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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 행복 지수를 높여라!
골로새서 3:18-19
경상도 할머니하고 서울 할머니가 사돈을 맺었습니다. 하루는 경상도 할머니가 서울에 있는 딸네 집에 다니러 갔습니다. 마침 서울 할머니도 아들네 집에 와 있던터라 두 사돈이 함께 지내게 되었습니다. 두 사돈이 하루 종일 얼굴을 마주보고 있으니까 너무 심심했던지 서울 할머니가 경상도 할머니에게 "사돈, 우리 끝말잇기 게임을 합시다"라고 제의를 했습니다. 그래서 서울 사돈과 경상도 사돈이 끝말잇기 게임을 하게 되었습니다. 먼저 서울 할머니가 시작을 합니다. "타조" 그랬더니 경상도 사돈이 대답을 합니다. "조오쪼가리"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서 제가 통역을 하겠습니다. "조오쪼가리"는 종이 조각이라는 경상도 사투리입니다. 이 말을 듣고서 서울 할머니가 한마디를 합니다. "아니, 사돈! 그게 아니고 끝말잇기를 하자구요. 순 우리말로…" "그럽시다" 그래서 서울 할머니가 다시 말을 합니다. "야쿠르트" "트레기"(틀) 황당한 서울 할머니가 경상도 할머니에게 정중하게 한마디합니다. "사돈, 순 우리말로 합시다" 그래서 서울 할머니가 말을 합니다. "게란" "란닝구" 서울 할머니가 열 받았습니다. "사돈 진짜 우리 나라 말로 합시다" 그러면서 한마디합니다. "가을" "을라" 서울 할머니가 진짜 열 받았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못하겠지 싶어서 한마디합니다. "장농" "농갈라먹기"(나누어 먹기)
가정은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입니다. 가정은 삭막한 사막에 숨겨져 있는 시원한 오아시스와 같습니다. 그곳에서 사람들은 참된 안식과 진실된 사랑과 위로와 동정과 마음의 상처를 치료받을 수 있습니다. 행복한 가정이 많은 사회와 국가는 튼튼하고 강합니다. 가정이 불행하면 안식도 사랑도 위로도 없습니다. 마음의 동정도 상처도 치료받을 수가 없습니다. 결국 황폐한 사막과 같은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가정을 잃어버린 사람은 사막에서 길을 잃은 것과 같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행복한 가정을 만들어 갈 수 있습니까? 행복한 가정은 잡초가 자라듯이 우연히 다가오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정원을 가꾸듯이 노력과 정성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행복한 가정을 소망한다면 행복한 가정을 위하여 수고와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합니다.
미국 사회에 큰 화제를 불러일으킨 책 가운데 '아내여, 항복하라!'라는 책이 있습니다. '아내여, 행복하라'가 아니라 '아내여, 항복하라'는 책입니다. 이 책은 로라 도일이라는 여자 분이 썼는데, 이 분은 자신의 가정 생활의 체험과 자신이 운영한 '항복한 아내들'이라는 인터넷 사이트에 올라 온 여성들의 이야기를 종합하여 행복한 가정을 만들기 위해서 아내들이 해야 할 일들을 나름대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사실 로라 도일은 결혼 초에 남편을 자기 뜻대로 바꿔보려고 애를 많이 썼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럴수록 남편이 자기로부터 점점 더 멀어졌다는 것입니다. 남편도 자기에게 요구하는 것이 더 많아지더라는 것입니다.
그 결과 로라 도일은 재미있는 표현을 썼는데 남편도 아내도 자꾸 몸에 가시가 돋더라는 것입니다. 서로 그 가시로 찌르고 그 가시는 더 커져만 가고…. 이것이 악순환이 되는데 그 가정 속에서는 계속 가시에 찔린 비명소리만 들리더라고 합니다. 그래서 생각을 바꾸었다고 합니다. 먼저 자기 몸에 있는 가시부터 없애려고 했다는 것입니다. 그랬더니 남편도 가시가 줄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내들에게 항복하는 것이 이기는 길이라고 외치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는 결코 새롭지 않은 이야기입니다. 우리 가정이 행복한 가정이 되려면 서로의 주도권 싸움을 버려야 합니다. 서로를 지배하려는 생각들을 버려야 합니다. 서로 지배하려고 하고, 서로를 바꾸어 보려고 할 때에 가시가 생깁니다. 그러나 서로가 배려하고, 인정하려고 할 때에 가시가 줄어듭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가정은 가시가 없는 가정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가정에서 서로가 상처 주고, 상처를 받는 가시를 없애버리시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될 때에 부부 사이에 행복지수가 높아질 것입니다. 가정에도 행복지수가 높아질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남편과 아내의 특권과 의무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남편과 아내가 자신이 감당해야 할 특권과 의무에 충실할 때에 부부 사이에도 행복 지수가 높아진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먼저, 남편의 특권과 의무를 살펴보겠습니다. 본문 18절을 아내되시는 분들만 읽어 주시기를 바랍니다.
"아내들아 남편에게 복종하라 이는 주 안에서 마땅하니라."
