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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쌍녀분전기』(雙女墳傳記) 최치원 한시
1. 쌍녀분 석문시(雙女墳 石門詩)
나종혁 국역
율수현위(溧水縣尉) 최치원(崔致遠) 원작
어느 집 두 여인이 이 무덤에 남겨졌는가,
적적한 황천에서 빛 드는 문틈으로 봄을 살피며 원망한 지 몇 해인가?
형체와 그림자가 헛되이 냇가 두둑의 달로 머무르니,
무덤 앞 먼지에게 이름을 묻기조차 난망하도다.
꽃답고 애틋한 마음이 그윽한 꿈으로 정을 통함이 허락된다면,
긴긴밤 나그네를 위로한들 어찌 훼방할 수 있겠는가?
외로운 관사에서 운우의 만남을 영접한다면,
군에게 낙수의 혼에 대한 멋진 문채를 이어 주리라. <끝>
* 874년 중국 당나라 희종(熙宗) 연간 중국 강소성 율수현위 최치원(崔致遠) 작 칠언 율시 한시
* 874년 중국 당나라 희종 때 중국 강소성 율수현위에 제수되어 율수현 남쪽 초현관 앞의 고총 쌍녀분(雙女墳)을 방문에 돌문에 쓴 칠언 율시 한시
雙女墳 石門詩
崔致遠
誰家二女此遺墳,
寂寂泉扃幾怨春.
形影空留溪畔月,
姓名難問塚頭塵.
芳情儻許通幽夢,
永夜何妨慰旅人.
孤館若逢雲雨會,
與君繼賦洛川神. <끝>
* 원문 출전: 『쌍녀분전기』(雙女墳傳記)
쌍녀팔낭자 석문시답시(雙女八娘子 石門詩答詩)
나종혁 국역
중국인 장(張) 씨 쌍녀팔낭자(中國人 雙女八娘子)
죽은 사람의 넋 이별의 한탄은 외로운 무덤에 이르렀어도,
살굿빛 뺨 미인의 눈썹에는 오히려 봄이 가까이 왔습니다.
학 타고 삼도로 가는 길 찾기 어려워서,
봉황 비녀가 헛되이 구천의 띠끌로 떨어졌습니다.
생전에 항시 나그네를 쑥스러워했는데,
오늘은 모르는 사람에게도 교태를 품는군요.
시문으로 소첩의 의중을 알리니 심히 부끄럽지만,
한 번 고개를 떨구고 마음의 상처를 잠시 받을 뿐입니다. <끝>
* 874년 중국 당나라 희종(熙宗) 연간 중국 강소성 율수현 쌍녀팔낭자(雙女八娘子) 작 칠언 율시 한시
* 874년 중국 당나라 희종 때 중국 강소성 율수현위에 제수되어 율수현 남쪽 초현관 앞의 고총 쌍녀분(雙女墳)을 방문해 돌문에 칠언 율시 한시 1수를 쓰고 율수현 관사로 돌아오자, 쌍녀팔낭자가 답시를 여인 취금으로 하여금 인편으로 보냈다. 우리나라 최초의 설화 소설 『쌍녀분전기』의 내용이다.
雙女八娘子 石門詩答詩
中國人 雙女八娘子
幽魂離恨寄孤墳
桃臉柳眉猶帶春.
鶴駕難尋三島路,
鳳釵空墮九泉塵.
當時在世長羞客,
今日含嬌未識人.
深愧詩詞知妾意,
一回延首一傷神. <끝>
* 원문 출전: 『쌍녀분전기』(雙女墳傳記)
쌍녀구낭자 석문시답시(雙女九娘子 石門詩答詩)
나종혁 국역
중국인 장(張) 씨 쌍녀구낭자(中國人 雙女九娘子) 원작
왕래하는 그 누가 길옆의 무덤을 돌아보리요,
난새 거울과 원앙 이불에는 끼인 먼지만이 일어납니다.
