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습- 법성게(제 30차) –초발심시변정각
초발심시변정각(初發心是– 초발심 그때가 정각이다.
- 부처와 천신과 아라한의 차이
발심은 –발아뇩다라삼막삼보리심의 준말이다.
산스끄뜨리어로 안웃따라삼먁삼보리 (anuttarasamyaksambodhi)의 음사어로
uttara –보다 더 위
an – 없는 (부정)
samyaks – 바르고
sam – 완전한
bodhi – 깨달음
= 한자로 의역하면 ‘무상정등정각’이다.
발심이란 부처의 깨달음을 얻겠다는 마음을 내는 것,
초발심은 그런 마음을 처음으로 다짐한 것을 의미한다.
부처가 왜 되려고 하나?
더 많은 중생을 제도하기 위한 것이다.
자,
그럼 부처와 천신, 아라한의 차이는 뭘까?
부처는 – 두가지 , 공덕의 신통력과 모든 번뇌가 소멸한 청정한 마음
천신은 – 복덕의 신통력이 있지만 육도 중생으로 번뇌가 있다.
아라한은 – 복덕이 약하고, 번뇌는 제거된 청정한 마음을 갖추고 있는 차이다.
그래서 부처님께 삼귀의 할 때 “귀의불양족존” 이라 한다.
불교수행자가 소승 아라한의 길을 버리고 성불을 지향하며 대승보살도에 들어가는 이유는 3아승기 100겁에 걸쳐 복덕을 축적하기 위한 것이다.
그래야 보다 많은 중생을 제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보살은 3아승기 100겁에 걸쳐 보살행을 통해 수 많은 중생들과 복덕의 인연을 맺어야 성불했을 때 그 중생들은 제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부처와 중생, 부처는 번뇌망상 제거, 중생은 번뇌망상이 남이 있는 차이다.
부처님의 32상을 나타내는 상호업
3아승기겁이 모두 지나면 머지 않아 성불 할 것이기게 상호업을 짓기 시작하며, 상호업을 짓기 시작하여 그 기간은 최대 100겁이 걸린다.
32상80종호의 상호복을 쌓아야 한다.
용수의 <보행왕정론>에 32상을 갖추기 위한 보살의 인행이 실려 있다.
참고하시라!
이렇게 100겁의 상호업으로 이룩되는 32상을 부처님 뿐아니라 전륜성왕에게도 갖추어져 있다.
금강경에서 32상을 보고 여래를 보았다 생각해서는 안된다고 가르친다.
그 경문을 떠 올려 보라
<화엄경> 범행품의 초발심시 변성정각
그럼 누가 부처인가?
누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는 부처인가?
누가 무상정등정각을 이룬 부처인가?
<화엄경> 범행품에서는 성불하겠다는 다짐으로 보살도의 실천을 처음 다짐 했을 때가 바로 정각을 이루는 순간, 성불의 순간이라고 가르친다.
즉, 초발심시변성정각이라고 설한다.
범행품에서 정념천자가 ‘어떤 방편으로 범행을 닦아야 보살의 십주도의 경지를 갖춰서 아녹다라삼먁삼보리를 신속히 성취하나요?’ 하는 물음에 법혜보살은
간략하게 답을 한다.
“ 보살마하살이 오로지 무상보리를 구한다면, 먼저 열 가지 법을 분별해야 합니다. 무엇이 열 가지인가? 이른바, ‘몸과 신업, 입과 구업, 마음과 의업, 불, 법, 승, 계(戒) 에 대해 다음과 같이 관찰해야 합니다. 몸이 범행인가?.... ”
교재 259쪽 참조하셔요.
여기서,
정념천자는 청정한 범행에 대해 물었는데, 법혜보살은 범행의 정체에 대해 추구하면서 그 실체가 없음을 드러내는 것으로 대답을 한다.
결국은 이분법적인 사고에서 벗어나는 것이 청정한 범행의 수습이라고 결론을 짓는다.
“보살 마하살은 삼세의 모든 법들이 평등하여 마치 허공과 같아서 두 모습이 없음을 정념으로 장애 없이 관찰한다 이를 보살마하살이 방편으로 청정한 범행을 수습하는 것이라고 부른다. .. ”
범행은 허공과 같아서 긍정과 부정의 이분법적 사유로 재단하지 못한다는 점을 통찰하는 것이 범행의 진정한 수습이라는 것이다.
반야중관적, 돈오적인 가르침이 아닐 수 없다.
무이(無二)의 진리를 관찰한다면, 즉 법상에 대한 이분법적 이해에서 벗어난다면, 처음 발심했을 때 부처의 깨달음인 무상정등정각,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이룬다는 설명이다.
