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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경 강설 40 대방광불화엄경 강설 제40 二十七, 십정품(十定品) 1 서 문 그때에 세존께서 마갈제국 아란야 법(法) 보리도량에서 비로소 정각(正覺)을 이루시고, 보광명전(普光明殿)에서 찰나제 제불삼매(刹那際諸佛三昧)에 드시었습니다. 세존께서 삼매에 드시니 증득하신 바의 일체지혜 자체의 신통한 힘으로 여래의 몸을 나타내었습니다. 여래의 몸은 몸이지만 텅 비어 청정함으로 무엇에도 걸림이 없었습니다. 또 여래의 몸은 몸이지만 텅 비어 청정함으로 어디에도 의지할 데가 없으며, 무엇과도 반연할 것이 없었습니다. 또 여래의 몸은 몸이지만 텅 비어 청정함으로 사마타(奢摩他)에 머물러서 지극히 고요하고 또 고요합니다. 그러나 큰 위엄과 덕을 갖추고 계시면서도 어디에도 물들고 집착하는 것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여래의 청정한 몸을 친견하는 사람은 모두 다 저절로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그러므로 알맞은 때를 맞춰서 세상에 출현하시어 중생들을 교화할 시기를 놓치지 아니합니다. 이것이 여래의 몸으로서 항상 한 가지 모양에 머무시니, 이른바 모양 없는 몸입니다. 시회대중(時會大衆)은 봄이 없는 것으로 여래를 보시고[無見而見], 깨달음을 얻으소서. 2016년 1월 30일 신라 화엄종찰 금정산 범어사 如天 無比 차례 二十七, 십정품(十定品) 1 1, 세존의 정각과 찰나제 제불삼매 2 법회의 대중 (1)대중들의 덕을 밝히다 (2) 동명(同名)의 보살대중 (3) 이명(異名)의 보살대중 3, 보안(普眼)보살이 법을 청하다 4, 법을 설할 사람을 보이다 (1) 보현보살의 덕을 밝히고 법 청하기를 권유하다 . . . (2) 묘광명(妙光明) 대삼매 <1> 삼매의 힘 二十七, 십정품(十定品) 강설 ; 7처 9회 39품 중에서 제6회 타화자재천궁에서 십지(十地)법문을 설해 마치고, 제7회의 설법이 시작되었다. 제7회 법문은 두 번째 보광명전에서 11개의 품을 설하는데 그 내용은 등각(等覺) 법문이 6품이고, 묘각(妙覺) 법문이 3품이고, 평등한 인(因)의 법문 1품과 평등한 과(果)의 법문 1품이다. 십정품(十定品)이란이와 같은 11품 중에 첫째 품으로서 열 가지 선정[三昧]에 대한 설법이다. 세존이 마갈제국 아란야 법(法) 보리도량에서 비로소 정각(正覺)을 이루시고, 보광명전(普光明殿)에서찰나제 제불삼매((刹那際諸佛三昧)에 드시어 여래의 모습을 나타내고는 형상이 없는 데 머물렀다. 그 때에 금강혜보살과 여러 보살들이 모여왔고, 보안보살이 ‘보살들의 부사의하고 광대한 삼매’를 부처님께 물었다. 부처님은 보현보살에게 보안보살의 질문에 대하여 설명하기를 청하고, 또 모든 보살들에게는 넓은 광명 큰 삼매[普光大三昧]와 묘한 광명 큰 삼매[妙光大三昧]와 차례대로 모든 불국토에 두루 가는 큰 삼매[次第徧往諸佛國土大三昧] 등의 열 가지 삼매가 있는데 이 삼매를 닦아 이루면 그 사람은 곧 부처님이며, 여래며, 열 가지 힘을 얻은 사람이며, 도사며, 대도사며, 일체 지혜며, 일체를 보며, 걸림이 없는데 머물며, 모든 경계를 통달하며, 일체 법에 자재하다고 명명하였다. 곧 등각위의 법을 나타낸 이름들이다. 二十七, 십정품(十定品) 1 1. 세존의 정각과 찰나제 제불삼매 爾時에 世尊이 在摩竭提國阿蘭若法菩提場中하사 始成正覺하사 於普光明殿에 入刹那際諸佛三昧하사 그때에 세존이 마갈제국 아란야 법(法) 보리도량에서 비로소 정각(正覺)을 이루시고, 보광명전(普光明殿)에서 찰나제 제불삼매(刹那際諸佛三昧)에 드시었습니다. 강설 ; 세존이 보리도량에서 비로소 정각을 이루시고 나서 바로 그 자리에서 7처 9회중 첫 장소, 첫 법회를 열었다.그것이 6품 설법이다. 다음에는 장소를 옮겨서 제2회 6품 설법을 보광명전에서 설하시었다. 역시 6품의 10신 법문이다. 다음 3회에는 도리천에서 10주 법문을 설하시고, 다음 4회에는 야마천에서 10행 법문을 설하시고, 다음 5회에는 도솔천에서 10회향 법문을 설하시고, 다음 6회에는 타화자재천에서 10지 법문을 설하시고, 이번 제7회에는 재차 보광명전에서 등각과 묘각 법문을 설하신 것이다. 이 모든 법문이 세존의 정각으로부터 비롯하였고, 다시 모든 보살은 세존의 정각에 이르고자하는 것이므로 새삼스럽게 세존의 정각을 상기한 것이다. 다만 보광명전이라는 장소에서 찰나제 제불삼매에 드신 일로부터 법문이 시작하고 있음을 특별히 밝혀 앞으로 열 가지 삼매의 법문[十定]이 설해짐을 드러냈다. 이것이 곧 세존은 법을 증명하시고 보살들이 문답을 주고받으며 법을 설하는 모습이다. 또 경전이 언제나 그렇듯이 그 서두는 경전을 결집한 경가(經家)가 서술한 것으로 시작하였다. 청량스님의 소(疏)에, “찰나제(剎那際) 삼매에 들어간다는 것은 곧 법의 참된 근원[真源]을 다한 것인데 이를테면 시간의 지극히 짧은 것을 이름하여 찰나라 하고, 그 찰나를 다하여 시간의 모양이 모두 적멸하여 경계[際]가 없는 경계를 찰나제라 한다.”라고 하였다. 以一切智自神通力으로 現如來身하시니 淸淨無礙하며 일체 지혜 자체의 신통한 힘으로 여래의 몸을 나타내니, 텅 비어서[淸淨] 걸림이 없었습니다. 강설 ; 세존이 찰나제 제불삼매에 드신 내용을 하나하나 밝혔다. 일체 지혜는 그 자체로서 신통한 힘을 가졌다. 그것이 곧 여래의 몸이다. 그러나 그 몸은 텅 비어 걸림이 없는 몸이다. 유형한 몸이라면 모든 시간과 모든 공간에 걸림이 있을 것이다. 無所依止하며 無有攀緣하며 의지할 데가 없고, 반연할 것이 없었습니다. 강설 ; 세존이 찰나제 삼매에 드니 그 몸이 텅 비어서[淸淨] 걸림이 없으므로 의지할 데가 없고, 반연할 것이 없다. 의지할 데가 있고 반연할 것이 무수히 많은 중생들의 몸을 생각해 보자. 먼저 의식주에 의지해야하고, 또 시간과 공간과 계절과 온도와 습도 등에 반연해야 유지가 된다. 5온의 몸이니 온갖 문제가 따르고 그 문제들을 해결해야 하니 8만 4천의 번뇌가 저절로 따라 일어난다. 이 몸이 텅 비어서 걸림이 없다면 얼마나 자유로울까. 住奢摩他하야 最極寂靜하며 사마타에 머물러 지극히 고요하고 고요합니다. 강설 ; 사마타(奢摩他)는 범어로 śamatha라 하고 팔리어로 samatha라 하는데, 지(止)ㆍ지식(止息)ㆍ적정(寂靜)ㆍ능멸(能滅)이라 번역한다. 우리의 마음 가운데 일어나는 망념(妄念)을 쉬고, 마음을 한 곳에 머무는 것이다. 마음이 한 곳에 머문다는 것은 마음은 실체가 없으므로 머무는 곳도 없고 머무는 실체도 없다. 그래서 지극히 고요하고 고요하다. 상대적인 말로는 비바사나(毘婆舍那)가 있다. 비바사나는 범어로 vipaśyanā 또는 비발사나(毘鉢舍那)라 하는데 능견(能見)ㆍ정견(正見)ㆍ관찰(觀察)ㆍ관(觀)이라 번역한다. 자세히 관찰하여 잘못됨이 없게 하는 것이다. 具大威德하며 無所染着하며 큰 위엄과 덕을 갖추고 물들고 집착하는 것이 없습니다. 강설 ; 만약 세속적인 위엄과 덕을 갖추었다면 얼마나 물들고 집착함이 많겠는가. 세존은 삼매로서 그 삶을 표현한다. 삼매에 의하여 드러난 위엄과 덕은 그 어떤 물도 집착도 있을 수 없다. 能令見者로 悉得開悟하며 보는 이로 하여금 모두 깨닫게 합니다. 강설 ; 나옹(懶翁)스님의 축원문에 “나의 이름을 듣는 이는 삼악도의 고통을 면하고 나의 모습을 보는 이는 해탈을 얻어 지이다.”라는 말이 있다. 찰나제 삼매에 들어가신 세존의 모습을 보는 이들은 모두 모두 깨달음을 얻게 될 것이다. 만약 깨달음의 안목이 없다면 어찌 삼매에 드신 세존을 볼 수 있겠는가. 隨宜出興하야 不失於時하며 마땅함을 따라 태어나서 시기를 놓치지 아니합니다. 강설 ; 수호지에 108성군의 우두머리 송강의 호가 급시우(給時雨)이다. 그들은 체천행도(替天行道)라 하여 하늘을 대신해서 천하에 바른 도를 행한다는 말로 작당의 명분을 삼았다. 우두머리의 호를 때에 맞춰 비를 내린다는 급시우(給時雨)라 한 것도 자신들을 세상에서 필요로 하는 시기에 맞춰서 일어났다는 뜻이다. 불보살이 세상에 출현하는 것은 반드시 그들을 필요로 하는 때에 맞춰서 출현한 것이리라. 恒住一相하니 所謂無相이러라 항상 한 가지 모양에 머무시니, 이른바 모양 없는 것[無相]이었습니다. 강설 ; 굳이 표현하자면 세존은 오직 한 가지 모양에만 머문다. 그 모양은 모양 없는 모양이다. 십정법문을 설하기에 앞서 그 법문을 증명하시는 세존의 챁나제 삼매에 드신 내용을 이와 같이 밝혔다. 2 법회의 대중 (1)대중들의 덕을 밝히다 與十佛刹微塵數菩薩摩訶薩로 俱하사 靡不皆入灌頂之位하며 具菩薩行하며 열 부처님 세계의 작은 먼지 수[微塵數] 같이 많은 보살마하살과 함께 계시었으니, 모두 정수리에 물 붓는 지위[灌頂之位]에 들어가 보살의 행을 갖추었습니다. 강설 ; 십정법문을 설하는 법회에 모인 대중들에 대해서 이야기 한다. 먼저 그 수효가 너무 너무 많다. 열 개의 지구를 부수어 작은 먼지로 만들었을 때 그 수와 같이 많고 많은 보살들이다. 그리고 그들의 덕을 밝히는데 모두 정수리에 물 붓는 지위[灌頂之位]에 들어가 보살의 행을 갖춘 이들이다. 정수리에 물 붓는 지위란 곧 부처님의 대를 잇는 지위다. 대를 잇는다는 것은 부처님이 하시는 중생을 교화하는 보살행의 일을 다 맡아서 하는 지위이므로 그 덕도 또한 부처님과 크게 다를 바 없다. 等于法界하며 無量無邊하며 법계와 평등하여 한량없고 그지없었습니다. 강설 ; 열 개의 지구를 부수어 작은 먼지로 만들었을 때 그 수와 같이 많고 많은 보살들의 덕은 법계와 평등하여 한량없고 그지없다. 獲諸菩薩의 普見三昧하며 모든 보살들의 두루 보는 삼매를 얻었습니다. 강설 ; 무수히 많은 법회 대중들의 덕은 모든 보살들이 널리 보는 삼매를 다 같이 얻었다. 大悲安隱一切衆生하며 크게 가엾이 여기는 마음으로 일체중생을 편안케 하였습니다. 강설 ; 대승보살 불교의 가르침은 비록 자기 자신은 해탈과 열반을 얻지 못했더라도 다른 중생들부터 먼저 교화해야겠다는 마음으로 일체중생을 크게 가엾이 여겨서 편안하게 해주는 것이다. 이것이 참다운 불교며, 진정한 불교며, 이상적인 불교다. 열 개의 지구를 부수어 작은 먼지로 만들었을 때 그 수와 같이 많고 많은 보살들은 모두 이와 같은 참다운 불교를 실천한다. 神通自在하야 同於如來하며 신통이 자유로움이 여래와 같았습니다. 강설 ; 그 많고 많은 보살들이 신통이 자유자재한 한 것이 여래와 꼭 같다. 등각(等覺)이라는 말의 뜻은 모든 지혜와 자비와 신통이 완전한 깨달음을 이룬 부처님과 동등하다는 뜻이다. 智慧深入하야 演眞實義하며 지혜에 깊이 들어가서 진실한 이치를 연설하십니다. 강설 ; 무수히 많은 이 법회의 대중들은 한결같이 깨달음의 지혜에 깊이 들어가서 진실한 이치만을 연설한다. 깨달음의 지혜가 있거나 대승불교의 가르침을 깊이 공부하지 아니하면 진실한 이치를 알 수 없어서 가르칠 수도 없다. 具一切智하야 降伏衆魔하며 일체 지혜를 갖추어 여러 마군들을 항복받으십니다. 강설 ; 밖에 있는 마군이나 안에 있는 마군이나 모든 마군들을 항복 받으려면 일체 지혜를 원만히 갖추어야 한다. 만약 지혜가 없다면 마군을 제대로 항복 받을 수 없다. 雖入世間이나 心恒寂靜하며 비록 세간에 들어갔으나 마음은 항상 고요하십니다. 강설 ; 대승보살은 언제나 세속의 중생들을 교화하기 위해서 세속 안에서 산다. 그러나 중생들과 같이 마음이 온갖 번뇌로 항상 시끄럽지는 않다. 중생들과 더불어 같이 아파하고 같이 고통을 격지만 그 마음은 언제나 고요하고 또 고요하다. 이것이 중생과 대승보살과의 다른 점이다. 住於菩薩의 無住解脫하시니라 보살의 머문 데 없는 해탈에 머무른 이들이었습니다. 강설 ; 소승들은 해탈을 한 번 얻으면 영원히 그 해탈 안에서 머물고 있지만, 대승보살들은 해탈과 열반을 증득하지만 그 해탈과 열반에 머물러 있지 않는다. 이것이 또한 소승의 해탈과 대승보살의 해탈의 다른 점이다. 십정법문을 설하는 법회에 모인 무수히 많은 보살들의 덕을 이와 같이 간단히 설하여 마쳤다. 경문은 간단하지만 대승보살의 길이 잘 표현된 가르침이다. (2) 동명(同名)의 보살대중 其名曰金剛慧菩薩과無等慧菩薩과義語慧菩薩과最勝慧菩薩과 常捨慧菩薩과那伽慧菩薩과成就慧菩薩과調順慧菩薩과大力慧菩薩과難思慧菩薩과 그 이름은 금강혜(金剛慧)보살과 무등혜(無等慧)보살과 의어혜(義語慧)보살과 최승혜(最勝慧)보살과 상사혜(常捨慧)보살과 나가혜(那伽慧)보살과 성취혜(成就慧)보살과 조순혜(調順慧)보살과 대력혜(大力慧)보살과 난사혜(難思慧)보살들입니다. 