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는 깔때기다. 깔때기 속으로 밀어넣고 압박해야 한다. 입구냐 출구냐 방향판단이 중요하다. 유혹과 압박, 인력과 척력, 에너지의 확산과 수렴으로 모두 설명할 수 있다. 이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분야에 해당되는 보편적 직관원리다. 당신도 직관할 수 있다.
비트코인이 흥하는가 망하는가는 열린구조냐 닫힌구조냐만 보면 된다. 열리면 망하고 닫히면 흥한다. 앞에서 꼬시면 망하고 뒤에서 밀면 흥한다. 무슨 좋은 기능이 있다는 것은 유혹이고 세금을 뜯기는 것은 압박이다. 어느 쪽이 더 설득력 있겠는가? 당연히 압박이다.
인간이 도무지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증거를 대려는 것이다. 그냥 둘 중에 하나를 찍지 말고 구체적인 근거를 대야 한다. 대부분 내 인생에 데모해서 잘 되는 꼴을 못봤다거나 다단계가 되는 꼴을 못봤다는 식으로 개인의 경험에 의지하여 하나를 찍을 뿐 생각을 안 한다.
직관적으로 어? 이거 먹힌다. 어? 이거 안 먹힌다. 1초 안에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구조를 보면 된다. 흥행하는 영화는 대부분 닫힌 공간을 제시한다. 절대로 빠져나갈 수 없다. 쏘우 시리즈나 큐브 시리즈가 그렇다. 저예산으로도 흥한다. 폰부스나 터미널 같은 영화다.
시간으로 닫히는 영화도 많다. 악당은 시한폭탄을 설치하고 주인공은 시간에 쫓겨 개고생 한다. 사건으로도 닫힌다. 보통은 복수극이다. 아버지의 복수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에 갇힌 것이다. 캐릭터도 닫힌다. 그냥 여자를 사랑한다는 식의 안이한 설정은 곤란하다.
주인공이 워낙 찐따라서 이 여자를 놓치면 다시는 여친을 사귀게 될 가능성이 없다는 것을 보여줘야 관객이 납득한다. 구영탄 만화라면 워낙 촌놈이라서 아버지의 유언에 갇혀 있다. 만화 주인공들이 찐따로 설정되는 경우가 많은 이유다. 히어로는 빌런에 의해 닫힌다.
영화 염력이나 외계+인 시리즈가 망한 이유는 초능력이 만능열쇠로 기능하기 때문이다. 시공간을 넘나들고 족자 속으로 들어갈 수 있는 초능력자에게 닫힌 공간은 없다. 주인공을 압박할 방법이 없다. 열린 결말이 김이 빠지듯이 열린 스토리도 당연히 맥빠지는 것이다.
영화 초능력자는 손익분기점을 겨우 넘었지만 강병진 평론가는 말한다. 그의 초능력 별로 갖고 싶지 않다고. 초능력자가 구차하게 전당포 털어서 밥 먹는다고?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초능력이 있다면 당연히 푸틴의 목을 따고 불량인간 네타냐후와 정은을 처단한다.
그 좋은 초능력을 가지고 기껏 한다는 짓이 철거깡패 때려주기라니. 영화 염력이다. 초능력자를 가두는 방법도 있다. 초능력자가 폭주하는 것이다. 영화 루시가 그렇고 리미트리스가 그렇다. 일본 망가에 많다. 아키라가 대표적이다. 초능력자는 폭주에 갇혀서 자폭한다.
망작은 공통점이 있다. 주인공에게 여러 선택지를 준다. 이것은 작가의 망설임이다. 작가가 결론을 못 내고 독자들에게 ‘어쩌면 좋아?’ 이러고 있다. 그 마음이 관객들에게 전달된다. 똥 싸고 있네. 관객의 기분은 이렇게 된다. 해외로케만 하면 망하는 공식도 원리는 같다.
해외는 우리에게 친숙한 공간이 아니다. 열린 공간이다. 이 길을 가도 되고 저 길로 가도 된다. 어차피 안가봤잖아. 감독이 헤매는게 관객의 마음에 전달된다. 익숙한 공간이라야 어디로 갈지 예측되고 압박이 된다. 박해일 주연의 영화 10억이 해외로케 멸망공식 영화다.
서바이벌 게임을 하러 호주까지 왔는데 사막이 갑자기 정글이 된다. 똥 싸고 있네. 심드렁해진다. 탈출할 수 있는 넓은 공간을 보여주고 탈출할 수 없다고 억지를 쓰는데 관객은 납득을 못한다. 오징어게임은 참가자가 제 발로 올 수 밖에 없는 과정을 보여줬는데 말이다.
1. 고립된 공간으로 닫는다.
2. 제한된 시간으로 닫는다.
3. 결함 있는 주인공 캐릭터로 닫는다.
