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하는 모로코의 무슬림.(2014. 7. 29, 모로코 수도 라바트)
한국에서는 스마트폰 혹은 태블릿PC를 이용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누군가를 기다리는 사람,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고 이동하는 사람, 밥을 먹는 사람, 심지어 길을 걷거나 누군가를 만나고 있는 사람까지도 작은 화면에 눈을 고정한 채 손가락을 움직인다.
생활을 더욱 편리하게 해줄 이기(利器)로 여겨지던 전자기기들은 어느새 업무부터 시작해서 여가, 뉴스, 건강, 인간관계에까지 스며들어 현대인들의 생활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게 되었다. 디지털의 물결은 모로코에도 흘러들어와 빠른 속도로 번져나가고 있다. 모로코의 휴대전화와 인터넷 보급률은 2004년 각각 31%와 2%에 그쳤으나 불과 8년 만인 2012년에는 92%와 39%로 각각 급증했다. 모로코 국립통신규제원(Agence Nationale de Réglementation des Télécommunication, ANRT)의 보고서에 따르면, 통신사 가입 신청자 수도 꾸준히 늘어나고 있으며, 2014년 2분기 평균 통신량은 1년 만에 20.13% 증가한 1,170억 분을 기록했다. 이제 길을 걷거나 기차를 타면 전자기기를 만지고 있는 사람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기차 플랫폼에서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모로코인의 모습 <자료원: KOTRA 카사블랑카 무역관>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로코 사회는 디지털의 과도한 사용이나 중독과는 거리가 있는 ‘디지털 안전지대’로 느껴진다. 그 이유 중 하나는 모로코를 이해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요소이기도 한 모로코 인구의 98.7%가 무슬림이라는 점이다.
모로코 어디에서나 하루 3번 이상 기도 시간을 알리는 아잔(adhān)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이슬람 사원인 모스크(mosque)의 종탑에서는 하루 5번의 기도 시간인 파즈르(Fajr), 주흐르(Dhuhr), 아스르(Asr), 마그립(Maghrib), 이샤(Isha)를 알리기 위해 아잔을 울리는데, 무슬림들은 다음 아잔이 울리기 전까지 해당 시간의 기도를 마쳐야 한다. 이슬람교의 기도는 절을 하는 살라트(Ṣlāt)와 소원을 비는 두아(Duā), 온 정신을 신에게만 집중하고 신에 대해 생각하는 디크르(Dhikr)까지 세 종류가 있다. 기도는 최소 3분에서 길게는 30분까지 신도가 원하는 만큼 하면 되지만, 기도하는 동안에는 시선을 한 곳에 고정하고 모든 행동과 정신을 오직 기도에만 집중시켜야 한다. 이 같은 이슬람교의 기도 문화가 사람들이 하루 중 일정 시간 이상 전자기기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모로코에 있는 이슬람 사원 <출처: gettyimages>
이슬람교는 기원 후 622년 모로코에 상륙한 후 지금까지 역사와 함께해왔다. 모로코인에게 있어 종교활동은 현재까지도 일상생활의 일부로 녹아 있다. 가게를 운영하거나 직장에서 근무해 모스크에 갈 수 없는 사람들이 실내에서 양탄자를 깔고 기도하거나, 모스크에 자리가 없어 바깥까지 나온 사람들이 기도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도시에서는 하루 5번 기도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렵기 때문에 모두 지키지는 못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모로코인들이 금요일 점심 기도만큼은 빼놓지 않는다. 금요일 점심은 전통적으로 온 가족이 모여 ‘쿠스쿠스(couscous)’라는 전통음식을 먹고 모스크에서 기도하는 시간인데, 이때 모스크 근처에 가면 모스크 바깥까지 인산인해를 이룬 사람들의 기도하는 장관을 볼 수 있다.
금요일 점심 기도를 마치고 나오는 사람들 <자료원: KOTRA 카사블랑카 무역관>
많은 회사와 공공기관들이 12시에서 3시 정도까지 긴 점심시간을 갖는데, 대부분의 사람이 집으로 돌아가 쿠스쿠스를 먹으며 가족이나 친척 혹은 손님을 초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이러한 문화 덕분에 모로코에서는 일상에서 휴대전화로 통화하거나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사람들을 마주칠 수 있긴 해도 그 빈도가 높다고는 할 수 없다. 스마트폰에 대한 관심과 단말기 보급률도 매년 급증하는 추세이지만, 2012년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 사용 통계에 따르면, GPS 이용이 41%, SNS와 게임이 각각 20%와 18%로 뒤따랐다.
모로코에서 주로 이용되는 앱 현황(단위:%) <자료원: KOTRA 카사블랑카 무역관>
특히 계절의 변화에 따라 매일 달라지는 기도 시간을 알려주는 애플리케이션이 100만 번 이상 다운로드됐고, 메카의 방향을 알려주거나 성서 코란(Quran)을 읽고 들을 수 있는 애플리케이션이 다수 개발되어 있다. 이를 볼 때 모로코인들은 스마트폰을 종교생활에 필요한 도구로 효율적으로 사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1,000년 이상 이어져온 이슬람 문화가 모로코 사회에서 사람들이 디지털에 잠식되지 않도록 막아주는 디톡스 처방이 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