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송배 시인이 만난 문인 . 47
영선 김진희 소설가
김진희 소설가의 본명은 김영선이다. 우리는 그를 김 회장이라고 부른다. 김 회장은 1989년 8월 ‘순수 농민 종합문예지-농민문학’을 창간하면서 그가 회장을 맡게 되어 붙여진 경칭(敬稱)인데 지금까지 김 회장으로 문단 활동을 하고 있다.
김 회장이 야심차게 창간한 『농민문학』은 1991년에는 월간으로 변경하고 그 발행인으로 취임하게 된다. 창간 당시에는 회장 김진희, 운영위원장 노의숙, 발행인 이용주, 주간 권순화, 편집부장 박문호씨 등 다섯 분이 상임임원으로 의기투합해서 우리 문학 발전에 기여하는 새로운 문학지가 탄생되었다.
농민문학은 농사짓는 사람의 문학이 아니라 수천년 동안 농촌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왔던 우리 민족의 농경문화적인 전통을 계승, 발전시키자는 새로운 문학운동이라는 점을 강조하는 것입니다.-중략-그동안 농민문학지는 1989년 가을호를 계간으로 창간하여 이듬해 1990년 11월호부터 격월간 발간, 이달 들어 다시 월간으로 발전 간행하는 것입니다. 1991년 5월 발행인 김영선
그는 월간 변경 발간사에서 「민족문화의 전통으로서 ‘농민’ 개념의 창조」라는 제하로 농민문학 운동에 앞장서는 글을 위와 같이 피력하고 있다. 김 회장은 이『농민문학』을 1993년 7월에 손을 떼고 8월호부터 『한맥문학』으로 제호를 변경해서 2013년 10월 현재, 통권 277호를 발행하고 있다.
이처럼 변경 발행한데는 상당한 이유가 있었다고 그는 회고한다. 처음 시작했던 다섯명의 상임임원들은 발간비용 등 결손이 따르면서 운영이 어렵게 되자 직장 등을 핑계로 나타나지도 않아서 그동안 부채로 남아 있던 인쇄비 변제를 약속했던 김회장만 남아서 부득이 제호를 변경하고 현재에도 그 인쇄소와 거래를 하고 있다고 한다.
1993년 7월호에 예고했던 제호 문학춘추를 많은 문단인의 중의에 따라 월간 脈文學으로 바꾸어 공보처 잡지과에 등록, 1992년 8월호부터 첫선을 보이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더욱 많은 지도편달과 전과 다름없는 협조를 부탁드림과 동시 한脈文學의 통권이 월간 농민문학을 이어 나감으로서 전 농민문학 출신동인들의 모임인 한국농민문학 동인회도 脈文學동인회로 개명 계승됨을 알려드립니다. 1993년 8월 1일 월간 한脈文學 발행인 김영선
김 회장은 脈文學을 발행하면서 ‘사고’로 전국 문인들에게 알리는 글을 게재했던 것이다. 잡지 제자(題字)는 서예가 원정(圓亭) 배종성(裴宗承) 선생이 맡았고 표지 사진은 정왕선 선생이 맡았다.
김진희 회장은 경남 남해 출생으로 부산여고와 일본 국제대학 영문과를 수학했다. 그는 1963년에 『문학춘추』를 통해서 소설로 등단하여 지금까지 20 여권의 장편소설집을 출간한 원로작가이다.
그동안 한국문인협회 와 펜클럽한국본부 그리고 한국소설가협회의 이사를 역임하면서 문단활동에도 많은 기여를 해왔다. 저서로는 『밤에 타는 태양』『이런 너꺼무』『웬쑤』『사랑의 이상기류』『소돔성의 밤』『꽃배암』『종이 남자』『달리는 성군』『이 땅의 황제들』『바람』『동남아에 흐르는 비애』등 많은 작품집을 출간하여 독자들의 공감을 유로한 바 있다.
이러한 작품집을 통해서 제2회 농민문학작가상 본상과 제8회 한국예술문학상 본상, 제1회 탐미문학상 본상, 제11회 문예사조 문학대상 그리고 소설집『바람』으로 경기도지사상을 수상했으며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문학부문 공로상도 수상했다.
