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투사 중 특히 동물과 싸우는 사람은 베스티아리(Bestiarii)라고 불리었다.
엄밀히 말해 글래디에이터는 사람과 싸우는 직종만을 가리키므로 베스티아리는 글래디에이터로 취급되지 않는다.
참고로 작자 미상의 중세 동물 우화집 베스티아리와는 발음이 비슷해도 스펠링이 다르다.
동물 검투사를 뜻하는 베스티아리는 Bestiarii 이고, 우화집 베스티아리는 Bestiary 이다.
동물 검투사로 가장 유명하고 능력이 좋았던 사람은 로마 역사상 최고의 베스티아리(Bestiarii)로 꼽히는 카포포루스(Carpophorus)였다.
Bestiarii들은 원형 경기장에서 오전에 싸웠으며, 이 오전 시간에는 동물끼리의 싸움도 벌어졌다.
이들은 대개 수입해온 흔치 않은 동물들과 싸웠다. 제국 각지에서 잡아오기도 했고, 심지어는 카스피호랑이, 코뿔소, 시리아코끼리, 아틀라스불곰, 유라시아불곰, 아시아사자 같은 희귀한 맹수들도 잡아 왔다.
모두 위험한 맹수들이기에 이들은 활과 창, 횃불, 갑주 등으로 단단히 무장하고 스코틀랜드산 사냥개들을 대동한 채 맹수들과 대결했다.
대개 베스티아리가 유리하지만 동물이 이길 확률도 약간 있었다. 이 때문인지 관중들은 짐승을 죽이는 장면 못지않게 베스티아리가 죽는 장면을 보고 싶어했다고 한다.
맹수를 따돌리기 위한 통로나 엄폐물 등의 장치를 설치하기도 했는데, 극적인 장면을 연출하기 위한 의도도 있었다.
보다 정면으로 맹수에게 대항할수록 더 많은 환호를 받았으며 때로는 오늘날의 투우처럼 짐승의 공격을 아슬아슬하게 흘리거나, 사자나 호랑이와 대적하면서 죽마 위에 서서 싸우는 등 일부러 위험한 상황을 연출하는 선수도 있었다.
심지어 곰이나 사자를 맨손으로 대적한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도적 수괴나 기타 중죄인을 이런 식으로 처형하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가장 이해하기 쉬운 사례는 박해받던 크리스트교 순교자들.
상금과 명예를 위해 싸우는 베스티아리는 용기의 증명이라고 하여 젊고 용맹한 사내에게 권장하기도 했으며, 네로나 콤모두스는 직접 베스티아리로 나서서 맹수들을 물리치기도 했다. 이런 상금 경기를 하는 베스티아리를 위한 훈련 교실도 존재했다.
가장 뛰어난 베스티아리로는 Carpophorus가 알려져 있는데, 사자, 곰, 표범을 한 전투에서 죽여버린 적이 있으며, 한 개의 창으로 코뿔소 한 마리를 죽인 적이 있고, 서로 다른 종류의 동물들 20마리를 한번에 죽인 적도 있다.
로마 황제인 콤모두스도 이 짓을 자주 했다. 그는 검투사질을 하는 게 취미였는데, 말년엔 너무나도 심취해서 나중엔 이미 있던 집정관들을 죽인 다음 자기가 검투사 복장을 하고 검투사 집정관이 되려고 했다.
그는 싸움이나 사냥 실력이 매우 좋아서 기린, 얼룩말 같은 강력한 동물이나 사자, 호랑이, 곰 같은 맹수들을 하루에 100마리씩 잡아댔고 아프리카코끼리도 3마리나 잡았다고 하며, 대략 시속 70km 정도로 전력질주하는 타조를 활로 쏴 맞히기도 했다. 당대의 기록에는 이렇게 나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