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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기행 / 국토면적 가장 넓은 나라
러시아 전체는 지구촌에서 가장 국토면적이 넓은 나라입니다. 한 나라이건만 동쪽 끝에서 해가 떠오를 때 서쪽 끝에서는 석양을 맞이합니다. 동쪽 끝과 서쪽 끝의 시간 차이가 12시간이나 되니 지구를 반 바퀴 도는 것과 같습니다.
또한 한여름에도 두꺼운 외투를 입어야하는 북쪽이 있는가 하면 남쪽은 12월에도 태양이 뜨겁게 작열하는 사막이다. 광대한 국토를 지녔다는 캐나다가 998만 평방킬로미터, 중국이 960만 평방킬로미터인데 비해 러시아국토면적은 두 배에 가까운 1,707만 평방킬로미터나 됩니다. 소련이었을 때는 2천2백만 평방킬로미터나 되었었습니다.
러시아가 이렇게 넓은 국토를 차지하게 된 것은 신천지를 향한 끊임없는 개척과 식민의 역사 때문입니다. 척식은 주로 하천을 따라 이루어졌는데, 그러나 대부분의 하구는 다른 민족이 차지하고 있는 경우가 많아서, 러시아는 ‘바다로의 출구’를 확보하기 위해 필연적으로 주변의 여러 민족과 투쟁을 계속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러시아의 주 무대인 유라시아가 방어지형이 형성되지 않는 대평원인 탓에 남쪽은 사나운 유목민들의 습격에 시달려야 했고 서쪽은 유럽 대국들의 침략이 잦았습니다. 13세기 몽골의 내습으로부터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의 공격에 이르기까지 러시아는 거듭되는 침입을 받았는데, 특이한 것은 결국에는 물리쳐왔고 때로는 침략민족을 역 정복했습니다.
러시아의 힘은 16세기 이반 4세와 17세기 표트르 1세 시대에 한층 강화되었는데, 표트르 1세가 대 북방전쟁에서 승리를 거두자 원로원은 그에게 ‘황제’ 칭호를 부여했으며 이때부터 러시아는 ‘러시아제국’이 되고 1917년 혁명에 이르기까지 제국주의 정책을 일관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역사로 인해 러시아의 영토는 아래로는 중앙아시아까지, 동으로는 태평양까지 전혀 환경이 다른 땅을 확보하게 되고, 1백여 개 이상의 소수민족을 거느리게 됩니다.
일부 사람은 붕괴되기 이전의 소련을 곧 러시아로 여기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엄격히 말해 러시아는 소련을 구성하는 공화국의 하나였습니다. 다만 지리적으로나 인구, 산업능력에 있어서 소련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중심적 존재였을 뿐입니다.
미지의 땅
개방 무드를 타고 많은 사람들이 러시아를 다녀왔습니다. 그러나 러시아 여행은 모스크바와 페테스부르그, 극동의 하바로프스크, 그리고 시베리아 중심부 바이칼호 부근의 이르쿠츠크 등 도시와 울란우데 등 몇 개 상징적인 자치공화국에 불과했을 것입니다. 사회주의 국가들이 다 그렇듯 러시아의 대부분은 아직도 여행자에게 개방되지 않은 미지의 땅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나마 러시아가 지금처럼 가까워지기 이전의 시베리아는 그 지명이 지니고 있는 차갑고 어두운 이미지 때문에 과연 사람이 살 수 있는 땅일까 의심들을 많이 했었습니다. 그러나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 본 뒤에는 주저 없이 시베리아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하게 되었습니다.
시베리아의 면적은 상당히 넓은데 비교를 하자면 지구에서 볼 수 있는 달의 면적과 같다고 합니다. 따라서 시베리아에는 혹한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한겨울 기온이 영하 60℃까지 내려가 숨을 내쉬면 금방 얼음 조각이 되고 콧속까지 꽁꽁 어는 곳도 물론 있지만, 시베리아의 겨울 평균 기온은 25℃이고, 일 년의 절반이 겨울일 뿐입니다. 나머지 절반은 낙원과 마찬가지로 잎이 나고 꽃이 피고 열매가 맺히며 벌레가 날아다니고 새가 지저귀는 곳입니다.
