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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호는 재빨리 강운의 뒤를 쫓아가며 침상에 누워있는 채수연과 강운
을 번갈아 가며 쳐다보며 묘한 표정을 지었다.
‘운이가 저 아이를 좋아하는 모양이로구나. 흠.. 하지만 운이가 빨리
알아야 할 텐데.. 운이는 이미 인간세상과는 어울릴 수 없는 사람이라
는걸.. 사람들에게 정을 주면 줄수록 상처만 커질 텐데.. 걱정이네.. ‘
강운은 백호의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냥 휘적휘적 계단을 내려가
며 일층에 바글바글 모여 있는 사람들을 훑어보기 시작했다.
이미 저녁시간이 한참 지나있었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일층에
모여 술을 마시며 시끄럽게 떠들어 대고 있었다.
“아! 이보게! 분명히 내 이 두귀로 똑똑히 들었대두 그러네. “
“흥! 자네의 허풍을 어찌 믿는단 말인가? 자네가 아무리 그래도 아무
도 믿지 않을 것일세! “
가슴을 탕탕 두드리며 호탕하게 말을 하는 우람한 근육질의 사내는
옆에 동료로 보이는 사내가 자신의 말을 믿어주지 않자 분통이 터진
다는 듯이 식식거리며 입을 열었다.
“아니 이 사람이 누가 허풍이 쳤다고 그런 소리를 하는 게야? 자네와
내가 그 동안 하루 이틀 같이 지낸 사이가 아니질 않는가? 어찌 이토
록 나를 못 믿는 거야? “
근육질의 사내가 가슴을 두드리며 분통을 터트리자 옆의 사내는 재밌
다는 시선으로 그의 동료를 바라보았다. 지금껏 수 없이 많은 날을
같이 지내왔지만 이토록 완강하게 자신의 뜻을 내세운 적은 처음이었
던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 알았네 알았어! 자네의 말을 믿어줄 터이니 그럼 어디 좀 전에
했던 말을 자세히 얘기해 보게나. “
“진작 그럴 것이지. 사람이 말을 하면 곧이곧대로 듣질 못하구. 의심
부터 하는 자네의 그 나쁜 버릇은 고쳐야 할 거야. “
호탕하게 소리치며 옆의 사내에게 웃음을 짓던 근육질 사내는 자신을
날카롭게 쳐다보고 있는 동료이자 자신의 오랜 친구인 사내의 날카로
운 눈초리를 받고는 연신 헛기침을 했다.
“허흠! 그러니까 내말은.. 지금 우리들이 사천으로 향하고 있지 않은
가? “
근육질 사내의 말에 다른 사내는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가 왜 사천으로 가고 있는지는 자네도 알 터이니 생략하도록 하
고 내가 국경 근처에서 온 친구에거서 들은 얘기인데 그 친구의 말을
들으면 일단의 무리가 국경을 넘어 사천으로 향하고 있다고 들었거든.
허흠! 이거 목이 칼칼해서.. “
근육질의 사내가 말을 끊으며 옆의 사내를 바라보자 근육질 사내의
말에 한참 흥미가 생기던 옆의 사내는 알았다는 듯이 점소이를 불러
술을 주문하고는 근육질 사내의 입이 떨어지기를 기다렸다.
“자! 술을 시켰으니 어서 하던 이야기나 마저 하라구! “
“허허! 자네 성격이 원래 이렇게 급하지 않았거늘.. 궁금하긴 한 모양
이로구만? “
“그걸 말이라고 하는가? 무림인뿐만이 아니라 중원인들이라면 누구
나가 궁금해 할 것이네. 주위를 둘러보게! 자네의 이야기를 듣는 사람
이 어디 나 하나뿐인가? “
사내의 말을 들은 근육질 사내는 주위를 둘러보며 눈을 동그랗게 뜨
며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주위의 모든 사람들은 시끄럽게 떠들던 것을 멈추고 근육질 사
내가 하는 말에 주의를 기울이고 있었던 것이다. 게중에는 성격이 불
같아서 말을 끊고 애간장을 녹이고 있는 근육질의 사내에게 당장이라
도 달려들 것 같아 보이는 사람들도 있었던 것이다.
