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미리 준비하는 삶
“다윗이 이르되 내 아들 솔로몬은 어리고 미숙하고 여호와를 위하여 건축할 성전은 극히 웅장하여 만국에 명성과 영광이 있게 하여야 할지라 그러므로 내가 이제 그것을 위하여 준비하리라 하고 다윗이 죽기 전에 많이 준비하였더라”(역대상 22장 5절)
나는 성격이 급해서 미리미리 준비하지 않으면 잠을 이루지 못하는 습성이 있다. 이 습성 덕분에 큰 실수 없이 사업을 할 수 있었고 큰 어려움 없이 살아올 수 있었다.
이 습성은 어려서부터 생긴 것 같다. 내 나이 15, 16세쯤인가 이웃집 모를 심으러 갔다. 그때는 기계로 모를 심지 않고 손으로 모를 심을 때다. 논을 써래로 쓸어 모 심기에 알맞게 고루 다듬어 놓고 모첨(모를 3묶음씩 묶어 놓는 것)을 골고루 던져놓은 다음 양쪽에서 줄을 당기는 두 사람이 줄을 대면 일꾼들이 일렬로 서서 한 사람이 7, 8포기의 모를 심어 나아간다.
작업이 잘 진행되어 가려면 한 손에 심을 모를 준비하고 있다가 모 줄이 쳐지면 모두 다 일제히 심어나가야 한다. 그런데 이때 준비성 없는 사람들 때문에 일의 진척이 늦어지는 일이 간혹 있었다. 모를 심고 나서 다음에 심을 모를 준비하지 않고 있다가 줄이 쳐지면 그때서야 준비하는 사람들이 있다. 부지런한 사람들은 지금 심을 모 준비도 하지만 먼 곳에 있는 모첨을 앞으로 당겨 옆에 있는 일꾼들도 같이 쓸 수 있도록 준비 작업까지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늘 여유를 가지고 일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어린 시절 나는 이 일을 통해 이웃과 더불어 살아가는 진리를 배웠다. 어떠한 일이든지 미리 준비하면 수월하게 해 낼 수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내가 서울에 와서 약간의 돈을 벌었을 때 제일 먼저 준비한 것이 있는데 그것이 고향에 논 20마지기 3천 5백여 평을 구입한 일이었다. 만약 서울에서 사업에 실패하면 시골에 가서 농사라도 지을 땅이 있어야 하겠다는 계산 때문이었다. 그때 시골 땅을 사지 말고 서울 근교 땅을 샀으면 아마 금전적으로 많은 이익을 남길 수 있었겠지만 나는 ‘준비가 이익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만약 사업에 실패하여도 나는 시골에 가서 농사짓고 살 터전이 있다는 안도감에 늘 위안을 받고 과감하게 사업을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사람은 믿을 곳이 있으면 자신감이 생기고 과감한 결단성도 생기게 된다.
내 나이 39세에 목욕탕을 짓게 된 것도 미리 준비하는 습관에서 나온 작품이다. 단명인 우리 집안의 내력을 알기에 미리 아내와 자녀들에게 살아갈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해 주고자 했던 것이다.
신혼 시절이었다. 군대 제대 후 결혼을 하고 서울 해방촌 해방교회에서 운영하는 성경구락부가 쓰던 판잣집 한 칸을 얻어 새살림을 차렸다. 살림은 없어도 방만 한 칸 있으면 만족했던 시절이었다. 사과 궤짝을 하나 사서 옆으로 누이고 거기에 커튼을 쳐서 찬장을 만들었다. 양은솥 하나에 그릇 몇 개만 있는 초라한 살림이었다.
나는 평화시장에서 노점상을 하며 그날 번 돈 대부분을 쌀을 사는 데 썼다. 쌀만 있으면 아내와 밥을 굶는 일은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봄이 지나고 여름이 돌아올 무렵 쌀을 사 모은 것이 1가마가 넘게 되었다.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쉬고 다시 스웨터가 팔리기 시작하는 가을까지는 돈벌이를 못해도 살 수 있겠다 하고 여유를 즐길 수 있었다.
이런 일도 있었다. 평화시장에서 점포를 운영하며 전국을 상대로 도매업을 할 때이다. 자금이 부족하여 당좌수표를 발행하게 되었다. 수표는 원래 은행에 잔고가 있는 상태에서 발행하는 것이 원칙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연 수표(미리 날짜를 정하여 수표를 발행하는 제도)가 있어서 1개월 혹은 2, 3개월 연수표를 발행하고 기일이 찼을 때 은행에 현금을 입금하면 되었다. 이때 현금이 준비가 안 되면 돈 구하는 데 곤욕을 치르게 된다. 사업하는 사람이면 이런 경험은 다 있었을 것이다. 사람들은 대개 수표의 지불기일을 10일, 20일, 30일로 정하여 발행한다. 따라서 10일, 20일, 30일에는 대부분의 사업하는 사람들이 일제히 현금을 필요로 하게 된다. 나는 이것을 피하기 위하여 3일, 13일, 23일로 수표를 발행하고 발행 장부에는 3일씩 앞당겨 30, 20, 10일로 기록해 수표 막는 날을 3일씩 앞당겨 놓았다. 그렇게 하니 일찍 입금을 시켜 혼잡을 면할 수 있었고 만약 현금이 부족할 때에도 다른 업체에서 차입하는 데 3일간의 여유가 있어 마음도 여유를 가지고 사업을 할 수 있었다. 나는 늘 ‘3일간의 여유가 사업을 안정시킨다. 미리 준비하는 것이 성공을 약속한다’고 믿고 사업을 하였다.
무엇보다도 내가 특별히 미리 준비하는 것은 기도이다. 나는 교회에서 대예배 시 주보에 기도순서가 정해지면 1주 내지 2주일간 마음이 편안하지 않았다. 먼저 하나님께서 응답하시는 기도 준비와 성도들이 은혜 받는 기도, 그리고 나의 중심에서 우러나오는 기도를 드릴 수 있도록 많은 준비기간을 가졌다.
한때 나는 아직도 시간이 많이 남았다고 생각하고 게을리하다가 곤란을 당한 경험이 있었다. 오관석 목사님을 모시고 부흥회 할 때 일이다. 장로 장립을 받은 지 1년도 채 되지 않았을 때인데 부흥회 첫날 저녁예배에 참석하여 무심코 앉아 있었다. 홍순우 목사님이 사회를 보셨는데 기도담당 장로님이 시간 전에 도착하지 않았다. 홍 목사님이 앞에 앉은 나를 보고 올라와 기도를 하라고 하셨다. 그때처럼 난처했던 일은 내 생애에 없는 것 같다. 나는 강단에 올라가 기도를 하였는데 지금도 생각하면 어떻게 기도를 드렸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기도가 끝난 후 내려와 보니 온몸이 땀에 흠뻑 젖어있었다. 이때 깨달은 것은 장로가 되어 어떠한 순간에도 할 수 있는 기도를 준비한다는 것이다. 이날의 깨달음은 내가 신앙생활을 하든, 사회생활을 하든 더욱 준비하는 자세를 갖추게 해 주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사는 기간은 곧 하늘나라에 가기 위한 준비기간이다. 준비하는 삶을 사는 사람만이 하늘나라를 소유하게 된다. 나도 인간인지라 살아오면서 많은 실수와 시행착오가 있었지만 하늘나라를 준비하는 마음으로 살다 보니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많은 축복을 해 주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