한 번 죽고 한 번 사는 것은 하늘의 운명이라지만,
꽃이 피고 꽃이 지는 세상은 봄이랍니다.
비록 진녀가 속세를 멀리할 수 있기를 바랐어도,
임희처럼 사람을 간교하게 사랑하는 법을 배우지는 못했습니다.
양왕을 두고 운우를 꿈꾸기를 바랐어도,
천 가지 생각 만 가지 기억은 마음만 상할 뿐입니다. <끝>
* 874년 중국 당나라 희종(熙宗) 연간 중국 강소성 율수현 쌍녀구낭자(雙女九娘子) 작 칠언 율시 한시
* 874년 중국 당나라 희종 때 중국 강소성 율수현위에 제수되어 율수현 남쪽 초현관 앞의 고총 쌍녀분(雙女墳)을 방문해 돌문에 칠언 율시 한시 1수를 쓰고 율수현 관사로 돌아오자, 쌍녀팔낭자와 구낭자가 답시를 하녀 취금(翠襟)으로 하여금 인편으로 보냈다. 우리나라 최초의 설화 소설 『쌍녀분전기』의 내용이다.
雙女九娘子 石門詩答詩
中國人 雙女九娘子
幽魂離恨寄孤墳,
桃臉柳眉猶帶春.
鶴駕難尋三島路,
鳳釵空墮九泉塵.
當時在世長羞客,
今日含嬌未識人.
深愧詩詞知妾意,
一回延首一傷神. <끝>
* 원문 출전: 『쌍녀분전기』(雙女墳傳記)
쌍녀구낭자 석문시답시추시(雙女九娘子 石門詩答詩追詩)
나종혁 국역
중국인 장(張) 씨 쌍녀구낭자(中國人 雙女九娘子) 원작
이름을 감춘다고 괴이하게 여기지 말지니,
외로운 영혼이 속세의 사람을 두려워함입니다.
장차 마음의 생각을 이야기하려고 하니,
잠시 서로 친교 할 수 있게 능히 허락하소서. <끝>
* 874년 중국 당나라 희종(熙宗) 연간 중국 강소성 율수현 쌍녀구낭자(雙女九娘子) 작 오언 절구 한시 추시
* 874년 중국 당나라 희종 때 중국 강소성 율수현위에 제수되어 율수현 남쪽 초현관 앞의 고총 쌍녀분(雙女墳)을 방문해 돌문에 칠언 율시 한시 1수를 쓰고 율수현 관사로 돌아오자, 쌍녀 팔낭자와 구낭자가 답시를 여인 취금(翠襟)으로 하여금 인편으로 보냈다는 우리나라 최초의 설화 소설 『쌍녀분전기』의 내용이다.
雙女九娘子 石門詩答詩追詩
中國人 雙女九娘子
莫恠藏名姓,
孤魂畏俗人.
欲將心事說,
能許暫相親. <끝>
* 원문 출전: 『쌍녀분전기』(雙女墳傳記)
2. 석문시 쌍녀답시 최치원회시(石門詩 雙女答詩 崔致遠回詩)
나종혁 국역
율수현위(溧水縣尉) 최치원(崔致遠)
짝을 찾아 경솔한 시문을 옛 무덤에 썼지만,
어찌 선녀가 세상의 어지러운 일을 묻기를 바라겠소.
취금마저도 고운 구슬꽃 같으니,
군복의 붉은 소매를 입은 이들은 응당 신선나무에 봄을 품었으리라.
이름을 숨겨 세속의 나그네를 맡기고,
교묘하게 문자를 지어 시인을 괴롭히는구려.
