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07. 04
선수들과 가장 잘 어울리는 이름을 가진 프로야구팀을 찾는다면, 단연 베어스가 첫 손가락에 꼽힐 만하다. 원년 윤동균을 시작으로 장원진, 우즈 그리고 최준석과 고교시절 그렇게 날렵했던 김동주에 이르기까지 마스코트 곰돌이가 그대로 살아난 듯한 몸매의 선수들이 유독 많다는 점 때문만은 아니다.
애초에 충청도에서 출발해서 동대문을 거쳐 잠실구장으로 입성한 출신과 이력 탓인지, '잠실라이벌' 트윈스의 세련되고 화려한 이미지와는 사뭇 다르게 투박하고 묵직하며, 은근한 팀컬러. 그것은 베어스를 좋아하는 이와 싫어하는 이가 공감하는 그 팀의 정체성이다.
선수들과 가장 잘 어울리는 이름의 팀, 베어스
그래서 시즌 초기 흔히 꼴찌를 넘나들며 부진에 빠질 때마다 사람들은 곰들이 '겨울잠'에 빠졌다고 했고, 시즌 중반 모두의 예상을 깬 연승행진으로 중위권 쯤 치고 올라서면 곰이 '재주'를 부리기 시작했다고 했으며, 시즌 막판 최종전까지 피말리는 어깨 싸움 끝에 포스트시즌 막차 티켓을 움켜잡을 때면 역시나 '뚝심'의 팀이라는 찬사를 보내곤 했다.
그 베어스가 서울 라이벌 트윈스와 시즌 마지막 날까지 선두 다툼을 벌였던 95년, 한국 프로야구는 26년의 역사 속에서 유일하게 총 관객 수 500만 명을 넘어 587만 명을 경기장으로 불러 모을 수 있었다. 그 해 두 팀은 에이스 이상훈과 김상진을 세 차례나 맞대결시키는 정면 대결로 팬들의 환호에 답했고, 그 세 번의 대결에서 모두 승리한 이상훈은 17승의 김상진을 넘어 시즌 20승의 기념비를 세울 수 있었다.
그러나 정작 그 시즌 정규리그 1위에 올랐던 것은 트윈스가 아닌 베어스였으며, 베어스는 그 기세를 몰아 원년 이후 13년 만에 두 번째 한국시리즈 우승의 감격까지 누릴 수 있었다. 어쩌면 그것은 이상훈에게 한 치 모자랐던 에이스 대결의 열세를 다시 한 치의 우세로 바꿔냈던 홈런타자 김상호의 힘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그 해는 김상호의 해였다. 홈런왕, 타점왕, 그리고 정규리그 MVP와 골든글러브까지. 게다가 잠실구장을 홈으로 사용하는 구단에서는 최초로 배출된 홈런왕이라는 의미의 '잠실홈런왕' 칭호는 그를 더욱 빛내주었다. 그의 별명은 물리적 한계를 박살내버리는 괴력, '터미네이터'였다.
실제로 다른 구장에 비해 좌우측은 5m, 센터측은 15m까지 먼 잠실구장의 펜스 넘어 홈런을 쳐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10% 가까이 더 긴 비거리가 필요한 것이기도 하지만, 부채꼴의 끝으로 갈수록 더 넓어지는 외야의 광활한 시야에 지레 움츠러드는 스윙 때문이기도 하다. 그래서 '잠실홈런왕'이란 그만큼 강력한 힘에 더해 시각을 통해 몸을 지배하는 심리적 위축을 이겨낼 수 있는 강심장만이 오를 수 있는 자리이며, 지금껏 김상호 외에 우즈가 한 번 더 이뤄냈을 뿐인 높은 봉우리다.
'잠실홈런왕'의 조건, 힘과 강심장
▲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눈이 움찔거렸던 김상호 선수의 타격 장면 / ⓒ OB 베어스 팬북
그렇지만 역설적이게도 김상호는 역대 홈런왕 중에 그리 두드러지는 인물은 아니다. '터미네이터'라는 무시무시한 별명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뿜어내는 카리스마라는 것은, '헐크'라든가 '사자왕', 심지어는 '코털'이나 '오리궁둥이' 같은 말랑말랑한 별명을 가졌던 여느 해의 홈런왕에 비해서도 그리 살벌한 것은 못되는 것이었다.
