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히9:27) = 죄의 삯은 사망이요(롬6:23) = 인간의 숙명
나는 어릴 때 어느 겨울에 심한 독감에 걸려서 밥을 먹지 못하고 누워 아파서 앓고 있었다. 저녁시간에 되어서 가족들이 둘러 둘러앉아 방에서 식사를 하였다.
그때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죽어서 없어져도 가족들은 저렇게 밥을 먹고 있겠지?”
“죽어서 땅속에 묻히면 깜깜해서 얼마나 무서울까?”
“땅속에서 숨이 막혀 얼마나 답답할까?”
“땅속은 얼마나 추울까?”
이것이 내가 어려서 처음으로 죽음을 생각했던 기억이다.
*숙명(宿命) : 날 때부터 타고난 정해진 운명
찬송 : 96장(예수님은 누구신가)
제목 : 죽은 자를 살리신 예수님
본문 : 눅7:11~17
11 그 후에 예수께서 나인이란 성으로 가실새 제자와 많은 무리가 동행하더니 12 성문에 가까이 이르실 때에 사람들이 한 죽은 자를 메고 나오니 이는 한 어머니의 독자요 그의 어머니는 과부라 그 성의 많은 사람도 그와 함께 나오거늘 13 주께서 과부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울지 말라 하시고 14 가까이 가서 그 관에 손을 대시니 멘 자들이 서는지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청년아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 하시매 15 죽었던 자가 일어나 앉고 말도 하거늘 예수께서 그를 어머니에게 주시니 16 모든 사람이 두려워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이르되 큰 선지자가 우리 가운데 일어나셨다 하고 또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돌보셨다 하더라 17 예수께 대한 이 소문이 온 유대와 사방에 두루 퍼지니라
11 Soon Jesus and his disciples were on their way to the town of Nain, and a big crowd was going along with them. 12 As they came near the gate of the town, they saw people carrying out the body of a widow's only son. Many people from the town were walking along with her. 13 When the Lord saw the woman, he felt sorry for her and said, "Don't cry!" 14 Jesus went over and touched the stretcher on which the people were carrying the dead boy. They stopped, and Jesus said, "Young man, get up!" 15 The boy sat up and began to speak. Jesus then gave him back to his mother. 16 Everyone was frightened and praised God. They said, "A great prophet is here with us! God has come to his people." 17 News about Jesus spread all over Judea and everywhere else in that part of the country.
*인간은 인간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숙명적인 운명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인간의 숙명적인 문제는 무엇일까요?
인간이 자신의 의지와 노력만으로는 완전히 통제하거나 해결할 수 없는 '숙명적인 문제'들이 있다. 철학, 종교, 그리고 현대 심리학에서는 이를 인간의 '실존적 한계'라고 부릅니다.
<인간의 세 가지 실존적 한계와 불안>
독일 출신의 신학자이자 철학자인 폴 틸리히(Paul Tillich)는 그의 저서 『존재의 용기(The Courage to Be)』에서 인간이 실존적으로 겪게 되는 세 가지 근원적인 불안(Anxiety)을 제시했습니다.
그는 불안을 단순히 심리적인 두려움이 아니라, 인간이 자신의 '유한성'과 '비존재(nonbeing)'의 위협을 자각할 때 생겨나는 실존적 상태라고 보았습니다. 틸리히가 말하는 세 가지 불안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운명과 죽음에 대한 불안 (Ontic Anxiety)
히9:27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We die only once, and then we are judged.
1) 핵심: 인간은 자신의 존재가 언제든 사라질 수 있다는 유한성을 자각합니다.
2) 설명: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운명'과 피할 수 없는 '죽음' 앞에서 느끼는 불안입니다. 이는 존재의 토대 자체가 사라질 수 있다는 근원적인 공포를 의미하며, 인간의 물리적 존재(Ontic)와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2. 죄책과 정죄에 대한 불안 (Moral Anxiety)
약1:15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Our desires make us sin, and when sin is finished with us, it leaves us dead.
롬6:23 죄의 삯은 사망이요
Sin pays off with death.
1) 핵심: 인간은 도덕적 책임과 자기 실현에 실패했을 때 불안을 느낍니다.