단연코 충심으로 바라고 원해 보태어 기쁘게 웃을지니,
축복의 기도를 천령 만신께 드리노라. <끝>
* 874년 중국 당나라 희종(熙宗) 연간 중국 강소성 율수현위(溧水縣尉) 최치원(崔致遠) 작 칠언 율시 한시(석문시 쌍녀답시 최치원회시)
* 874년 중국 당나라 희종 때 중국 강소성 율수현위에 제수되어 율수현 남쪽 초현관 앞의 고총 쌍녀분(雙女墳)을 방문해 돌문에 칠언 율시 한시 1수를 쓰고 율수현 관사로 돌아오자, 쌍녀팔낭자와 구낭자가 답시를 여인 취금으로 하여금 인편으로 보냈다. 이에 대해 취금(翠襟)이 회신을 바라 최치원이 급히 회신을 시로 써주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설화 소설 『쌍녀분전기』의 내용이다.
石門詩 雙女答詩 崔致遠回詩
율수현위(溧水縣尉) 최치원(崔致遠)
偶把狂詞題古墳,
豈期仙女問風塵.
翠襟猶帶瓊花艶,
紅袖應含玉樹春.
偏隱姓名寄俗客,
巧裁文字惱詩人.
斷腸唯願陪歡笑,
祝禱天靈與萬神. <끝>
* 원문 출전: 『쌍녀분전기』(雙女墳傳記)
3. 석문시 쌍녀답시 최치원회시추시(石門詩 雙女答詩 崔致遠回詩追詩)
나종혁 국역
율수현위(溧水縣尉) 최치원(崔致遠) 원작
파랑새가 뜻밖에 일의 까닭을 알려주어,
잠시 서로를 기억하며 두 줄기 눈물을 흘리노라.
오늘밤 만약 선녀를 만나지 못한다면,
남은 인생 물리치고 땅으로 들어가 구하겠노라. <끝>
* 874년 중국 당나라 희종(熙宗) 연간 중국 강소성 율수현위(溧水縣尉) 최치원(崔致遠) 작 칠언 절구 한시(석문시 쌍녀답시 최치원회시추시)
* 874년 중국 당나라 희종 때 중국 강소성 율수현위에 제수되어 율수현 남쪽 초현관 앞의 고총 쌍녀분(雙女墳)을 방문해 돌문에 칠언 율시 한시 1수를 쓰고 율수현 관사로 돌아오자, 쌍녀 팔낭자와 구낭자가 답시를 여인 취금으로 하여금 인편으로 보냈다. 이에 대해 취금(翠襟)이 회신을 바라 최치원이 급히 회신을 시로 써주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설화 소설 『쌍녀분전기』의 내용이다.
石門詩 雙女答詩 崔致遠回詩追詩
溧水縣尉 崔致遠
靑鳥無端報事由,
暫時相憶淚雙流.
今宵若不逢仙質,
拚却殘生入地求. <끝>
* 원문 출전: 『쌍녀분전기』(雙女墳傳記)
4. 쌍녀 율수현관사 방문(雙女 溧水縣官舍 訪問)
나종혁 국역
율수현위(溧水縣尉) 최치원(崔致遠) 원작
꽃 같은 밤 다행히 잠시 서로 만났기로,
무슨 연고로 말없이 늦봄을 마주 대할 수 있을까?
장차 이르기를 진실부를 사귀게 되었으나,
본디 식부인을 사귀지는 못하였더라. <끝>
* 874년 중국 당나라 희종(熙宗) 연간 중국 강소성 율수현위(溧水縣尉) 최치원(崔致遠) 작 칠언 절구 한시(쌍녀 율수현관사 방문시)
* 874년 중국 당나라 희종 때 중국 강소성 율수현위에 제수되어 율수현 남쪽 초현관 앞의 고총 쌍녀분(雙女墳)을 방문해 돌문에 칠언 율시 한시 1수를 쓰고 율수현 관사로 돌아오자, 쌍녀 팔낭자와 구낭자가 답시를 여인 취금으로 하여금 인편으로 보냈다. 이에 대해 취금(翠襟)이 회신을 바라 최치원이 급히 회신을 시로 써주었다. 취금이 떠나고 한참 후에 쌍녀가 관사로 와서 최치원이 시를 지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설화 소설 『쌍녀분전기』의 내용이다.
