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아지를 데리고 산책하는 사람이 있었다. 갑자기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강아지가 쭈그리고 앉아 빙글빙글 돈다. 시원하게 볼일을 끝낸 강아지 주인은 물티슈로 강아지 뒤를 깨끗이 닦아 주었다. 그리고 가지고 있던 비닐봉지에 개똥을 담아 가는 모습이었다.
참으로 개가 사랑받고 존중받는 좋은 세상 아닌가.
그 광경을 본 아낙이 혀를 끌끌 차며 “자기 시어머니한테도 잘하지….”라며 눈을 흘긴다.
같은 아파트에 사니까 잘 아는 사이다.
사연인즉, 시어머니를 부양하기 힘들다며 요양원에 입원시켰단다.
‘개만도 못하다.’라는 자조(自嘲) 섞인 말하는 이유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일요일 오전, 한 교회 마당에 찢어진 우산을 쓴 노숙자가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신도들이 그 옆을 지나 예배당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아무도 비를 맞고 있는 노숙자에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신도들은 노숙자를 경계하면서 빙 돌아 비껴가기도 했다. 잠시 후 예배가 시작됐다.
신도들은 오늘 부임할 목사가 강대상에 오르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였다.
예배당 뒤쪽 문이 열리고 노숙자 차림의 남자가 뚜벅뚜벅 걸어서 강대상으로 올라갔다.
그가 푹 눌러썼던 모자를 벗었다. 바로 부임해 오신 교회 목사였다.
신도들이 순간 모두 놀라면서 동시에 멋쩍어하는 표정이었다.
목사는 성경 속에 나오는 부자가 문 앞에서 구걸하는 나사로에게 마음 한번 사랑 한번 주지 않은 것을 얘기했다. 인간은 다른 사람을 사랑하기가 쉽지 않은 것 같다.
하느님은 ‘사랑을, 부처님은 ’자비를, 가르치신다.
인간은 누구에게나 똑같이 뜨거운 피가 흐른다.
우리 사회는 남을 업신여기는 악습이 뿌리 깊게 박혀 있는 것 같다.
친할수록 말조심하라는 격언(格言)이 있다.
툭툭 내뱉는 말 한마디가 상대에겐 큰 상처가 되기 때문이다.
사람 중에는 더러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도 있다.
왜냐하면, 은연중에 업신여김을 당하는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