“어.. 허흠.. 그, 그러니까 알았네! 말하면 되지 않겠나? 그러니까 그
친구의 말을 들어보자면 국경을 넘어온 일단의 무리가 사천으로 향
하고 있다는 것인데 그들 하나하나가 모두 강호의 웬만한 일류 무사
를 능가하는 것 같다는 말이네. 그것을 어찌 아느냐고? 그들은 일만에
달하는 엄청난 인원임에도 불구하고 누구 하나 뒤쳐지는 사람 없이
초절정의 경공술을 이용해 나는 듯이 달려가는 것을 본 사람이 있다
는 것이지! 그렇다면 그들이 과연 누구이겠느냐 이 말이네! 당금 무림
에 있어서 그 정도의 엄청난 인원과 함께 고강한 무공을 가지고 있는
세력이 존재 할 수 있을까? “
근육질 사내의 말이 끝나자 객점안에서는 침묵이 주위를 맴돌고 있었
고 누구 하나 입을 여는 사람이 없었다.
옆의 사내가 침음성을 흘리며 입을 열었다.
“흐음.. 내가 알고 있는 바로는.. 그런 세력은 없지. 아무리 마교라 하
지만 그 정도의 세력이라고는.. 그리고 그들이 세외에서 나타날 이유
도 없으니.. “
“그렇지! 나도 처음에는 마교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들이
국경을 넘어올 아무런 이유가 없다는 것이야. 그래서 곰곰이 생각해본
결과 하나의 결론에 도달할 수 있었네! “
근육질 사내가 또 다시 말을 끊고 한참동안 입을 다물고 있자 주위의
공기가 싸늘하게 냉각되어가는 것이 느껴졌다. 근육질 사내가 계속
입을 다물고 있으면 칼부림이라도 일어날 분위기였다.
중인들의 시선이 모두 자신의 입으로 모여들고 있다는 것을 느낀 근
육질 사내는 속으로 승리의 함성을 지르며 쾌재를 불렀다.
‘흐흐! 사람들에게 무시당하고 동료라는 놈한테도 늘상 허풍쟁이라는
말만 들어온 내가 사람들에게 이토록 뜨거운 시선을 받다니! 으하하!
오늘은 정말 기분이 유쾌한 날이로구나. ‘
“그들은 바로 화운문일 가능성이 아주 높다네. 아니 거의 확실하다
고 봐야 할 게야! “
마침내 근육질의 사내가 입을 열자 장내는 찬물을 끼어 얹은듯 한 동
안 침묵 속에서 헤어날줄을 몰랐다.
“아.. 아니? 자네 제 정신으로 하는 말인가? 화, 화운문이라니! “
마침내 옆의 사내가 경악의 고함을 지르고 나서야 평안객잔 안에는 지
붕이 떠나갈 듯한 시끄러운 소동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래! 맞어. 내 생각에도 화운문 밖에 그런 세력이 없다고 생각했지.”
“아니! 자네도 그렇게 생각했는가? 나는 처음부터 저 친구가 그 말을
꺼낸 순간에 모든 것을 깨달아 버렸지 뭔가! 하하하! “
“아! 이렇게 되면 우리가 사천으로 가서 화운문과 힘을 합쳐 무림을
구하게 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하하하! “
“그러게 말이외다! 그 동안은 화운문이 나타나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불안한 마음도 들었지만 이제 우리 정도인들과 화운문이 힘을 합치게
된다면 그깟 마교놈들 쯤이야 별거 있겠습니까! “
“맞소이다! 대협의 말이 지당합니다. “
웅성웅성 객점 안이 떠나갈 듯이 소리치며 웃음을 터트리는 이들을 물
끄러미 바라보던 강운은 계단을 마저 내려와 갠잔 밖으로 나왔다.
휘영청 밝은 달이 하늘 높이 떠 있고 눈이 내린 지면에 달빛이 반사
되어 아름다운 빛무리가 강운을 반겼다.
“휴우.. 정말 시끄럽군. “
시끄러운 객잔에서 벗어난 강운은 석가장이 세워지기 오래전부터 자
라 왔을 법한 수백 년도 넘게 자라온 커다란 고목 앞에 이르러 고목에
등을 기대고 멍하니 밤 하늘을 바라보았다.
백호도 강운의 무릎에 올라와 같이 밤하늘이 올려다보며 깊은 생각에
잠겨들었다.
‘도대체 암흑계의 인물은 어디에 있는걸까.. 빨리 사부 있는 곳을 찾
아내야 할텐데.. 이건 도대체 아무런 기운이 느껴지지 않으니 찾아보
고 싶지만 찾을 수가 없구나. 암흑계라.. 내가 상대하기에는 조금 벅
찬 곳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군! 하지만! 반드시 그놈을 족쳐서
사부있는 곳을 알아내고야 말꺼야! 만약.. 사부한테 무슨 일이라도
생겼다면 암흑계 할아버지라도 절대! 용서하지 않겠다. ‘
강운은 밤 하늘에 빛나는 수 많은 별빛들을 바라보며 다시금 각오를
새롭게 다졌다.