그는 사실 이만수나 박재홍처럼, 어떤 구질의 공이든 후려패서 담장 밖으로 꽂아버리는 기가 질리는 파괴력의 소유자는 아니었다. 그리고 김성래나 이승엽이 그랬듯 유연한 스윙으로 우아한 포물선을 그려내는 타격기술을 가지지도 못했다. 심지어는 김기태나 장종훈이 보여주었던 무표정의 불가사의한 위압감과도 거리가 있었다.
그는 방망이를 쥔 손아귀와 잔뜩 당겨져 긴장하고 있는 어깨선이 진작 '노리고 있음'을 떠벌려주는 폼으로 서 있다가, 때로는 노련한 상대투수의 체인지업이 채 타자 앞에 닿기도 전에 벌써 바람을 찢어놓을 듯 격하게 방망이를 휘둘러버리고는 타자석 밖으로 물러나 '아, 이거 오늘 안 풀리네' 하는 듯한 민망한 웃음을 흘리던 타자였다.
그래서 홈런왕에 올랐던 그 해에도 얻어낸 사사구의 두 배가 훨씬 넘는 삼진을 당하기도 했고, 13년간의 선수생활 중에 딱 두 번 3할 타율에 턱걸이했을 정도로 어수선한 타자이기도 했다.
그러나 골대 밑에서 폴짝 뛰는 것으로 충분한 샤킬 오닐보다는 장대같이 우거진 수비수들의 팔들을 피해 이를 악물고 솟구쳐 올라 꽂아 넣는 앨런 아이버슨의 덩크슛이 훨씬 극적인 쾌감을 발산시키듯, 그가 잔뜩 노려 친 방망이를 맞고 멀찍이 관중들로 빼곡한 잠실의 외야 스탠드 중간쯤으로 날아가는 커다란 포물선은 다른 해의 어떤 대단한 홈런타자가 보여준 것보다도 훨씬 시원한 느낌을 선사하곤 했다.
그것은 엉덩이를 뒤로 뺀 채 팔만 휘둘러도 담장을 넘기는 이승엽의 비현실적 위압감과는 또 다른, 보는 이들의 팔다리와 두 어깨를 움찔대게 하는 생생한 현실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다재다능함과 애매모호함
/ ⓒ OB 베어스 팬북
선린상고와 계명대를 거쳐 MBC청룡에서 프로생활을 시작한 그는 원래 '호타준족'형으로 주목받는 선수였고, 굳이 따지자면 그 중에서도 장타력보다는 기동력을 특기로 하는 선수였다.
데뷔 첫 해 홈런보다 네 개 많은 11개의 도루를 성공시켰고, 2년차인 89년에는 13개의 홈런과 21개의 도루를 기록했다. 그리고 1990년, 그 앞과 뒤로 거의 유례가 없는 서울 라이벌 간 트레이드로 베어스 투수 최일언과 유니폼을 바꿔 입은 뒤로도 해마다 열 개 안팎의 홈런과 그보다 서너 개 많은 도루를 기록하는 '다재다능한' 선수였다.
그러나 톱타자 김민호로부터 김광림, 장원진, 김형석, 김종석으로 이어지던 타선의 비슷한 스타일의 선수들 틈에서 김상호의 '다재다능함'은 동시에 '애매모호함'이었고, 그것은 동시에 선수로서 언제라도 걸출한 장거리포가 출현할 경우 일거에 정리되어버릴지도 모르는 '불안함'이었다.
