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은 크리에이티브다
제일기획 이오진 국장
2004년 좋은 광고 많이 만드십시오. 만들고 싶은 광고 많이 만드십시오. 저는 요즘, 결국은 ''話法'' 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컨셉이란 것도 결국은 ''話法'' 안에서 화해하더라는 것입니다. 전략을 놓고, 방향을 놓고 얘기하다 보면 허무해지곤 했습니다. 아무리 얘기를 해도 거리가 좁혀지질 않고 같은 자리에서 뱅뱅, 말 장난인 것 같은 경험을 종종 했습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는, 서로 다른 얘기인 것 같았는데 풀어내기에 따라 출발이 달랐던 컨셉들이 하나로 녹여지기도 하고, 처음엔 말도 안 된다고 말했던 방향도 話法을 구사하기에 따라서는 해법을 찾게 됩니다. 낯설게 ''話法''이라는 용어를 들먹였으나 결국은 ‘크리에이티브다’라는 말이지요. 프리젠테이션, 참 어려운 것입니다. 모두 내 속에서 나온 아이디어인데도 그것을 남 앞에서 객관적으로 하자 없이 설명하기란 왜 그리 어려운지? 그래서 요즘은 남들은 도대체 어떻게 프리젠테이션 하는지 궁금하고, TV나 신문에서 괜찮은 광고를 발견해도 그 아이디어를 어떻게 팔았을까에 먼저 관심이 갑니다. 좋은 아이디어도 팔리지 않으면 빛을 보지 못합니다.
왕뚜껑 TV광고
왕뚜껑 TV-CM, 이 광고를 처음 봤을 때도 이 광고의 크리에이터는 도대체, 어떻게, 어떤 논리로 이 광고의 안을 팔았을까가 궁금했습니다. 광고주의 첫 반응도 궁금했습니다. 대행사 내 리뷰에서의 반응도 궁금했습니다. 완성된 하나의 광고는 도대체 얼마나 많은 판단으로부터 살아남은 걸까? 다시 생각하게 합니다. "이 광고, 참 잘 만들었다" "아이디어가 참 기발하다" "새롭다"....여러 가지 기준의 광고들이 있으나 이번에 다른 기준으로 볼까 합니다. 이 광고가 이 형태로 완성되기까지 도대체 얼마나 많은 의견들이 같이 했을까, 생각을 하고 광고주는 뭐라고 했을까? 담당 CD는 뭐라고 프리젠테이션을 했을까? 대단한 광고주요, 대단한 CD입니다. 요즘 한창 젊은층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왕뚜껑'' TV-CM. ''왕뚜껑'' TV-CM은 얼마전 인기를 끌었던 스카이 뮤직폰 TV-CM을 패러디한 컵라면 TV-CM입니다. 스카이 뮤직폰 TV-CM의 원본 분위기와 구성을 그대로 따라가면서도 휴대폰과 라면이라는 이질적인 소재를 절묘하게 바꿔치기 하는 데 성공했다. 오래된 인터넷 문화 중 하나인 패러디가 다시 젊은이들의 감성과 만난 것입니다. 영화나 드라마의 한 장면을 패러디한 TV-CM은 그동안 많았지만, TV-CM을 직접적으로 풍자한 TV-CM이 나오기 시작한 것은 최근의 일이다. 얼마 전부터 전파를 타고 있는 야쿠르트의 컵라면 ‘왕뚜껑’ TV-CM은 흥겨운 배경 음악과 감각적인 영상의 스카이 뮤직폰 TV-CM을 절묘하게 패러디하고 있다. 이 TV-CM은 방영되자마자 인터넷 등을 중심으로 폭발적인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왕뚜껑 TV-CM은 원작에 충실하면서도 살짝 내용을 비틀어 폭소를 자아내는 패러디의 원칙에 충실하고 있다, 원작과 마찬가지로 메리 블리지의 ‘패밀리 어페어’가 배경음악으로 흘러나오는 가운데 코믹한 분위기의 남자모델이 춤을 추며 등장한다. 하지만 다른점은 남자모델은 물론 아슬아슬하게 몸을 비비며 춤을 추는 등장인물들의 손에 들려 있는 것은 왕뚜껑 컵라면. 벽에 기대고 있는 요염한 여자 모델에게 다가선 남자모델이 원작의“같이 들을까” 대신에 “같이 뚜껑 열까”라고 말합니다. 카피도 스카이 뮤직폰 광고의 It’s different! 대신에 왕뚜껑 광고는 It’s delicious!’로 바뀌었습니다. 다른 것을 찾아내는 밝은 눈을 가진 덕에 이 광고는 강력한 설득력을 지니면서 Something New의 획득에 성공하고 있습니다. 결국 소비자가 만나게 되는건 크리에이티브. 이제 Something New에 대한 강한 Need를 가지고 애를 쓴다면 지금보다는 더 좋은 광고를 할 수 있지 않을까? Need는 발명의 어머니라고 하니 말이지요.
