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미한 불빛 아래 들어선 복도 끝에 응급실이 있었다. 번잡할 듯했던 응급실 안은 뜻밖에 조용했다. 간호사가 가리킨 침대 위에 영호는 누워 있었다. 나를 보더니 멋쩍은 듯 웃었다. 멀쩡한 두 다리로 계룡산에 간다고 새벽에 나간 녀석이 오른쪽 다리에 반깁스를 하고 누워 있었다.
계룡산 하산길, 은선폭포 쪽으로 내려오다가
구덩이에 떨어졌다 한다. 옆 친구와 얼굴을 마주보며 대화를 나누느라 나무 뒤 구덩이를 못 본 탓이었다. 계룡산은 돌산이라 모든 길이 돌바닥이다. 떨어지면서 두 손으로 앞을 짚고 왼발과 오른 무릎으로 바닥을 디뎌, 결국 온몸의 체중이 오른 무릎에 실린 형세였다. 오른쪽 슬개골이 열십자로 골절되었다.
"많이 아팠겠다."
"아니 괜찮아 덕분에 헬리콥터도 타 보고 좋았어."
무릎 뚜껑뼈가 네조각으로 부러져서 움직일 수 없게 되자, 친구가 119에 신고했단다. 즉시 출동한 구조대에 의해 들것에 들려 넓은 공간으로 옮겨진 후, 헬리콥터에 실려 산 아래까지 이동, 구급차를 타고 이곳 을지대 병원으로 옮겨와 치료 받은 것이었다.
"나쁜 일 다음에는 좋은 일이 오는 법이니까 너무 실망하지 말고 치료 잘 받아."
"알았어 형, 시골 부모님께는 말씀드리지마. 걱정하시니까."
그때 갑자기 응급실이 시끄러워졌다. 간호사들이 가스 중독 자살 시도 환자라며 여기저기 전화를 했다. 응급 침대 구르는 소리와 우당탕, 문 여닫는 소리 속에 환자가 실려 오고, 산소호흡기와 자돗제세동기 장치까지 동원되었다. 심장마비가 일어났는지 의사가 환자 위에 올라가 심장 충격을 하고 있었다. 그때 낯익은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옆에서 울며 "아빠, 아빠"하고 소리 지르는 여대생. 인화였다.
아빠가 식품 생산 사업을 하신다 했다. 아빠에게 무슨 나쁜 일이 생긴 것인가? 그동안 들은 얘기로는 아빠가 일과 가정밖에 모르는 분이셨다. 명예를 중요시 여기며, 사업도 확장 보다는 내실을 우선으로 여겨서, 인화가 보기에도 답답했지만, 불안한 면은 조금도 없다 했었다.
잠시 후 의사는 딸 인화와 그 옆 부인을 향해 고개를 가로 저었다. 그리고 사망 선고를 하였다. 인화와 가족들의 통곡이 쏟아졌다.
인화는 자존심이 강한 친구였다. 내면지향적인, 그래서 옷차림도 털털한 나와 다르게, 그녀는 타인지향적이었다. 옷차림뿐만 아니라 말투나 작은 행동조차도 남의 시선을 많이 의식했다. 그러나 그녀의 세계는 깊고 투명해 타인의 눈치보기가 아니라, 타인에 대한 배려로 느껴졌다. 이런 차이점이 우리를 서로의 세계에 빠져들게 하였다. 우리는 독서 동아리에서 만났다. 둘다 책읽기를 좋아했기에, 친해진 둘은 따로 독서 목록을 잡고, 일주일에 한 두번 별도로 만나 토론을 하곤 하였다. 나는 국문과였고, 그녀는 불문과였다. 서로 돌아가며 작품을 제시했는데 이번 작품은 인화가 제시한 에밀 아자르(본명 로맹가리)의 <자기 앞의 생>이었다.
소설의 내용은 '인간은 무엇으로 사는가?' 라는 물음에 대한 로맹 가리식 답변 같았다. 어린 모모의 내면과 행동 묘사, 그리고 로사와 갖는 영혼의 부딪침, 그 불꽃을 통해 참된 유대감이란 무엇인가의 답을 밝혀 주는 작품이었다. 넷플릭스에 영화가 있어 그것도 보았다. 소설은 모모라는 캐릭터의 복잡다단하고 입체적인 면모를 한껏 살려서 보는 이로 하여금 다양한 공감을 불러 일으켰다. 주로 로사와의 관계에서인데, 둘의 관계가 보여 주는 감정의 변화가 특히 그랬다. 반면 영화는 모모의 캐릭터 자체도 그렇고 로사와의 관계에서도 특별한 뭔가를 얻기가 쉽지 않았다. 다만 '로사'역의 쏘피아 로렌과 '모모'역의 이브라히마 게예의 연기가 돋보였다.
나는 인화 아빠의 일에 대해 인터넷 검색을 해보았다. 사건 전모를 알 수 있었다. 먹방 유튜버와 기레기의 합작품이었다. 조회수를 늘리고자 하는 목적으로 유튜버가 인화 아빠 회사 만두를 쓰레기 만두라고 떠벌렸다. 2004년도에 있었던 쓰레기 만두 파동과 똑같았다. 자신들이 만든 가짜 만두를 갖고 회사 만두라고 속여, 만두 속이 쓰레기로 가득차 있다는 방송을 한 것이다. 그 방송을 기반으로 작은 인터넷 신문이 기사를 올렸고, 그것을 다른 기레기들이 퍼 올려 인터넷에 퍼지게 된 것이었다. 명예를 소중히 여기는 인화 아빠는 아니라고 부인하며 성명을 내고, 인터넷 방송에도 나가서 주장을 했지만, 계속되는 악풀러들의 악의성 댓글에 시달려야 했다. 결국 아빠는 자신의 억울함을 목숨으로서 표현한 것이었다. 어찌 보면 참 답답한 노릇이었다. 그냥 무시해 버리면 될 일을 명예가 걸렸다며 목숨을 버리다니......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무언가도움되는 일을 하고 싶었지만 이미 고인이 된 상태라 의미가 없었던 것이었다.
인화에게서 연락이 끊어졌다. 그리고 한달 후 만나자는 문자를 받았다.
등나무 아래에서 캔커피를 건네던 인화가 말했다. 나 프랑스 갈래. 엄마한테 다 말했어. 다음 학기 등록 안 한다고. 하지만 나의 육감으로 미루어 그녀가 외국에 갈 거란 말은 사실이 아닐 터였다. 똑바로 바라보지 않고 말을 하는 그녀의 눈빛이 애매했다. 일 년쯤 도서관에서 매일 만나 공부하고 같이 밥 먹고 편하게 지내면서 그녀에 대해 모르는 것이 없을 정도가 되고 나니 그런 생각이 든 것이었다. 나는 캔의 알미늄 손잡이를 들어 리며 ‘얘가 관계를 끝장내러 왔구나’, 생각했다. 하지만 내색하지 않고 커피를 한 모금 입에 물고는 담담하게, 많이 힘들겠네, 했다. 시월의 하늘은 물감을 엎질러 놓은 듯 파랬고, 나는 빈 노트를 들고 있는 그녀를 보며 커다란 페인트 통에 빠져 날개를 퍼득이고 있는 한 마리 나비를 상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