雙女 溧水縣官舍 訪問
溧水縣尉 崔致遠
芳宵幸得暫相親,
何事無言對暮春.
將謂得知秦室婦,
不知元是息夫人. <끝>
* 원문 출전: 『쌍녀분전기』(雙女墳傳記)
5. 최치원•쌍녀 칠언시 6수(崔致遠•雙女 七言詩六首)
나종혁 국역
최치원(崔致遠)•중국인 장(張) 씨 쌍녀(雙女) 팔낭자(八娘子)와 구낭자(九娘子) 원작
최치원
금빛 물결 눈에 가득 차 높다란 하늘 멀리로 떠 있고,
천 리 길 걱정 근심 곳곳에 서려 있구려.
팔낭자
그림자가 움직여도 수레바퀴 옛길을 잃지 않고,
계수나무 꽃은 봄바람을 기다리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구낭자
둥근 아침 햇빛이 삼경을 지나서 점차 밝아오고,
이별의 사념은 한 번 바라보더니 애태우며 불쌍히 여기나이다.
최치원
희뿌연 표백색 펼쳐질 때 비단 장막 갈라지고,
서옥의 무늬를 비추는 곳으로 구슬 난간이 통과하노라.
팔낭자
인간 세상은 멀리로 이별하여 애간장을 끊고,
황천 아래 저승의 고독한 한스러움이 끝도 없습니다.
구낭자
상아가 계교가 많은 것을 늘 부러워하다가,
능히 향각을 버리고 선궁에 이르렀습니다. <끝>
* 874년 중국 당나라 희종(熙宗) 연간 중국 강소성 율수현위(溧水縣尉) 최치원(崔致遠) 작 연작 한시(최치원•쌍녀 칠언시 6수)
* 874년 중국 당나라 희종 때 중국 강소성 율수현위에 제수되어 율수현 남쪽 초현관 앞의 고총 쌍녀분(雙女墳)을 방문해 돌문에 칠언 율시 한시 1수를 쓰고 율수현 관사로 돌아오자, 쌍녀 팔낭자와 구낭자가 답시를 여인 취금으로 하여금 인편으로 보냈다. 이에 대해 취금(翠襟)이 회신을 바라 최치원이 급히 회신을 시로 써주었다. 한참 후에 쌍녀가 관사로 와서 최치원이 시를 지었다. 최치원과 쌍녀는 서로 번갈아 가면 연작시를 지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설화 소설 『쌍녀분전기』의 내용이다.
崔致遠•雙女 七言詩六首
崔致遠•雙女
崔致遠
金波滿目泛長空, 千里愁心處處同.
八娘子
輪影動無迷舊路, 桂花開不待春風.
九娘子
圓輝漸皎三更外, 離思偏傷一望中.
崔致遠
練色舒時分錦帳, 珪模映處透珠櫳.
八娘子
人間遠別腸堪斷, 泉下孤眠恨莫窮.
九娘子
每羨嫦娥多計校, 能抛香閣到仙宮. <끝>
* 원문 출전: 『쌍녀분전기』(雙女墳傳記)
쌍녀동침(雙女同寢)
나종혁 국역
중국인 장(張) 씨 쌍녀(雙女) 팔낭자(八娘子)와 구낭자(九娘子)
팔낭자
그대의 말씀 들어보니 이에 어질지 못하고,
인연에 화답하듯 여 하녀와의 동침에 더불어 익숙해진들 어떠리요.
구낭자
별안간 광인과 거리낌 없이 시집을 가게 되었지만,
지선을 모욕하는 경박한 말을 들어도 순종치 않았습니다. <끝>
* 874년 중국 당나라 희종(熙宗) 연간 중국 강소성 율수현위(溧水縣尉) 최치원(崔致遠) 작 연작 한시
* 874년 중국 당나라 희종 때 중국 강소성 율수현위에 제수되어 율수현 남쪽 초현관 앞의 고총 쌍녀분(雙女墳)을 방문해 돌문에 칠언 율시 한시 1수를 쓰고 율수현 관사로 돌아오자, 쌍녀 팔낭자와 구낭자가 답시를 여인 취금(翠襟)으로 하여금 인편으로 보냈다. 이에 대해 취금이 회신을 바라 최치원이 급히 회신을 시로 써주었다. 한참 후에 쌍녀가 관사로 와서 최치원이 시를 지었다. 최치원과 쌍녀는 서로 번갈아 가며 연작시를 지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설화 소설 『쌍녀분전기』의 내용이다.
