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521함양안의 화림동계곡(거연정/동호정/농월정계곡-함양선비탐방길) 등 삼가승경 안내
[개관]-좌안동(左安東)에 비견(比肩)하여 우함양(右咸陽)으로 일컫는 이곳은 지금의 거창군 일부, 옛 안의(安義) 고을을 포괄하며 특히 정자(亭子) 문화의 진수(眞髓)를 보여주는 곳으로 100여 처의 정자로 유명하다. 이곳의 이름난 승경(勝景)인 심진동(尋眞洞, 용추계곡) 심원정(尋源亭), 원학동(猿鶴洞, 수승대계곡) 수승대(搜勝臺), 화림동(花林洞, 농월정/거연정/동호정계곡) 농월정(弄月亭) 등을 삼가승경(三佳勝景)으로 불렀다고 하는데, 일두(一蠹) 정여창(鄭汝昌), 점필재(佔畢齋) 김종직(金宗直) 선생 등과의 인연으로 현재는 이 지역에 “선비문화탐방길”이 조성되어 있다.
1. 함양 안의 심진동계곡(용추계곡)
※(1)용추사(龍湫寺)일주문(一柱門)[장수사(長水寺)일주문]/용추휴게소에서 6.9km, 12분ㅡ咸陽郡 安義面 上源里, 시도유형문화재 54호. 德裕山 용추사는 원래 新羅 炤智王 9년(487) 覺然大師가 지은 장수사에 속해 있던 庵子이다. 장수사는 한국전쟁 때 불타 고 절문만 남아 있다가 1975년에 복원되었다. 일주문은 사찰로 들 때 제일 먼저 통과하는 문으로, 俗世와 佛界의 경계역할을 하는 의식적인 상징물이다. 懸板은 남쪽 정면에만 있는데, ‘德裕山長水寺曹溪門’이라 하였다. 용추사 일주문은 類例를 찾기 어렵게 큰 규모이며 한쪽 기둥이 다듬어지지 아니한 자연 그대로인 것이 특징이다.
※용추폭포(龍湫瀑布)/용추사 일주문에서 100여m-함양군 안의면 상원리 산16-4. 폭포의 물줄기는 높이가 15m로 水深은 수십 미터이라고 한다. 그만큼 폭포수의 가장 깊은 곳은 예측이 불가 할 정도로 깊다고 하는데 덕유산 계곡에서 규모가 가장 크고 볼품 있는 폭포이다.
※용추사(龍湫寺)/폭포에서 100여m,1분-용추사는 지금은 소실되고 없는 장수사의 末寺였는데 지금 남아 있는 장수사의 유일한 암자라고 한다. 海印寺에 속해 있는 사찰로 경상남도 유형문화재로 天龍을 그린 幁畵와 高僧의 影幀 등 많은 문화재 볼거리와 함께 등산객들에게 시원한 감로수를 제공한다.
※(2)연암(燕巖) 물레방아 공원/용추사에서 3.3km, 5분-용추계곡로의 연암물레방아공원에는 3층 건물 높이의 대형 물레방아와 연암 박지원의 동상이 있다. 朴趾源은 使臣으로 갔던 淸나라에서 물레방아를 처음 본 후 <熱河日記>에 소개하고, 1792년 함양군 안의현감으로 부임하여 처음으로 만들어 사용하도록 한 사람이었다 한다. 조선조 實學의 대가인 박지원(1737∼1805, 右議政 朴珪壽의 祖父)은 서울에서 태어났으며 號는 燕巖이고 字는 美仲이며 본관은 潘南이다. 함양군에서는 2001년 上林의 역사인물공원에 연암의 흉상을 건립하여 그 뜻을 기리고 있다.
