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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학명
장미과 |
Rhaphiolepis indica var. umbellata |
‘다정스럽다’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꽁꽁 얼어버린 겨울 땅도 금세 녹일 것만 같아 상상만 해도 가슴이 훈훈해진다. 나무에도 다정스런 나무가 있을까? 제주도에서부터 남쪽 섬에 이르는 남부 난대림에서 자라는 다정큼나무가 있다. ‘다정스러울 만큼의 나무’가 변하여 생긴 이름일 터이다. 말의 뜻과 나무의 모습을 연관지어 생각해보면, 다정큼나무는 잎이 그렇게 크지도 작지도 않으며, 긴 타원형의 아늑한 모습이다. 잎 가장자리에 톱니가 가끔 있기는 해도 대부분은 톱니가 없이 매끈하니 더욱 편하게 느껴진다. 원래 어긋나기로 잎이 달리지만 사이사이가 짧아 가지 끝에 모여나기 한 것처럼 붙어 있는데, 이 모양이 마치 잎들이 다정스럽게 둘러앉아 소곤소곤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처럼 비춰진다.
다정큼나무의 자람 터는 남해안에서부터 제주도에 걸친 따뜻한 지방이다. 비옥한 땅이 아니라 소금바람이 불어대는 바닷가, 양지바른 바위 땅에서 때로는 바닷물을 통째로 뒤집어쓰고도 꿋꿋이 버틴다. 늘푸른 두꺼운 잎은 구조가 조금 특별하다. 잎 표면에는 왁스분이 풍부하고 큐틴(cutin) 층이 잘 발달되어 있는데, 매끄럽고 햇빛에 반사되어 반짝이며 겨울의 추위도 보호해준다. 아주 좋은 조건이라면 약 5미터 정도 높이까지도 자랄 수 있으나 대부분은 사람 키보다 작은 몸매다. 그렇지만 살아가는 데는 오히려 꺽다리 큰 나무들보다 적응력이 더 높다.
다정큼나무의 족보는 꽃과 과일 나무들의 원조인 장미과에 속한다. 꽃은 다섯 장의 꽃잎을 가진 매화 모양의 하얀 꽃이 봄이 한창 무르익어 가는 5월쯤 가지 끝에서 위로 향하여 여럿이 한꺼번에 핀다. 가을에는 갸름한 모양에 굵은 콩알 크기만 한 검은 보랏빛 열매가 익는다. 과육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가운데에 단단한 한 개의 흑갈색 씨가 들어 있는 전형적인 이과(梨果)다. 그러나 열매의 크기에 비하여 씨앗이 너무 굵으므로 과육이 거의 없다. 씨를 멀리 옮겨줄 새들에게도 먹을 것이 적으니 인기는 별로일 것 같다.
다정큼나무는 이름처럼 다정스럽게 생긴 편안한 모습 때문에 정원수로 사랑받고 있다. 또 햇빛을 좋아하고 건조와 바닷바람에 잘 견디므로 남부지방의 해안도로나 정원, 공원 등에 심기 좋은 나무다. 화려한 모습이 아니라 사시사철 다소곳한 모습으로 우리 곁에 있는 편안한 나무다.
중국 이름은 그 뜻을 짐작하기조차 어려운 석반목(石斑木)이다. 일본 이름인 차륜매(車輪梅)는 꽃이 매화를 닮았고 가지 뻗음이 수레바퀴살처럼 생겼다는 데서 유래한다. 주로 정원수로 심으나, 명주를 물들이는 귀중한 염료로 이용되는 특별한 쓰임이 알려져 있다. 줄기나 뿌리를 쪄서 즙을 내고 철분이 많은 진흙을 혼합하면 타닌산이 진흙 속의 철분과 산화반응을 하여 명주를 흑색으로 물들인다고 한다.
다정큼나무는 우리나라 일부 지방에서 사투리로 쪽나무라고 하는데, 어망 등을 염색하는 데 쓰였다고 한다. 그러나 일본처럼 명주를 물들이는 등의 특별한 쓰임에 관한 자료는 남아 있지 않다. 정약용의 시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에 나오는 ‘남정(藍靘)’을 쪽나무(다정큼나무)라고 번역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실제로 남정은 짙푸른 색을 물들이는 천연염료로 유명한 1년초 ‘쪽’을 일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