본문에서 아내는 남편에게 복종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본분이라고 했습니다. 아내되시는 여러분, 남편에게 복종하고 격려해 주시기 바랍니다. 남편이 한마디하면 열마디로 답하지 마십시오. 남편이 좌할 때 우하지 마십시오. 그러면 그 집안은 희망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가정을 세우실 때 남자와 여자에게 인격적으로 동등한 권한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가정을 이루는데 있어서는 순서가 있습니다. 특별히 성경은 남편을 가정의 머리라고 했습니다. 가정을 이끌어 가는 지도자는 아내가 아니라 남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내는 남편을 내조하고 복종하고 존경해야 합니다. 남편은 아내의 내조를 통하여 용기를 얻는 것입니다. 어려울 때일수록 아내가 힘을 실어 주고 용기를 주고 능력을 주어야 합니다. 그러면 남편은 아내의 사랑에 감격해서 어떠한 육체의 노동이라도 기쁜 마음으로 감당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가정에서 존경받지 못하고 대접받지 못하면 날개가 부러진 새와 같습니다. 세상에 나아가서 아무 것도 못합니다.
성경에 보면 결혼을 했던 베드로나 결혼을 하지 않았던 바울, 모두가 부부간의 관계를 가르칠 때에 아내가 남편에게 복종할 책임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아내가 자기의 책임을 수행하지 않으면 남편도 자기 의무를 수행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남편이 아내를 보호하고 지키려고 해도 아내가 따르지 않는다면 그의 보호를 받을 수 없습니다. 모름지기 남편과 아내의 역할이 지켜져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마치 선장 없는 배와 같이 파선하게 될 것입니다. 오늘 가정이 무너지는 중요한 이유 가운데 하나가 남편의 자리가 없어지는데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내 되시는 여러분, 남편의 자리를 세워주시기 바랍니다. 마음 깊은 곳에서 존경하시기 바랍니다. 제 말에 "존경할 것이 있어야 존경하지"라고 생각하는 분이 계실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렇다면 그 분은 남편에게도 사랑 받지 못하고, 나아가서는 다른 사람들에게서도 사랑 받지 못합니다. 내가 남편의 사랑을 받기를 원한다면,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서도 사랑 받는 존재로 살아가기를 원한다면 내 남편을 배나 존경하시기 바랍니다. 그 앞에 복종하시기 바랍니다. 결코 남편됨의 자리를 흔들려고 하지 마십시오.
여인의 아름다운 미덕은 복종에 있습니다. 설사 남편이 잘못했다고 할지라도 복종을 하고 난 다음에 나중에 서서히 대화와 타협으로 풀어야 합니다. 대결은 절대로 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아내에게 주신 의무는 존경이지 대결이 아닙니다. 복종이지 대항해서 싸우는 것이 아닙니다. 에베소서 5장 23절 이하에 보면,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됨과 같음이니 그가 친히 몸의 구주시니라. 그러나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 아내들도 범사에 그 남편에게 복종할지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복종의 미덕은 오늘 하나님이 아내에게서 원하시는 것입니다.
사실 남편들은 생각 외로 아내에게 의존하려고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아내의 말 한마디가 남편을 죽이기도 하고 용기를 주기도 합니다. 아내의 말 한마디에 희망을 주기도 하고 낙심을 주기도 합니다. 따라서 아내는 남편에 대해서 언제나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태도를 취해야 합니다. 용기를 주고 힘을 주어야 합니다. 기억하십시오. 남편에게 미래를 주고 그래서 일어날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것은 아내의 책임입니다. 잠언 14장 1절에 보면, "지혜로운 여자는 집을 세우지만, 어리석은 여자는 제 손으로 집을 무너뜨린다."고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옛말에 장가 잘 가면 집이 흥하고 장가 못 가서 망한다고 했습니다. 집을 흥하게 하고 망하게 하는 것이 아내의 손에 달렸다는 말입니다.
19세기 최고의 화가 중의 하나인 폴 세잔느가 있습니다. 그는 괴팍한 성격의 소유자였습니다. 밤새워 그림을 그리다가 원대로 못 그리면 버렸습니다. 당시 그는 무명 화가였습니다. 그러면 그 구겨진 그림을 아내가 다시 잘 펴서 화실에 갔다 놓았습니다. 다시 그립니다. 그것들이 유명한 그림이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어떠한 남성이건 자기를 믿어 주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주위의 모든 사람들이 자기를 반대하고 비웃을 때에라도 자기편을 들어주는 여성을 필요로 하는 법입니다. 모든 일이 뜻대로 되지 않을 때, 남의 공격을 받을 때, 사업에 실패했을 때,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당신에 대한 저의 믿음에는 변함이 없어요"라고 말하며 남편에게 끈기와 용기와 자신을 북돋아 주는 아내가 필요한 것입니다. 저는 우리 영신교회 아내 되시는 분들이 이런 아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내 남편을 당당한 남자로 세워주시기 바랍니다.
