 고개는 강희 54년(숙종41년)인 1715년에 개설된 것으로 추정된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부(府) 서쪽 60리 정선으로 가는 길'이라 기록되어 있다. 삽당령은 강릉을 적시고 동해로 흘러드는 강릉 남대천, 그리고 남한강 상류인 골지천으로 몸을 섞는 송현천의 발원지기도 하다.
그래도 다행인 것이 육산이라서 천천히 진행을 했다.
힘들지 않게..!
천천히..!
무척 덥다고 했는데.
바람도 시원하게 불어오고 또 숲 속이라서 그늘로 그리 어렵지 않은 산행이었다.
처음 삽당령에서 임도를 따라서 갈 수 있고 또 산길로도 갈 수 있다.
그래도 정상적인 등산로로 진행하기 위해서 등산로로 향했다.
그래도 3시에 시작된 산행은 4시 30분이 넘어서니 조금씩 날이 밝아오고 있었다.
그렇지만 숲길을 걷는데 조망이 없어서 그냥 하염없이 숲길만 걸어야 했다.
[석두봉] 石頭峰 982m
강원도 강릉시 왕산면 위치.
백두대간을 종주 해본 이들은 닭목재와 삽당령 구간에 위치한 석두봉을 수박 겉핥기로 지나친 적이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석두봉은 강원도 오지 중에서도 손꼽히는 오지이기 때문이다. 요즘말로 하면 '왕따 산'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식수를 구하기 어려울 것이라 생각해 물을 말통으로 지고 다녔다. 하지만 백두대간의 어느 구간보다 물이 풍부한 곳이므로 그럴 필요는 없다. 물은 마루금 안부에서 가까운 서남쪽에서 구할 수 있는데 가뭄에도 가능하다. 석두봉 정상은 이름 그대로 바위로 되었고 쌍이다. 동쪽 봉우리 보다 조금 낮은 서쪽 봉우리는 얼룩무늬 바위들이 서로 마주 보고 있다. 마루금을 축으로 동쪽과 북쪽은 급경사를 이뤘고 남과 서쪽은 해발 800미터의 평평한 분지로 작은터, 가르쟁이, 솜솥밭, 대용수동을 거느리고 있다.
이곳에 거주하는 주민들은 씨감자와 당근을 해갈이 하고 있다.
삽당령에서도 제법 많이 왔다.
7.7km를 왔는데 2시간이 조금 더 걸렸지만.
그리 험하지 않은 등산로에 조금은 고도차가 있는 등산로를 걸었다.
강원도지역이라서 그런지 이렇게 아름들이 나무들도 제법 있는 것이다.
백두대간길이라서 길은 또렷하고 외길이라서 딱히 길을 헤맬 힘든 곳도 없었다.
첫 번째 봉우리
아니 2번째 봉우리인데 높이 올라가는 봉우리가 이 화란봉이다.
화란봉도 조망이 되지 않는데.
화란봉에서 약 200m를 더 진행하면 전망대가 있다고 하는데.
몸도 말이 아니고 하여 그냥 오늘은 포기하고 다음에 가기로 했다.
화란봉에 다녀와서 이곳에서 아침을 먹었다.
화란봉이다.
숲 속으로 들어간 봉우리가 화란봉이다.
갈림길에서 약 200m 더 가면 화란봉이 있다.
[화란봉] 花蘭峰 1069.1m
화란봉은 이름 그대로 부챗살처럼 펼쳐진 화관이 정상을 중심으로 겹겹이 에워싼 형국이 마치 꽃잎 같다고 해서 얻은 지명이다. 산행기점인 벌마을에는 용수골이 있는데 이곳은 옛날에 이무기가 하늘로 오르다 힘이 부쳐 떨어진 곳이라 한다. 지금도 그때 자국이 용수골 너럭 바위에 남아 있다고 한다. 화란봉에선 닭목재가 한눈에 들어온다. 화란봉 주위에는 기암괴석과 몇 아름 되는 노송들이 바위 틈새에서 우람하게 자라는 모습을 보면 마치 한 폭의 동양화를 연상하게 된다.
이제 막 이렇게 여로가 피기 시작한다.
제법 개체수가 많이 있지만 이제 피기 시작한 여로는 꽃이 화려하지 않았다.