※(3)심원정(尋源亭)/연암공원에서 533m, 1분-左安東에 比肩하여 右咸陽으로 일컫는 이곳은 지금의 居昌郡 일부, 옛 安義 고을을 포괄하며 특히 亭子文化의 眞髓를 보여주는 곳으로 100여 處의 정자로 유명하다. 이곳의 이름난 승경(勝景)인 尋眞洞 尋源亭, 猿鶴洞 搜勝臺, 花林洞 弄月亭 등을 삼가승경(三佳勝景)으로 불렀다고 하는데, 一蠹 鄭汝昌, 佔畢齋 金宗直 선생 등과의 인연으로 현재는 이 지역에 “선비문화탐방길”이 조성되어 있다. 경남 함양군 안의면 下源里 소재 심원정은 용추계곡 입구 바로 우측을 흐르는 계곡의 潭沼인 淸心潭의 龜巖에 1558년 초계정씨 정지영(鄭芝榮)이 건립한 것이라 한다.
중식:안의원조갈비집/광풍루 인근-심원정에서 5.6km, 10분, 함양군 안의면 광풍로 127-2[안의면 당본리 12-1]. ☏055-962-0666
※(4) 안의(安義) 광풍루(光風樓)/심원정에서 5.4km, 10분-함양군 안의면 금천리 49-19. 시도유형문화재 92호. 안의면 초입의 남강변에 있는 2층 누각이다. 조선 태종 12년(1412)에 처음 짓고 선화루라 이름 지었던 것을 세종 7년(1425)에 지금의 자리에 옮겨지었다고 한다. 그 후 성종 25년(1494)에 일두 정여창 선생이 다시 짓고 광풍루라고 이름을 바꾸었다.
2. 함양 안의 화림동(농월정계곡)
※(1) 거연정(居然亭)-광풍루에서 9km, 14분ㅡ함양군 서하면 봉전리, 서하면 봉전마을 앞을 흐르는 남강천의 암반 위에 건립되어 있는 건물로, 2005년 10월 13일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433호로 지정. 이곳은 옛 안의(安義) 3동의 하나인 화림동계곡으로서, 농월정과 용유담, 그리고 거연정과 어우러져 절경을 이루는 곳이다. 고려 말의 충신이며 정선전씨(旌善全氏)의 파시조인 전오륜(全五倫)의 7대손 동지중추부사 전시서(全時敍)가 1640년(인조 18) 경 서산서원을 짓고 현 위치에 억새로 만든 누정을 처음으로 지었으나, 1853년(철종 4) 화재로 서산서원이 불타자 이듬해 복구하였다. 1868년(고종 5) 서원철폐령에 따라 훼철되자 1872년 전시서의 7대손 전재학(全在學) 등이 훼철된 서산서원의 재목으로 재건립하였으며, 1901년에 중수하였다.
※(2) 군자정(君子亭)-1802년 정선전씨(旌善全氏) 입향조(入鄕祖)인 화림재(花林齋) 전시서(全時敍) 공의 5대손인 전세걸(全世杰), 전세택(全世澤)이 조선 초기의 성리학자 일두(一蠹) 정여창(鄭汝昌 1450∼1504) 선생을 기념하기 위해 세웠는데 이후 몇 차례의 보수가 있었으나 내용을 알 수 없다. 군자정이 있는 새들(봉전)은 정여창 선생의 처가 마을로, 선생이 처가에 갔을 때에는 현재 군자정이 세워진 유영대에 자주 들렀다 한다.
※(3) 영귀정(詠歸亭)-조선 중기의 학자인 이지번(李之蕃, 1469-1522)을 위한 정자, 호는 송계(松溪), 자는 성중(盛仲)으로 본관은 성주이고 이지활의 손자이며 현감을 지낸 이문현의 아들로서 병곡면에서 태어났다. 학문을 배움에 스승의 가르침을 받지 않고 스스로 깨우쳐 논리를 터득하여 경지에 이른 사람으로 당대의 명사들인 표연말, 유호인, 최한후등과 교류하였다 1492년 천거되어 시독관과 사간을 지낸바 있으며 무장(지금의 고창지역)현감으로 부임하여 선정을 베풀었는데 당시 관리들의 부정부패와 주민간의 불신 및 곳곳에 도적이 많아 민심이 흉흉하였는바 부임한지 한달만에 모든 폐단을 깨끗이 청산하는 명현감으로 이름이 높았다. 조정에서는 그 명성을 인정하여 수안(지금의 황해도 지방)군수로 승진시켜 지방관으로서의 책무를 다하게 하였다. 1498년 무오사화가 발생되자 어지러운 조정에서 더 이상 관직생활을 하지 않고 고향으로 돌아와 영귀정에서 책을 벗삼아 세월을 보내다가 1522년 53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그 후 1830년(순조30) 송호서원에 제향되었다.