雙女同寢
雙女 八娘子九娘子
八娘子
聞語知君不是賢,
應緣慣與女奴眠.
九娘子
無端嫁得風狂漢,
强被輕言辱地仙. <끝>
* 원문 출전: 『쌍녀분전기』(雙女墳傳記)
6. 최치원 화답시(崔致遠 和答詩)
나종혁 국역
율수현위(溧水縣尉) 최치원(崔致遠)
오백 년 이래 처음으로 어진 사람과 상봉했고,
또한 기쁘게 사랑으로 오늘밤 쌍을 이루어 동침했구려.
꽃답고 애틋한 마음이여 광인과 가까이 했다고 괴이하게 의심하지 말고,
봄바람에 잠시 동안 나가더라도 시선을 헤아리리라. <끝>
* 874년 중국 당나라 희종(熙宗) 연간 중국 강소성 율수현위(溧水縣尉) 최치원(崔致遠) 작 화답시
* 874년 중국 당나라 희종 때 중국 강소성 율수현위에 제수되어 율수현 남쪽 초현관 앞의 고총 쌍녀분(雙女墳)을 방문해 돌문에 칠언 율시 한시 1수를 쓰고 율수현 관사로 돌아오자, 쌍녀 팔낭자와 구낭자가 답시를 여인 취금(翠襟)으로 하여금 인편으로 보냈다. 이에 대해 취금이 회신을 바라 최치원이 급히 회신을 시로 써주었다. 한참 후에 쌍녀가 관사로 와서 최치원이 시를 지었다. 최치원과 쌍녀는 서로 번갈아 가며 연작시를 지었고, 최치원이 화답시를 지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설화 소설 『쌍녀분전기』의 내용이다.
崔致遠 和答詩
溧水縣尉 崔致遠
五百年來始遇賢,
且歡今夜得雙眠.
芳心莫怪親狂客,
會向春風占謫仙. <끝>
* 원문 출전: 『쌍녀분전기』(雙女墳傳記)
쌍녀팔낭자 이별시(雙女八娘子 離別詩)
나종혁 국역
중국인 장(張) 씨 쌍녀팔낭자(雙女八娘子) 원작
별은 처음으로 다시 돌아가고 물시계 늦어지니,
이별의 말을 하고 싶지만 첫머리에 눈물이 쏟아집니다.
지금부터 천 년의 한을 다시 묶어 맺고,
하룻밤의 즐거움을 또 다시 찾을 계획은 없습니다. <끝>
* 874년 중국 당나라 희종(熙宗) 연간 중국 강소성 율수현 장(張) 씨 썅녀팔낭자(雙女八娘子) 이별시(離別詩)
* 874년 중국 당나라 희종 때 중국 강소성 율수현위에 제수되어 율수현 남쪽 초현관 앞의 고총 쌍녀분(雙女墳)을 방문해 돌문에 칠언 율시 한시 1수를 쓰고 율수현 관사로 돌아오자, 쌍녀 팔낭자와 구낭자가 답시를 여인 취금(翠襟)으로 하여금 인편으로 보냈다. 이에 대해 취금이 회신을 바라 최치원이 급히 회신을 시로 써주었다. 한참 후에 쌍녀가 관사로 와서 최치원이 시를 지었다. 최치원과 쌍녀는 서로 번갈아 가며 연작시를 지었고, 최치원이 화답시를 지었다. 다음 날 날이 밝자, 셋은 이별을 나누었고, 썅녀가 이별시를 읊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설화 소설 『쌍녀분전기』의 내용이다.