“으응? “
하염없이 밤 하늘만 바라보던 강운은 손등에서 느껴지는 어떤 느낌에
고개를 숙여 바라보니 백호가 자신의 손등을 핥고 있었다.
“후훗! 백호야.. 지금 너가 하는 짓을 보면 진짜 강아지 같다. 꼬리를
흔들어 대질 않나.. 깨깽거리지를 않나.. 푸히히 “
장난스러운 웃음을 흘리며 강운은 백호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고 백
호는 강운의 손등을 핥고 있다가 들려온 한마디에 큰 충격을 먹은 듯
한 동안 움직임을 멈추었다.
[운아! 정말 내가 그렇게 강아지 같어?]
“응! 정말루! “
강운의 대답을 들은 백호는 절망의 심정이 되어 고개를 푹 수그렸다.
[당연히 그렇게 보일 꺼야.. 그 망할 놈의 영감탱이가 가르쳐 준 게 다
이 모양이지 뭐. 강아지의 모습으로 둔갑하고 있는 한 외양뿐만이 아니
라 습성까지도 완전한 강아지의 모습을 할 테니까.. ]
“와.. 사부가 정말 좋은거 가르쳐 줬네. 근데 백호 너 이렇게 오랫동
안 둔갑술 펼치고 있어도 괜찮은 거야? “
강운은 백호를 다소 과소평가하는 듯한 말투로 입을 열었고 백호는
그런 강운의 태도에 발끈 해서 고개를 쳐들었다.
[운아! 너는 나를 어떻게 보고 그런 소리를 하는 거야! 내가 이래봬도
그 망할영감탱이를 제외하고는 무서울 게 없는 호랑이라고! 이까짓 둔
갑술 쯤이야! 몇십 몇 백 년 동안이라도 유지할 수 있어. ]
“아.. 백호야. 진정좀 해. 내가 장난으로 한 말인데 그렇게 화내면 어
떡하니? 그럼! 우리 백호가 어떤 호랑이인데! 그냥 나는 백호 너가
조금 걱정돼서 한 말이니까 그만 화풀어.. 알았지? “
[흐음.. 그래.. ]
백호는 의외로 강운이 순순히 사과를 하며 나오자 약간의 의외라는
듯한 표정으로 강운을 쳐다봤다.
1년 전 까지만 하더라도 강운이 한번 고집을 피우면 백호와 그의 사
부가 함께 몇날 며칠을 달래도 풀어지지 않았던 지독한 고집을 가지
고 있던 아이가 강운이었다.
물론, 지금도 강운이 정말로 고집을 피운다면 누가 그 고집을 꺾을 수
있겠냐만은 적어도 백호가 알고 있는 한 강운이라는 아이는 이렇 듯
쉽게 자신이 잘못했다고 먼저 고개를 숙이고 들어오는 아이가 아니었
던 것이다.
‘흐음.. 그 동안 운이가 인간세상에서 생활을 하더니 성격이 조금 변
한 것 같구나. 뭐.. 좋게 변했으니 문제될 건 없겠지만.. ‘
그렇게 강운과 백호가 투닥거리며 밤하늘을 쳐다보고 있을 때 어디선
가 강운이 있는 곳으로 다가오고 있는 인기척이 느껴졌다.
강운과 백호는 이미 오래전부터 누군가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지만 일부러 모르는 척 신경을 쓰지 않았다.
“아직도 멀었느냐? “
수풀 넘어에서 들리는 뾰족한 음성에 강운은 고개를 돌려 그곳을 바
라 보았다.
“아.. 예.. 이제 거의 다 왔습니다요. 이곳이 석가장 일대에서는 가장
아름다운 곳입니다. 특히 오늘같이 둥그런 보름달이 떠 있는 날에는
그 모습이 과연 장관이라고 할 수 있습죠. “
뾰족한 음성과는 대조적으로 그 뒤에 들린 음성은 비굴함의 극치를
달린다 해도 전혀 손색이 없을만한 목소리였다.
“시끄럽다! 자꾸 주절대지 말고 길 안내나 확실히 하거라. “
한참 뭔가를 주절주절 떠들어 대던 비굴한 목소리의 주인공은 뾰족한
음성에 눌려 급히 입을 다물어 버린 듯 했고 그로부터 한참동안 아무
런 소리도 그들에게서 흘러나오지 않았다.
첫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