시냇물도 흐르고 시원한 바람소리가 여행자를 사색의 숲으로 인도합니다. 다만 인구밀도는 1평방킬로미터에 1명 미만입니다. 어쩌면 문명인이 잃어버린 잊지 못해도 갖지 못한 자연이 살아있는 곳이어서 시베리아는 미지라고 하기보다 미래의 땅일 수 있습니다. 자연과 정적은 고향감정을 건드리는 태고의 아름다움 그 자체입니다.
시베리아는 제정러시아가 정복한 식민지로 오랫동안 군사적 가치만 있는 땅이었습니다. 1867년 알래스카를 720만 달러에 미국에 팔았을 정도로 시베리아에 대한 인식도 대단치 않았었습니다. 이 땅에 공업화가 시작된 것은 제2차 세계대전 때 공장을 이동시킨 때문입니다. 그런 곳이 지금은 자원의 마지막 보고로 세계의 관심이 집중되는 땅이 되었습니다.
시베리아 횡단철도는 19세기 말 11년에 걸쳐서 완성된 총 길이 9,297m의 세계에서 제일 긴 철도입니다. 태평양을 바라보는 항구도시 불라디보스톡에서 모스크바를 연결하는데 6박7일이 걸립니다. 재미있는 것은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가다보면 모스크바에 가까워질수록 사람들의 얼굴과 행동이 변화해 가는 것입니다. 아무리 작은 역에 닿아도 여행자를 기다리는 그곳 사람들이 있고, 내리고 타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개념은 낡았지만 시베리아 횡단열차는 세계에서 모여드는 모험가들로 항상 만원입니다. 블라디보스톡을 출발해서 더불어 정보를 나누고 게임을 즐기다보면 차창이 거대한 호수로 가득해 집니다. 그야말로 바다 같은 호수입니다. 그 맑고 깨끗함에 탄성을 연발하다보면 이르쿠츠크에 닿습니다. 비로소 러시아적 분위기를 느끼면서 모스크바가 가까워진 것을 느끼게 됩니다. 아직 반도 안 왔는데 말입니다.
러시아, 소련, 독립국가연합
러시아를 소개하는 김에 구 소련의 체제에 대한 확실한 상식을 가져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신문을 열심히 보는 사람도 소련의 체제에 대해서만은 곧잘 혼동하는 경우를 봤기 때문입니다. 1990년대 들어 공산주의가 붕괴되면서 많은 공화국들이 독립했고 이에 대해서는 무력을 동원한 반대는 없었는데, 유독 체첸의 독립에 대해서만은 러시아가 그렇게 많은 군대와 장비를 동원하고 피를 흘리면서까지 반대하는 이유를 궁금해 합니다.
소비에트는 러시아어로 회의(會議)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USSR(Union of Soviet Socialist Republics)은 ‘회의 체제의 사회주의공화국 동맹’이 됩니다. 즉 소련입니다. 붕괴 이전의 소비에트는 15개의 독립된 공화국 연방체였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독립된 공화국이란 일정 지역의 인구가 1백만 명 이상이면서 그 안에 단일민족이 50% 이상을 차지하며 외국과 국경을 접하고 있는 경우에 한했습니다. 각 공화국은 외교권을 행사할 수도 있으며 연방 이탈의 권리를 헌법에 명시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탈퇴는, 그 절차가 정해져 있지 않아서 행동으로 나타내면 반소활동으로 간주되어 중죄 처벌을 받기 일쑤였고, 외교 역시 실제에 있어서는 극도의 중앙집권 체제로 움직여졌었습니다. 개방 이전의 소비에트연방은 그렇게 그들 나름의 장막 안에서 군사력과 비밀 경찰력과 우주과학기술로서 체제를 유지했습니다.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 이후 서방선진국들과 군사력이 아닌 경제력의 직접 비교가 이루어지면서 균열의 조짐은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상대적 빈곤을 절감한 공화국들은, 중앙집권체제에 문제가 생기자 때를 놓칠세라 독립을 선언하고 떨어져 나갔습니다. 아무도 그들의 독립을 저지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곧 중앙집권 체제하에서 이루어진 산업의 지역 편중 현상이 난제로 등장했습니다. 한 지역은 중화학에, 한 지역은 철강에, 또다른 지역은 경공업에 치중되어 있어 독립만이 능사가 아니라 서로 긴밀하게 돕지 않으면 안 될 상황이었던 것입니다. 이에 발트3국과 그루지아공화국을 제외한 11개의 공화국 - 즉 러시아연방, 몰다비아, 백러시아,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 우즈베크, 우크라이나, 카자흐, 키르기스, 타지크, 투르크멘 등은 독립국가연합으로 새로 태어나야만 했습니다.