2) 설명: 자신의 본질과 양심에 비추어 스스로를 부정하게 되거나, 타인 또는 신의 심판(정죄)을 받을 것이라는 도덕적 불안입니다. 이는 "내가 마땅히 되어야 할 모습이 되지 못했다"는 자각에서 오는 자기 자신에 대한 불안입니다.
3. 공허함과 무의미함에 대한 불안 (Spiritual Anxiety)
전1:2~4
2 전도자가 이르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3 해 아래에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사람에게 무엇이 유익한가 4 한 세대는 가고 한 세대는 오되 땅은 영원히 있도다
2 Nothing makes sense! Everything is nonsense. I have seen it all-- nothing makes sense! 3 What is there to show for all of our hard work here on this earth? 4 People come, and people go, but still the world never changes.
1) 핵심: 삶의 목적과 의미를 잃어버리는 데서 오는 영적인 불안입니다.
2) 설명: 자신의 삶을 지탱하던 궁극적인 가치나 신념이 무너질 때 찾아오는 불안입니다. 틸리히는 현대 사회가 겪는 가장 지배적인 불안이 바로 이 '무의미함의 불안'이라고 분석했습니다. 무엇을 위해 사는가에 대한 답을 찾지 못할 때 인간은 깊은 절망과 허무를 경험합니다.
*틸리히의 해법: '존재의 용기'
틸리히는 인간이 이러한 불안에서 완전히 도망칠 수는 없다고 말합니다. 대신, 불안이 우리를 덮칠 때에도 '그럼에도 불구하고(in spite of)' 자신의 존재를 긍정하는 '존재의 용기'를 가져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그는 이 용기의 원천을 스스로를 넘어선 '존재 자체(Ground of Being)' 또는 '하나님'과의 연결에서 찾았으며, 스스로 받아들일 수 없는 자신의 모습마저도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이시는 그분의 수용을 믿는 것에서 참된 용기가 나온다고 보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인간의 숙명을 해결하신 구세주>
<불경>
석가모니에게 독자를 잃은 과부가 와서 살려달라고 하소연하자, 석가모니는 그 여자에게 동네에 내려가서 한 번도 죽음을 겪지 않은 집에서 쌀 한 줌을 얻어서 미음을 쑤어서 아들에게 먹이면 살릴 수 있다고 했다.
이 여자는 크게 기뻐하면서 동네를 뒤졌지만 한 번도 죽음을 당하지 않은 집이 하나도 없었다. 결국 어깨가 처져서 돌아온 그 여자에게 석가모니는 위로하면서 생자필멸(生者必滅, 태어난 모든 것은 소멸한다)이라 사람이 나면 반드시 죽는 법, 인연 따라 일어나서 인연 따라 없어지는 것이니 너무 슬퍼할 것이 없느니라 하면서 위로했다. 이에 여자는 크게 깨달음을 얻어서 내려갔다. 불교는 매우 철학적이고, 얼핏 심오하게 느껴진다. 심지어 멋있어 보이기까지 한다.
<결론>
독자를 잃은 과부의 이야기가 성경과 불경에 나온다.
불교에서는 죄의 문제를 제기하기는 하였지만 죄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
또한 불교에서는 죽음의 문제를 제기하였지만 생사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
만약 석가모니가 죄와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였다면 나는 석가모니는 구세주로 믿었을 것이다. 그러나 석가모니는 죄와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 그래서 석가모니는 구세주가 될 수 없다.
그러나 성경에서 독자를 잃은 과부는 절망 속에서 심히 슬퍼하고 있는데, 예수님께서 장례 행렬을 멈추게 하시더니 덜컥 독자를 살려놓지 않으셨는가?
나인성 과부의 아들이 살아났다. 이것은 말로만 전하는 심리적인 위로가 아니다.
하나님 나라가 임한 것이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돌보셨다. 예수님은 생명이요 부활이시다. 예수님만이 구세주이시다.
요11:25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26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Jesus then said, "I am the one who raises the dead to life! Everyone who has faith in me will live, even if they die.
요14: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I am the way, the truth, and the life!" Jesus answered. "Without me, no one can go to the Father.
행4:12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
Only Jesus has the power to save! His name is the only one in all the world that can save anyo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