無礙慧菩薩과增上慧菩薩과普供慧菩薩과如理慧菩薩과善巧慧菩薩과 法自在慧菩薩과法慧菩薩과寂靜慧菩薩과虛空慧菩薩과一相慧菩薩과 또 무애혜(無礙慧)보살과 증상혜(增上慧)보살과 보공혜(普供慧)보살과 여리혜(如理慧)보살과 선교혜(善巧慧)보살과 법자재(法自在)보살과 법혜(法慧)보살과 적정혜(寂淨慧)보살과 허공혜(虛空慧)보살과 일상혜(一相慧)보살들입니다. 善慧菩薩과如幻慧菩薩과廣大慧菩薩과勢力慧菩薩과世間慧菩薩과 佛地慧菩薩과眞實慧菩薩과尊勝慧菩薩과智光慧菩薩과無邊慧菩薩이니라 또 선혜(善慧)보살과 여환혜(如幻慧)보살과 광대혜(廣大慧)보살과 세력혜(勢力慧)보살과세간혜(世間慧)보살과 불지혜(佛智慧)보살과 진실혜(眞實慧)보살과 존승혜(尊勝慧)보살과 지광혜(智光慧)보살과 무변혜(無邊慧)보살들이었습니다. 강설 ; 법회에 모인 대중들이 열 부처님 세계의 작은 먼지 수[微塵數] 같이 많은 보살마하살이 있는데 그중에서 1백 명의 보살들을 들었고, 먼저 동명(同名)보살대중 30명의 이름을 열거하였다. 동명이란 이름에 모두 혜(慧)자가 들어가기 때문에 동명이라 한다. 청량스님은 소에서, “이름을 열거하는 중에 1백 명의 보살이 있다. 처음 30명이 다 같이 이름이 혜(慧)라는 것은 순수한 덕을 표한 까닭이고, 염장엄보살 이하 70명의 보살이 다른 이름인 것은 서로 다른 덕을 표한 까닭이다.”라고 하였다. “순수한 덕”이란 깨달음의 가르침에 지혜를 근본으로 하기 때문이다. (3) 이명(異名)의 보살대중 念莊嚴菩薩과達空際菩薩과性莊嚴菩薩과甚深境菩薩과 善解處非處菩薩과大光明菩薩과常光明菩薩과了佛種菩薩과心王菩薩과一行菩薩과 또한 염장엄(念莊嚴)보살과 달공제(達空際)보살과 성장엄(性莊嚴)보살과 심심경(甚深境)보살과 선해처비처(善解處非處)보살과 대광명(大光明)보살과 상광명(常光明)보살과 요불종(了佛種)보살과 심왕(心王)보살과 일행(一行)보살들입니다. 常現神通菩薩과智慧芽菩薩과功德處菩薩과法燈菩薩과照世菩薩과 持世菩薩과最安隱菩薩과最上菩薩과無上菩薩과無比菩薩과 또 상현신통(常現神通)보살과 지혜아(智慧牙)보살과 공덕처(功德處)보살과 법등(法燈)보살과 조세(照世)보살과 지세(持世)보살과 최안은(最安隱)보살과 최상(最上)보살과 무상(無上)보살과 무비(無比)보살들이었습니다. 超倫菩薩과無礙行菩薩과光明焰菩薩과月光菩薩과一塵菩薩과 堅固行菩薩과霔法雨菩薩과最勝幢菩薩과普莊嚴菩薩과智眼菩薩과 또 초륜(超倫)보살과 무애행(無礙行)보살과 광명염(光明焰)보살과 월광(月光)보살과일진(一塵)보살과 견고행(堅固行)보살과 주법우(霔法雨)보살과 최승당(最勝幢)보살과 보장엄(普莊嚴)보살과 지안(智眼)보살들이었습니다. 法眼菩薩과慧雲菩薩과總持王菩薩과無住願菩薩과智藏菩薩과 心王菩薩과內覺慧菩薩과住佛智菩薩과陀羅尼勇健力菩薩과持地力菩薩과 또 법안(法眼)보살과 혜운(慧雲)보살과 총지왕(總持王)보살과 무주원(無住願)보살과 지장보살(智藏)보살과심왕(心王)보살과 내각혜(內覺慧)보살과 주불지(住佛智)보살과 다라니(陀羅尼)보살과 용건력(勇健力)보살과 지지력(持地力)보살들이었습니다. 妙月菩薩과須彌頂菩薩과寶頂菩薩과普光照菩薩과威德王菩薩과 智慧輪菩薩과大威德菩薩과大龍相菩薩과質直行菩薩과不退轉菩薩과 또 묘월(妙月)보살과 수미정(須彌頂)보살과 보정(寶頂)보살과 보광조(普光照)보살과 위덕왕(威德王)보살과 지혜륜(智慧輪) 보살과 대위덕(大威德)보살과 대용상(大龍相)보살과 질직행(質直行)보살과 불퇴전(不退轉)보살들이었습니다. 持法幢菩薩과無忘失菩薩과攝諸趣菩薩과不思議決定慧菩薩과 遊戲無邊智菩薩과無盡妙法藏菩薩과智日菩薩과法日菩薩과智藏菩薩과智澤菩薩과 또 지법당(持法幢)보살과 무망실(無忘失)보살과 섭제취(攝諸趣)보살과 부사의결정혜(不思議決定慧)보살과 유희무변지(遊戱無邊智)보살과 무진묘법장(無盡妙法藏)보살과 지일(智日)보살과 법일(法日)보살과 지장(智藏)보살과 지택(智澤)보살들이었습니다. 普見菩薩과 不空見菩薩과 金剛踊菩薩과 金剛智菩薩과 金剛焰菩薩과 金剛慧菩薩과 普眼菩薩과 佛日菩薩과 持佛金剛秘密義菩薩과 普眼境界智莊嚴菩薩이라 如是等菩薩摩訶薩이 十佛刹微塵數니 往昔에 皆與毘盧遮那如來로 同修菩薩諸善根行하시니라 또 보견(普見)보살과 불공견(不空見)보살과 금강용(金剛踊)보살과 금강지(金剛智)보살과 금강염(金剛焰)보살과 금강혜(金剛慧)보살과 보안(普眼)보살과 불일(佛日)보살과 지불금강비밀의(持佛金剛秘密義)보살과 보안경계지장엄(普眼境界智莊嚴)보살들이었습니다. 이와 같은 보살마하살들이 열 부처님 세계의 작은 먼지 수와 같이 있으니, 옛날에 모두 비로자나 부처님과 함께 보살의 모든 착한 행을 같이 닦은 이들이었습니다. 강설 ; 다음은 70명의 각각 다른 이름을 가진 보살들을 열거하였다. 모두가 지혜를 근본으로 하고, 그 지혜를 바탕으로 각각 다른 덕을 지녔음을 밝혔다. 이와 같은 보살마하살들이 열 부처님 세계의 작은 먼지 수와 같이 많은 이들이 동참하였고, 그들은 모두 옛날에 비로자나 부처님과 함께 보살의 착한 행을 같이 닦은 이들이었음을 밝혔다. 열 부처님 세계의 작은 먼지 수와 같이 많은 보살들과, 구체적으로 이름을 밝힌 1백 명의 보살과, 십정품 설법의 주인인 보현(普賢)보살과, 그 설법을 이끌어 내는 역할을 한 보안(普眼)보살을 합하여 1백 2명의 보살들이 부처님의 증명 아래 펼쳐지고 있는 그 장엄한 법회의 광경을 상상해 보라. 청명한 가을 하늘에 눈길이 닫는 데까지 아득히 멀고 또 멀리 구름 대중들이 운집한 광경을. 눈물이 고이고 가슴이 떨린다. 이 감동을 표현할 수 없음이 너무나 안타깝다. 3, 보안(普眼)보살이 법을 청하다 爾時에 普眼菩薩摩訶薩이 承佛神力하사 從座而起하야 偏袒右肩하며 右膝着地하고 合掌白佛言하사대 그때에 보안보살마하살이 부처님의 신력을 받들어 자리에서 일어나 오른 어깨를 드러내고 오른 무릎을 땅에 대고 합장하고 부처님께 말씀드렸습니다. 강설 ; 문득 보안보살이 자리에서 일어나 오른 어깨를 드러내고 오른 무릎을 땅에 대어 진실을 표하고 나서 합장하고 부처님께 법을 묻고자 하니 허락해 달라고 간청하였다. 그동안 화엄경에서는 볼 수 없었던 질문의식이다. 다른 경문에도 “오른 어깨를 드러내고 오른 무릎을 땅에 대는 것”은 법을 묻는데 있어 오직 진실로서 묻는 것이지 추호의 거짓도 없다는 뜻을 표현하는 인도 고유의 예의라 한다. 世尊하 我於如來應正等覺에 欲有所問이로소니 願垂哀許하소서 “세존이시여, 제가 여래 응공 정등각께 묻고자 합니다. 원컨대 어여삐 여겨 허락하여주십시오.” 佛言하사대 普眼아 恣汝所問하라 當爲汝說하야 令汝心喜케호리라 부처님께서 말씀하시었습니다. “보안보살이여, 마음대로 물어라. 내가 마땅히 그대에게 말하여 그대의 마음을 기쁘게 하여주리라.” 강설 ; 사랑하는 제자 보안보살이 깊고 깊은 법을 질문하고자 하는데 부처님이 거절하시겠는가. 참으로 기다리고 기다리던 바다. 그래서 기쁜 마음으로 허락하셨으며, 또 그대를 기쁘게 하겠노라고 하셨다. 설사 부족한 공부로서 스승노릇을 하더라도 누가 와서 질문을 하는 것보다 기쁜 일은 없다. 누구라도 성의를 다해서 질문에 답을 한다. 하물며 부처님이겠는가. 普眼菩薩이 言하사대 世尊하 普賢菩薩과 及住普賢所有行願諸菩薩衆이 成就幾何三昧解脫하야 而於菩薩諸大三昧에 或入或出하고 或時安住하며 以於菩薩不可思議廣大三昧에 善入出故로 能於一切三昧에 自在하야 神通變化가 無有休息이니잇고 보안보살이 말하였습니다. “세존이시여, 보현보살과 보현보살이 지닌 행과 서원에 머문 모든 보살들이 얼마나 많은 삼매와 해탈을 성취하였기에 보살의 모든 큰 삼매에 들기도 하고 나기도 하며, 혹은 편안히 머물기도 합니까? 또 보살의 불가사의한 넓고 큰 삼매에 잘 들어가고 나옴으로써 능히 일체 삼매에 자유로우며, 신통과 변화가 쉬지 않는 것입니까?” 강설 ; 보안보살이 질문한 내용을 다시 밝히면, “보현보살과 보현보살의 행원에 머문 모든 보살들이 얼마나 많은 삼매와 해탈을 성취하였기에 보살의 모든 큰 삼매에 들기도 하고 나기도 하며, 혹은 편안히 머물기도 합니까?” “또 보살의 불가사의한 넓고 큰 삼매에 잘 들어가고 나옴으로써 능히 일체 삼매에 자유로우며, 신통과 변화가 쉬지 않는 것입니까?”라는 것이다. 열 가지 삼매를 설하는 십정(十定)법문이므로 삼매에 대해서 질문하였다. 佛言하사대 善哉라 普眼아汝爲利益去來現在諸菩薩衆하야 而問斯義로다 부처님이 말씀하시었습니다. “훌륭하여라. 보안이여, 그대가 과거와 미래와 현재의 모든 보살들을 이익 되게 하려고 이런 이치를 묻는 것이로다.” 강설 ; 법을 설하는 자리에서 만약 질문을 하게 되면 그 질문이 자신의 이익뿐만 아니라 동참하고 있는 모든 대중들에게도 이익이 되는 질문이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오랜 시간을 두고 많은 대중들에게도 이익이 되는 질문이어야 한다. 보안보살의 삼매에 대한 질문은 과거와 미래와 현재의 모든 보살들을 이익 되게 하는 질문이라고 부처님이 찬탄하였다. 4, 법을 설할 사람을 보이다 (1) 보현보살의 덕을 밝히고 법 청하기를 권유하다 普眼아普賢菩薩이今現在此하니 已能成就不可思議自在神通하야 出過一切諸菩薩上하야 難可値遇며 “보안이여, 보현보살이 지금 여기 있나니, 이미 불가사의한 자유로운 신통을 성취하여 일체 모든 보살의 위에 뛰어났으므로 만나기 어려우니라.” 강설 ; 부처님이 보현보살에게 묻기를 권유하면서 먼저 보현보살의 덕이 높음을 크게 드러내어 밝혔다. 즉 보현보살이 십정법문의 설법의 주인이 될 것이므로 설법할 사람을 들어 보인 것이다. 從於無量菩薩行生하야 菩薩大願이 悉已淸淨하며 所行之行이 皆無退轉하며 “한량없는 보살의 행으로부터 나왔으며, 보살의 큰 서원을 이미 청정하게 하였고, 수행하는 행은 모두 물러나지 아니하였느니라.” 강설 ; 보현보살은 불가사의한 자유로운 신통을 성취하여 특별히 뛰어난 분이라 만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한량없는 보살의 행으로부터 나왔으며, 보살의 큰 서원을 이미 청정하게 하였고, 수행하는 행은 모두 물러나지 아니하였다고 하였다. 특히 일반 불자와는 달리 법으로부터 나온 것이 아니라 한량없는 보살의 행으로부터 나왔음을 밝혔다. 그래서 보현행을 일체 보살행 중에 가장 으뜸으로 여긴다. 보현보살의 십대행원이 곧 그것이다. 無量波羅蜜門과 無礙陀羅尼門과 無盡辯才門을 皆悉已得하여 淸淨無礙하니라 “한량없는 바라밀다문과 걸림 없는 다라니문과 다하지 않는 변재(辯才)의 문을 모두 얻어서 청정하여 걸림이 없느니라.” 강설 ; 또 보현보살은 한량없는 바라밀과 걸림 없는 다라니와 다하지 않는 변재를 모두 얻어서 청정하여 걸림이 없다. 보통의 법석에서도 법을 설하게 될 사람의 이력을 지나치게 설명하는 경우가 많다. 정작 법문의 내용은 그렇더라도 법을 설할 사람의 이력이 훌륭하면 법이 높게 보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大悲利益一切衆生호대 以本願力으로 盡未來際토록 而無厭倦하나니 汝應請彼하라 彼當爲汝하야 說其三昧自在解脫하리라 “일체중생을 크게 어여삐 여겨 이익하게 하고, 본래의 원력으로 오는 세월이 끝나도록 게으름이 없느니라. 그대는 응당 그에게 법을 청하라. 그 보살이 마땅히 그대를 위하여 삼매의 자유로운 해탈을 설하리라.” 강설 ; 보현보살이 무엇보다 훌륭한 점은 일체중생들을 크게 어여삐 여기고 이익하게 하려는 마음이다. 대승보살불교는 언제나 일체중생들의 이익을 화두로 삼는다. 그것이 불교가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이기 때문이다. 또 보현보살이 일체중생을 이익하게 하는 데는 본래의 원력으로 오는 세월이 끝나도록 게으름이 없다는 점이다. 소위 말뚝신심으로 한 두 번은 누구나 남을 위해서 좋은 일을 할 수도 있으나 10년 20년 30년을 계속해서 보살행을 하기는 참으로 어렵다. 보현보살은 이와 같이 훌륭한 분이므로 그에게 가서 질문하기를 부처님이 권유하였다. (2) 보현보살의 이름을 듣고 이익을 얻다 爾時會中에 諸菩薩衆이 聞普賢名하고 卽時獲得不可思議無量三昧하야 그때에 법회에 모여 있던 모든 보살들이 보현의 이름을 듣고 곧바로 불가사의하고 한량없는 삼매를 얻었습니다. 강설 ; 보현보살이 그 옛날에 “내 이름만 들어도 삼악도의 고통을 소멸하여 지이다.”라고 발원하였는가. 모든 보살들이 보현이라는 이름만 듣고도 곧바로 불가사의하고 한량없는 삼매를 얻었다. 만약 보현보살에 대해서 잘 안다면 실로 그와 같은 이익이 있을 것이다. 