소련연방을 이루고 있는 여러 공화국 가운데 하나이자 가장 덩치가 큰 것이 러시아 연방입니다. 면적은 76%에 이르고 인구도 1억5천만 명으로 전체의 절반을 넘습니다. 정식 명칭은 러시아소비에트연방공화국. 우리에게 혼동을 주는 것은 이 러시아연방도 ‘소비에트’체제라는 사실입니다.
러시아연방 내에는 주로 시베리아를 나누어 차지하고 있는 16개의 자치공화국이 있습니다. 우드무르트, 카발딘, 발카르, 카르무이크, 칼레리아, 코미, 오세티아, 아바르, 다르긴, 잉구시, 추바시, 투바, 바시키르, 타타르, 체첸, 브리야트, 말리, 몰도바, 야쿠트 등입니다. 이들은 물론 소수민족으로 슬라브족이 아니며, 상당수는 아시아계 민족이고 종교도 이슬람교 불교 힌두교 등 다양합니다.
이 자치공화국들도 나름대로 헌법을 가지고 경제적으로는 독립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에겐 외교권이나 연방 이탈의 권리가 없다는 점이 소련 구성 공화국과 다릅니다. 체첸은 러시아에 속한 자치공화국이기에 독립의 의미가 다른 것입니다. 만약 체첸의 독립이 성공한다면 도미노 현상으로 다른 소수민족들도 모두 독립하여 러시아연방도 붕괴할지 모릅니다. 아니 붕괴까지 가지 않더라도 시베리아를 잃을 것은 자명해집니다. 때문에 개방과 타협과 평화공존을 외치는 러시아연방으로서도 체첸의 독립은 절대로 허용할 수 없는 것입니다. 러시아연방 체제는 이러한 자치공화국 밑에 5개의 자치주를, 또 그 다음 단계의 10개 자치구를 두고 있습니다. 러시아연방의 성립은 러시아혁명이 감행된 1917년에 이루어졌습니다.
여행 정보
러시아 비자는 여행 스케줄을 미리 정하고 호텔 등의 예약을 마쳐야 비로소 발급됩니다. 입국에서 출국까지의 일정과 코스를 정하고 다음에 그 스케줄에 따라 러시아 국영여행사인 인투어리스트와 계약이 되어있는 국내 여행사를 통해 45일 이전에 예약을 신청해야 합니다. 예약을 확실히 한 뒤 비용을 미리 지불하면, 여행사에서 이를 증명하는 서류(바우처)를 작성해 주는데 이 서류를 들고 신청서와 여권사본, 사진 4매 등을 러시아 대사관에 제출하면 별도로 된 비자를 발급해 줍니다.
러시아 비자는 3쪽으로 되어있어서 입국할 때 1쪽, 출국 시 나머지 2쪽을 제출하는 방식으로 되어있습니다. 패스포드에 스탬프를 찍는 방식이 아니므로 출국 후에는 러시아에 다녀왔다는 흔적이 남지 않습니다. 여행 중에 일정을 연장하거나 변경하는 것이 제도상으로는 가능하지만 실제로는 매우 어렵습니다. 그런 만큼 사전에 철저한 준비가 필요합니다.
러시아 가는 길
러시아는 워낙 넓은 나라이기에 입국하는 방법을 일일이 소개하자면 많은 지면이 필요합니다. 간단히 한국에서 가는 방법만을 안내하면 대한항공의 모스크바 직행편이 있어 6시간 반이면 모스크바에 도착시켜 줍니다. 하바로프스크까지는 아시아나항공이 운행합니다. 소련 항공인 아에로플로트는 서울을 출발하여 상해를 거쳐 모스크바로 갑니다.