4. 복수극은 스토리로 닫는다.
5. 히어로는 빌런으로 닫는다.
6. 초능력은 폭주로 닫는다.
7. 신파로 닫는 꼼수는 비겁하다.
주인공에게 선택지를 주면 망한다. 무조건 빨간약을 선택하지 않을 수 없게 압박해야 한다. 닫힌 공간을 설계하지 않고 관객을 압박하는 방법은 신파다. 어린애를 울리면 된다. 영화 기적은 거의 30분 동안 애를 울린다. 환장한다. 아이디어가 괜찮았는데 울다가 망했다.
초반에는 열려 있어야 한다. 어느 순간 문이 쾅 닫힌다. 빠져나갈 수 없다. 점점 더 안으로 깊숙히 끌려들어간다. 거기서 구출해주는 것은 개인이 아닌 집단이라야 한다. 인간은 집단과 단절될 때 큰 고통을 느낀다. 다시 집단과 연결되는 것이 카타르시스다. 울컥하게 된다.
보통은 주인공의 고난을 모른체 하던 집단이 곡괭이와 낫을 들고 모여들어 주인공을 도와주는 장면으로 결말을 짓는다. 인간은 언제라도 집단과 연결되어 있고 싶다. 이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분야에 두루 적용되는 직관원리다. 단박에 본질을 간파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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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구조론은 언어가 발생되는 경로를 따라 국어사전이 기술되어야 한다는 여덟살 때의 아이디어를 발전시킨 것이다. 여덟살 어린이도 이해할 수 있을 만큼 쉽다. 그런데 어렵다고 한다. 근본적인 장벽이 있다. 인간들이 원래 구조치라서 구조에 둔감하다면 대책이 필요하다.
구조론은 한 마디로 압력이다. 어디든 압력이 걸려 있다. 공을 살짝 차면 제멋대로 굴러가지만 세게 차면 똑바로 날아간다. 하수들 간의 대결은 의외성이 작용하지만 고수들 사이의 대결은 실력대로 간다. 우리가 실패하는 이유는 압력의 차이를 살피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에는 수압이 걸려 있고, 공기에는 기압이 걸려 있고, 정치판에는 민심압이 걸려 있고, 시장에는 금리압이 걸려 있고, 연예계는 유행압이 걸려 있고, 영화판에는 입소문압이 걸려 있다. 압력이 자체 질서를 만들어 외력의 간섭을 이기고 눈덩이 효과를 만든다. 어려운가?
에너지는 방향성이 있다. 정해진 길로 간다. 예상이 빗나가는 이유는 압력이 약하기 때문이다. 압력을 높이면 된다. 깔때기에 비유하자. 입구는 넓고 출구는 좁으므로 내부에 압력이 걸린다. 들어갈 수는 있는데 빠져나올 수 없다. 구조론은 쉽다. 깔때기 안을 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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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가지 구조
계는 안과 밖이 있고, 체는 중심과 주변이 있고, 각은 입구와 출구가 있고, 선은 앞과 뒤가 있고, 점은 밸런스의 균형점 위치가 있다. 에너지의 연결은 계로 시작하여 체, 각, 선을 거쳐 점으로 끝난다. 이는 하나의 사건이 격발되고, 결정하고, 종결되는 절차다.
계 - 체 - 각 - 선 - 점
구조는 다섯이다. 계는 내부에 압박이 걸려 있고, 체는 하나의 중심을 향해 정렬하여 있고, 각은 이겨서 방향을 틀고, 선은 움직여서 전달하고, 점은 단절되어 멈춘다. 계, 체, 각, 선, 점은 내부에서 압력의 모순을 처리하여 밸런스를 복원하는 방향전환 절차다.
질 - 입자 - 힘 - 운동 - 량
계, 체, 각, 선, 점의 내부결정이 외부의 관측자에게는 질, 입자, 힘, 운동, 량으로 나타난다. 질은 결합하고, 입자는 독립하고, 힘은 교섭하고, 운동은 변화하고, 량은 이탈한다. 우주는 다섯으로 모두 설명된다. 세상의 모든 변화는 이 하나의 플랫폼을 공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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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론의 관점
구조론은 시작과 끝이 있다. 신의 신은 누구냐 하는 수학적 발산의 문제다. 과학은 물질을 쪼개서 내부를 본다. 아무리 쪼개도 더 작은 것이 있다. 숫자는 아무리 세어도 다 셀 수 없다. 원자론은 더 세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항복한다. 여기서 어색함을 느껴야 한다. 무한의 문제다.
우리는 문제를 회피하는 방법을 알고 있다. 순환의 오류를 저지른다. 무한히 윤회를 거듭한다고 주장한다. 무한이라는 단어 뒤에 숨는 것이다. 원래 그렇다고 우겨도 된다. 아인슈타인의 정적우주론이다. 공간은 무한하고 시간은 영원하다고 선언한다. 빅뱅우주론에 의해 깨졌다.
