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주말 아침을 상쾌하게 출발하고 싶어 정양늪을 찾았다.
이제 얕은 고지식한 식견이면 아내를 즐겁게 해주지 않겠나 싶었다.
오후에 비 온다는 예보 때문인지 햇볕은 나지 않았지만, 오히려 늪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고즈늑한 분위기라 좋다.
늪을 연이 잠식해 가는, 연밭이 되어가는 안쓰러움에 안타까움이 앞선다.
그래도 어디선가 날쌘돌이 연이 분홍꽃으로 화답을 한다.
많아서 좋은 점도 있겠지만 유아독존스런 한송이 꽃이 더 아름답게 보이는 것은 왜일까.
언제나 감각이 뛰어난 아내의 눈매에 오리들가 들어왔다.
"와, 오리다". 고개 돌려 쳐다 보니 눈치 빠른 오리가 겁을 먹었는지 도망간다.
너무나 빨라 카메라가 따라가지 못한다.
카메라에 눈을 떼고 보니 인기척에 놀라 친구들이 있는 안전한 곳으로 가고 있었다.
아침 나들이를 왔는지 함께 노니는 모습이 귀엽다.
침수식물인 검정말이 있는 곳에 잉어가 숨어 아침 식사한다고 머리를 내밀었다가 들어가고를 반복해 순간포착을 못해 아쉬웠다.
부엽식물인 마름도 자기 영역을 무척 확장해 부유식물과의 세력 다툼이 심하다.
부유식물인 연이 제일 골칫거리다.
정양늪 정체를 덮을 정도다.
마치 영화의 한 장면 처럼, 암흑의 먹구름이 밀려오는 듯한 두려움이 느껴진다.
늪의 가운데 침수식물, 부유식물, 부옆식물이 영역싸움을 하는 가운데, 가장자리엔 갈대가 천하무적으로 활개를 치고 있다.
그 틈새에 큰고랭이와 부들이 차지하고 있다.
갈대의 키가 얼마나 큰지 데크위에 서 있는 우리들보다 크다.
상큼한 공기를 심호흡해 늪의 걱정거리를 떨쳐버리고, 아내와 산책을 한다. 탁옆이 무성한 왕버들나무 사이에 무언가 보인다.
이번엔 내가 먼저 발견했다. 아내를 멈추게 하고 카메라로 당겨보니 '왜가리'같다.
올곧은 자세지만 정양늪을 바라보는 모양이 조금은 측은해 보인다. 아마 자기들의 서식처인 늪의 미래가 걱정되는가 보다.
'이름을 알고 나면 이웃이 되고
꽃을 알고 나면 친구가 되고
모양까지 알고 나면 연인이 된다'고 했는데
왜가리의 측은함 까지 읽고 있으니 진 일보 했음이리라.
징검다리를 건너다 보니 예전에 본 '노랑어리 연꽃'이 아직 잠에서 깨어나지 않았다.
산책로가 잘 정비되어 있다. 산책로의 가장자리에 손 내밀고 있던 갈대와 개나리를 잘 다듬어 산책하기에 정말 좋다.
가끔 가물치와 잉어의 퍼덕임에 놀라긴 했어도, 오랜만에 아내와 걸어보는 조용한 아침은 심기일전하는데 더 없이 좋다.
정양늪 동편을 돌아 서편으로 들어서기 위한 징검다리를 건넜다.
아직도 봄의 정취를 느끼게 하는 민들레와 풀꽃들이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산책로 옆 주택 닭장에 오골계가 아침을 노래하고 있다.
약간의 불편함을 느낀 주택을 지나니 편백나무길이 동공을 크게 만든다.
벌써 근육미를 자랑할 정도로 울퉁불퉁한 줄기에 왕성한 에너지를 흡수한다.
피톤치드로 유명한 산책로지만 피톤치드의 의미를 알고 부터는 썩 마음이 내키지는 않는다.
이것이 "아는게 병이다"라는 걸까?
아침이라 쌀쌀할 것 같아 입은 옷에 무게감을 느끼고, 땀이 뽀송뽀송 솟을 정도의 적당한 아침 운동이었다.
하루의 일과중에 운동이 차지하는 비중은 크다.
그 비중 큰 운동을 했으니, 하루가 어찌 즐겁지 아니 하겠는가.
텃밭의 상추와 고추에 된장찌게, 벌써 행복한 아침 밥상에 침이 넘어간다.
한 뭉큼의 쌈을 싸 입에 넣을 때의 포만감과 만족감은 그 어디에도 비유될 수 없는 소확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