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 문
달성공원
달성공원은 우리나라 성곽 발달 사상 가장이른 시기에 나타난 형식의 하나로 평가되고 있다. 삼국사기에는 신라 첨해왕, 15년(261)에 달벌성을 쌓고 나마극종을 성주로 삼았다는 기록이 있다. 신라에 병합된 뒤에는 군사 요지로 중요시되었으며 그 후 고려 공양왕 2년(1390) 토성에 석축을 더했다. 조선조 선조 29년(1596)에 석축을 더하고 경상감영을 이곳에 둔 일이 있다. 서벽은 주로 흙으로 축조되었고 주의 길이는 1,300m 높이는 4m 안팎이다. 면적은 126,576㎡(38,289평) 원래는 토성으로 삼한시대 달 불성이었다. 1596년 상주에서 경상감영이 이전해 왔으며 머지않아 현재 경상감영이 있는 곳으로 옮겨진다. 1905년 공원으로 지정되었다. 1971년 달성공원 동물원이 개장했다. 비산동, 내당동, 원대동, 대신동, 달성동, 고성동 주민들은 줄여서 "달공"으로 부른다. 대구의 옛 지명인 달구벌, 달구하, 달불성 등이 다 여기서 나왔을 정도로 알고 보면 대구광역시의 뿌리이자 본류라 할 수 있는 곳이다.
동물원
호랑이를 비롯 25종 90마리의 포유류, 비단잉어 등 2종 940마리의 어류, 타조 등 59종 435마리의 조류가 있는 동물원이기도 하다. 달성공원 동물원은 대구 유일의 동물원이다.
최재우동상
동학의 창시자
성곽산책로
관풍루
즐거운 점심식사
허위 순국비
허위는 이상용보다 앞선 시대의 독립운동가이다. 그는 1885 을미의병, 1907년 정미의병 등에 창의한 의병대장
1908년 10월 21일 순국했다.
달성 서씨 유허비
달성 서씨 유허비가 달성공원에 세워진 것은 달성 일때가 본래 서씨문중 땅이였기 때문이다.
이상용 구국비
이상용은 임시정부 국무령을 역임한 독립운동가로 1932년에 순국했다.
石齋(석재) 徐丙五(서병오) 藝術碑(예술비) 전경
서침나무
세종때 조정에서 서씨세거지인 이곳이 필요하니 정부에 헌납하면 그 대신 다른 곳의 넓은 땅과 큰 벼설을 주겠다는 제안이 들어오자 서침선생은 "그런것은 원하지 않는다" 대신, 이지역 사람들의 '환곡을 좀 감해달라'고 하여 성사시켰다. 이 나무에 '시침나무' 라는 이름이 붙은 것은 훌륭한 선비를 기리고자 하는 대구시민 들의 마음의 발로 이다.
한국 최초 어린이 헌장비
죽농 서동균 예술비
(사군자의 대가)
나다운 삶을 위한 치유 글쓰기 반
기념
첫댓글 좋습니다. 달성공원의 여러 장소를 더 써 보세요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