리바이스 TV광고
외국은 이미 오래 전부터 패러디 광고를 통한 성공 사례들이 많이 있어 왔습니다. 2002년 칸느 광고제 그랑프리 수상작인 리바이스 TV-CM「오디세이」편을 기억하시는지요? 영국에서 제작된 리바이스의 광고「오디세이」편은 빠르게 질주하는 남녀를 통해 인간의 근원적인 탈출 욕구를 그렸습니다. ‘방 안에 있는 남녀는 갑자기 달리기 시작한다. 남녀는 벽을 뚫고 집 밖으로 달려나가고 중력을 거슬러 나무를 타고 뛰어오른다. 나무를 박차고 하늘로 도약하는 남녀. 화면이 빠르게 전개되는 사이 헨델의 ‘사라방드’가 장엄하게 깔린다. 두 젊은 남녀가 자유의 억압을 의미 공간에 서 있다가 그것의 극복을 포기하는 듯 하다가 다시 돌아서서 자유의 억압을 의미하는 벽을 뚫고 지나가면서 극복을 하고 마지막 벽을 뚫고 나오면서 자유를 향해 내 달린다’는 내용을 나타냅니다.
릴트 오딧세이 TV광고
이 리바이스 광고를 패러디한 해외 광고들도 히트를 치고 있고 리바이스 광고를 패러디한 포스트 프로덕션 광고는 2002년 칸느 광고제에서 상을 수상하기도 했고 2003년에는 ''릴트'' 라는 음료의 광고(릴트 오딧세이)를 통해 다시 한 번 보여지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광고들을 내놓기까지 담당 스태프들 사이에선 수많은 설왕설래가 오갔을 것 같습니다. 리뷰를 하면서 우리는 왕왕 이런 얘기를 주고 받습니다. "그래, 아이디어는 좋은데, 여기에 경쟁사 브랜드를 넣어도 되는 거 아니야? 우리만의 독특함이 없잖아?" 이런 지적과 물음엔 어찌 답해야 하는가? 어떤 논리를 펴야 좋은 아이디어를 죽이지 않고 살릴 수 있겠는가? 비교 우위를 가진 광고에는 분명 사람을 움직이는 힘이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하나를 더 보태려고 합니다. 사람으로 치면, 끊임없이 남과 비교하는 사람보다 자기 얘기만을 충실하게 자기 목소리로 하는 사람이 훨씬 신뢰가 갑니다. 혹시, 사람 마음을 움직여야 하는 광고에도 이런 면이 있는 건 아니겠는지요? 그래서 때로는 경쟁자와의 다른 포인트 보다 중요한 것이, 같은 포인트라 할지라도 얼마나 강력하고 인상적으로 표현해내느냐 그리고 누가 먼저 하느냐가 설득력을 갖는 게 아니겠는지요? Creative라는 것? 이제는 누가 얼만큼 새로운 것을 먼저 찾아내고, 먼저 만들어내느냐가 중요합니다. 그리고 또 하나 새삼스러운 발견을 하게 되었습니다. 프리젠테이션은 나쁜 안까지 잘 파는 자리가 아니라 좋은 안이 빛을 보도록 만드는 능력입니다 그러므로 프리젠테이션만큼이나 중요한 건 역시, 훌륭한 크리에이티브라는 너무 당연한 결론. 크리에이티브에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하는, 도전정신이 넘치는 크리에이티브를 만들기 위해 생각의 토양을 깊고 넓게 하는 것, 그리고 상상력과 통찰력의 씨앗을 마음과 머릿속에 놓아 기르는 것이 중요합니다. 2004년 새해가 시작된 지 한 달이 지났습니다만 여전히 작년과 다르지 않은 저 자신에게 저는 다시 한 번 새해 각오를 다지고자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