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은 모임에 가거나 첫 대면 때는 명함을 주고받는다..
그가 누군지 어느 회사 다니는지를 보는 것보다는 전화가 몇 대 인지 본다.
그리고 집전화번호가 있는지를 본다.
60년대 회사의 규묘는 전화가 몇 대 인지가 좌우한다.
60년대 집 전화는 부의 상징 바로 그것이다.
이 전화기가 60년대 당시 백색전화라고 해서 거의 집 한 채 값이었다.
하지만 불과 30여 년 전만 해도 전화가 엄청 귀했다.
매매가 가능한 백색전화는 1978년 260만 원까지 갔다,
당시 서울시내 50평짜리 한옥 집값이 230만 원이었다.
물론 그 당시에도 전매가 허용된 백색전화는 거품이 많았지요.
전매가 허용되지 않고 신청해서 설치되기를 10년 정도의 오랜 기간 기다려야 했다.
청색전화는 가격이 그리 높지 않지만 세월이 약이다 하고 기다려야 한다.
그러던 게 전자식 교환기가 등장하면서 그 백색 전화기 값이 거품이 빠졌다.
우리 집은 75년에 첫 전화를 가지게 되었다.
우리 동네 동사무소와 몇 집을 제외하면 근방에 우리 집 전화가 유일했다.
그러다 보니 우리 집 사람은 사설 체신 전화 사연 배달부이다.
우선 시골 부모님들이 자식들에게 연락을 할때는 우리 집으로 걸려온다.
직장에 다니는 회사원은 저녁에 늦거나 친구를 데려간다는 연락도 온다.
그 시커먼 전화기 옆에는 공책 오려만든 메모지가 항상 놓여있었다.
바쁘고 긴박한 사연은 곧바로 연락을 하지만,
그렇지 않으면 쭉 메모했다가 오후 늦게 동네를 돌면서 전해준다.
그러면 인심 좋은 집에서는 시골서 가져온 먹 거리도 나눠 먹는다.
지금이야 신청만 하면 하루 만에 개통이 되고 그것도 집 전화는 거의 없다.
아이도 어른도 휴대폰이 대세를 이룬다.
너무 풍족함이 서로의 소통을 오히려 저해하는 게 아닌가 싶다.
출처 : 허공의 휴 유정사
글쓴이 : 허공 (虛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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