其心無礙하야 寂然不動하며 智慧廣大하야 難可測量하며 境界甚深하야 無能與等하며 그 마음은 걸림이 없고 고요하여 움직이지 아니하며, 지혜가 광대하여 헤아릴 수 없고, 경계가 매우 깊어서 더불어 같을 이가 없었습니다. 강설 ; 보현보살의 마음은 언제나 걸림이 없고 고요하여 움직이지 않는다. 또 그 지혜는 광대하여 그 누구도 측량할 수 없다. 보현보살의 경계는 깊고 깊어서 누구도 더불어 같을 이가 없다. 現前悉見無數諸佛하며 得如來力하며 同如來性하며 去來現在를靡不明照하며 所有福德이不可窮盡하며 一切神通이皆已具足하니라이 자리에서 수없는 부처님을 뵈옵고 여래의 힘을 얻어 여래의 성품과 같으며, 과거 미래 현재의 일을 밝게 비추지 못할 것이 없으며, 가지고 있는 복덕은 다할 수가 없고, 일체 신통을 다 구족하였습니다. 강설 ; 보현보살은 부처님을 친견하기 위해서 어디로 가는 것이 아니다. 앉은자리에서 무수한 부처님을 친견한다. 그러므로 여래의 힘을 얻어 여래의 성품과 같아서 과거 미래 현재의 일을 모두 밝게 비춘다. 또 보현보살의 복덕은 얼마나 되는지를 알 수 없다. 그리고 일체 신통을 다 구족하였다. 실로 보현보살의 덕을 다 설명한다면 미륵불이 태어날 때까지 설하더라도 다하지 못할 것이다. (3) 보현보살을 찾아도 찾지 못하다 其諸菩薩이 於普賢所에 心生尊重하야 渴仰欲見하야 悉於衆會에 周徧觀察호대 而竟不覩하고 亦不見其所坐之座하니 此由如來威力所持며 亦是普賢의 神通自在로 使其然耳니라 그 모든 보살들이 보현보살에게 존중하는 마음을 내고 사모하여 친견하고자 하여 모인 대중들을 두루 관찰하였으나 마침내 뵈올 수도 없고, 또한 앉은 자리도 볼 수 없었습니다. 이것은 여래의 위신력으로 그러한 것이며, 또한 보현보살의 신통이 자유 자재하므로 그렇게 되었을 뿐입니다. 강설 ; 법회에 모인 모든 보살들이 보현보살을 친견하고자 아무리 찾아도 찾을 수가 없었다. 그것은 여래의 위신력으로 그러한 것이며, 또한 보현보살의 신통이 자유 자재하므로 친견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爾時에 普眼菩薩이 白佛言하사대 世尊하 普賢菩薩이 今何所在니잇고 그때에 보안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습니다. “세존이시여, 보현보살이 지금 어디 있습니까?” 佛言하사대 普眼아 普賢菩薩이 今現在此道場衆會하야 親近我住하야 初無動移니라 부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보안이여, 보현보살은 지금 이 도량에 모인 대중 가운데서 나에게 가까이 있으면서 처음부터 조금도 이동하지 않았느니라.” 강설 ; 보안보살과 법회에 모인 모든 보살들이 아무리 찾아도 보현보살을 찾을 수 없어서 부처님께 보현보살이 지금 어디에 계시는지를 물었다. 그런데 부처님의 대답은 “보현보살은 지금 이 도량에 모인 대중 가운데서 나에게 가까이 있으면서 처음부터 조금도 이동하지 않았느니라.”라고 하시었다. 그렇다면 어째서 보현보살을 볼 수 없다는 것인가? 是時에 普眼과 及諸菩薩이 復更觀察道場衆會하야 周徧求覓하고 白佛言하사대 世尊하 我等이 今者에 猶未得見普賢菩薩의 其身及座로소이다 이때에 보안보살과 여러 모든 보살들이 또다시 도량에 모인 이들을 살펴보면서 두루 찾다가 부처님께 여쭈었습니다. “세존이시여, 저희들은 지금도 오히려 보현보살의 몸이나 그의 앉은 자리마저도 아직 보지 못하였습니다.” 佛言하사대 如是하다 善男子야汝等이何故로 而不得見고善男子야普賢菩薩의住處甚深하야 不可說故니라 부처님께서 말씀하시었습니다. “그러하니라. 선남자들이여, 그대들이 무슨 까닭으로 보현보살을 보지 못하는가. 선남자들이여, 보현보살의 머문 데가 매우 깊어서 설명할 수가 없는 까닭이니라.” 강설 ; 보현보살을 볼 수 없는 것은 “보현보살의 머문 데가 매우 깊어서 설명할 수가 없는 까닭이다.”라고 하셨다. 보현보살이 머문 데란 보현보살의 육신이 있는 곳이 아니라 보현보살의 법력이 머문 곳을 의미하기 때문에 법력이 그와 같지 못하면 그를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즉 도가 그분과 같아야 그를 가히 알 수가 있다는 것이다. 얼굴을 보고 육신을 본들 어찌 그를 보았다 하겠는가. 보현보살뿐만 아니라 모든 선지식과 부처님을 친견하는 일도 그와 같은 이치이다. 普賢菩薩이 獲無邊智慧門하야 入獅子奮迅定하며 得無上自在用하야 入淸淨無礙際하며 生如來十種力하야 以法界藏爲身하며 “보현보살은 그지없는 지혜문을 얻었고, 사자의 위엄 떨치는[獅子奮迅] 삼매에 들었으며, 위없이 자유로운 작용을 얻어 청정하여 걸림 없는 경계에 들어갔으며, 여래의 열 가지 힘을 내어 법계장(藏)으로써 몸을 삼았느니라.” 강설 ; 보현보살이 머문 데가 깊고 깊은 까닭을 간략히 설명하는 가운데 법계장으로써 몸을 삼았다고 하였다. 즉 보현보살은 온 우주법계로써 몸을 삼았기 때문에 법계 그 자체가 곧 보현보살의 몸이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보현보살을 친견하려면 법계 그 자체를 보현보살로 보아야 한다. 一切如來의 共所護念으로 於一念頃에 悉能證入三世諸佛의 無差別智일새 是故汝等이 不能見耳니라 “일체 여래가 함께 수호하여 잠깐 동안에 세 세상 모든 부처님들의 차별 없는 지혜를 증득하였으니, 그러므로 그대들이 볼 수 없느니라.” 강설 ; 또 보현보살은 일체 여래가 함께 수호하여 잠깐 동안에 세 세상 모든 부처님들의 차별 없는 지혜를 증득하였다. 그래서 보안보살과 다른 여러 보살들은 볼 수 없었다. (4) 삼매의 힘으로 찾아도 찾지 못하다 爾時에 普眼菩薩이 聞如來가 說普賢菩薩의 淸淨功德하고 得十千阿僧祇三昧하사 以三昧力으로 復徧觀察하야 渴仰欲見普賢菩薩호대 亦不能覩하며 其餘一切諸菩薩衆도 俱亦不見이러니라 이때에 보안보살이 여래께서 보현보살의 청정한 공덕에 대해 말씀하심을 듣고 십 천 아승지 삼매를 얻었고, 그 삼매의 힘으로 두루 살펴보고 앙모(仰慕)하며 보현보살을 보려 하였으나 또한 보지 못하였고, 그 외의 다른 보살들도 모두 보지 못하였습니다. 강설 ; 보안보살은 마음이 청정하고 신심이 수승함으로 여래께서 보현보살의 청정한 공덕에 대해서 설명하심을 듣고 일만[十千] 아승지 삼매를 얻었다. 신심이 뛰어난 사람은 다른 사람의 훌륭한 행적에 대해서 전해 듣기만 해도 감동과 환희를 얻게 된다. 수희찬탄(隨喜讚歎)의 공덕이 이와 같다.보안보살은 그 삼매의 힘으로 두루 살펴보고 앙모하며 보현보살을 보려 하였으나 또한 보지 못하였고, 그 외의 다른 보살들도 모두 보지 못하였다. 時에 普眼菩薩이從三昧起하사 白佛言하사대 世尊하我已入十千阿僧祇三昧하야 求見普賢호대 而竟不得하야 不見其身及身業과 語及語業과意及意業하며 座及住處를悉皆不見이로소이다 그때에 보안보살이 삼매에서 일어나 부처님께 여쭈었습니다. “세존이시여, 제가 이미 십 천 아승지 삼매에 들어가서 보현보살을 보려 하였으나 끝내 보지 못하였으며, 그의 몸이나 몸으로 짓는 업(業)이나, 말[言]이나 말로 짓는 업이나, 뜻이나 뜻으로 짓는 업을 보지 못하였으며,그의 앉은 자리와 머무는 데도 모두 다 보지 못하겠습니다.” 강설 ; 보안보살이 보현보살에 대해서 보지 못한 것을 구체적으로 들었다. 몸과 몸의 업과 말과 말의 업과 뜻과 뜻의 업과 앉은 자리와 머무는 데를 하나도 보지 못하였다. 佛言하사대 如是如是하다 善男子야 當知하라 皆以普賢菩薩이 住不思議解脫之力이니라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러하니라. 그러하니라. 선남자여. 마땅히 알아라. 이것은 다 보현보살이 불가사의한 해탈에 머문 힘이니라.” 강설 ; 같은 보살이라 하더라도 차원이 다르고, 법력이 다르고, 삼매의 힘이 다르고, 해탈이 다르다. 이와 같이 보현보살은 다 같이 보살이라 하더라도 그 법력이 다르므로 여래의 장자(長子)라 한다. 보현보살은 불가사의한 해탈에 머문 힘이 있다. 그러므로 보지 못한 것이다. 普眼아於汝意云何오頗有人이 能說幻術文字中種種幻相의 所住處不아答言하사대 不也니이다 佛言하사대 普眼아幻中幻相도尙不可說이어든 何況普賢菩薩의 秘密身境界와秘密語境界와秘密意境界를而於其中에能入能見가 “보안이여,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어떤 사람이 요술하는 글자 가운데 있는 가지가지 요술 모양의 있는 데를 말할 수 있겠는가?” “말할 수 없습니다.” “보안이여, 요술 가운데 있는 요술의 모양도 오히려 말할 수 없거든, 하물며 보현보살의 비밀한 몸의 경지와, 비밀한 말[言]의 경지와, 비밀한 뜻의 경지에 어떻게 들어갈 수 있으며 볼 수 있겠는가?” 강설 ; 부처님은 요술[幻術마술]의 예를 들어서 설명하였다. “심지어 요술을 하는 사람이 요술을 부리 가운데 있는 요술의 모양도 오히려 말할 수 없거든, 하물며 보현보살의 비밀한 몸의 경지와, 비밀한 말의 경지와, 비밀한 뜻의 경지에 어떻게 들어갈 수 있으며 볼 수 있겠는가?”라고 하였다. 何以故오 普賢菩薩의 境界甚深하야 不可思議며 無有量已過量이니 “무슨 까닭이냐. 보현보살의 깊은 경계는 불가사의하며, 그 양(量)이 없으며, 이미 양(量)을 뛰어났느니라.” 擧要言之컨댄 普賢菩薩이 以金剛慧로 普入法界하야 於一切世界에 無所行無所住하며 知一切衆生身이 皆卽非身하며 無去無來하며 得無斷盡하며 無差別하며 自在神通이 無依無作하며 無有動轉하며 至於法界究竟邊際니라 “중요한 점을 들어서 말하자면 보현보살은 금강과 같은 지혜로 법계에 두루 들어가 일체 세계에 갈 데도 없고, 머물 데도 없으며, 일체중생의 몸이 곧 몸이 아닌 줄을 알며, 갈 것도 없고 올 것도 없고 아주 끊어짐도 없고 차별도 없으며, 자유자재한 신통이 의지함도 지음도 없으며, 옮겨지지도 아니하나 법계의 끝까지 이르느니라.” 강설 ; 보현보살의 금강과 같은 지혜를 들어 그 지혜의 뛰어난 작용을 설명하였다. 즉 법계에 두루 들어가 일체 세계에 갈 데도 없고, 머물 데도 없으며, 일체중생의 몸이 곧 몸이 아닌 줄을 아는 등이다. 善男子야若有得見普賢菩薩이어나 若得承事어나 若得聞名이어니 若有思惟어나 若有憶念이어나 若生信解어나 若勤觀察이어나 若始趣向이어나 若正求覓이어나 若興誓願하야 相續不絶이면 皆獲利益하야 無空過者니라 “선남자여, 만약 어떤 이가 보현보살을 보거나, 받들어 섬기거나, 이름을 듣거나, 생각하거나, 기억하거나, 믿고 이해하거나, 부지런히 관찰하거나, 향하여 나아가거나, 찾아다니거나, 서원을 내어 계속하고 끊어지지 아니하면 모두 이익을 얻게 되고 헛되이 지나가지 아니하리라.” 강설 ; 보현보살을 친견하고, 받들어 섬기고, 이름을 듣고, 생각하는 등으로 큰 이익을 얻어 결코 헛되지 않음을 밝혔다. 爾時에 普眼과 及一切菩薩衆이 於普賢菩薩에 心生渴仰하야 願得瞻覲하야 作如是言하사대 南無一切諸佛하며 南無普賢菩薩이라하야 如是三稱하고 頭頂禮敬하니라 이때에 보안보살과 여러 보살들이 보현보살에게 앙모하는 마음으로 뵈옵기를 원하여 ‘나무일체제불’ ‘나무보현보살’ 하면서 이와 같이 세 번 일컫고 머리와 이마를 땅에 엎드려 예경하였습니다. 강설 ; 부처님께서 보현보살에 대하여 훌륭한 덕을 설명하는 말씀을 들은 보안보살과 다른 여러 보살들이 우러러 사모하는 마음을 내어 ‘나무일체제불’ ‘나무보현보살’이라고 하면서 엎드려 예경하였다. (5) 다시 뵙고자 청하다 爾時에 佛이 告普眼菩薩과 及諸衆會言하사대 諸佛子야 汝等은 宜更禮敬普賢하야 慇懃求請하며 그때에 부처님께서 보안보살과 여러 대중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모든 불자들이여, 그대들은 마땅히 다시 보현보살에게 절하고 은근하게 청하도록 하라.” 又應專至觀察十方하야 想普賢身이 現在其前하며 如是思惟호대 周徧法界하야 深心信解하야 厭離一切하며 誓與普賢으로 同一行願하야 入於不二眞實之法하며 “또 지성으로 시방을 관찰하고 보현보살이 앞에 있는 줄로 생각하며, 이와 같이 생각하여 법계에 두루 하되 깊은 마음으로 믿고 이해하여 모든 것을 여의며, 맹서코 보현보살로 더불어 행(行)과 원(願)이 같아서 둘이 아닌 진실한 법에 들어가라.” 其身이 普現一切世間하야 悉知衆生의 諸根差別하며 徧一切處하야 集普賢道니 若能發起如是大願하면 則當得見普賢菩薩하리라“ 또 그 몸이 일체 세간에 널리 나타나서 중생들의 차별된 근성을 다 알고, 온갖 곳에서 보현의 도(道)를 모으기를 서원하라. 만일 이와 같은 큰 원을 일으키면 마땅히 보현보살을 보게 되리라.” 강설 ; 부처님께서 대중들에게 보현보살을 친견할 수 있는 조건을 밝혔다. 