기차는 유럽의 모든 도시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런던에서, 파리에서, 로마나 아테네에도 모스크바행 직행열차가 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유럽에서 공부하는 중국유학생들의 경우 모스크바를 경유해서 고국을 오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중국을 방문하는 유럽관광객들도 모스크바로 가서 북경 행 열차를 갈아타는데 이유는 경제적이면서 편하다는 것입니다.
종교
러시아의 중심 종교는 ‘러시아정교’로 불리는 동방정교(東方正敎:그리스정교)입니다. 초기에는 로마교황을 수장으로 했으나 지나친 국가주의 민족주의로 교리의 차이가 생기면서 로마교회(가톨릭)에서 분리되었습니다. 가톨릭과 러시아정교의 차이는 교회 관에 있습니다. 가톨릭에서는 교회를 교황을 수장으로 하는 가견적 통일체라고 하는데 반해 러시아정교에서는 사랑과 은총에 의한 불가견적 통일체로 정의합니다. 가톨릭신학이 체계적이고 신에 대해서 지적으로 배우는 것과는 대조로 정교에서는 신앙체험을 중시하며 죄보다는 구원, 성탄보다 부활을 더 중요하게 여깁니다.
혁명 후 한동안은 종교 활동이 금지되었었습니다. 포교나 종교교육, 자선사업 등은 허용되지 않고 개인의 기도에 한정되어 인정되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러시아는 다민족 국가답게 세계의 모든 종교와 샤머니즘이 부활하고 있습니다. 러시아정교를 비롯하여 라마교, 유대교, 이슬람교, 가톨릭, 불교 등 모든 종교가 공존합니다. 바이칼호 주변에서는 곰을 토템으로 하는 신앙도 만날 수 있고 서낭당도 곳곳에 널려 있습니다.
민족 풍습
러시아인들은 오랜 동안 가혹한 풍토와 엄격한 정치적 통제 속에서 살아왔기 때문에 웬만한 일에는 동요되지 않습니다. 자신에게 이익이 되지 않는 일은 무엇이나 거부합니다. 사회주의가 붕괴했다고는 하나 아직도 러시아에서는 대부분이 국영이며 근로자는 공무원이기 때문에 빨리 움직이지 않는 것을 조급해하면 안 됩니다. 레스토랑에서 테이블이 비어 있는데도 앉을 수 없다거나, 좌석에 앉아 있어도 언제까지나 주문을 받으러오지 않는다던가 하는 일이 드문 일이 아닙니다. 이것도 이질적인 문화의 체험이라고 할 수 밖에 없습니다. 러시아여행은 인내심을 최대한 발휘해서 끈질기게 버티는 것으로 시작하는 것이 좋습니다.
사람의 성품은 본래 온순한 것이기에 음식을 나누거나 말을 하면 쉽게 친해집니다. 하지만 그것을 깊이 있는 것으로 여겨서는 안 됩니다. 70년 이상을 사회주의 하에서 살아온 사람들이기에 마음을 열기까지는 많은 사건과 시간과 우여곡절(?)을 경험해야만 한다는 것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화폐
화폐는 루불입니다. 러시아에서는 달러가 통용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환율 변동이 심해 관광기념품점의 물품 값은 대개 달러로 표시해 놓고 있습니다. 1990년의 환율은 1달러에 1-2루불이었습니다만 1995년 6월 반취가 여행할 때는 1달러에 4480루불이나 되었었습니다. 2015년 말에는 1달러에 70루불 안팎이었습니다.