雙女八娘子 離別詩
雙女八娘子
星斗初回更漏闌,
欲言離緖淚闌干.
從玆便結千年恨,
無計重尋五夜歡. <끝>
* 원문 출전: 『쌍녀분전기』(雙女墳傳記)
쌍녀구낭자 이별시(雙女九娘子 離別詩)
나종혁 국역
중국인 장(張) 씨 쌍녀구낭자(雙女九娘子) 원작
기우는 달빛이 창에 비추니 붉은 뺨 낯설어,
새벽바람에 소매 나부끼니 비취 눈썹 곤두섭니다.
그대를 타일러도 걸음걸음 애간장만 끊어지고,
비는 뿌리고 구름은 돌아가니 꿈으로 들기도 지난합니다. <끝>
* 874년 중국 당나라 희종(熙宗) 연간 중국 강소성 율수현 장(張) 씨 썅녀구낭자(雙女九娘子) 이별시
* 874년 중국 당나라 희종 때 중국 강소성 율수현위에 제수되어 율수현 남쪽 초현관 앞의 고총 쌍녀분(雙女墳)을 방문해 돌문에 칠언 율시 한시 1수를 쓰고 율수현 관사로 돌아오자, 쌍녀 팔낭자와 구낭자가 답시를 여인 취금(翠襟)으로 하여금 인편으로 보냈다. 이에 대해 취금이 회신을 바라 최치원이 급히 회신을 시로 써주었다. 한참 후에 쌍녀가 관사로 와서 최치원이 시를 지었다. 최치원과 쌍녀는 서로 번갈아 가며 연작시를 지었고, 최치원이 화답시를 지었다. 다음 날 날이 밝자, 셋은 이별을 나누었고, 썅녀가 이별시를 읊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설화 소설 『쌍녀분전기』의 내용이다.
雙女九娘子 離別詩
雙女九娘子
斜月照窓紅臉冷,
曉風飄袖翠眉攢.
辭君步步偏腸斷,
雨散雲歸入夢難. <끝>
* 원문 출전: 『쌍녀분전기』(雙女墳傳記)
7. 최치원 이별시(崔致遠 離別詩)
나종혁 국역
율수현위(溧水縣尉) 최치원(崔致遠) 원작
잡초로 가리고 먼지로 덮인 쌍녀분,
예로부터 이름난 명성 대저 누가 들었으랴?
황량한 들판에 천 년의 달만 애닯도록,
헛되이 무산의 두 조각구름을 가두는가?
나의 한스럽게 크고 뛰어난 재주는 이국의 관리가 되고,
우연히 고적한 관사에 들렀다가 저승 깊은 데를 찾았노라.
희롱삼아 문득 시구를 문에다 지었더니,
감동 받은 선녀가 자태를 꾸미고 밤에 엄습해 왔도다.
붉은 비단 소매 자줏빛 비단 치마,
앉았더니 앞에 난초 사향 향기가 사람을 핍박해 오는구나.
비취 눈썹 붉은 뺨 모두 세속을 초월했고,
마시는 모습과 시심 또한 출중했노라.
지고 남은 꽃 마주 대하며 감미로운 술잔 기울이고,
쌍쌍이 비단 같은 고운 손 건네며 오묘한 춤을 추었노라.
광기의 마음은 이미 어지러워 부끄러움도 알지 못하고,
꽃다운 뜻 시험 삼아 헤아려 보아도 서로 하락치 않더라.
미인은 오랫동안 고개를 떨군 채 얼굴빛이 혼미해져서,
반쯤 웃음을 머금은 듯 반쯤 울음을 머금은 듯한 모양새였노라.
얼굴이 익숙해지자 자연히 마음이 불과 같았고,
뺨은 차라리 취한 것처럼 진흙과 같이 붉었다.
고운 시를 노래하다가 함께 기뻐했으니,
꽃다운 밤 아름다운 만남이 응당히 미리 정해진 것이었으리.