※(4) 동호정(東湖亭)-거연정에서 1.7km, 1분, 함양군 서하면 황산리, 임진왜란 때 선조의 의주몽진을 도와 공을 세운 동호 장만리(章萬里)를 기리기 위하여 그의 9대손으로 가선대부오위장을 지낸 장재헌 등이 중심이 되어 1895년 건립한 정자이며 1936년에 중수가 있었다. 동호정은 남강천 담소중의 하나인 옥녀담에 있으며 화림동 계곡의 정자 중 가장 크고 화려하다. 강 가운데에는 노래 부르는 장소(영가대), 악기를 연주하는 곳(금적암), 술을 마시며 즐기던 곳(차일암)을 포함하며, 차일암이라고 불리는 수백평의 널찍한 암반이 있어 이 곳이 풍류를 즐기던 곳임을 알 수 있다.
※(5) 황암사(黃巖祠)-동호정에서 2.9km, 2분, 함양군 서하면 황산리, 황암사는 절이 아니고 호국선열들의 사당이다. 함양군 서하면 황산리에 있다. 조선시대 정유재란 때 황석산성에서 순국한 곽준(郭䞭, 1551~1597), 조종도(趙宗道, 1537~1597) 등 3,500명 선열들의 위패를 봉안하고 있다. 1714년(숙종 40) 황석산 아래에 사당을 짓고‘황암사’라는 사액을 받아 봄가을로 위령제를 지내왔으나 일제강점기에 철거되었다. 1985년 김재연 등의 지역 유림들이 뜻을 모아 황석산성순국선열추모위원회를 발족 하여 해마다 추모행사를 지내왔다. 1987년 황석산성이 국가지정문화재인 사적제322호로 지정되자,1998년 사당복원계획을 세워 2001년 호국의총(護國義塚)을 정화하고 사당을 중건하였다. 해마다 음력 8월 18일에 순국선열의 넋을 위로하는 제사를 지낸다. 향사 인물 곽준은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자 양정(養靜), 호 존재(存齋), 본관은 현풍이다. 임진왜란 때는 김면 등과 함께 출전하여 공을 세웠으며 1594년에는 안음현감으로 부임, 외침에 대비하여 황석산성을 축조하였다. 이후 정유재란 때는 황석산성에서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가 이끄는 왜군에 맞서 싸우다 두 아들과 함께 전사하였다. 조종도는 자 백유(伯由), 호 대소헌(大笑軒), 본관은 함안(咸安)이다. 1558년(명종13) 생원시에 합격한 뒤 안기도 찰방(察訪), 금구(金溝) 현령, 장악원 첨정 등을 거쳐 함양군수로 재직하였다. 정유재란 때 안음현감 곽준과 함께 황석산성에서 왜군과 싸우다 성이 함락되자 순절하였다. 뒤에 이조판서에 추증되었으며 시호는 충의(忠毅)이다.(* 자료출처 : 네이버백과)
※(6) 농월정(弄月亭) 국민관광지-황암사에서 1.2km, 2분, 함양군 안의면 월림리, 함양의 농월정(弄月亭)은 정자가 많기로 유명한 함양을 대표하는 정자이다. 함양에는 남덕유산에서 흘러내려오는 화림동계곡을 따라 정자들이 줄지어 있는데, 이 화림동계곡의 정자들 중 가장 경관이 좋은 곳에 마지막으로 들어앉은 정자가 농월정이다. 화림동계곡이 이 농월정 앞에서 거대한 너럭바위를 만나 바위 위를 급하게 타고 흐르는데, 이 계류의 흐름이 아주 멋지다. 이 농월정 앞의 너럭바위가 월연암(月淵岩)이다. 농월정(弄月亭)이 달을 음미한다는 의미이고 월연암(月淵岩)이 달의 연못이란 의미이니, 옛날부터 농월정에서 하늘의 달과 월연암에 흐르는 달빛을 즐겼던 것 같다. 농월정은 정자라기보다는 누각에 가까운 규모이다. 화림동계곡 옆에 자리한 농월정은 정자 자체도 반듯하지만, 계곡 건너편에서 화림동계곡의 월연암과 함께 바라보면 그 멋진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러나 현재 농월정은 화재로 소실되고 아직 복원이 되지 않은 상태이나 그 주변이 국민관광지로 지정되었다.
