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미국 백인 경찰의 과잉진압으로 비무장 상태의 흑인남성 조지 플로이드가 사망한 이후 영국에서는 다수의 시위대가 2차 세계 대전을 승리로 이끈 영국 총리 윈스턴 처칠의 동상을 인종차별주의자라고 비난하며 훼손했습니다.
이에 영국의 로버트 젠릭 지역사회부 장관은 역사적 인물의 동상을 보호하는 법률을 제정할 것이라면서 과거 역사를 섣불리 편집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습니다.(2021.1)
“과거를 편집하거나 검열해서는 안 된다. 모두가 우리의 풍부한 역사를 이루는 씨날과 날실이다.”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이 그때그때 다른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조금이라도 부끄러운 역사는 지워 버리기에 급급해 과거로부터 얻을 수 있는 교훈의 기회를 차단하는가 하면 과거의 정당한 역사를 현재의 잣대로 부정하기 십상입니다. 역사란 좋고 나쁜 것들이 씨날과 날실로 엮인 합작품이기에 그때믄 낮았지만 지금은 틀리다고 쉽게 부정해선 안 됩니다.
우리나라는 새 정권이 출범할 때 마다 매번 역사 지우기 작업을 반복했지만 최고의 압권은 김영삼 대통령 재임 시절입니다. 김 대통령은 취임하자마자 ‘역사 바로 세우기’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역사 지우기를 강행했습니다. 그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서울시 세종로 1번지의 중앙청(中央廳) 건물을 철거한 것입니다.
중앙청은 일제 강점기 시절에 일본의 식민통치를 주도한 조선총독부가 사용했던 건물입니다. 우리에게 치욕을 안긴 일제의 잔재를 때려 부수는 것에 반대할 국민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 바로 세우기’ 프로젝트는 국민의 많은 호응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한 순간의 통쾌함만으로 일제의 잔재가 완전히 청산되는 것은 아닙니다.
꼴 보기 싫던 건물은 눈에서 사라졌을지 모르나 머릿속의 부끄러운 과거 기억까지 모두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진정한 역사 지우기는 불행의 역사를 딛고 넘어서는 일입니다. ‘NO JAPAN’이라고 떠벌리는 것보다는 극일(克日)을 위한 내적 역량을 키우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상대를 제압할 수 있는 압도적인 힘을 갖는 것만이 진정한 역사 바로 세우기입니다.
중국 한나라를 건국한 한신의 젊은 시절의 일화입니다. 길을 걷던 한신에게 불량배들이 시비를 걸어 왔습니다. 그들은 한신에게 죽음이 두렵지 않다면 자신들을 칼로 찌르고 가고, 죽음이 두렵다면 자신들의 가랑이 사이로 기어갈 것을 요구했습니다. 한신은 분노를 억누른 채 몸을 숙여 불량배들의 가랑이 사이로 빠져 나갔습니다.
이 일로 한신은 마을 사람들의 조롱거리가 됐지만 치욕의 시간을 견뎌냄으로써 역사의 대업을 이뤄낼 수 있었습니다. 만약 부끄러움을 이기지 못해 발끈했더라면 한나라의 건국은 역사에 기록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부끄러운 역사도 껴안아야 할 역사입니다. 무조건 회피하기보다는 맞서고, 무차별적으로 지우기보다는 보존할 필요가 있습니다. 역사의 계승은 과거로부터 배우기를 꺼려해선 안 됩니다. 부끄러운 과거라 하여 지워버리는 데에만 골몰한다면 아픈 역사로부터 배워야할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진정한 역사 바로 세우기는 과거로부터 배우는데 있습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역사를 지운다고 역사가 잊히는 것은 아닙니다.
세상을 비틀어보는 75가지 질문
Chapter 3.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인데, 왜 변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