재능 있는 재사는 사녀가 맑은 이야기 일깨우는 것을 들었고,
또 반희가 아름다운 노래를 퍼뜨리는 것을 보았으리.
정이 깊고 뜻이 빈틈이 없어 친해지기 시작하니,
때마침 무릇 화창한 봄날 복숭아꽃 자두꽃 피는 시절이었다.
밝은 달은 이부자리 생각을 배로 더하고,
향기로운 바람은 무늬 진 비단 같은 몸을 이끌어 들인다.
무늬 진 비단 같은 몸 이부자리의 사념,
아득한 즐거움을 누리지 못하고 이미 이별의 수심에 이르렀도다.
몇 마디 남아 있는 노래 소리가 외로운 마음을 나누고,
한 점의 사그라지는 등불이 두 줄기 눈물에 비친다.
새벽녘 난새와 학이 각기 동서로 날아가고,
홀로 앉아 생각하고 헤아리다가 꿈속인가 의심하노라.
가라앉은 생각 꿈인가 의심하지만 이 또한 꿈이 아니니,
시름으로 짙푸른 하늘로 귀의하는 아침구름을 마주 대한다.
말은 길게 울며 갈 길을 바라보고,
광기의 선비는 오히려 다시 버려진 무덤을 찾는다.
비단 버선 걸음으로 향기 나는 먼지를 헤치며 상봉하지는 못하고,
오직 아침 이슬에 흐느끼는 꽃가지만 바라보았다.
애간장 끊어지기를 바라며 머리를 자주 돌리지만,
황천문 적적하고 쓸쓸하니 누가 열겠는가?
고삐를 늦추고 바라볼 때 끝없이 눈물 흐르고,
채찍 드리우고 시 읊던 곳 슬픔만이 남아 있구나.
늦봄에 바람 일고 늦봄에 햇빛 비추니,
버들강아지 어지럽게 강풍을 맞는다.
항상 장차의 나그네 생각으로 봄볕을 원망할지니,
하물며 뛰어난 품성을 품은 무릇 이별의 사념이랴.
인간사 깊은 수심이 사람됨됨인지라,
처음으로 깨우쳐 길에 들어섰지만 또 길을 잃어버리는구려.
잡초도 다한 동대에는 천 년의 오랜 한 서려 있고,
꽃이 핀 금곡에는 어느 날 아침에 봄날이로다.
완조와 유신은 평범한 인물이고,
진시황과 한무제도 신선의 골격은 아니다.
옛적 아름다운 만남도 흐르는 이야기 쫓기 어렵고,
후대에 잊은 이름 가히 헛되이 슬퍼하노라.
멀리서 유유히 왔다가 홀연히 가버리니,
무릇 비바람에 애초부터 주인 없음을 알지라.
내가 이 땅에 와서 두 여인과 상봉했으니,
멀리로 양왕이 운우를 꿈꾸던 바와 닮았도다.
대장부로다! 대장부로다!
장부의 기세 모름지기 아녀자의 한을 덜어주고,
장차 마음속 생각을 요사한 여우에게 연연하지 말라. <끝>
* 874년 중국 당나라 희종(熙宗) 연간 중국 강소성 율수현위(溧水縣尉) 최치원(崔致遠) 이별시
* 874년 중국 당나라 희종 때 중국 강소성 율수현위에 제수되어 율수현 남쪽 초현관 앞의 고총 쌍녀분(雙女墳)을 방문해 돌문에 칠언 율시 한시 1수를 쓰고 율수현 관사로 돌아오자, 쌍녀 팔낭자와 구낭자가 답시를 여인 취금(翠襟)으로 하여금 인편으로 보냈다. 이에 대해 취금이 회신을 바라 최치원이 급히 회신을 시로 써주었다. 한참 후에 쌍녀가 관사로 와서 최치원이 시를 지었다. 최치원과 쌍녀는 서로 번갈아 가며 연작시를 지었고, 최치원이 화답시를 지었다. 다음 날 날이 밝자, 셋은 이별을 나누었고, 썅녀가 이별시를 읊었다. 이에 최치원이 장시로 이별가를 노래했다. 우리나라 최초의 설화 소설 『쌍녀분전기』의 내용이다.