그 조건이란 보현보살과 행과 원이 같아야 하고, 보현보살의 도를 다 모아야 하는 등 모든 법력이 보현보살과 같아야 곧 보현보살을 친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是時에 普眼이 聞佛此語하고 與諸菩薩로 俱時頂禮하야 求請得見普賢大士하니라 이때에 보안보살이 부처님의 이 말씀을 듣고 여러 보살과 더불어 동시에 정례하고 보현보살[大士] 뵈옵기를 청하였습니다. (6) 드디어 보현보살이 나타나다 爾時에 普賢菩薩이 卽以解脫神通之力으로 如其所應하야 爲現色身하사 令彼一切諸菩薩衆으로 皆見普賢이 親近如來하야 於此一切菩薩衆中에 坐蓮華座하며 그때에 보현보살이 곧 해탈과 신통의 힘으로 마땅하게 형상의 몸을 나타내어 저 일체 모든 보살들로 하여금 보현보살이 여래와 가깝게 하여 이 일체 보살대중 가운데서 연꽃자리에 앉았음을 모두 보게 하였습니다. 강설 ; 드디어 보현보살이 대중들이 보기에 알맞은 모습을 나타내어 일체 보살대중들이 다 보게 하였다. 여래와 가까이 있으면서 일체 보살대중 가운데서 연꽃자리에 앉아 있었다. 법이 아무리 높고 또 높더라도 그 법은 결국 중생을 위한 법이고대중들을 위한 법이므로 대중들이 보기에 알맞은 모습으로 나타내었다. 亦見於餘一切世界一切佛所에 從彼次第相續而來하며 또 다른 일체세계 일체 부처님이 계신 데서도 그곳으로부터 차례차례로 계속하여 옴을 보게 하였습니다. 강설 ; 또 법회에 모인 일체 보살들로 하여금 다른 일체세계 일체 부처님이 계신 데서도 그곳으로부터 차례차례로 계속하여 옴을 보게 하였다. 이제는 그토록 보지 못하던 일이 보현보살의 해탈과 신통의 힘으로 모두 성취되어 다른 모습들까지 다 보게 하였다. 亦見在彼一切佛所하야 演說一切諸菩薩行하며 開示一切智智之道하며 闡明一切菩薩神通하며 分別一切菩薩威德하며 示現一切三世諸佛케하신대 또 저 일체 부처님 계신 데서 일체 모든 보살의 행을 연설하며, 일체 지혜의 지혜를 열어 보이며, 일체 보살의 신통을 열어서 밝히며, 일체 보살의 위엄과 공덕을 분별하며, 일체 세 세상의 모든 부처님을 나타내어 보임을 보게 하였습니다. 강설 ; 또 보현보살의 해탈과 신통의 힘으로 다른 세계에서 모든 보살행을 연설하거나, 일체 지혜의 지혜를 열어 보이거나, 일체 보살의 신통을 열어 밝히거나 하는 등등의 일까지 다 보게 하였다. 보현보살을 친견함으로 이와 같이 온갖 일을 다 보게 된 것이다. 是時에 普眼菩薩과 及一切菩薩衆이 見此神變하고 其心踊躍하야 生大歡喜하사 莫不頂禮普賢菩薩하야 心生尊重호대 如見十方一切諸佛이러라 이때에 보안보살과 일체 보살들이 이러한 신통변화를 보고 그 마음이 기뻐 뛰놀며 크게 환희하여 모두 다 보현보살에게 정례하며 존중하는 마음으로 시방의 일체 모든 부처님을 친견한 것과 같이 하였습니다. 강설 ; 보현보살의 행과 원은 곧 부처님의 행과 원이며 궁극적으로 불교가 해야 할 행과 원이다. 그러므로 보현보살을 친견한다는 것은 곧 부처님을 친견하는 일이다. 그래서 부처님을 친견하여 존중하는 마음을 내듯이 보현보살에게도 그와 같은 존중하는 마음과 예경을 올리는 것이다. 是時에 以佛大威神力과 及諸菩薩信解之力과 普賢菩薩本願力故로 自然而雨十千種雲하니 이때에 부처님의 큰 위신의 힘과 모든 보살들의 믿고 이해하는 힘과 보현보살의 본래의 서원의 힘으로써 십 천 가지 구름이 저절로 비 내리듯 하였습니다. 所謂種種華雲과 種種鬘雲과 種種香雲과 種種末香雲과 種種蓋雲과 種種衣雲과 種種嚴具雲과 種種珍寶雲과 種種燒香雲과 種種繒綵雲이며 이른바 갖가지 꽃구름과 갖가지 꽃다발구름과 갖가지 향 구름과 갖가지 가루 향 구름과 갖가지 일산 구름과 갖가지 옷 구름과 갖가지 장엄거리 구름과 갖가지 보배구름과 갖가지 사르는 향 구름과 갖가지 비단구름들이었습니다. 不可說世界가 六種震動하며 奏天音樂에 其聲이 遠聞하며 또 말할 수 없는 세계가 여섯 가지로 진동하며 하늘의 음악을 연주하니 그 소리가 멀리 들리었습니다. 不可說世界에 放大光明하니 其光이 普照不可說世界하야 令三惡趣로 悉得除滅하며 嚴淨不可說世界하야 令不可說菩薩로 入普賢行하며 또 말할 수 없는 세계에 큰 광명을 놓으니 그 광명이 말할 수 없는 세계에 두루 비치며, 세 나쁜 길이 모두 없어져서 말할 수 없는 세계가 모두 깨끗하여지며, 말할 수 없는 보살로 하여금 보현의 행(行)에 들게 하였습니다. 不可說菩薩로 成普賢行하며 不可說菩薩로 於普賢行願에 悉得圓滿하야 成阿耨多羅三藐三菩提케하시니라 말할 수 없는 보살이 보현의 행을 이루고, 말할 수 없는 보살이 보현의 행과 원을 모두 다 원만케 하여 최상의 깨달음을 이루게 하였습니다. 강설 ; 보현보살이 해탈과 신통의 힘으로 곧바로 형상의 몸을 나타내니, 부처님의 큰 위신의 힘과 모든 보살들의 믿고 이해하는 힘과 보현보살의 본래의 서원의 힘으로 십 천 가지 구름이 저절로 비 내리듯 하여 축하하였다. 또 말할 수 없이 많은 세계가 여섯 가지로 진동하며, 하늘의 음악을 연주하니 그 소리가 멀리까지 들리었다. 또 말할 수 없이 많은 세계에 큰 광명을 놓으니 그 광명으로 삼악도가 소멸하였다. 그리고 가히 말할 수 없이 많은 보살들로 하여금 모두 다 보현의 행에 들어가게 하였다. 보현보살이 그 몸을 나타내기만 하여도 그 위신력이 이와 같다. 爾時에 普眼菩薩이 白佛言하사대 世尊하 普賢菩薩은 是住大威德者며 住無等者며 住無過者며 住不退者며 住平等者며 住不壞者며 住一切差別法者며 住一切無差別法者며 住一切衆生善巧心所住者며 住一切法自在解脫三昧者니이다 그때에 보안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습니다. “세존이시여, 보현보살은 큰 위엄과 덕망에 머무른 이며, 같을 이 없는 데 머무른 이며, 지나갈 이 없는 데 머무른 이며, 물러나지 않는 데 머무른 이며, 평등한 데 머무른 이며, 무너지지 않는 데 머무른 이며, 일체 차별한 법에 머무른 이며, 일체 차별이 없는 법에 머무른 이며, 일체중생이 공교한 마음으로 머물러 있는 데 머무른 이며, 일체 법에 자유로운 해탈과 삼매에 머무른 이입니다.” 佛言하사대 如是如是하다 普眼아 如汝所說하야 普賢菩薩이 有阿僧祇淸淨功德하니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러하니라, 그러하니라. 보안이여, 그대의 말과 같이 보현보살은 아승지 청정한 공덕이 있느니라.” 강설 ; 이때에 보안보살이 보현보살의 큰 위엄과 덕망에 머물며, 같을 이 없는 데 머물며, 지나갈 이 없는 데 머무는 등 열 가지에 머무는 보살이라는 사실을 찬탄하고 나니 부처님께서 “그러하니라, 그러하니라.”라고 인정하셨다. 그리고는 다시 보현보살에게 아승지 청정한 공덕이 있음을 설하셨다. 所謂無等莊嚴功德과 無量寶功德과 不思議海功德과 無量相功德과 無邊雲功德과 無邊際不可稱讚功德과 無盡法功德과 不可說功德과 一切佛功德과 稱揚讚歎不可盡功德이니라 “이른바 같을 이 없이 장엄한 공덕과, 한량없는 보배공덕과, 불가사의한 바다공덕과. 한량없는 상호공덕과, 그지없는 구름공덕과, 가없어 칭찬할 수 없는 공덕과, 다함없는 법의 공덕과, 말할 수 없는 공덕과, 모든 부처님의 공덕과 칭찬으로 다할 수 없는 공덕이니라.” 강설 ; 앞에서 보안보살이 보현보살의 열 가지 머무름에 대해서 밝힌 내용도 역시 보현보살의 공덕이다. 또 부처님이 밝히신 열 가지 공덕도 역시 보현보살의 한량없는 공덕들이다. 실로 보현보살의 수행과 서원의 공덕은 미래제가 다할 때까지 설명하더라도 다할 수 없다. 허공계가 다하고 중생계가 다하고 중생의 업이 다하더라도 다 설명할 수 없는 것이 보현보살의 공덕이다. (7) 설법하기를 권유하다 爾時에 如來가告普賢菩薩言하사대 普賢아汝應爲普眼과 及此會中諸菩薩衆하야 說十大三昧하야 令得善入하야 成滿普賢의 所有行願하라 그때에 부처님께서 보현보살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보현보살이여, 그대는 응당 보안과 여기 모인 모든 보살들을 위하여 열 가지 큰 삼매를 말하여서 그들로 하여금 보현의 온갖 행(行)과 원(願)에 잘 들어가서 원만히 이루게 하도록 하라.” 강설 ; 드디어 부처님께서 십정품(十定品)의 본론인 열 가지 큰 삼매에 대해서 설법하기를 당부하였다. 열 가지 삼매를 설하려면 보현보살과 같이 뛰어난 수행과 서원이 있어야 하므로 먼저 설법할 보살의 크나큰 공덕에 대해서 널리 밝혔던 것이다. (8) 열 가지 삼매의 명칭 諸菩薩摩訶薩이 說此十大三昧故로 令過去菩薩로 已得出離하며 現在菩薩로 令得出離하며 未來菩薩로 當得出離하나니 “모든 보살마하살이 이 열 가지 큰 삼매를 설함으로써 과거 보살들은 이미 뛰어났고, 현재 보살들은 지금 뛰어나고, 미래의 보살들은 장차 뛰어나게 되리라.” 강설 ; 열 가지 큰 삼매를 설함으로써 과거 보살들은 이미 벗어났고, 현재 보살들은 지금 벗어나고, 미래의 보살들은 장차 벗어나게 되리라는 것은 생사의 윤회와 일체 고통과 번뇌에서 벗어나 깨달음의 세계로 들어간다는 뜻이다. 何者가 爲十고 一者는 普光大三昧요 二者는 妙光大三昧요 三者는次第徧往諸佛國土大三昧요 四者는 淸淨深心行大三昧요 五者는 知過去莊嚴藏大三昧요 “무엇이 열 가지인가. 하나는 넓은 광명 큰 삼매요[普光大三昧], 둘은 묘한 광명[妙光] 큰 삼매요, 셋은 여러 부처님 국토에 차례로 가는[次第徧往諸佛國土] 큰 삼매요, 넷은 청정하고 깊은 마음의 행인[淸淨深心行] 큰 삼매요, 다섯은 과거의 장엄한 갈무리를 아는[知過去莊嚴藏] 큰 삼매니라.” 六者는 智光明藏大三昧요 七者는 了知一切世界佛莊嚴大三昧요 八者는 衆生差別身大三昧요 九者는 法界自在大三昧요 十者는 無礙輪大三昧라 “여섯은 지혜 광명의 갈무리인[智光明藏] 큰 삼매요, 일곱은 모든 세계의 부처님 장엄을 아는[了知一切世界佛莊嚴] 큰 삼매요, 여덟은 중생의 차별한 몸인[衆生差別身] 큰 삼매요, 아홉은 법계에 자유자재[法界自在]하는 큰 삼매요, 열은 걸림 없는 바퀴인[無礙輪] 큰 삼매이니라.” 강설 ; 삼매는 불법 수행에서 대단히 중요한 덕목이므로 삼매에 대한 경전과 설명이과 그 이름들이 매우 많다. 특히 화엄경에서는 매품마다 삼매가 등장하지만 해인삼매를 가장 중심이 되는 삼매라 하여 화엄의 심오한 뜻을 나타낼 때도 해인삼매로서 설명하기도 한다. 위에서 밝힌 바와 같이 화엄경에서는 열 가지 큰 삼매를 설하는데 전체 80권 중에 무려 4권이나 되는 많은 양으로 설하였고, 그 서두에서도 이 삼매를 설할 보현보살에 대해서도 매우 장황하게 그 수행과 덕을 드러내었다. 가야산 해인사는 신라 화엄십찰(華嚴十刹)로서 화엄경을 전파하기 위해 건립된 사찰이다. 그래서 화엄경의 대표적인 뜻을 나타내는 데 해인삼매라는 해인(海印)으로서 그 이름을 삼은 사찰이다. 삼매의 뜻을 사전적인 해석으로 다시 살펴보면 삼매(三昧)란 범어로는 samādhi 삼마제(三摩提ㆍ三摩帝)ㆍ삼마지(三摩地)라고 음역하고, 정(定)ㆍ등지(等持)ㆍ정수(正受)ㆍ조직정(調直定)ㆍ정심행처(正心行處)라고 번역한다. 산란한 마음을 한 곳에 모아 움직이지 않게 하며, 마음을 바르게 하여 망념에서 벗어나는 것을 의미한다. 또 해인삼매(海印三昧)란 범어로는 Sāgaramudrā-samādhi 해인정(海印定)이라고도 한다. 부처님이 화엄경을 설하려 할 때에 들어간 선정(禪定)의 이름이다. 즉 바다에 풍랑이 쉬면 삼라만상이 모두 바닷물에 비치는 것과 같이 번뇌가 끊어진 부처님의 정심(定心) 가운데 과거ㆍ현재ㆍ미래의 모든 법이 밝게 나타나므로 해인정(海印定)이라 한다. (9) 법의 수승한 덕을 찬탄하다 <1> 사람을 들어 찬탄하다 此十大三昧는諸大菩薩이乃能善入하며 去來現在一切諸佛이已說當說現說이시니라 “이 열 가지 큰 삼매는 모든 큰 보살들이 능히 잘 들어갔으며, 과거 미래 현재의 모든 부처님이 이미 설했고, 장차 설하고, 지금 설하느니라.” 강설 ; 열 가지 큰 삼매에 대한 수승한 덕을 찬탄하는 내용이 계속된다. 먼저 이 열 가지 큰 삼매는 모든 큰 보살들이 능히 잘 들어갔으며, 과거 미래 현재의 모든 부처님이 이미 설했고, 장차 설하고, 지금 설하고 있음을 들어 수승한 법이라는 것을 증명하여 밝혔다. 若諸菩薩이 愛樂尊重하야 修習不懈하면 則得成就하리니 如是之人은 則名爲佛이며 則名如來며 亦則名爲得十力人이며 亦名導師며 亦名大導師며 亦名一切智며 亦名一切見이며 亦名住無礙며 亦名達諸境이며 亦名一切法自在니라 “만약 모든 보살들이 좋아하고 존중하여 닦아 익히고 게으르지 아니하면 곧 성취하게 되리니, 이와 같은 사람을 이름하여 곧 부처라 하고, 곧 여래라 하며, 또한 열 가지 힘을 얻은 이라 하고, 또한 인도하는 스승[導師]이라 하며, 또한 큰 인도하는 스승이라 하고, 또한 일체 지혜라 하며, 또한 온갖 것 보는 이라 하고, 또한 걸림이 없는 머문 이라 하고, 또한 모든 경계를 통달한 이라하며, 또한 일체 법에 자유로운 이라 하느니라.” 