숫자가 많은 이유는 관측자 때문이다. 무한은 인간의 관념이다. 자연에는 있음이 있을 뿐 없음이 없다. 관측하려면 좌표를 그려야 하는데 좌표는 객체보다 커야 한다. 어떤 숫자를 세면 보다 큰 숫자가 만들어진다. 이는 자연의 존재와 상관없는 인간의 관측방식에 따른 모순이다.
외부 관측자 포지션을 버리고 객체 내부의 자체 질서로 관점을 틀어야 한다. 사물의 쪼개기는 무한하나 사건의 복제는 처음과 끝이 있다. 사물은 구슬이 모이고 사건은 실이 꼬인다. 꼬인 실을 풀면 매듭은 사라진다. 사건은 언밸런스로 시작하고 밸런스의 균형점 0으로 끝난다.
자연에 무는 없다. 무는 유를 포장하는데 쓰이는 인간의 관념이다. 우주에 방향전환의 결맞음과 결어긋남이 있을 뿐이다. 매듭이 얽히고 풀린다. 이쪽에서 풀린만큼 저쪽에서 꼬이므로 풀리는 방향과 순서가 중요하다. 우주의 기본방향은 작아져서 사라지는 마이너스 방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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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로의 초대
구조는 깔때기다. 깔때기는 입구와 출구가 있다. 깔때기 안에서 의사결정이 일어난다. 의사결정은 방향전환이다. 입구로 들어가서 출구로 나온다. 에너지의 방향은 정해져 있다. 입구가 출구보다 크다. 깔대기 안으로 들어갈 수는 있어도 도로 나올 수는 없다.
존재는 방향전환이다. 어떤 것이 존재한다는 것은 외부에서 작용하는 힘의 방향을 내부에서 꺾었다는 의미다. 내부가 외부를 이긴 것이다. 내부가 이겨서 외력의 간섭을 물리치고 자기를 방어하는데 성공하는 것이 존재다. 내부에 무언가 있다. 그것이 구조다.
우리가 아는 존재는 구슬과 같다. 입구와 출구가 없어서 의사결정을 못한다. 세상을 이룩하려면 원자라는 이름의 구슬을 꿰어줄 실이 필요하다. 그 실이 무엇인지 말하지 않으므로 세상은 설명되지 않는다. 깔때기 속의 방향전환에 의해 구슬은 실에 꿰어진다.
깔때기 입구는 척력이고 출구는 인력이다. 에너지는 척력으로 들어가서 인력으로 나온다. 만유인력은 틀렸고 만유척력이 옳다. 유로 들어가서 강으로 나오고 동으로 들어가서 정으로 나온다. 구조는 방향과 순서의 질서가 있으므로 복제할 수 있다. 망라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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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와의 조우
가로쓰기는 오른손잡이가 유리하다. 왼손잡이는 팔꿈치가 옆구리에 닿아서 글쓰기가 방해된다. 오른손 가로쓰기는 미는 힘이다. 미는 것은 쉽고 당기는 것은 어렵다. 미는 것은 계속 밀 수 있지만 당기는 것은 상대가 끌려오면 놓았다가 손을 고쳐잡아야 한다.
당기면 중심으로 모인다. 모이면 충돌하므로 인력은 지속가능하지 않다. 미는 힘은 압력이 높은 쪽에서 낮은 쪽으로 작용하므로 압력의 차이를 이용하여 계속 밀고갈 수 있다. 당기는 힘은 두 지점을 연결하는 중간지대의 압력이 낮아서 동시에 내가 끌려간다.
병에 든 물을 끌어내는 힘은 당기는 힘이다. 빈 공간의 낮은 압력으로 물병 속의 높은 압력을 이길 수 없다. 물을 끌어낼 수 없다. 병을 거꾸로 들면 입구가 좁아서 물이 병을 빠져나오지 못한다. 병에 공기를 집어넣어 대기압의 미는 힘으로 물을 밀어내야 한다.
우주 안에 당기는 힘은 없다. 수레를 끌고 가는 사람은 사실 발로 땅을 밀어서 전진한다. 우주 안에 인력은 없다. 부메랑은 당기는 힘에 끌려오는게 아니다. 미는 힘의 방향이 꺾이면 관측자 위치에 따라 당기는 힘으로 보여질 뿐이다. 인력은 척력의 교착이다.
빛은 있어도 어둠은 없다. 빛은 광자가 있는데 어둠은 반대편에 그 무엇이 없다. 인간이 저지르는 모든 오류의 원인이다. 모든 대칭은 에너지라는 하나의 화살을 두고 관측자가 머리와 꼬리를 각각 보고 둘로 착각한 것이라는 사실을 알면 다른 세계를 만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