존경하는 인물
워낙 넓은 땅에 인구도 많은 만큼 세계적 명성의 대가들이 많습니다. 대문호 톨스토이나 푸쉬킨, ‘빈민굴’의 고리키, 안톤 체호프도 우리에게 익숙한 이름입니다. 또 음악에서는 루빈스타인 형제와 차이코프스키 스트라빈스키 등 일일이 거명하자면 한이 없습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가장 위대한 인물하면 단연 레닌이었습니다. 레닌은 신성하여 범할 수 없다고까지 했습니다. 볼셰비키 혁명을 주도하고 혁명 후의 대혼란을 새로운 경제정책으로 극복한 영웅이기 때문입니다. 트로츠키, 스탈린, 흐루시초프 등은 역사의 재평가를 받았지만 레닌만은 꾸준히 역사 속에서 찬연히 빛났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레닌도 기억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레닌의 빛이 사라진 러시아는 새로운 빛을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숙박 음식
비자 제도를 소개할 때 거론했듯, 러시아 여행은 사전에 완벽하게 짜여 진 일정에 따라 움직여야 하는 만큼 호텔 예약은 필수입니다. 러시아의 국영여행사는 인투리스트로 전국에 관광호텔 체인을 가지고 있습니다. 대개는 시설이 낡아 목욕실이나 화장실 이용이 불편한 경우가 많습니다. 물도 사먹어야 한다. 하지만 시설이 노후하다고 해서 여행 중에 호텔을 바꿀 수는 없습니다.
음식은 자유로 선택할 수 있습니다. 지방을 돌아다니면 다양한 민족요리를 맛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느 것을 집어 ‘러시아 전통요리’라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혁명전 러시아의 귀족들은 서구 귀족과 같은 식사를 즐겼고 평민들만 토속음식을 먹었기 때문입니다. 러시아 전통음식을 말하라면 평민들이 먹던 토속음식일 텐데 유감스럽게도 레스토랑의 메뉴에는 없습니다. 고기를 넣고 튀긴 빵(피로조크)이나 시베리아식 물만두(펠메니) 등은 토속음식을 전문으로 하는 대중식당에서만 먹을 수 있습니다.
러시아에서는 가장 싼 것이 쇠고기이며 다음이 돼지고기입니다. 고기요리의 양념은 소스가 없고, 소금과 후추뿐이어서 고기 자체의 맛을 즐길 수 있습니다. 새고기 요리도 있는데 비싼 만큼 맛도 일품입니다.
여행계획
러시아 여행은 사전에 예약이 완료되고 또 그대로 진행되는 특징이 있습니다. 매우 광대한 나라이지만 관광객이 드나들 수 있는 도시는 극히 제한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 곳을 가려고 하기보다 한 도시를 여유 있게 보는 편이 낫습니다.
일주일 내지 10일 정도의 일정이라면 모스크바와 페테스부르그, 키예프를 다소 여유 있게 둘러볼 수 있습니다. 같은 일정으로 시베리아 바아칼 호 쪽을 원한다면 하바로프스크에서 이르쿠츠크, 울란우데 등을 보게 되는 데, 이르쿠츠크에서는 러시아의 분위기를, 울란우데에서는 시베리아 원주민의 향취를 진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
보름 정도라면 위의 두 곳을 다 볼 수 있고 20일 정도면 코카서스의 대표적인 도시와 사마르칸트와 타슈켄트까지를 포함시킬 수 있습니다. 러시아 전체를 돌아보겠다면 여기에 다시 북극권을 포함하면 되고 한 달은 잡아야 합니다. 왕년에 공산주의 종주국답게 어디를 가나 음산한 분위기도 대표적으로 강합니다. 하지만 치안은 염려하지 않아도 될 정도입니다.
모스크바
톨스토이는 ‘러시아 사람이라면 누구나 모스크바를 어머니처럼 느낀다’ 고 했습니다. 모스크바는 이방인의 마음까지도 강하게 끌어당깁니다. 오랜 사회주의 덕분에 도시 전체가 침울하게 느껴지지만, 찬찬히 보면 깊은 역사에서 우러나오는 향취가 있는 것입니다. 천지가 온통 하얀 눈에 덮이는 겨울은 겨울대로의 정취가 있고, 짧은 ‘황금의 가을’은 가을대로 아름답지만 우리가 여행하기에는 아무래도 여름이 좋습니다.