강설 ; 수행을 들어 찬탄하는 내용이다. 즉 이 열 가지 큰 삼매의 법은 만약 모든 보살들이 좋아하고 존중하여 닦아 익히면 곧 삼매를 성취하게 되고, 이 삼매의 법을 성취한 사람을 열 가지 이름으로 부를 수 있다. 그 열 가지 이름이란 부처님, 여래, 열 가지 힘을 얻은 사람, 도사, 대도사 등등 모두가 부처님의 다른 이름들이다. 열 가지 큰 삼매가 얼마나 수승한 법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는 내용이다. 此菩薩이 普入一切世界호대 而於世界에 無所着하며 普入一切衆生界호대 而於衆生에 無所取하며 普入一切身호대 而於身에 無所礙하며 普入一切法界호대 而知法界無有邊하며 “이 보살은 모든 세계에 두루 들어가되 세계에 집착하지 아니하며, 모든 중생세계에 두루 들어가되 중생에게 취하는 것이 없으며, 모든 몸에 두루 들어가되 몸에 걸리지 아니하며, 모든 법계에 두루 들어가되 법계가 끝이 없음을 아느니라.” 강설 ; 이 열 가지 큰 삼매를 성취한 보살은 모든 세계에 집착하지 아니하며, 모든 중생세계에 취하는 것이 없으며, 모든 몸에 걸리지 아니하며, 모든 법계에 두루 들어가되 법계가 끝이 없음을 능히 잘 안다. 역시 열 가지 삼매가 수승함을 찬탄한 것이다. 親近三世一切佛하며 明見一切諸佛法하며 巧說一切文字하며 了達一切假名하며 成就一切菩薩淸淨道하며 安住一切菩薩差別行하며 “삼세의 일체 부처님을 친근하며, 일체 모든 부처님의 법을 분명하게 보고, 모든 문자를 능숙하게 말하며, 일체 거짓 이름을 통달하고, 일체 보살의 청정한 도를 성취하며, 일체 보살의 차별한 행에 편안히 머무느니라.” 강설 ; 열 가지 큰 삼매를 성취한 보살은 또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부처님을 친견한다. 또 모든 부처님의 법을 분명하게 본다. 또 모든 문자를 능숙하게 말하는 등의 수행의 힘이 있다. 於一念中에 普得一切三世智하며 普知一切三世法하며 普說一切諸佛敎하며 普轉一切不退輪하며 於去來現在一一世에普證一切菩提道하며 於此一一菩提中에普了一切佛所說하나니라 “잠깐 동안에 일체 삼세의 지혜를 두루 얻으며, 일체 삼세의 법을 두루 알며, 일체 부처님의 가르침을 두루 말하며, 모든 물러나지 않는 바퀴를 두루 굴리며, 과거 미래 현재의 낱낱 세상에 일체 보리의 도(道)를 두루 증득하며, 이 낱낱 보리에서 일체 부처님의 말씀하신 것을 두루 아느니라.” 강설 ; 열 가지 큰 삼매를 성취한 보살은 또 잠깐 동안에 일체 삼세의 지혜를 두루 얻으며, 일체 삼세의 법을 두루 알며, 일체 부처님의 가르침을 두루 말하며, 모든 물러나지 않는 법의 바퀴를 두루 굴리는 등의 수행의 힘이 있다. 열 가지 삼매의 능력은 이와 같다. <3> 법에 나아가 찬탄하다 此是諸菩薩法相門이며 是諸菩薩智覺門이며 是一切種智無勝幢門이며 是普賢菩薩諸行願門이며 是猛利神通誓願門이며 “이것은 모든 보살의 법상(法相)의 문이며, 이것은 모든 보살의 지혜로 깨닫는 문이며, 이것은 일체종지의 이길 이 없는 당기문(幢旗門)이며, 이것은 보현보살의 모든 행과 원(願)의 문이며, 이것은 용맹한 신통과 서원의 문이니라.” 是一切總持辯才門이며 是三世諸法差別門이며 是一切諸佛示現門이며 是以薩婆若로 安立一切衆生門이며 是以佛神力으로 嚴淨一切世界門이니라 “또 이것은 일체 것을 다 지닌 변재(辯才)의 문이며, 이것은 삼세의 모든 법의 차별한 문이며, 이것은 일체 모든 부처님의 나타내 보이는 문이며, 이것은 살바야로써 일체중생을 안립(安立)하는 문이며, 이것은 부처님의 신통으로 일체 세계를 청정하게 장엄하는 문이니라.” 강설 ; 열 가지 삼매의 법에 나아가서 찬탄하였다. 열 가지 삼매란 모든 보살의 법상의 문이며, 모든 보살의 지혜로 깨닫는 문이며, 일체 것을 다 지닌 변재의 문이며, 삼세의 모든 법의 차별한 문 등이라고 하였다. <4> 증득함을 들어 찬탄하다 若菩薩이 入此三昧하면 得法界力하야 無有窮盡하며 得虛空行하야 無有障礙하며 得法王位하야 無量自在가 譬如世間에 灌頂受職하며 “만일 보살이 이 삼매에 들어가면 법계의 힘을 얻어 다함이 없고, 허공같이 행함을 얻어 걸림이 없고, 법왕의 지위를 얻어 한량없이 자유로움이 마치 세간에서 정수리에 물을 부어 직책을 받음과 같으니라.” 得無邊智하야 一切通達하며 得廣大力하야 十種圓滿하며 成無諍心하야 入寂滅際하며 大悲無畏가 猶如獅子하며 “그지없는 지혜를 얻어 모든 것을 통달하며, 광대한 힘을 얻어 열 가지가 원만하며, 다투지 않는 마음을 이루어 고요한 경계에 들어가며, 크게 가엾이 여김으로 두려움 없음이 사자와 같으니라.” 강설 ; 보살이 이 여러 가지 삼매를 얻으면 법계의 힘을 얻으며, 허공과 같은 행을 얻으며, 법왕의 지위를 얻는다. 또 그지없는 지혜를 얻으며, 광대한 힘을 얻으며, 다툼이 없는 마음을 성취하며, 크게 가엾이 여김으로 두려움 없음이 사자와 같이 된다. 삼매의 공능은 참으로 뛰어나서 일체 선한 법을 다 성취한다. 爲智慧丈夫하며 燃正法明燈하며 一切功德을 歎不可盡일새 聲聞獨覺이 莫能思議하며 “지혜 있는 대장부가 되어 바른 법의 등불을 밝히며, 일체 공덕을 이루어 찬탄을 다할 수 없으며, 성문이나 독각으로는 능히 헤아리지 못하느니라.” 강설 ; 보살이 열 가지 삼매를 얻어 지혜가 뛰어난 대장부가 되어 부처님의 정법의 등불을 온 세상에 환하게 밝힌다. 이 일이 수행의 가장 큰 목적이다. 석가모니 세존이 그렇게 하셨듯이 일체보살들도 또한 지혜의 등불을 온 세상에 환하게 밝혀서 모든 사람들이 그 진리의 불빛을 받아 사람과 일체존재의 실상을 깨달아 정직하고 선량하게 살게 하는 것이다. 육바라밀과 사섭법과 사무량심과 십선과 인의예지를 세상에 펼치며 살게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보살행을 어찌 성문과 독각들이 알 수 있으며 생각이나 할 수 있겠는가. 부처님의 제자로서 기독교 교회를 지어주고 기독교인들이 살 집을 지어주는 이 감동적인 보살행을 세상에 어느 소승불자들이 알 수 있겠는가. 得法界智하야 住無動際호대 而能隨俗하야 種種開演하며 住於無相호대 善入法相하며 得自性淸淨藏하야 生如來淸淨家하며 善開種種差別法門호대 而以智慧로 了無所有하며 “법계의 지혜를 얻어 흔들리지 않는 경계에 머물렀지마는 능히 세속을 따라서 갖가지로 연설하며, 형상 없는 데 머물렀지마는 법의 모양에 잘 들어가며, 제 성품이 청정한 장(藏)을 얻어 여래의 청정한 가문에 태어나며, 갖가지 차별한 법문을 잘 열지마는 지혜로써아무 것도 없음을 아느니라.” 강설 ; 삼매를 얻은 진정한 보살은 법계의 지혜를 얻어 흔들리지 않는 경계에 머물렀지마는 능히 세속을 따라서 갖가지로 연설한다. 비록 열반과 해탈과 견성과 화두타파를 하였어도 세속에서 어리석어 고뇌하는 중생들에게 존재의 실상과 사람의 실상을 일깨워주는 진리의 가르침을 연설하지 않는 다면 그것은 진짜불교를 하는 사람이 아니다. 소승불자일 뿐이다. 善知於時하야 常行法施하며 開悟一切일새 名爲智者며 普攝衆生하야 悉令淸淨하며 以方便智로 示成佛道호대 而常修行菩薩之行하야 無有斷盡하며 入一切智方便境界하며 示現種種廣大神通하나니 “시기를 잘 알아서 항상 법으로 보시함을 행하고, 온갖 것을 깨우치어 지혜 있는 이라 이름하며, 중생들을 널리 포섭하여 모두 청정케 하며, 방편의 지혜로 부처님의 도 이룸을 보이지마는 보살의 행을 항상 닦아서 끊임이 없으며, 일체 지혜와 방편의 경계에 들어가서 갖가지 광대한 신통을 나타내 보이느니라.” 是故普賢아汝今應當分別廣說一切菩薩의 十大三昧니今此衆會가咸皆願聞이니라 “그러므로 보현이여, 그대는 이제 응당 일체 보살의 열 가지 큰 삼매를 분별해서 설하도록 하라. 여기 모인 대중들이 모두 듣기를 원하느니라.” 강설 ; 불교의 수행덕목 중에 제일은 보시다. 보시에는 여러 가지가 있으나 법을 보시함을 으뜸으로 친다. 법을 보시하여 일체 미혹한 중생들을 깨우치므로 지혜로운 이라고 이름 한다. 또 “방편의 지혜로 부처님의 도 이룸을 보이지마는 보살의 행을 항상 닦아서 끊임이 없다.”는 것은 보살의 기본인 상구보리(上求菩提)하고 하화중생(下化衆生)하는 일이다. 열 가지 삼매를 구체적으로 설하기 전에 위와 같은 온갖 덕을 설하고 나서 보현보살에게 “그대는 이제 응당 일체 보살의 열 가지 큰 삼매를 분별해서 설하도록 하라. 여기 모인 대중들이 모두 듣기를 원하느니라.”라고 하면서 열 가지 삼매에 대해서 설법할 주인을 정하여 당부하였다. 그래서 이제 열 가지 삼매가 하나하나 설하여진다. 5, 열 가지 큰 삼매를 설하다 (1) 보광명(普光明) 대삼매(大三昧) <1> 다함이 없는 열 가지 법 爾時에 普賢菩薩이承如來旨하사 觀普眼等諸菩薩衆하고 而告之言하사대 佛子야云何爲菩薩摩訶薩의 普光明三昧오佛子야此菩薩摩訶薩이 有十種無盡法하니 何者가 爲十고 이때에 보현보살이 여래의 뜻을 받들어 보안보살 등 모든 보살대중들을 살펴보고 말하였습니다. “불자여, 어떤 것을 보살마하살의 넓은 광명 삼매[普光明三昧]라 하는가. 불자여, 이 보살마하살이 열 가지의 다함이 없는 법이 있으니, 무엇이 열인가.” 강설 ; 이제 열 가지 삼매에 대하여 하나하나 설명하려고 한다. 첫째 보광명(普光明) 삼매다. 보광명 삼매에는 먼저 다함이 없는 열 가지 법이 있음을 설하였다. 화엄경 제7회의 11품 설법이 보광명전에서 설해졌고, 그 첫 십정품의 첫 삼매 이름이 또한 보광명 삼매다. 이 보광명 삼매에 다함이 없는 열 가지 법이 아래에 설해진다. 所謂諸佛出現智無盡과衆生變化智無盡과世界如影智無盡과深入法界智無盡과善攝菩薩智無盡과 “이른바 모든 부처님의 나타나시는 지혜가 다함이 없고, 중생의 변화하는 지혜가 다함이 없고, 세계가 그림자 같은 지혜가 다함이 없고, 법계에 깊이 들어가는 지혜가 다함이 없고, 보살을 잘 거두는 지혜가 다함이 없느니라.” 菩薩不退智無盡과善觀一切法義智無盡과善持心力智無盡과住廣大菩提心智無盡과 住一切佛法一切智願力智無盡이라 佛子야是名菩薩摩訶薩의 十種無盡法이니라 “또 보살의 물러가지 않는 지혜가 다함이 없고, 일체 법의 뜻을 잘 관찰하는 지혜가 다함이 없고, 마음의 힘을 잘 가지는 지혜가 다함이 없고, 광대한 보리심에 머무르는 지혜가 다함이 없고, 일체 불법과 일체 지혜와 원력에 머무르는 지혜가 다함이 없느니라. 불자여, 이것을 보살마하살의 열 가지 다함이 없는 법이라 하느니라.” 강설 ; 보광명 삼매에 열 가지 다함이 없는 법이 있음을 설하였는데 실은 그 내용이 모두 열 가지 지혜에 대해서 설하였다. 부처님과 중생과 세계와 법계와 보살 등에 대한 열 가지 지혜다. 불교교학의 기본인 계학과 정학과 혜학의 순서로 볼 때 선정이 원만하면 지혜가 따라오게 되어 있는 것과 무관하지 않으며, 또 선정과 지혜를 함께 닦아야 온전한 닦음이라는 선불교의 가르침과도 같다. 그래서 삼매를 설하는데 지혜가 따르고 지혜가 있으므로 다음으로는 그지없는 큰마음을 내게 됨을 밝혔다. <2> 그지없는 열 가지 마음 佛子야此菩薩摩訶薩이發十種無邊心하나니 何等이 爲十고 所謂發度脫一切衆生無邊心과發承事一切諸佛無邊心과發供養一切諸佛無邊心과 “불자여, 이 보살마하살이 열 가지의 그지없는 마음[無邊心]을 내나니, 무엇이 열인가. 이른바 일체중생을 제도하려는 그지없는 마음을 내고, 모든 부처님을 받들어 섬기려는 그지없는 마음을 내고, 모든 부처님께 공양하려는 그지없는 마음을 내느니라.” 發普見一切諸佛無邊心과發受持一切佛法不忘失無邊心과 發示現一切佛無量神變無邊心과發爲得佛力故로不捨一切菩提行無邊心과 “모든 부처님을 널리 뵙고자 하는 그지없는 마음을 내고, 모든 부처님의 법을 받아 지니어 잊지 않으려는 그지없는 마음을 내고, 모든 부처님의 한량없는 신통변화를 나타내려는 그지없는 마음을 내고, 부처님의 힘을 얻기 위하여 온갖 보리의 행을 버리지 않으려는 그지없는 마음을 내느니라.” 發普入一切智微細境界하야 說一切佛法無邊心과發普入佛不思議廣大境界無邊心과發於佛辯才에 起深志樂하야 領受諸佛法無邊心과發示現種種自在身하야 入一切如來道場衆會無邊心이니 是爲十이니라 “온갖 지혜의 미세한 경계에 두루 들어가서 모든 부처님의 법을 설하려는 그지없는 마음을 내고, 부처님의 불가사의한 경계에 널리 들어가려는 그지없는 마음을 내고, 부처님의 변재에 매우 좋아하는 마음을 일으키어 부처님의 법을 받으려는 그지없는 마음을 내고, 갖가지 자유로운 몸을 나타내어 일체 여래의 도량에 모인 대중 속에 들어가려는 그지없는 마음을 내는 것이니, 이것이 열이니라.” 