1995년, 서른 줄에 올라선 김상호는 두 갈래 길 중 하나를 선택했다는 듯 한층 무지막지한 궤적으로 방망이를 휘두르기 시작했다. 그는 정확성을 포기하고 힘을 선택했고, 빠른 발은 도루보다 2루타, 3루타를 만드는 데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그래서 그 해 그의 타율은 .272에 불과했고 무려 113개의 삼진을 당했지만 대신 25개의 홈런을 때려내며 막판까지 따라붙은 중고신인 이동수의 추격을 뿌리치고 홈런왕에 오를 수 있었다.
타선에 있어서만큼은 '곰'이라는 상징의 박력에 값하지 못했던 베어스는 김상호, 그리고 예상 밖에 주로 8번 타순에 후보로 나서면서도 21개의 홈런을 날렸던 '소년장사' 심정수의 깜짝 활약에 힘입어 그 해 중량감으로 상대 투수를 압박할 수 있었고, 김상호에 이어지는 김종석과 김형석의 4, 5번 타선 역시 늘어난 기회를 알차게 타점으로 이어냈다. 그것은 '불사조' 박철순을 중심으로 17승의 김상진과 15승의 권명철이 구축한 막강 마운드와 더불어 그 해 우승을 이끌어낸 '뚝심의 축'이었다.
화려했지만, 짧았던 전성기
/ ⓒ OB 베어스 팬북
그러나 실제로 그가 스무 개 이상의 홈런을 때려낸 것은 95년과 96년, 딱 두 해 뿐이었다. 그리고 우즈와 김동주, 심정수의 '우동수 트리오'가 베어스의 중심타선을 장악한 98년에는 시즌의 절반도 채 나서지 못한 채 겉돌다가 결국 친정팀 트윈스로 가야 했고, 다시 두 해 뒤에는 서른 다섯의 나이에 아쉬운 은퇴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었다. 그의 전성기는 화려했지만 팬들의 기억 속에 강한 인상을 남기기에는 턱없이 짧았다.
이제야 기록지를 들여다보며 따져보아도 2할 7푼에도 못 미치는 통산 타율과 그가 뛰었던 햇수로 나누면 평균 10개 남짓했던 통산 홈런을 근거로 그가 엄청난 대타자였다고 말하기는 어려워진다. 그렇지만 95년을 기억하는 팬들로서는 그런 기록들이 믿겨지지 않는 기억 속의 이 엄청난 존재감과 위압감의 정체는 과연 무엇일까.
크지 않은 체구였지만 엄청난 운동으로 불려냈던 당당한 근육 그리고 그 온몸의 근육에서 힘을 짜내고 집중해 최후의 일격을 가하듯 휘둘러댔던 과격한 스윙. 그것이 혹 빗나가더라도 싱긋 한 번 웃고는 '한 번 더'를 외치던 유쾌한 카리스마. 그리고 3루수로 뛰던 시절 섬세한 공의 바운드를 채 맞추지 못했던 '직각수비'의 '돌 글러브질'이었지만, 외야수로 전업하고부터는 홈런타구라도 포기하지 않고 펜스 너머까지 끝까지 따라 기어 올라가 기어코 넘어가던 공의 뒤통수를 채 끌고 나오던 집념까지.
그것은 비록 '거포'가 되기에는 작고 '날다람쥐'가 되기엔 너무 컸던 180㎝의 어중간한 체격에다가 정확성이든, 힘이든, 센스든 무엇이든 한 쪽으로 튀어나오지 못했던 어중간한 조건과 정면으로 맞부딪쳐 화끈하게 타올랐던 한 사나이의 '뚝심'의 단면이었으며 그 작은 성공과 실패의 이면들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어딘가 모를 빈틈이 제법 있었던 홈런왕 김상호의 거친 스윙에 환호하고 열광하며 감동했던 한 해 여름을 떠올리며, 대개는 어중간한 조건들 속에서 애매모호한 태도로 신세한탄이나 하다가, 결국 이도저도 아닌 어설픈 줄타기를 하며 '최악의 지경'만을 피해나가는 걸로 안도를 삼는 내 삶의 단면을 비추어보게 된다. 아, 한 번 쯤은 승부를 걸어야 하는 것도 인생일 텐데, 한숨도 내쉬면서 말이다.
김은식(punctum)
오마이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