옥잠난초이다.
올해 처음 보는 옥잠난초 꽃이다.
화란봉에서 급하게 내려오면 이곳 닭목령에 도착을 한다.
이곳까지 약 14km 정도 되고 약 4시간 정도가 소요되었다.
[닭목령] 706m
강릉과 임계를 잇는 2차선 포장도로가 이 고개를 지난다. 고갯마루 북쪽의 왕산리엔 닭목골, 남쪽의 대기리엔 '닭목이'라는 지명이 있는 것으로 보아 닭과 연관이 있음을 알 수 있다. 풍수가들은 여기의 지세를 '금계포란형'의 길지로 보았는데, 이 부근이 닭의 목에 해당하기 때문에 닭목이라는 지명을 얻은 것이다. 고갯마루엔 산신각이 세워져 있다.
고랭지 체소밭을 지나서 백두대간길을 걷는다.
건너온 고랭지 체소밭이다.
잠깐 임도를 만나더니 다시 산으로 향한다.
닭목령에서부터 고루포기산까지는 계속 올라가야만 한다.
그렇지만 거리가 제법 길기 때문에 생각보다는 가파르지 않고 그냥 작은 오르막이 계속 이어질 뿐이다.
참좁쌀풀
숙은노루오줌
터리풀
힘들게 올라오면 이곳 고루포기산에 도착을 할 수 있다.
이곳까지는 약 20.5km 정도 되속 6시간 20분 정도 소요되었다.
오늘 중 제일 힘든 곳이 아닌가 한다.
[고루포기산] 1238.3m
강원 평창군 도암면 수하리와 강릉시 왕산면 고루포기 마을 사이에 있는 산. 주변의 발왕산, 제왕산, 능경봉의 명성에 가려 찾는 이들이 많지 않았던 산이다.
고로쇠나무가 많이 자생하여 예부터 구전으로 전해오나 기록은 전무하다.
태백산맥의 지맥인 해안 산맥에 딸린 산으로, 북서쪽의 빗면은 한때 대관령 스키장이 있었던 곳이다. 부근의 횡계리 일대는 평탄면을 이룬다. 서쪽에는 남한강의 지류인 송천(松川)이 감입곡류를 이루면서 남쪽으로 흘러 하안단구를 이룬다. 북동쪽 빗면으로 흐르는 수계는 왕산면 왕산리에서 강릉 남대천(南大川)의 지류로 흘러든다.
- 고랭지 채소 관련하여..
이곳은 태백 매봉산의 고랭지 채소 재배단지, 삼척 숙암리 고랭지 채소 재배단지와 함께 '백두대간 3대 고랭지채소재배단지'에 속한다. 그러나 하천 수질 오염의 주요 원인으로 꼽히고 있다. 고랭지 채소밭에서 흘러들어오는 농약과 퇴비, 토사 등.. 비내린 후 하천에 고랭지채소밭의 토사가 섞인 흙탕물이 내려와 쌓이면 물고기 알이 호흡을 제대로 못해 썩는다. 그래서 현대판 화전이라 불린다.
능경봉으로 가는 길에 이렇게 선자령도 잘 조망되는 전망대가 있다.
연리지 나무의 모습이다.
때로는 숲길로..!
이렇게 능경봉으로 가는 길은 내려갔다가 올라야만 한다.
샘터라고 되어 있지만.
샘터에 있는 관에 물이 하나도 없다
샘터가 망가진 것 같다.
고쳐놓고서 갈까 하다가 힘이 부쳐 이곳도 그냥 지나치기로 했다.'
행운의 돌탑이다.
선조들이 험한 산길을 지날 때 하나씩 올려놓은 돌들이 이렇게 탑을 이루고 있다고 한다.
[행운의 돌탑]
우리 선조들이 험한 눈길을 지날 때마다 길에 흩어진 돌을 하나씩 주워다 자연스럽게 쌓은 탑으로 이곳을 지나는 모든 이들의 행운과 안녕을 기원하며 행운의 돌탑을 세웠다 한다
능경봉은 이렇게 또 올라야만 한다.
드디어 능경봉에 도착을 했다.
