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일에 쌓인 그 세계는 신비감이 걷히는 순간 사라지고 만다"
'예술가'란 뜻의 게이샤(藝人, Geisha)는 우리의
전통으로 보자면 기생에 해당된다. 그들의 아름다움은 <실재>이다. 일반인은 그들에게 접근하면 할수록 치명적인 상처를 입을 뿐이며, 그
베일을 벗겨내는 순간 게이샤는 죽고(이때의 죽음은 상징적인 죽음이지 실재의 죽음이 아니다. 우리 인간은 두번 죽는다는 테제) 만다. 그러니
게이샤는 상징화에 저항하는 치명적인 반복강박의 폐쇄회로인, 충동에 가까운 존재이다. 결코 기억될 수 없고 내러티브 틀 속에 집어넣어 상징화시킬
수 없다. 그것은 영원히 상실한 과거의 어떤 지나가는 순간인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끊임없이 반복하기 때문에 처음부터 결코 망각될 수도 없는
충동의 바로 그 주장insistence이다. 게이샤를 바라보는 주체의 반응을 통해 우리는 욕망과 충동을 구분할 수 있다. 그것은 주체가 타자의
유혹하는 목소리를 듣고 어떻게 반응하는가? 유혹하는 타자(게이샤)에 대한 반응으로 주체(관객)가 발현하는 욕망은 충동의 파괴적인 본성에 대항한
방패가 될 수 있을까?
라캉이 말하는 대상a, 즉 욕망의 대상-원인은 충동 그 자체에 다름 아니라고 주장하고 싶다. 다시 말해서 또 다른 주체에 대한 주체의
욕망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대상a 속에 체현된 바로 그 특수한 양태의 타자의 향유인 것이라고 주장하고만 싶어진다. 사랑이나 증오를 부추기는 타자의
향유는 타자의 응시에, 그/녀의 목소리, 냄새, 미소, 웃음 등등에, 즉 다른 주체에게 저항할 수 없는 매혹을 발휘하는 그 특질들 속에 새겨져
있다.
그것은 마치 <게이샤의 추억>의 영화가 관객의 시선을 잠식하는 화려한 색깔과 같다. 게이샤가 남성들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주는 지점은, 남성은 여성이 실제로 가지고 있지 않은 어떤 것을, 즉 욕망의 대상 원인인 대상a를 지각하기 때문에 여자와 사랑에 빠지는 원리와
같다. 따라서 남성은 게이샤의 어떤 특수성-그녀의 미소, 어떤 제스처, 그녀의 머리카락이나 목소리의 음색, 혹은 그에게 있어 대상a의 자리를
메울 여하한 것- 때문에 여자와 사랑에 빠진다. 게이샤의 화장은 그녀 자신에 있는 대상에 대한 추구와 같다. 그리고 게이샤는 그 화려한 가면
뒤로 자신들 안에 있는 자신들보다 더한 무엇인가를 남성에게 보여줌으로써 대상이 자신에게로 빠져들게 한다. 어린 치요(나중의 사유리-장쯔이분)가
회장의 친절함을 느낀 이후 게이샤가 되고자 맘먹은 것은 그녀의 대상에 대한 욕망때문이다. 대상에게 접근하기 위한 하나의 방편인 것이다. 그러나
진정 그녀가 게이샤가 되었을 땐 역설적인 운명, 즉 사랑의 운명과도 같은 입장에 놓이게 된다. 그것은 게이샤가 세상의 아름다움은 모두 추구할 수
있어도 사랑만큼은 선택할 수 없다는 것. 그녀의 말과 몸짓, 음악은 한 사람에게 사랑을 얻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모든 사람, 대상을 유혹하는
방편인 것이다. 한사람과 사랑에 빠질 때 게이샤의 운명은 상징적 죽음으로 끝나고 만다. 사유리를 사랑하는 기업가 노부(야쿠쇼 코지)와 남작의
구애, 즉 타자의 욕망은 사유리에게 공포를 유발한다. 그 공포는 불안이기도 하다. 이러한 공포와 불안은 자신(사유리)가 타자(노부와 남작)에게
어떤 종류의 대상인지를 주체가 결코 알 수 없다는데서 유발한다. 그것은 자신이 어떤 가발을 쓰고 있는지 모르는 지점이다.
그러나 게이샤는
욕망하지 못한다. 욕망하는 순간 게이샤는 자신의 상징적인 죽음(상징적 자살-예술가라는 충동의 지위를 포기하는 것)을 맞이해야 되기
때문이다. 오직 게이샤의 역할은 타자에게 향유만을 제공할 뿐이다. 그러나 이 향유는 절대 상징화된 세계 속에 포섭되지 않는 것이기에 일반인에게는
신비화로 나타난다. 그것에 가까이가면 갈수록 우리는 죽음을 맛보거나, 대상(게이샤)를 죽음으로 몰게 된다.
이 영화에서 전쟁은 게이샤의
신비감을 없애는 역할을 하며 그래서 아무렇지도 않게 단순한 욕망의 대상으로 전락하게 되는 계기를 제공한다. 영화의 마지막에서 두 사람의 사랑이
이루어질 때(사유리와 회장) 게이샤의 신비감과 치명적인 매혹은 사라지게 되며 단순히 대상을 향하는 욕망만이 남게 된다. 게이샤의 죽음, 그것이
두 사람의 사랑을 이루어지게 하는 것이다.
영화의 제목처럼 <게이샤의 추억>은 결코 추억되거나 내러티브될 수 없는 게이샤의 충동적인 삶이
상징화되는 지점(추억-서사화)을 말한다. 향유, 신비감, 치명적인 유혹, 실재의 지식이 사라지는 지점
말이다.
로브 마샬 Rob Marshall : 감독
로빈 스위코드 Robin Swicord : 각본
아서 골든 Arthur Golden : 원작
장쯔이 : 사유리 역
와타나베 켄 Ken Watanabe : 회장/체어맨 역
양자경 : 마메하 역
야쿠쇼 코지 Koji Yakusho : 노부 역
유키 쿠도 Youki Kudoh : 호박/펌프킨 역
모모이 가오리 Kaori Momoi : 어머니/마더 역
채천 Tsai Chin : 아줌마 역
캐리-히로유키 타가와
Cary-Hiroyuki Tagawa : 남작 역
오고 스즈카 Suzuka Ohgo : 치요 역
공리 : 하츠모모 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