3. 함양 안의 지역 기타
(1)함양군 지곡면 개평리 개평한옥마을/광풍루, 원조갈비집에서 9km, 15분/농월정에서 13km, 15분-앞으로 남계천이 흐르는 도숭산 자락, 60여 채의 한옥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개평리 한옥마을이다. 한양에서 봐 낙동강 왼쪽에 안동이 있다면 오른쪽엔 함양이 있다. 이른바 ‘좌안동우함양’이다. 함양은 예로부터 안동에 버금가는 유림의 고장으로 꼽힌 곳. 그 유림의 고장의 뿌리가 개평마을이다. 개평마을은 하동정(鄭)씨와 풍천노(盧)씨 집성촌이다. 한옥들 대부분에 이 두 성씨의 후손들이 살고 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이 마을을 상징하는 인물이 일두 정여창(1450∼1504) 선생인데, 조선 사림의 조종으로 꼽히는 점필재 김종직 선생의 제자이고 조선 성리학 5현 중의 한 분으로 추앙받는 인물이다.
※일두(一蠹) 정여창(鄭汝昌) 선생 고택-조선조 5현의 한 분인 일두 정여창 선생의 고택으로 이 집은 선생이 타계한지 1세 후에 후손들에 의하여 중건되었고 3,000여 평의 대지가 잘 구획된 12동(당초 17동)의 건물이 배치된 남도 지방의 대표적 양반 고택으로 솟을 대문에 충효 정려 편액 5점이 걸려 있어 눈길을 끈다. 특히 본 가옥은 TV드라마 ‘토지’의 촬영 장소로 이용되면서부터 널리 알려져 많은 문화유적 탐방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2)함양(咸陽) 남계서원(灆溪書院)-개평마을에서 4km, 10분-함양군 수동면 남계서원길 8-11(원평리). 사적제499호. 조선시대의 서원. 명종 7년(1552)에 소수서원 다음으로 세워진 서원으로 정여창(1450∼1504)선생을 추모하기 위한 곳이었다. 명종 21년(1566) ‘남계’라는 사액을 하사받아 사액서원이 되었으나, 선조 30년(1597) 정유재란 때 소실되어 1612년에 중건되었다. 고종 5년(1868) 서원철폐령 때도 일부만 훼철되고 유지되었다. 강당인 명륜당 좌우로 생활공간인 보인재와 양정재가 마주보고 있고, 연못과 애련헌, 영매헌이 그 앞에 있다. <어정오경백편>, <고려사> 등의 장서를 소장하고 있었다.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 때에도 존속한 47개 서원 중의 하나이고,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중 하나로 지정되었다.
※함양(咸陽) 청계서원(靑溪書院)-함양군 수동면 원평리 669-1. 문화재자료 56호. 조선 연산군 때 학자인 金馹孫(1464∼1498) 선생을 기리기 위한 서원이다.
(3) 함양 상림숲-남계서원에서 8km, 16분, 경남 함양군 함양읍 고산리, 신라 말영 최고운이 처음으로 조성하였다고 전하는 자연 숲 공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