다음에 마지막 구간이라서 그런지 오늘도 3명의 완등자가 있어서 이곳에서 2명이 완등사진을 담았다.
[능경봉] 陵京峰 1123.2m
강원도 평창군 대관령면 횡계리 및 강릉시 왕산면 왕산리에 걸쳐 있는 산. 백두대간이 동해를 끼고 설악산과 오대산, 황병산을 일으키고, 대관령에서 몸을 낮췄다가 다시 솟아오른 산이 능경봉이다. 대관령 남쪽 산맥 중 제일 높은 봉우리라 하여 이름 붙여졌으며 제왕산의 모산이다. 겨울철에는 무릎이 빠질 정도로 눈이 많이 쌓이는 곳이나, 대관령 줄기의 다른 산에 비해 산행거리가 짧아 비교적 힘들이지 않고 눈덮힌 겨울산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이 봉으로 가는 길은 대관령에서 출발하는 짧은 등산로와 닭목재에서 가는 긴 등산로가 있다. 특히 대관령에서 출발하는 등산로는 산행거리가 짧아서 가족 단위 등산로로 안성맞춤이다.
與地圖書=강릉부 산천조에 소우음산(所于音山)부의 서쪽 팔십리에 있는데 산중에 샘이 있어 가물면 비를 빌어 영험이 있다. 대관령 남쪽에서 제일높다] 강릉시 왕산면-성산면과 평창군 도암면에 위치한 능경봉은 능정봉(凌頂峰)또는 소우음산으로 대관령 정남으로 제일 높고 영험한 샘이 있어 기우제를 모시었고 맑은 날에는 울릉도도 보인다. 능정(凌頂)이 능경(凌頃)으로 변음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제왕산의 모산으로 오르기가 다소 힘드나 찾는이가 적어 자연이 그대로 보존된 산이다. 백두대간이 동해를 끼고 설악산(1708)과 오대산(1563), 황병산(1407)을 일으키고, 대관령에서 몸을 낮췄다가 다시 솟아오른 산이 능경봉이다. 겨울철에는 무릎이 빠질 정도로 눈이 많이 쌓이는 곳이나, 비교적 힘들이지 않고 눈덮힌 겨울산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능경봉 산행 들머리는 해발 850m가 넘는 대관령 고개마루인 대관령 남쪽휴게소에서 시작된다. 대관령에는 고갯길을 내고 두 번씩이나 죽음을 당한 고형산(高荊山)이라는 사람 얘기가 유명하다. 본래 대관령 고갯길은 오솔길이었으나, 이 고갯길을 조선시대 중종때 고형산이라는 사람이 사재를 털어 수개월 간에 걸쳐 우마차가 다닐수 있도록 넓혀 놓았다. 따라서 강릉과 한양간의 교통이 편리해졌다.
이렇게 오늘 기나긴 산행에 조망도 없고 힘들기는 하지만.
마지막 완등을 위하여 산행을 하고 있다.
꼬리조팝이다.
대관령을 다 내려오니 길가에 이렇게 꼬리조팝이 많이 피어 있다.
[대관령] 832m
강원 강릉시와 평창군의 경계에 있는 고개. 고개의 총연장이 13 km나 되며, 고개의 굽이가 99개소에 이른다고 한다. 서울과 영동을 잇는 관문이며, 영동고속도로가 통과한다. 대관령을 경계로 동쪽은 오십천이 강릉을 지나 동해로 흐르며, 서쪽은 남한강의 지류인 송천이 된다. 이 일대는 황병산, 선자령, 발왕산 등에 둘러싸인 분지로, 고위평탄면 지형을 이룬다. 기후는 한랭 다우지역으로 한국에서 가장 먼저 서리가 내리는 지역이다. 특히 겨울에 눈이 많이 내려 스키장이 들어서기에 좋은 조건이다. 연평균 기온은 6.1 ℃, 연강수량은 1,450 mm이다. 고랭지 채소 및 씨감자의 주산지이며 목축업이 발달해 있다. 산 정상에 서면 대관령의 광활한 초원과 강릉의 맑은 동해바다, 백두대간의 웅장한 산세와 마주할 수 있다.