또한 그는 대한민국학도의용군 주최 백일장에서 교육부장관 우수상과 서북광복동지회 감사패, 함경남도지사 감사패, 함경남도도민회 감사패, 한국기독교문인협회 미국지부 감사패 그리고 환경부장관 표창등 사회활동을 통한 봉사로 각계에서 칭송하는 감사의 표시가 그에게 주어졌다.
소설은 생활의 여러 가지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에 감동적인 기능을 발휘할 수 있다. 그 방법으로는 생활을 재구성하는 것도 있고 반대로 생활을 해체하는 것도 있는데 문학의 입장에서는 건설보다는 해체가 더 아름다운 감정을 인간에게 안겨줄 수 있어서 많이 선호되고 있다. 김진희 씨의 소설도 이와 같은 두 가지 관점에서 본다면 단연 후자에 속한다.
--정을병의 ‘글을 읽고’ 「생활의 해체와 그 미학」중에서
과연 김진희의 소설 세계는 독창적 화제와 희화적 화술에서 여느 작가의 소설들과 크게 변별되면서 독자의 가슴을 크게 흔들게 한다. 김진희 소설「바람」미학은 우리 소설계에 신선한 충격으로 신선한 파장을 일으키기에 충분한 문제성을 던졌다고 할 것이다.
--윤병로의 서평「‘광풍시대’에 충격적 해학 소설들」중에서
이처럼 정을병 소설가와 윤병로 평론가는 두 분 모두 고인이 되었지만, 평소에 그 친분이나 교감이 남다르다는 사실은 익히 우리 문단에 알려진 일이다. 특히 윤병로 평론가는 위독한 병석에서 서평을 써서 직접 맥문학사로 찾아와 원고를 전하면서 ‘이게 아마도 마지막 글이 될 것’이라는 전언(傳言)으로 그는 ‘황망한 마음 금할 수가 없다’는 글을 쓰기도 했다.
진실로 이후에는 책임 있는 작품을 쓰려 한다. 이제는 거래처 빚쟁이 얼굴 보는 것쯤은 아무렇지도 않다. 유들유들해졌다. 그 방면에 관록이 붙었다. 그러나 어느 거래처도 신용 없다고는 안 한다. 과거에 너무 신용을 실추했기 때문에 지금은 절대로 그것만은 하지 않으려고 안간 힘을 쓴다. 그리고 이 출판업도 끝까지 해 보려고 하는 의지를 굳히고 있다.
그는 단편집 『바람』‘작가의 말’에서 이와 같은 시련을 극복하면서 앞으로의 방향을 노익장의 각오로 토로(吐露)하고 있다. 이러한 그의 노력은 바로 『한맥문학』의 원동력으로써 발전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그는 문학전문지『맥문학』에 열정을 쏟으면서도 약간 특이한 직함을 하나 가지고 있다. 그것은 ‘개마공원 반공유격대 기념사업회 회장’이다. 김정기 지음 『개마고원 반공유격대 투쟁 수기-개마고원에서 지리산까지』에서 김 회장이 쓴 ‘발간사’ 「개마고원 반곡유격대 김정기 대장 수기 발간에 즈음하여」에서 보면 그의 애국적인 공로가 적나라(赤裸裸)하게 기술되어 있다.
한편 개마고원 반공유격대동지회 총무 이계호 씨의 글 「내가 본 김진희 회장」에서는 그가 이 개마고원 유격대를 위해서 헌신적으로 노력해서 유격대 기념사업회 회장을 맡게 된 경위가 소상하게 기술되어 있다.
그는 이 유격대를 기념하기 위해서 ‘1987년 6월 25일 제막식을 거행한 경기도 파주시 파주읍 봉서리 통일공원 내 개마고원 반공유격대 위령탑’을 건립하는 쾌거를 제공하였다.
이처럼 그는 우리 문학뿐만 아니라, 문학적 기치와 애국적인 존엄이 동시에 상찬(賞讚)되는 글들을 찾아 간행하여 후대에 남기려는 출판을 지금도 생활처럼 열정을 투여하고 있어서 현실적인 귀감(龜鑑)이 되고 있어서 후학들이 존경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그와 오래전에 시 월평을 써서 『한맥문학』에 게재하거나 신인상 심사와 심포지엄에서 주제를 발표하면서 그의 천성적인 열성과 봉사정신을 항상 존경하고 있다. 이젠 건강도 챙기면서 업무를 처리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