모스크바에는 볼거리가 많습니다. 크렘린을 그냥 지나칠 수 없고, 붉은 광장, 10월 혁명광장, 푸쉬킨 광장도 봐야합니다. 광장을 둘러싸고 있는 것은 하나 같이 의미가 있는 건물들입니다. 바실리 성당이나 볼쇼이극장도 들어가 봐야하고 레닌 언덕에 올라가 모스크바를 내려다보는 시간도 추억에 남을 것입니다.
9개의 기차역과 5개의 공항이 있는 모스크바는 크렘린을 중심으로 과녁판처럼 잘 계획된 도시입니다. 마르크스대로, 크렘린 강변도로, 붉은 광장 등이 크렘린을 둘러싸고 다시 그 둘레를 세 개의 환상도로인 불리바르 환상도로, 사드바아 환상도로, 모스크바 환상자동차도로가 둘러싸고 있습니다. 크고 둥근 지붕 위에 언제나 붉은 깃발이 꽂혀있는 크렘린에서는 지금도 무슨 음모가 진행 중인 것만 같습니다. 크렘린은 ‘성벽’을 뜻하는 러시아어입니다. 긴 역사를 통해 서서히 확대되어 황제(차르)의 성으로 번영해 왔습니다. 지금의 크렘린 성벽과 교회는 15세기에 건설되었습니다. 역사 깊은 소보르나야 광장과 여러 개의 궁전과 사원, 황제의 처소가 있고 궁전 병기고, 크렘린의 망루, 세계 최대의 종과 대포도 있습니다. 크렘린 북동쪽의 붉은 광장은 국립역사박물관 굼백화점 바실리사원 등에 둘러싸여 있습니다. 광장 왼쪽에는 성스러운 레닌의 묘가 있습니다.
푸쉬킨광장은 저널리즘의 중심지로 이즈베스티야신문과 노보스티통신사, 노동조합기관지 토울드 러시아를 대표하는 보도기관들이 모여 있습니다. 러시아 최고의 학부 모스크바대학도 주요한 관광거리입니다. 모스크바대학이 유난스러운 것은 사회주의 시절에도 일체의 연줄을 거부하고 오직 실력에 의해서만 학생을 선발했기 때문입니다. 푸쉬킨 미술관과 박물관, 마르크스 엥겔스 박물관, 톨스토이의 집 박물관도 빠뜨리지 마시기 바랍니다.
상페테스부르그
페테스부르그는 러시아 제2의 도시로 흔히 모스크바와 비교되지만 모스크바와는 다른 독특한 매력과 분위기로 여행자의 마을을 사로잡습니다. 도시의 역사는 3백 년에 불과하지만 중심부에는 18, 19세기 바로크 양식의 아름다운 건축물이 격동의 시대를 무사히 넘기고 남아있습니다. 표트르 대제에 의해 로마노프 왕조가 이 지역으로 옮겨지면서 현대 러시아의 발전을 이끄는 수도가 되었으며 러시아의 역사를 바꾼 혁명의 발상지로서도 유명합니다.
푸쉬킨이 ‘유럽을 향해 열린 창’이라고 했듯이, 실제로 이 도시는 유럽의 건축양식은 물론 문화와 사상까지 받아들인 도시였고 이것이 나중에 제정러시아를 붕괴시킨 동란의 진원지가 되고 결국에는 혁명을 일으킨 땅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혁명 후에는 레닌그라드로 불렸습니다.
캄차카반도의 북쪽 끝과 같은 북위 60도에 위치하고 있으며, 핀란드만으로 흘러나가는 네바 강의 델타(三角洲)지대에 형성된 자연의 섬과, 운하로 인해 만들어진 인공의 섬 위에 건설된 도시여서, 네바 강의 본류 지류 운하를 합하면 모두 65개의 강이 시내를 흐르며 섬의 수도 100개가 넘습니다. 시내에만 365개(교외를 포함하면 623개)의 다리가 있는 물 위의 도시여서 북쪽의 베니스라 하기도 하고, 공원과 광장 궁터가 많기 때문에 ‘북쪽의 파미르’라고도 하며 백야의 여름에는 북국의 오아시스 역할도 하는 도시입니다.