아흔아홉 험준한 고개를 오르내리며 대굴대굴 굴러 대굴 령이라 하였으나 음절 되어 대관령이라, 또한 영서-영동 영동-영서를 넘나드는 큰관문이라 대관령이라 불리게 되었단다. 고개정상에는 대형 석비 대관령 현판, 신사임당 시비, 영동고속도로 완공 기념 조형물이 있다.
1) 석비에는 신사임당이 친정을 그리는思親詩가 오고가는 길손에 감동을 주고 있으니“늙으신 어머님을 고향에 두고/ 외로이 서울 길을 가는 이 마음/ 돌아보니 북촌은 아득도 한데/ 흰 구름만 저문 산을 날아 내리네.”
2) 영동고속도로 준공비: 박정희대통령영단으로 경인, 경부, 호남, 남해 노선을 완공하였고 오늘로서 영동 및 동해노선을 완공하여(중략).. 1975년 10월 1일
- 대관령국사성황사(大關嶺國師城隍祠)
푯돌의 뒷면에는 '강릉단오제'에서 세웠다고 적혀 있다. 해마다 봄날이면 무려 한달 보름이나 이어진다는 강릉단오제. 일찍이 강릉의 소설가 허균(1569~1618)은 "해마다 오월이면 대령의 신을 모셔다가 갖은 놀이로 기쁘게 해드린다"[허균, 「성소부부고(惺所覆 藁)]고 단오제를 글로 남겼다.
강릉은 본래 무천이라는 제사를 지내던 동예의 땅이다. 무천이 시월 상달에 올리는 추수감사제라면 단오제는 모내기를 끝낸 뒤에 곡식의 파종과 성장을 기원하는 잔치다. 온갖 씨앗을 잉태한 대지의 신들에게 바치는 생명의 축제. 강릉단오제는 그 연원을 모를 정도로 내력이 오래 되었다고 한다. 제사의 쉰은 대관령의 국사서낭신(범일국사[810~889년. 신라의 고승으로, 15세에 중이 되어 당나라에 유학한 뒤 구산선문의 하나인 강릉 굴산사에서 40여년을 주석하며 사굴산파의 개조가 되었다. 처녀가 표주박에 담긴 해를 마시고 낳았다는 탄생설화, 왜구가 침략할 적마다 대관령에 올라 술법으로 물리치는 등 강릉 지방에는 그에 관한 많은 전설이 구전된다.
대관령국사성황사는 죽은 뒤에 강릉과 영동 지방의 수호신이 되었다는 범일국사를 서낭신으로 모신다.]과 산신(김유신[허균의 「성소부부고」에 "그는 어려서 이곳에 와 수련하였는데 산신이 검술을 가르쳤고, 그의 칼은 명주 남쪽 선지사에서 만들었는데 90일만에 완성되어 광채가 달빛을 능가했다. 장군이 그 칼을 차고 고구려를 평정했으며 죽어 대관령의 산신이 되었다고 한다"는 기록이 있다.
그리고 강릉 시내에 있는 국사여서낭신(강릉의 처녀[옛날 강릉 남문동의 정씨 집안에 예쁜 딸이 하나 있었다. 하루는 정씨의 꿈에 대관령 서낭신이 나타나 그 집의 사위가 되겠노라고 청했다. 그러나 정씨는 사람이 아닌 귀신을 사위로 삼을 수 없다고 거절하였다. 얼마 후 정씨의 딸은 대관령 서낭신의 시자인 호랑이에게 물려가고 말았다. 사람들이 서낭당에 가보니 정시의 딸은 이미 죽어 있었다. 이에 사람들은 그녀의 모습을 화폭에 담아 대관령 여서낭신으로 모시고, 해마다 그녀가 호랑이에게 물려간 4월 15일이면 서낭신을 여서낭사에 모셔가 합위시키고 제사를 올렸다. 이 행사는 지금도 강릉단오제 기간중에 이루어진다.]이다. 음력 삼월 스무날이면 신주(神酒)를 빚는 일로 시작하여 단오가 지난 음력 오월 초이래까지 계속된다. 한편에선 왁자지껄 난장을 치고 단오굿과 풍어굿을 올린 뒤 관노가면극 같은 탈놀음도 곁들인다.