강설 ; 다음은 보광명 삼매에서 열 가지 그지없는 마음을 내는 것을 밝혔다. 이 열 가지 그지없는 마음을 내는 것도 모두 순서가 정연하다. 먼저 일체중생을 제도하기 위하고, 다음은 부처님을 받들고, 부처님을 공양하고, 일체 부처님을 친견하고, 불법을 받아 지니고, 부처님의 한량없는 신통변화를 나타내려는 등이다. <3> 삼매에 들어가는 열 가지 차별한 지혜 佛子야此菩薩摩訶薩이有十種入三昧差別智하니 何者가 爲十고所謂東方入定西方起와 西方入定東方起와南方入定北方起와北方入定南方起와東北方入定西南方起와西南方入定東北方起와 西北方入定東南方起와東南方入定西北方起와下方入定上方起와上方入定下方起니是爲十이니라 “불자여, 이 보살마하살이 열 가지의 삼매에 들어가는 차별한 지혜가 있으니 무엇이 열인가. 이른바 동쪽으로 선정에 들어 서쪽에서 일어나고, 서쪽으로 선정에 들어 동쪽에서 일어나고, 남쪽으로 선정에 들어 북쪽에서 일어나고, 북쪽으로 선정에 들어 남쪽에서 일어나고, 동북쪽으로 선정에 들어 서남쪽에서 일어나고, 서남쪽으로 선정에 들어 동북쪽에서 일어나고, 서북쪽으로 선정에 들어 동남쪽에서 일어나고, 동남쪽으로 선정에 들어 서북쪽에서 일어나고, 아래쪽으로 선정에 들어 위쪽에서 일어나고, 위쪽으로 선정에 들어 아래쪽에서 일어나나니, 이것이 열이니라.” 강설 ; 보광명 삼매에서 큰 지혜와 큰마음과 다음으로 선정의 출입이 자재한 것을 밝혔다. 모두가 큰 지혜와 큰마음을 말미암아서 삼매가 자재한 것이다. 장소가 일정하게 고정되어 있지 않으며, 들어가고 나가는 것이 같지 않으므로 차별한 지혜라고 한다. <4> 삼매에 들어가는 공교한 열 가지 지혜 佛子야此菩薩摩訶薩이有十種入大三昧善巧智하니 何者가 爲十고 “불자여, 이 보살마하살이 열 가지의 큰 삼매에 들어가는 교묘한 지혜가 있으니, 무엇이 열인가.”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以三千大千世界로 爲一蓮華하며 現身徧此蓮華之上하야 結跏趺坐하며 身中에 復現三千大千世界하며 其中에 有百億四天下하며 “불자여, 보살마하살이 삼천대천세계로써 한 연꽃을 삼고, 이 연꽃 위에 가득하게 몸을 나타내어 가부좌하고 앉으며, 몸속에 다시 삼천대천세계를 나타내고, 그 가운데 백억 사천하가 있느니라.” 강설 ; 삼매에 들어가는 공교한 열 가지 지혜 중에 네 가지를 밝힌 내용이다. 一一四天下에 現百億身하며 一一身이 入百億百億三千大千世界하며 於彼世界一一四天下에 現百億百億菩薩修行하며 “낱낱 사천하마다 백억의 몸을 나타내고, 낱낱 몸이 백억씩 백억의 삼천대천세계에 들어가며, 저 세계의 낱낱 사천하에서 백억씩 백억의 보살이 수행함을 나타내느니라.” 강설 ; 다음은 삼매에 들어가는 공교한 열 가지 지혜 중에 다시 세 가지를 밝힌 내용이다. 一一菩薩修行에 生百億百億決定解하며 一一決定解에 令百億百億根性圓滿하며 一一根性에 成百億百億菩薩法不退業하나니 然所現身이 非一非多며 入定出定도 無所錯亂이니라 “낱낱 보살의 수행에 백억씩 백억의 결정한 이해를 내며, 낱낱 결정한 이해마다 백억씩 백억의 근성이 원만케 하고, 낱낱 근성마다 백억씩 백억의 보살의 법이 물러나지 않는 업을 이루게 하느니라. 그러나 나타내는 몸은 하나도 아니고 여럿도 아니며, 선정에 들고 선정에서 나오는 것도 어수선하지도 아니하느니라.” 강설 ; 다음은 삼매에 들어가는 공교한 열 가지 지혜 중에 나머지 세 가지를 밝혔다. 처음 삼천대천세계로써 한 연꽃을 삼아 보살의 몸이 그 연꽃위에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그림으로 그려보라 얼마나 근사한가. 다시 연꽃위에 앉아있는 보살의 몸에서는 또 삼천대천세계를 나타내는데 삼천대천세계의 백억이나 되는 사천하가 그대로 펼쳐져 있다. 백억 사천하 중에 낱낱 사천하마다 백억의 몸을 나타내고, 낱낱 몸이 백억씩 백억의 삼천대천세계에 들어가는 등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열 가지 지혜를 하나의 그림으로연결시켜가며 펼쳐 보인다. 그리고 그 많은 백억이나 되는 보살의 몸은 자유자재로 나타내 보여도 하나도 아니고여러 개도 아니다. 하나가 곧 여럿이며 여럿이 곧 하나다. 또 그 몸이 선정에 들고 나가는데 조금도 어수선하지도 않는다. 佛子야 如羅睺阿修羅王의 本身長이 七百由旬이어든 化形長十六萬八千由旬하야 於大海中에出其半身하야 與須彌山으로 而正齊等하나니라 “불자여, 라후아수라왕의 본 몸의 길이는 칠백 유순이고, 변화한 몸의 길이는 십육만 팔천 유순이니, 큰 바다 속에서 그 몸의 반만 드러내도 수미산 높이와 같으니라.” 佛子야 彼阿修羅王이 雖化其身長十六萬八千由旬이나 然亦不壞本身之相하고 諸蘊界處가 悉皆如本하야 心不錯亂하며 “불자여, 저 아수라왕이 비록 몸을 변화하여 길이가 십육만 팔천 유순이 되었지마는 그러나 그 본래 몸의 형상이 변하지도 않았는데 모든 오온(五蘊)과 십팔계(十八界)와 십이처(十二處)도 모두 본래와 같아서 마음이 어수선하지도 아니하느니라.” 不於變化身에 而作他想하고 於其本身에 生非己想하며 本受生身에 恒受諸樂하고 化身도 常現種種自在神通威力하나니 “또 변화한 몸에 대하여 다른 이라는 생각을 내지 않고, 본래 몸에 대하여 자기가 아니라는 생각도 내지 않으며, 본래 몸은 항상 여러 가지 즐거움을 받으면서 변화한 몸은 항상 여러 가지 자유로운 신통과 위력을 나타내느니라.” 강설 ; 아수라왕의 몸의 크기와 능력들을 자세히 들어서 보살의 수행을 비교하였다. 아수라왕의 본래의 몸의 크기도 칠백유순이나 되고, 만약 그 몸을 변화시킨다면 십육만 팔천유순이나 된다. 깊은 바다에 들어가도 바다의 깊이는 반 밖에 되지 않는다. 그리고 다시 몸의 크기가 수미산 높이와 가지런하다. 또 몸을 그렇게 크게 만들어도 본래의 몸은 조금도 변화가 없으며, 오온과 십팔계와 십이처도 모두 본래와 같아서 마음이 어수선하지도 않는다. 참으로 놀라운 능력이며 신통변화다. 佛子야 阿修羅王이 有貪恚癡하야 具足憍慢호대 尙能如是變現其身이어든 何況菩薩摩訶薩이 能深了達心法如幻하며 一切世間이 皆悉如夢하며 一切諸佛의 出興於世가 皆如影像하며 一切世界가 猶如變化하며 言語音聲이 悉皆如響하고 “불자여, 아수라왕은 탐욕과 성내는 일과 어리석음이 있고 교만을 갖추고도 오히려 능히 저렇게 몸을 변화하느니라. 어찌 하물며 보살마하살은 마음의 법이 요술과 같고, 체 세간이 모두 꿈과 같고, 일체 모든 부처님들이 세상에 출현하시는 것이 그림자와 같고, 일체 세계는 변화한 것과 같고, 말과 음성은 모두 메아리와 같은 줄 깊이 깨달아 아는 것이겠는가.” 강설 ; 그런데 보살은 아수라왕과 같이 유형의 모습을 크게 만드는 능력을 자랑하는 것이 아니고 아수라왕이나 모든 세상 사람들이 다 실재한다고 여기는 마음의 법이 요술과 같고, 일체 세간이 모두 꿈과 같고, 일체 모든 부처님들이 세상에 출현하시는 것이 그림자와 같고, 일체 세계는 변화한 것과 같고, 말과 음성은 모두 메아리와 같은 줄 깊이 깨달아 아는 것이다. 아수라왕과 보살은 견해가 다르고 안목이 다르고 지혜가 다르다는 것을 밝혔다. 見如實法하야 以如實法으로 而爲其身하며 知一切法의本性淸淨하며 了知身心의無有實體하며 其身이 普住無量境界하며 以佛智慧廣大光明으로 淨修一切菩提之行가 “또 실상대로의 법을 보았고, 실상대로의 법으로 몸을 삼았으며,일체 법이 본래 청정한 줄 알고, 몸과 마음이 진실한 자체가 없음을 알아서 그 몸이 한량없는 경계에 널리 있으며, 부처님의 지혜와 광대한 광명으로 일체 보리의 행을 청정하게 닦는 이 이겠는가.” 강설 ; 또 보살은 실상대로의 법을 보았고, 실상대로의 법으로 몸을 삼았으며, 일체 법이 본래 텅 비어 청정한 줄 알고, 몸과 마음이 진실한 자체가 없음을 다 안다. 이와 같은 경지를 아수라왕이 어떻게 알겠는가. <5> 삼매의 이익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住此三昧에 超過世間하고 遠離世間하야 無能惑亂하며 無能暎奪하나니 “불자여, 보살마하살이 이 삼매에 머묾에 세간을 초월하고 세간을 멀리 떠나서 미혹하고 어지럽게 할 수도 없고, 가려버릴 수도 없느니라.” ' 강설 ; 보광명 큰 삼매의 이익을 밝히어 마친다. 보살이 보광명 큰 삼매에 머물게 되면 세간을 초월하여 멀리 떠난다. 그래서 그를 미혹하게 할 수도 없고, 어지럽게 할 수도 없고, 가려버릴 수도 없다. 세상을 멀리 초월한 사람을 어찌 미혹하게 할 수 있겠는가. 佛子야 譬如比丘가 觀察內身하야 住不淨觀에 審見其身이 皆是不淨인달하야 菩薩摩訶薩도 亦復如是하야 住此三昧하야 觀察法身에 見諸世間이 普入其身하야 於中에 明見一切世間과 及世間法호대 於諸世間과 及世間法에 皆無所着하나니 佛子야 是名菩薩摩訶薩의 第一普光明大三昧善巧智니라 “불자여, 비유컨대 비구가 마치 몸속을 관찰하여 부정하다는 관염[不淨觀]에머물면몸이 다 부정한 줄을 보게 되느니라. 보살마하살도 그와 같아서 이 삼매에 머물러서 법의 몸[法身]을 관찰하며, 모든 세간이 그 몸에 두루 들어감을 보아 그 가운데서 일체 세간과 세간의 법을 분명히 보지마는 모든 세간과 세간의 법에 모두 집착하지 않느니라. 불자여, 이것을 이름하여 보살마하살의 첫째 넓은 광명 큰 삼매의 교묘한 지혜[普光明大三昧善巧智]라 하느니라.” 강설 ; 보살이 보광명 큰 삼매에 머물고 세간을 초월하여 멀리 떠나게 된 것을 비유를 들어 밝혔다. 소승비구들은 초기불교에서 부정관을 배웠다. 이 몸이 부정하다는 것을 오래 관찰하다보면 몸에 대한 애착을 떠나게 되어 자신의 몸을 스스로 버리게도 된다. 보살은 보광명 큰 삼매에 머물게 되면 육신이 아니라 법신(法身)을 관찰하며, 모든 세간이 그 몸에 두루 들어감을 본다. 또 법신에서 일체 세간과 세간의 법을 분명히 보지마는 모든 세간과 세간의 법에 일체 집착하지 않는다. 소승비구가 몸을 보는 것과 대승보살이 몸을 보는 것은 이와 같이 다르다. 이것이 보광명 삼매에머무는 이익이다. (2) 묘광명(妙光明) 대삼매 <1> 삼매의 힘 佛子야 云何爲菩薩摩訶薩의 妙光明三昧오 佛子야 此菩薩摩訶薩이 能入三千大千世界微塵數三千大千世界하야 “불자여, 무엇을 보살마하살의 묘한 광명[妙光明] 삼매라 하는가. 불자여, 이 보살마하살이 삼천대천세계의 작은 먼지 수 같이 많은 삼천대천세계에 능히 들어가며, 於一一世界에 現三千大千世界微塵數身하며 낱낱 세계마다 삼천대천세계의 작은 먼지 수 같이 많은 몸을 나타내며, 一一身에 放三千大千世界微塵數光하며 낱낱 몸에서 삼천대천세계의 작은 먼지 수 같이 많은 광명을 놓으며, 一一光에 現三千大千世界微塵數色하며 낱낱 광명에서 삼천대천세계의 작은 먼지 수 같이 많은 빛을 나타내며, 一一色에 照三千大千世界微塵數世界하며 낱낱 빛마다 삼천대천세계의 작은 먼지 수 같이 많은 세계를 비추어, 一一世界中에 調伏三千大千世界微塵數衆生하야 是諸世界의 種種不同을 菩薩悉知하나니라 낱낱 세계에서 삼천대천세계의 작은 먼지 수 같이 많은 중생을 조복케 하느니라. 이러한 모든 세계가 가지각색으로 같지 아니한 것을 보살이 모두 다 아느니라. 강설 ; 두 번째 묘광명(妙光明) 큰 삼매를 설하였다. 이 삼매의 힘은 보살이 삼천대천세계의 작은 먼지 수 같이 많은 삼천대천세계에 능히 들어가서 또 낱낱 세계마다 삼천대천세계의 작은 먼지 수 같이 많은 몸을 나타내고, 또 그러한 광명을 놓고, 또 그러한 중생들을 조복하게 하였다. 所謂世界雜染과 世界淸淨과 世界所因과 世界建立과 世界同住와 世界光色과 世界來往의 如是一切를 菩薩悉知하고 菩薩悉入하며 “이른바 세계가 더러움과 세계가 깨끗함과 세계의 원인과 세계가 건립되는 것과 세계가 함께 머무르는 것과 세계의 빛과 세계가 오고가는 이러한 모든 것을 보살이 다 알고 보살이 다 들어가느니라.” 是諸世界도亦悉來入菩薩之身호대 然諸世界가無有雜亂하고 種種諸法도亦不壞滅이니라 “이 모든 세계도 또한 다 와서 보살의 몸에 들어가되 그러나 모든 세계는 복잡하거나 어지럽지도 않고, 여러 가지 법도 파괴되지 아니하느니라.” 강설 ; 묘광명(妙光明) 대삼매의 힘은 온갖 세계를 보살이 다 알고, 그 온갖 세계에 보살이 다 들어가며, 다시 세계가 보살의 몸에 들어가더라도 그 모든 세계는 복잡하거나 어지럽지도 않고, 여러 가지 법도 파괴되지 아니하는 경지이다. 세계와 보살, 보살과 세계가 원융무애(圓融無碍)하여 상즉상입(相卽相入)하는 삼매이다. <2> 그림자의 비유 佛子야 譬如日出에 遶須彌山하야 照七寶山하면 其七寶山과 及寶山間에 皆有光影이 分明顯現하야 “불자여, 비유하자면 마치 해가 떠서 수미산을 돌면서 칠보산(七寶山)을 비추면 그 칠보산과 보산(寶山) 사이에는 모두 그림자가 있어서 분명하게 나타나느니라.” 