崔致遠 離別詩
溧水縣尉 崔致遠
草暗塵昏雙女墳,
古來名迹竟誰聞.
唯傷曠野千秋月,
空鎖巫山兩片雲.
自恨雄才爲遠吏,
偶來孤舘尋幽邃.
戱將詞句向門題,
感得仙姿侵夜至.
紅錦袖紫羅裙,
坐來蘭麝逼人薰.
翠眉丹頰皆超俗,
飮態詩情又出群.
對殘花傾美酒,
雙雙妙舞呈纖手.
狂心已亂不知羞,
芳意試看相許否.
美人顔色久低迷,
半含笑態半含啼.
面熟自然心似火,
臉紅寧假醉如泥.
歌艶詞打懽合,
芳宵良會應前定.
纔聞謝女啓淸談,
又見班姬摛雅詠.
情深意密始求親,
正是艶陽桃李辰.
明月倍添衾枕恩,
香風偏惹綺羅身.
綺羅身衾枕恩,
幽懽未已離愁至.
數聲餘歌斷孤魂,
一點殘燈照雙淚.
曉天鸞鶴各西東,
獨坐思量疑夢中.
沉思疑夢又非夢,
愁對朝雲歸碧空.
馬長嘶望行路,
狂生猶再尋遺墓.
不逢羅襪步芳塵,
但見花枝泣朝露.
腸欲斷首頻回,
泉戶寂寥誰爲開.
頓轡望時無限淚,
垂鞭吟處有餘哀.
暮春風暮春日,
柳花撩亂迎風疾.
常將旅思怨韶光,
況是離情念芳質.
人間事愁殺人,
始聞達路又迷津.
草沒銅臺千古恨,
花開金谷一朝春.
阮肇劉晨是凡物,
秦皇漢帝非仙骨.
當詩嘉會杳難追,
後代遺名徒可悲.
悠然來忽然去,
是知風雨無常主.
我來此地逢雙女,
遙似襄王夢雲雨.
大丈夫大丈夫.
壯氣須除兒女恨,
莫將心事戀妖狐. <끝>
* 원문 출전: 『쌍녀분전기』(雙女墳傳記)
8. 귀동국(歸東國)
나종혁 국역
최치원(崔致遠) 원작
덧없는 세상의 부귀영화 꿈속의 꿈이라,
흰 구름 짙게 낀 곳에서 몸 편안히 사이가 좋아라. <끝>
* 874년 중국 당나라 희종(熙宗) 연간 최치원(崔致遠) 작 칠언시 2구
* 874년 중국 당나라 희종 때 중국 강소성 율수현위에 제수되어 율수현 남쪽 초현관 앞의 고총 쌍녀분(雙女墳)을 방문해 돌문에 칠언 율시 한시 1수를 쓰고 율수현 관사로 돌아오자, 쌍녀 팔낭자와 구낭자가 답시를 여인 취금(翠襟)으로 하여금 인편으로 보냈다. 이에 대해 취금이 회신을 바라 최치원이 급히 회신을 시로 써주었다. 한참 후에 쌍녀가 관사로 와서 최치원이 시를 지었다. 최치원과 쌍녀는 서로 번갈아 가며 연작시를 지었고, 최치원이 화답시를 지었다. 다음 날 날이 밝자, 셋은 이별을 나누었고, 썅녀가 이별시를 읊었다. 이에 최치원이 장시로 이별시를 노래했다. 최치원은 동국으로 귀국하면서 시를 읊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설화 소설 『쌍녀분전기』의 내용이다.
歸東國
崔致遠
浮世榮華夢中夢,
白雲深處好安身. <끝>
* 원문 출전: 『쌍녀분전기』(雙女墳傳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