‘무이의 진리를 관찰한 보살’ 또는 ‘제법에 대해 둘이라는 생각을 생하지 않는 보살’에 한하여 가능한 일이라는 것이다.
대승불교 수행을 시작한 초발심의 보살이나 그 종점에서 정각을 이룬 부처가 둘(二)로 구분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기에 초발심 할 때 그대로 정각을 이루는 일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일단 <화엄경>에서는 이렇게 설한다.
무이중도(無二中道) 또는 불이중도(不二中道)가 사물과 사태의 진상이며 이는 대승 보살도의 수행에도 그대로 적용될 것이다.
- ‘초발심시 변성정각’에 대한 의상의 해석
의상스님은 <화엄일승법계도>에서 ‘초발심시 변성정각’인 이유에 대해 '1전이 10전'인 것과 같기 때문인데, 왜냐하면 행(行)의 체(體)에 의거하여 설하기 때문이다. 앞에서 수십전법 원리는 설명했으니 참고하시고..
초발심이 1에 해당하고 부처의 정각이 10전에 해당되는데 수십전법에서 1중10, 1즉10이라고 했듯이 ‘1인 초발심’속에 ‘10인 정각’이 들어 있고, 초발심 그대로 정각이다.
10은 무량,무한,무진,무변을 의미하는데 ‘초발심 속에 이렇게 무량하고, 무진인 공덕이 갖추어져 있다.’ 라는 점을 드러내기 위해 의상은 ‘1전이 10전인 것과 같기 때문인데’ 라고 설명하였다.
여기서 의상은 ‘초발심시변정각’이 가능한 것은 <화엄경>의 가르침이 원교의 일승법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성문승’, ‘연각승’, ‘보살승’의 삼승에서는 수행과 깨달음이 분리되어 있다.
성문의 경우 사성제에 대한 통찰을 통해 아라한이 되며, 연각은 연기의 이치를 관찰하여 독각불의 개달음을 얻으며, 보살승의 경우 3아승기 100겁에 걸친 보살행의 인(因)을 지어야 성불의 과(果)를 얻는다. 그러나 일불승인 화엄의 원교(圓敎)에서는 성불을 지향하는 발심의 그 순간에 정각을 이루어 성불한다.
보살의 인이 그대로 성불의 과와 일치하는 것이다.
그 이유는 도리에 의거하기 때문이고, 분별이 없기 때문이며, 초발심보살에서 부처에 이르기까지 육상이 성립하기 때문이다.
- 육상의 의미와 초발심시변정각
자, 그러면 위에서 육상이 성립하기 때문이라고 했는데, 육상이 무엇인지
알아보자.
육상은 모든 사물이나 사태가 갖추고 있는 여섯가지 모습으로 총상(總相)과 별상(別相), 동상(同相)과 이상(異相), 성상(成相), 괴상(壞相)의 세 쌍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 명칭의 기원은 <십지경>에 있다.
육상에 대한 상세한 설명은 교재 266쪽을 참고하시면 된다.
- 깨달음 전과 후가 다르지 않는 수행자의 삶
보리수 아래에서 깨달음을 얻어 부처님이 되신 싯다르타 태자는 다섯 비구에게 첫 설법을 베푸셨고, 중도의 수행과 사성제를 가르치신 초전법륜이었다.
부처님께서는 깨달음 이후에 어떤 수행을 하면서 살아가셨을까?하는 질문에
대답은 간단하다.
팔정도의 삶을 사셨다.
부처님께서는 팔정도 수행을 통해 깨달음을 얻으셨고, 성도 후에도 팔정도 수행의 모습을 시현(示現)하는 교화의 삶을 사셨다.
팔정도는 계정혜 삼학으로 요약된다.
삼학에서 정학과 혜학만을 묶어서 정혜쌍수(定慧雙修)라 하고 다른 말로 지관쌍운(止觀雙運)이라고 부른다.
지와 관을 함께 운행하는 수행이다.
지는 사마타, 관은 위빠싸나로 이미 여러번 설명이 있었으니 떠 올려 보시라!
사마타 위빠싸나가 함께 하는 수행을 한 단어로 선(禪)이라고 부른다.
선은 선나(禪那)의 줄임말이다.
부처님께서는 깨달음 전과 후 모두 계.정.혜 삼학의 삶을 사셨다.
깨달음 전과 후의 수행이 다르지 않듯이 초발심보살의 삶과 정각을 이루신 부처님의 삶이 다르지 않다.
그래서 ‘초발심시변정각’이다.
일화합장.
첫댓글 어려운걸 잘 정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