강설 ; 청량스님의 소(疏)에 “보배 산의 그림자 비유 중에 먼저 비유를 들고 뒤에 ‘불자여, 보살마하살도 또한 다시 이와 같아서’라는 글 이하는 비유와 법을 합한 것이다. 비유 중에 다섯이 있으니, 1은 햇빛이 그림자를 나타냄을 밝혔다. 칠보산(七寶山)이란 곧 칠금산(七金山)인데 십지(十地)의 끝에 그 이름을 나열하였다. 다만 묘고산(妙高山)과 설향산(雪香山)은 제하였다. 산 사이에 일곱 향해(香海)가 있어서 그 바다가 해의 그림자를 나타내고 산은 맑은 금으로써 또한 능히 그림자를 나타내었다.”라고 하였다. 칠금산(七金山)이란 수미산을 중심으로 그 주위를 일곱 겹으로 둘러있는 높은 산이다. 모두 순금으로 이루어졌다고 하는데, 그 이름들은 유건타라(由乾陀羅, 지쌍산)ㆍ이사다라(伊沙陀羅, 지축산)ㆍ카제라가(佉提羅迦, 담목산)ㆍ소달리사나(蘇達梨舍那, 선견산)ㆍ아사간나(阿沙干那, 마이산)ㆍ비나달가(毘那怛迦, 상비산)ㆍ니민타라(尼民陀羅, 지지산) 등이다. 其寶山上에 所有日影이 莫不顯現山間影中하며 其七山間에 所有日影도 亦悉影現山上影中하야 如是展轉更相影現이어든 “그 보배 산 위에 있는 해의 그림자가 산 사이의 그림자에 모두 나타나지 않는 것이 없으며, 그 일곱 개의 산 사이에 있는 해의 그림자도 또한 산 위에 있는 그림자 속에도 또한 다 나타나서 이와 같이 서로서로 겹겹으로 나타났느니라.” 강설 ; 청량스님의 소에, “2 ‘그 보배 산 위’라는 글 이하는 두 그림자가 서로서로 나타남을 밝혔는데, 보살의 자신과 타인이 서로서로 섭입(攝入)함을 곧바로 비유한 것이다. 저 그림자가 밝은 것은 지금의 거울과 같다. 그래서 능히 서로 나타낸다.”라고 하였다. 或說日影이 出七寶山하고 或說日影이 出七山間하며 或說日影이 入七寶山하고 或說日影이 入七山間이라하나니 “혹은 해의 그림자가 칠보산(七寶山)에서 나온다 하며, 혹은 해의 그림자가 일곱 산 사이에서 나온다고 하고, 혹은 해의 그림자가 칠보산(七寶山)에 들어간다고 하고, 혹은 해의 그림자가 일곱 산 사이에 들어간다 하느니라.” 강설 ; 청량스님의 소에, “3 ‘혹은 말하되 해의 그림자’라는 글 이하는 이름이 같지 아니함을 곧바로 가렸다. 이를테면 물속의 본래의 그림자가 산 위의 그림자를 나타낼 때 여기에 나타난 그림자는 산 위에서 나와서 산 사이에 들어간다. 만약 산위의 본래의 그림자가 물 가운데 그림자로 나타날 때에 여기에 나타난 그림자는 산 사이에서 나와서 칠금산 위로 들어간다. 그러므로 곧바로 들어갈 때가 곧 나오는 것이 된다. 비유한 것을 알 수 있으리라.”라고 하였다. 但此日影이 更相照現하야 無有邊際언정 “다만 이 해의 그림자는 서로 비치고 서로 나타내어서 끝이 없느니라.” 강설 ; 청량스님의 소에, “4 ‘다만 이 해의 그림자’라는 글 이하는 거듭 나타나서 다함이 없음을 밝혔다. 보살의 제석천의 그물과 같이 중중무진으로 나타나는 몸과 국토를 비유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體性非有며亦復非無라不住於山하고 不離於山하며 不住於水하고 亦不離水인달하니라 “그 자체 성품은 있는 것도 아니고 또한 없는 것도 아니며, 산에 머물지도 않고 산을 떠나지도 않으며, 물에 머물지도 않고 또한 물을 떠나지도 않았느니라.” 강설 ; 청량스님의 소에, “5 ‘자체 성품’이라는 글 이하는 자체가 두 가지 치우친 변(邊)을 여읜 것을 밝혔다. 그러므로 능히 서로 나타내지만 서로 섞이어 어지럽지 않다. 이를테면 취할 수 없으므로 있는 것이 아니며, 그림자로 나타난 것이 분명하므로 없는 것이 아니다. 이루어지는 데 머물지 아니하여 있지 않으며, 이루는 것을 떠나지 아니하여 없는 것이 아니다. 만약 고정되게 머문다면 능히 들어갈 수 없으며, 만약 떠난다면 서로 들어갈 수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떠나지도 아니하고 머물지도 아니하여 바야흐로 능히 서로 들어가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3> 법에 합하여 밝히다 佛子야 菩薩摩訶薩도 亦復如是하야 住此妙光廣大三昧에 不壞世間安立之相하고不滅世間諸法自性하며 不住世界內하고 不住世界外하며 “불자여, 보살마하살도 또한 그와 같아서 이 미묘한 광명 넓고 큰 삼매[妙光廣大三昧]에 머무르면 세간이 제자리에 정돈되어 있는 것[安立之相]을 헐지도 않고, 세계의 온갖 법의 자기성품을 없애지도 않으며, 세계의 안에 머물지도 않고, 세계의 밖에 머물지도 않느니라.” 강설 ; 청량스님의 소에, “앞의 비유를 법과 합하는 가운데 곧바로 무너지지도 않고 머물지도 않음을 밝혔다. 그러므로 서로 들어가도 어지럽지 않다. 첫 두 구절은 성품과 형상을 무너뜨리지 않음을 밝혔으니 이를테면 만약 성품과 형상을 무너뜨린다면 서로 들어갈 수 없다. 다음 두 구절은 만약 안과 밖에 머물면 서로 들어가지 못한다. 이를테면 만약 세간 안에 머물면 몸이 세계를 에워싸지 못하고 만약 세계 밖에 머물면 세계에 두루 들어가지 못한다. 함께 머무름이 없으므로 능히 서로 들어간다.”라고 하였다. 於諸世界에無所分別호대 亦不壞於世界之相하며 觀一切法一相無相호대 亦不壞於諸法自性하며 住眞如性하야 恒不捨離하나니라 “모든 세계에 대하여 분별하는 바가 없으나 또한 세계의 형상을 파괴하지도 않으며, 일체 법이 한 모양이어서 형상이 없음[一相無相]을 관찰하되 또한 모든 법의 제 성품을 헐지도 아니하며, 진여의 성품에 머물러서 항상 여의지 아니하느니라.” 강설 ; 보살이 미묘한 광명 넓고 큰 삼매[妙光廣大三昧]에 머무르면 세간의 현상과 세간 제법의 자성을 무너뜨리거나 없애지 않고, 또 세계의 안과 밖에도 머물지 않는다. 또한 모든 세계에 대하여 분별하는 바가 없으나 또한 세계의 형상을 파괴하지도 않는다. 또 일체 법이 한 모양이어서 형상이 없음을 관찰한다. 즉 일상(一相)은 무상(無相)임을 관찰한다. 또 제법의 성품을 그대로 둔 채로 진여의 자성에 머물러서 길이 떠나지 않는다. 이것이 보살이 미묘한 광명 넓고 큰 삼매에 머무는 힘이다. <4> 마술사의 전체 비유[總喩] 1) 마술의 비유 佛子야 譬如幻師가 善知幻術하야 住四衢道하야 作諸幻事호대 於一日中一須臾頃에 或現一日하고 或現一夜하고 或復現作七日七夜와 半月一月과 一年百年하며 隨其所欲하야 皆能示現하며 城邑聚落과 泉流河海와 日月雲雨와 宮殿屋宅하야 如是一切를 靡不具足호대 “불자여, 비유하자면 마치 마술사가 마술하는 방법을 잘 알고서 길 네거리에서 마술을 부리는데, 하루 안에서 잠깐 동안에 혹 하루 낮을 나타내기도 하고, 혹 하룻밤을 나타내기도 하며, 또 혹은 7일 낮과 7일 밤을 나타내기도 하며, 반달과 한 달과 일 년과 백년을 나타내고, 또 나타내고자 하는 대로 모두 나타내기도 하며, 도시와 시골의 마을과 샘과 냇물과 강과 바다와 해와 달과 구름과 비와 궁전과 가옥과 같은 것들을 갖추지 못하는 것이 없느니라.” 강설 ; 청량스님의 소에, “마술사의 교묘한 비유 가운데 둘이 있는데, 하나는 총유(總喩)이며, 두 번째 ‘마치 마술사가’라는 글 아래는 별달리 한 비유[別喩]이다. 총유 중에 먼저는 비유이고, 다음은 ‘보살마하살도 또한 다시 이와 같아서’아래의 글은 법과 합한 내용이다.”라고 하였다. 마술사가 마술로서 온갖 것을 다 나타내 보이는 것을 들었다. 네거리에서 모든 시간과 모든 공간과 일체 사물을 자유자재로 나타내 보인다고 가정을 하여 본래의 시간과 공간을 의지해서 마술 속에서의 시간과 공간을 나타내어 서로 서로 들어감을 비유하여 보였다. 不以示現經年歲故로壞其根本一日一時하며 不以本時極短促故로壞其所現日月年歲하야 幻相明現하고 本日不減인달하니라 “그 나타내는 것이 몇 해가 된다고 해서 본래의 하루나 한 시간을 변동하지 아니하며, 본래의 시간이 지극히 짧다고 해서 그 나타내는 날과 달과 해를 변동하지 아니하고 마술의 모습으로 분명히 나타나지마는 본래의 날짜는 감소하지 아니하느니라.” 강설 ; 앞과 뒤가 서로 장애되지 아니하고, 서로 파괴되지 않는 모습을 밝혔다. 경문에서 설한 마술 이야기는 경전을 결집할 당시에는 이와 같은 마술을 하는 마술사가 있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지금으로서는 상상도 못할 참으로 기상천외의 마술이다. 시간을 마음대로 늘리고 좁히다니 어찌 이럴 수가 있겠는가. 또 도시와 시골의 마을과 샘과 냇물과 강과 바다와 해와 달과 구름과 비까지 마음대로 변화하여 나타내다니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2) 비유와 합하여 밝히다 菩薩摩訶薩도亦復如是하야 入此妙光廣大三昧에現阿僧祇世界하야 入一世界호대 其阿僧祇世界에 一一皆有地水火風과大海諸山과城邑聚落과園林屋宅과 “보살마하살도 또한 그와 같아서 이 묘한 광명 넓고 큰[妙光廣大] 삼매에 들고는 아승지 세계가 한 세계에 들어감을 나타내는데, 그 아승지 세계에는 낱낱이 땅과 물과 불과 바람과 큰 바다와 모든 산과 도시와 시골과 동산과 숲과 집들이 있느니라.” 강설 ; 마술을 하는 사람이 마술을 부릴 때 그 마술 속에서 모든 것을 다 나타나내듯이 보살의 이 묘한 광명 넓고 큰[妙光廣大] 삼매에 들고는 무량 아승지 세계가 한 세계에 들어감을 나타내낸다. 마치 밤하늘에 떠있는 한량없는 별들의 세계가 우리가 사는 이 지구 안으로 들어오는 것과 같은 모습을 나타낸다. 이 지구 안에 무수한 별들이 함께 들어와서 합하여도 서로 부서지거나 무너지거나 어지럽게 뒤섞이거나 하지 않는다. 서로서로의 자체 모양들을 조금도 손상하는 바 없이 그대로 유지하면서 또한 함께한다. 마치 인드라그물의 구슬그림자와 같다. 보살의 삼매 속에서 나타내는 온갖 현상들을 하나하나 열거한다. 삼매에서 나타낸 아승지 세계에는 낱낱이 땅과 물과 불과 바람과 큰 바다와 모든 산과 도시와 시골과 동산과 숲과 집들이 있다. 앞으로 계속해서 나타낸 갖가지 현상들을 낱낱이 열거하여 보인다. 보살의 삼매의 위신력이 그와 같음을 밝히는 내용이다. 天宮龍宮과 夜叉宮과 乾闥婆宮과 阿修羅宮과 迦樓羅宮과 緊那羅宮과 摩睺羅伽宮하야 種種莊嚴이 皆悉具足하며 “또 천궁과 용궁과 야차궁과 건달바궁과 아수라궁과 가루라궁과 긴나라궁과 마후라가궁이 있어 가지가지 장엄이 모두 구족하였느니라.” 欲界色界無色界와小千世界와大千世界에業行果報로生此死彼와 一切世間에所有時節인須臾晝夜와半月一月과一歲百歲와成劫壞劫과 “또 욕계와 색계와 무색계와 소천세계와 대천세계와 업과 행으로 받는 과보와 여기서 죽어 저기에 태어나는 일과 일체세간에 있는 시절의 잠깐 동안과 낮밤과 반달과 한 달과 한해와 백년과 이루어지는 겁과 무너지는 겁이 있느니라.” 雜染國土와 淸淨國土와 廣大國土와 狹小國土에 於中諸佛이 出興于世하사 佛刹淸淨하며 “또 더러운 국토와 청정한 국토와 광대한 국토와 작은 국토와 그 가운데서 모든 부처님들이 세상에 출현하시어서 부처님 세계가 청정함이 있느니라.” 菩薩衆會가 周帀圍遶하며 神通自在하야 敎化衆生하며 其諸國土의 所在方處에 無量人衆이 悉皆充滿하며 “또 보살대중이 둘러앉았으며 신통이 자재하여 중생을 교화하며, 그 모든 국토의 가는 곳마다 한량없는 사람들이 모두 다 가득히 찼느니라.” 殊形異趣의 種種衆生이 無量無邊하야 不可思議며 去來現在의 淸淨業力으로 出生無量上妙珍寶하는 如是等事를 咸悉示現하야 入一世界하야 “또 형상이 특수하고 갈레가 다른 가지각색 중생들이 한량없고 그지없어 헤아릴 수 없으며, 과거 미래 현재의 청정한 업의 힘으로 한량없는 훌륭한 보배들을 출생하는 이와 같은 일을 모두 나타내어서 한 세계에 들어가게 하느니라.” 강설 ; 여기까지 보살의 삼매 속에서 펼쳐 보이는 온갖 현상을 밝혔다. 이것은 하나와 많은 것이 서로 수용하되 같지 않는 이치[一多相容不同]를 밝힌 것인데 위에서 무수한 시간과 장소를 나타내는 것에 합하였다. 菩薩이 於此에 普皆明見하며 普入普觀하며 普思普了하야 以無盡智로 皆如實知호대 “보살이 여기에 있어서 널리 다 보며, 널리 두루 들어가며, 널리 두루 살피며, 널리 두루 생각하며, 널리 두루 통달하며, 끝이 없는 지혜로 모두 사실과 같이 아느니라.” 강설 ; 이 단락은 지혜로 밝게 살피어 어둡지 아니함을 밝혔는데, 앞에서 능히 마술을 부리는 일에 합하였다. 보살이 삼매를 증득하여 앉은 자리에서 촌보도 옮기지 아니하고 널리 다 맑게 보아 널리 들어가고 널리 관찰하고 널리 생각하고 널리 통달하여 끝이 없는 지혜로 모두 사실과 같이 안다. 