- 생명의 축제, 강릉단오제
가시머리에서 산굽이 하나를 돌아서면 이내 대관령 고갯마루다. 영동고속도로가 지나는 대관령 고갯마루는 널찍한 휴게소가 아래위로 자리잡아 늘 인파로 북적대는 곳이다. 본래 대령(大嶺)[『증보문헌비고』 「여지고」의 관방 편에, "지지(地誌)에 이르기를, '대관령은 강릉부 서쪽 40리에 있다. 산맥이 함경도의 검산(劍山)과 분수령에서부터 본도(本道)로 들어와서 철령, 추지령, 금강산이 되고, 또 금강산에서부터 미시파령, 설악산, 소동라령, 오대산을 거쳐 이 고개가 되는데 천여 리에 가로 뻗치었다. 『한지(漢志』에서 이른바 단단대령(單單大嶺)이라 한 것이 바로 이것이다. 여러 고개는 모두 산등성이가 길이 열린 곳과 서로 이어졌는데 이 고개가 더욱 험준하여 그 높이가 30리나 된다. 옛날에는 관방(關防)을 두고 목책을 설치하였는데 강릉의 여러 고을을 관동이라 칭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고개 아래에서부터 산 허리로 구불구불 이어져 모두 50여 구비를 거쳐 관방에 도달한다'하여싸."고 실려 있다.]이라 하여 아흔아홉 구비[정확한 헤아림이 아니라 다만 옛날부터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오는 말이다.]가 세상을 영동과 영서로 갈랐다. 내륙과 해안이 서로 만나 발길을 멈추는 곳이다.
- 대관령 개척의 선구자, 고형산
강릉대 교수 장정룡이 쓴 『대관령문화사』(동해안발전연구회, 1996)는 대관령의 역사와 개척사를 이해하는 데 매우 유익한 책이다. 그의 글에 따르면, '중종 6년에 강원도 관찰사로 부임한 고형산(高荊山 1453~1528)이 민력을 동원하지 않고 몇 달만에 대관령을 개척하여 병자호란 때 주문진으로 상륙한 청군이 이 길로 한양을 쉽게 침범하였으므로 인조가 대노하여 고형산의 묘를 파고 이른바 부관참시했다'는 종래의 전설은 아무래도 믿기 어렵다는 주장이다.
고형산은 기묘사화로 조광조를 축출하는 데 기여한 인물이다. 훗날 그의 부관참시는 어찌 되었든 이러한 정치적 배경에 뿌리를 둔 사건일 뿐, 대관령 개척과는 무관하다는 이야기다. 병자호란의 공간적 배경과 대관령 역시 거리가 너무 멀고, 교통이 어려웠던 시절에 도로를 개척한 공로를 일관되게 부정적 측면으로 폄하한 이유 또한 쉽게 수긍하기 어렵다고 했다. 어찌 되었든, 고형산이 대관령 개척과 밀접한 관련이 있음은 뚜렷한 사실로 보인다. 장정룡의 글은, 고형산을 대관령 개척으로 동서 교류의 새 역사를 이룩한 인물로 결론짓는다.
드디어 이렇게 대관령에 도착을 했다.
선자령으로 올라가는 길에 계곡이 있어서 그곳에서 간단하게 씻고 하산을 했다.
구실바위취
GPS 트랙
본 산행의 트랙
설명이 포함된 트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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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수고 하셨습니다.
제가 갔을때는 비가 억수로 오고, 딱히 볼거 없던 구간이었던 것으로 기억 되는군요.
네..!
백두대간도 보면 조망이 전혀 되지 않는곳은
정말 볼 것이 아무것도 없더라구요.
거리는 정말 긴데.
볼것이 없이 하염없이 걷는것이죠..!
봄철이다면 꽃이라도 있을 터인데.
꽃도 별로 없어서 그냥 힘들게 걷고만 왔습니다.
항상 안산 하세요.
에구 고생많으셨어요~~
드뎌 대간 끝이 보이네요~~
미리 추카 추카 합니다
꼬리조팝 넘 예뻐요
네.
감사합니다.
그렇지 않아도 다음주에 끝나는 일자인데.
비가 온다고 하네요..!
아직은 여름 야생화들은 많이 피지는 않았는데.
그래도 이렇게 이쁜 꽃들이 하나 둘씩 보이네요..
항상 안산 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