이르쿠츠크
모스크바나 페테스부르크에서 키예프나 무르만스크로 가기는 쉽지만 바이칼호로 발길을 돌리는 것은 마음먹지 않으면 안 됩니다. 하지만 바이칼호와 이르쿠츠크는 러시아를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한 곳입니다.
러시아 사람들에게는 바이칼호가 시베리아의 끝입니다. 10월 혁명으로 쫒겨 난 귀족들이 이르쿠츠크에 이르러서 바이칼 호를 넘을 수는 없다며 최후항전을 벌인 이유도, 바이칼 호를 넘어 동으로 가면 러시아적인(혹은 유럽적인) 분위기를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러시아에서 바이칼호 넘어는 극동이라고 부른다. 군사도시 하바로프스크와 불라디보스토크를 제외하면 극동은 전연 아시아적인 분위기입니다. 시베리아 원주민도 아시아계입니다. 이런 면에서 이르쿠츠크는 러시아인의 향취를 진하게 느낄 수 있는 제일 동쪽에 있는 도시가 됩니다. 쫒겨 난 귀족들의 한과 눈물이 섞여 발전한 도시여서 그 매력적인 분위기가 모스크바나 페테스부르그 못지 않습니다. 게다가 이르쿠츠크는 바이칼 호 옆에 있어 관광객이 많이 찾는 도시가 되었습니다.
이르쿠츠크에는 물론 시베리아인의 향취도 있습니다. 잘 정리된 박물관을 가보면 토착민들의 옛집과 의복, 무기. 샤머니즘과 시베리아 선사시대의 고고학적 유물 등을 볼 수 있습니다. 바이칼지역에서 발견된 신석기대 벽화를 재생해 놓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토착민들의 삶의 모습들은 이르쿠츠크보다는 바이칼 호 건너 울란우데(브리야트자치공화국의 수도)에서 보는 것이 더 진합니다.
바이칼호
바이칼호는 유라시아대륙 최대의 민물호수로 시베리아의 푸른 눈이라 불립니다. 여행자들은 러시아에서 가장 자연이 아름다운 곳으로 바이칼호를 꼽는데 주저하지 않습니다. 그냥 떠 마셔도 너무나 좋은 청정한 호수. 그림 같은 주변풍경. 자연의 위대한 숨결을 정말 피부로 느낄 수 있는 곳입니다.
바이칼호는 북북동쪽에서 남남서쪽으로 길게 뻗은 초승달 모양을 하고 있는데 그 남북의 길이는 636km로 페테스부르그에서 모스크바까지의 거리와 같습니다. 폭은 40-80km로 그 면적은 세계 7위에 해당하는 호수이지만 제일 깊은 곳이 1,749m나 될 정도로 세계에서 가장 깊고, 투명도는 40m 물속이 보이는 정도입니다.
사계절 언제라도 다채로운 자연이 여행자를 반기는데 1월에서 4월까지는 어름이 10m 내외의 두께로 얼어 천연의 스케이트장을 이루었다가 봄이 되면 마치 수정의 파편처럼 투명한 얼음조각으로 녹아내려 보는 이들의 탄성을 자아냅니다. 5월부터 10월까지는 쾌청한 날씨가 계속되며 겨울에는 더할 수 없는 고요함이 매력으로 여행자를 끌어들입니다.
하바로프스크와 아무르강
우수리강과 아무르강의 합류지점에 위치한 하바로프스크는 우리에게 결코 낯선 도시가 아닙니다. 하늘에서 보면 검게 보이는 줄기가 용의 몸처럼 뒤틀려 흐르는 것을 보게 되는데, 그래서 동양에서는 흑룡강이라고 했습니다.
1649년 엘로페이 하바로프가 찾은 이후 1858년 하바로프스크로 명명되면서 극동의 중심지가 되었습니다. 인구 80만의 군사도시이지만 현재는 시베리아의 관문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시베리아 횡단열차의 끝은 블라디보스토크이지만 외국인에게 개방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여행자들은 하바로프스크를 시발역으로 삼아야 합니다. 도시는 크지 않아서 하루면 충분히 관광할 수 있습니다. 캄차카에도 화산이나 온천 등 전인미답의 비경이 많습니다. 하지만 캄차카 역시 아직 여행자에게 개방되지 않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