不以彼世界多故로 壞此一世界하며 不以此世界一故로 壞彼多世界니라 “저 세계가 여럿이라고 해서 이 한 세계를 파괴하지도 아니하고, 이 세계가 하나라고 해서 저 여러 세계를 파괴하지도 아니하느니라.” 강설 ; 이 단락은 근본과 지말(支末)을 깨트리지 않는 모습[不壞本末之相]에 합하였다. 何以故오菩薩이 知一切法이 皆無我故로是名入無命法無作法者며 “무슨 까닭인가? 보살은 일체법이 모두 ‘나’가 없음을 아는 연고로 이것을 이름하여 생명이 없는 법[無命法]과 지음이 없는 법[無作法]에 들어간 이라 하느니라.” 강설 ; 크고 작은 세계가 서로 서로 들어가도 무너지지 않는 까닭을 해석하는 내용이다. 먼저 보살은 일체법이 모두 ‘나’가 없음을 알기 때문이다. 즉 일체법이 고정된 실체가 없는 무아(無我)라는 사실을 깨달아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술사가 마술로 보이는 현상이나 보살이 삼매에서 나타내는 일이 자유자재한 것이다. 菩薩이 於一切世間에勤修行無諍法故로是名住無我法者며 “보살은 일체 세간에서 다툼이 없는 법을 부지런히 수행하였으므로 이것을 이름하여 ‘나’가 없는 법에 머무른 이라 하느니라.” 菩薩이 如實見一切身이皆從緣起故로是名住無衆生法者며 “보살은 일체 몸이 인연으로부터 일어난 줄 사실대로 아는 연고로 이것을 이름하여 중생이 없는 법에 머무른 이라 하느니라.” 菩薩이 知一切生滅法이 皆從因生故로是名住無補伽羅法者며 “보살은 일체 생멸하는 법이 모두 인연으로부터 생긴 것임을 아는 연고로 이것을 이름하여 보특가라(補特伽羅)가 없는 법에 머무른 이라 하느니라.” 강설 ; 계속하여 보살이 삼매에 머무르므로 일체법이 제법이 무아인 이치를 아는 것을 밝혔다. 보특가라(補特伽羅)는 부특가라(富特伽羅)ㆍ복가라(福伽羅)ㆍ보가라(補伽羅)ㆍ불가라(弗伽羅)ㆍ 부특가야(富特伽耶)라고도 쓰며, 삭취취(數取趣)라 번역한다. 유정(有情) 또는 중생의 아(我)를 말한다. 중생은 번뇌와 업의 인연으로 자주 6취에 왕래하므로 삭취취(數取趣)라고 한다. 보살이 삭취취가 없는 법에 머문 것이다. 菩薩이 知諸法의 本性平等故로是名住無意生無摩納婆法者며 “보살은 모든 법의 본 성품이 평등함을 알므로 이것을 이름하여 마음대로 나는 일[意生]이 없고, 마납파(摩納婆)가 없는 법에 머무른 이라 하느니라.” 菩薩이 知一切法의本性寂靜故로是名住寂靜法者며 “보살은 일체법의 본 성품이 고요함을 알므로 이것을 이름하여 고요한 법에 머무른 이라 하느니라.” 菩薩이 知一切法의 一相故로是名住無分別法者며 “보살은 일체법이 한 모양임을 알므로 이것을 이름하여 분별없는 법에 머무른 이라 하느니라.” 菩薩이 知法界無有種種差別法故로是名住不思議法者며 “보살은 법계에 갖가지 차별한 법이 없음을 알므로 이것을 이름하여 부사의한 법에 머무른 이라 하느니라.” 강설 ; 삼매에 머문 보살은 모든 법이 본성이 평등하고, 본성이 적정하고, 일체법이 하나의 모양이고, 법계에 갖가지 차별한 법이 없어서 끝내 평등함을 알므로 몇 가지의 이름을 얻게 됨을 밝혔다. 菩薩이 勤修一切方便하야 善調伏衆生故로 是名住大悲法者니라 “보살은 일체 방편을 부지런히 닦아서 중생을 잘 조복하므로 이것을 이름하여 크게 자비한 법에 머무른 이라 하느니라.” 강설 ; 보살이 삼매에 머물러 인무아(人無我)와 법무아(法無我)를 알고 다시 동체대비(同體大悲)까지 얻어서 이로 말미암아 능히 이(理)와 사(事)에 융통하게 된 것이다. 佛子야 菩薩이 如是能以阿僧祇世界로 入一世界하야 知無數衆生의 種種差別하며 見無數菩薩의 各各發趣하며 觀無數諸佛의 處處出興하며 彼諸如來의 所演說法을 其諸菩薩이 悉能領受하며 亦見自身이 於中修行이나 “불자여, 보살도 그와 같아서 능히 아승지 세계를 한 세계에 들게 하여 수없는 중생의 갖가지 차별함을 알며, 수없는 중생의 각각 마음을 내어 나아감을 보며, 수없는 부처님이 곳곳마다 출현하심을 관찰하여 저 모든 여래께서 연설하시는 법문을 그 모든 보살들이 모두 듣고 또한 자신도 그 가운데서 수행함을 보느니라.” 강설 ; 이 내용은 위에서 많은 것이 하나에 들어감을 결론한 것이다. 즉 일(一)과 다(多)가 걸림 없이 자유자재한 이치를 밝힌 덕이다. 然이나 不捨此處하고 而見在彼하며 亦不捨彼處하고 而見在此하나니 彼身此身이 無有差別하야 入法界故며 常勤觀察하야 無有休息하야 不捨智慧하야 無退轉故니라 “그러나 이곳을 버리지 아니하고 저곳에 있음을 보며, 또한 저곳을 버리지 아니하고 이곳에 있음을 보나니, 저 몸과 이 몸이 차별이 없어 법계에 들어가는 까닭이며, 항상 부지런히 관찰하고 쉬지 아니하나니 지혜를 버리지 아니하여 물러남이 없는 연고이니라.” 강설 ; 이 내용은 위에서 성품과 현상을 무너트리지 아니함을 결론한 것이다. 즉 저곳과 이곳, 저 몸과 이 몸이 서로 버리거나 떠나지 아니하고 차별이 없어 법계에 들어가는 것이다. <5> 마술사의 다르게 한 비유[別喩] 如有幻師가 隨於一處하야 作諸幻術호대 不以幻地故로 壞於本地하며 不以幻日故로 壞於本日인달하야 “마치 마술하는 사람이 한 곳에서 여러 가지 마술을 할 적에 마술로 만든 땅이라고 해서 본래의 땅을 무너트리지도 아니하며, 마술로 만든 태양이라 해서 본래의 태양을 무너트리지도 아니하느니라.” 강설 ; 마술사가 마술로 어떤 사물을 만들어도 그 본래의 사물을 파괴하지 않고 만든다. 그래서 파괴하지 않는 모습을 다르게 비유하였다. 새로운 땅을 만들든 태양을 만들든 본래의 땅과 본래의 태양은 그대로이다. 菩薩摩訶薩도 亦復如是하야 於無國土에 現有國土하고 於有國土에 現無國土하며 於有衆生에 現無衆生하고 於無衆生에 現有衆生하며 無色現色하고 色現無色호대 初不亂後하고 後不亂初하나니 “보살마하살도 또한 그와 같아서 국토가 없는 데서 국토 있는 것을 나타내고, 국토가 있는 데서 국토 없는 것을 나타내고, 중생이 있는 데서 중생 없는 것을 나타내고, 중생이 없는 데서 중생 있는 것을 나타내며, 물질이 없는 데서 물질을 나타내고, 물질이 있는 데서 물질이 없음을 나타내지마는, 처음이 나중을 어지럽히지도 않고 나중이 처음을 어지럽히지도 않느니라.” 강설 ; 보살마하살도 삼매에 마무르면 그와 같이 국토가 없는 데서 국토 있는 것을 나타내고, 국토가 있는 데서 국토 없는 것을 나타내는 등 있음과 없음이 자유자재하다. 菩薩이 了知一切世法이 悉亦如是同於幻化하야 知法幻故로 知智幻하며 知智幻故로 知業幻하며 知智幻業幻已에 起於幻智하야 觀一切業이니라 “보살이 일체 세상 법을 아는 것도 또한 그와 같이 환화(幻化)와 같으니라. 법이 환(幻)임을 알므로 지혜가 환임을 알고, 지혜가 환임을 알므로 업(業)이 환임을 알며, 지혜가 환이고 업이 환임을 알고는 환과 같은 지혜를 일으키어 일체 업을 관찰하느니라.” 강설 ; 삼매에 머문 보살은 환과 같은 자비와 지혜를 활용하여 중생을 교화한다. 환과 같은 지혜와 자비로 다시 환과 같은 중생을 제도하는 것이다. 如世幻者가 不於處外에 而現其幻하고 亦不於幻外에 而有其處인달하야 “세상의 마술을 하는 이가 처소 밖에서 마술을 부리지도 아니하고, 마술 밖에 처소가 있는 것이 아님과 같으니라.” 강설 ; 마술은 반드시 의지하는 곳이 있음을 비유하였다. 앞에서 본래의 시간과 처소를 의지하여 수많은 시간과 처소를 나타냄을 달리 비유하였다. 菩薩摩訶薩도 亦復如是하야 不於虛空外에 入世間하고 亦不於世間外에 入虛空하나니 何以故오 虛空世間이 無差別故로 住於世間하고 亦住虛空하야 “보살마하살도 또한 그와 같아서 허공 밖에서 세간에 들어오지도 아니하고, 또한 세간 밖에서 허공에 들어가지도 아니하느니라. 왜냐하면, 허공과 세간이 차별이 없는 까닭에 세간에 있으면서 또한 허공에도 있느니라.” 강설 ; 삼매에 머문 보살에게는 세간과 텅 빈 허공이 차별이 없음을 밝혔다. 菩薩摩訶薩이 於虛空中에 能見能修一切世間種種差別妙莊嚴業하며 於一念頃에 悉能了知無數世界의 若成若壞하며 亦知諸劫의 相續次第하야 能於一念에 現無數劫호대 亦不令其一念廣大하나니 “보살마하살이 허공 속에서 일체 세간의 갖가지로 차별하고, 묘하게 장엄하는 업을 보기도 하고 닦기도 하느니라. 잠깐 동안에 수없는 세계가 이룩되는 것과 파괴되는 것을 모두 알고, 또한 여러 겁이 서로 계속하는 차례도 알며, 한 생각에 수없는 겁을 나타내지마는 또한 그 한 생각을 넓고 크게 한 것도 아니니라.” 강설 ; 시간이란 본래로 일념이 곧 한량없는 겁이고 한량없는 겁이 곧 일념으로 되어 있으나 그것을 활용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삼매에 머문 보살은 일념이 곧 한량없는 겁이고 한량없는 겁이곧 일념이라는 사실을 알고 활용한다. 菩薩摩訶薩이得不思議解脫幻智하야 到於彼岸하며 住於幻際하야 入世幻數하야 思惟諸法이 悉皆如幻하며 不違幻世하고盡於幻智하야 了知三世가與幻無別하며 決定通達하야 心無邊際니 “보살마하살이 부사의한 해탈의 마술과 같은 지혜를 얻고 저 언덕에 이르며, 마술의 경계에 머물러서 세상의 마술에 들어가며, 모든 법이 다 마술과 같은 줄을 생각하여 마술인 세상과 어기지 아니하며, 마술인 지혜를 다하여 삼세가 마술로 더불어 다르지 아니함을 알며, 확실하게[決定] 통달하여 마음이 끝이 없느니라.” 강설 ; 삼매에 머문 보살이 불가사의한 해탈과 마술과 같은 지혜를 얻어 피안에 이른 경계들을 밝혔다. 마술과 같은 지혜[幻智]란 보살이 삼매에 머물면 그 삼매가 마술과 같은 삼매[如幻三昧]인데 그와 같은 삼매에서 나온 지혜이다. 여환삼매(如幻三昧)란 여환삼마지(如幻三摩地)라고도 하는데 마술하는 사람이 마술을 부리는 것과 같이 그 작용이 자재한 삼매라는 말이다. 보살이 이 삼매에 들어가면 마치 마술하는 사람이 제 뜻대로 온갖 것을 만들어 내지만 모두 공(空)한 것이어서조금도 구애되지 않는 것같이 중생을 제도하는 상을 인식하지 않고, 교화하는 작용이 자유 자재함을 말한 것이다. 如諸如來가 住如幻智하사 其心平等인달하야 菩薩摩訶薩도 亦復如是하야 知諸世間에 皆悉如幻하야 於一切處에 皆無所着하야 無有我所니라 “마치 모든 여래가 마술과 같은 지혜에 머물러서 마음이 평등한 것처럼 보살마하살도 또한 그와 같아서 모든 세간이 모두 마술과 같음을 알고, 일체 곳에 아무런 집착함도 없고 내 것이란 것도 없느니라.” 강설 ; 모든 여래께서 마술과 같은 지혜에 머물러 그 마음이 평등한 것과 같이 삼매에 머문 보살도 또한 그와 같음을 증명하였다. 如彼幻師가 作諸幻事에 雖不與彼幻事로 同住나 而於幻事에 亦無迷惑인달하야 “저 마술하는 사람이 여러 가지 마술을 부릴 적에 비록 저 마술로 만든 일과 함께 있지는 않지만 마술로 만든 일에 또한 미혹되지도 않는 것과 같으니라.” 강설 ; 마술을 하는 사람이 마술을 하면서 미혹하지 않음을 비유하여 밝혔다. 菩薩摩訶薩도 亦復如是하야 知一切法하야 到於彼岸이나 心不計我가 能入於法하며 亦不於法에 而有錯亂이니 是爲菩薩摩訶薩의 第二妙光明大三昧善巧智니라 “보살마하살도 또한 다시 그와 같아서 일체 법을 알아 저 언덕에 이르지만 마음에는 내가 능히 법에 들어간다고 생각하지도 않고, 또한 법에 착각하거나 어지럽지도 아니하느니라. 이것이 보살마하살의 제2 묘한 광명 큰 삼매의 교묘한 지혜니라.” 강설 ; 마술을 하는 사람이 마술을 하면서 미혹하지 않듯이 삼매에 머문 보살도 또한 그와 같아서 일체 법을 알아 저 언덕에 이르지만 마음에는 내가 능히 법에 들어간다고 생각하지도 않고, 또한 법에 착각하거나 어지럽지도 않다. 열 가지 삼매 중에 두 번째 묘한 광명 큰 삼매의 교묘한 지혜의 법이 이와 같음을 밝혔다. 화엄경 전체 80권 중에 십정품(十定品)이 모두 4권이나 된다. 그 첫 권을 설하여 마쳤다. 화엄경 강설 40권 끝 |
첫댓글
제7회 법문은 두 번째 보광명전에서 11개의 품을 설하는데 그 내용은
등각(等覺) 법문이 6품이고,
묘각(妙覺) 법문이 3품이고,
평등한 인(因)의 법문 1품과
평등한 과(果)의 법문 1품이다.
십정품(十定品)이란이와 같은 11품 중에
첫째 품으로서 열 가지 선정[三昧]에 대한 설법이다.
제2회 6품 설법을 보광명전에서 설하시었다.
역시 6품의 10신 법문이다.
다음 3회에는 도리천에서 10주 법문을 설하시고,
다음 4회에는 야마천에서 10행 법문을 설하시고,
다음 5회에는 도솔천에서 10회향 법문을 설하시고,
다음 6회에는 타화자재천에서 10지 법문을 설하시고,
이번 제7회에는 재차 보광명전에서 등각과 묘각 법문을 설하신 것이다.
등각(等覺)이라는 말의 뜻은 모든 지혜와 자비와 신통이 완전한 깨달음을 이룬 부처님과 동등하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