그런가 하면, 남편은 아내에 대하여 부드럽고 따뜻해야 합니다. 자상스럽고 이해와 동정심이 많아야 합니다. 그것이 본문 19절의 말씀입니다. 본문 19절을 남편들께서 읽어 주시기를 바랍니다.
"남편들아 아내를 사랑하며 괴롭게 하지 말라."
남편이 권위주의로만 가정을 이끌어 가면 아내가 괴롭습니다. 부드럽고 따뜻하며 자상스럽고 이해와 동정심이 많아야 합니다. 남편은 이기주의나 자기 쾌락주의로 살지 말아야 합니다. 베드로전서 3장 7절에 보면 남편된 자들에게 이렇게 권면하고 있습니다.
"남편 여러분, 이와 같이 여러분도 아내가 여성으로써 자기보다 약한 그릇임을 이해하고 함께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생명의 은혜를 함께 상속받을 사람으로 알고 존중하십시오. 그렇게 해야 여러분의 기도가 막히지 않을 것입니다."
남편과 아내는 서로에게 행복을 찾아주는 관계가 되어야 합니다. 남편과 아내가 서로 손을 맞잡고 행복의 성을 만들어가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남편과 아내는 서로의 약점을 파헤치지 마십시오. 약점 없는 사람이 어디에 있습니까? 결혼 전에는 여자들이 남자를 볼 때에 박력이 있고 터프해서 좋다고 합니다. 또 총각들은 아가씨를 볼 때에 새침하고 토라지기 잘하는 것이 귀엽고 매력이라고 합니다. 그러다가 결혼하면 박력이 폭력이 되고, 토라지는 것은 바가지 긁는 것으로 봅니다. 그러니 서로가 기분이 상하고 싸움이 되는 것입니다. 부부는 개성도 다르고 교육 수준과 자라온 환경이 다릅니다. 약점을 서로 파헤치는 것은 부부가 아닙니다. 서로가 절대 비난하지 마십시오. 아담은 하와를 비난하고 하와는 뱀을 비난하고 가인은 아벨을 비난했습니다. 그래서 아담과 하와의 가정이 파탄에 이르고 말았습니다. 부부가 서로 비판하고 정죄하면 결국 그 가정은 파괴되고 마는 것입니다. 부부는 두 눈을 부릅뜨고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한 눈을 감고 바라보아야 합니다. 단점에는 눈을 감으십시오. 때로는 속에서 용납이 되지 않아도 감으십시오. 그리고 장점에만 눈을 뜨시기 바랍니다.
평소에 부부 싸움이 잦아서 화를 삭히지 못하고 뜬눈으로 밤을 새운 어떤 부인이 있었습니다. 하루는 아무래도 남편을 변화시켜야겠다고 생각을 해서 백지에 남편의 장점을 잔뜩 적어 가지고 편지 봉투에 넣어서 남편의 주머니에 넣어두었습니다. 그 남편이 회사에 가서 앉아 있는데 부인에게서 다정한 전화가 왔습니다. 그리고 점심 때 그 봉투를 발견했습니다. 거기에는 아내가 본 자신의 장점이 적혀 있는 것이 아닙니까? 게다가 이런 좋은 장점을 많이 가진 남편을 알지 못하고 단점만 들어 비난한 죄를 회개한다고 쓰여 있었습니다. 남편은 크게 감동을 받았습니다. 이후부터 남편은 아내에게 연애편지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그 가정은 평안과 사랑을 되찾았다고 합니다.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 라고 하는 책에 보면, 남자와 여자는 본질적으로 다르고 차이가 많은데 그것 때문에 매력을 느끼고 좋아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서로의 다양성을 인정하십시오. 부부간에도 자기 기준에 맞게 뜯어고치려 하면 문제가 생기고 싸움이 터지는 겁니다. 본질적으로 사람은 남자 여자 할 것 없이 사랑의 욕구가 있습니다. 그리고 남에게 인정받으려는 욕구도 있습니다. 특별히 여자는 사랑 받고 싶은 욕구가 강하고, 남자는 존경받고 싶은 욕구가 강하다고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아내는 남편에게 복종하라고 하셨고, 남편은 아내를 사랑하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하는 여러분, 아내는 남편에게 복종하고, 남편은 아내를 더 많이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옛말에 한 가정보다 한 나라를 다스리는 것이 더 쉽다고 말했습니다. 한 국가에는 치안을 담당하는 경찰과 군대가 있지만 가정에는 그러한 기구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사랑은 가정의 기초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아무리 돈이 많아도 행복한 가정을 만들 수는 없습니다. 따라서 행복한 가정을 만들기 위해서는 부부의 행복지수를 높여야 합니다. 이것은 물질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명예로 되는 것도 아닙니다.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서로를 존경하고 칭찬을 아끼지 마시기 바랍니다. 남편은 아내를 사랑하고 아내도 남편을 존경하시기 바랍니다.
'산울림의 법칙'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산에 올라가서 큰 소리로 "사랑한다"라고 외쳐보십시오. 그러면 어떤 말이 들려옵니까? "사랑한다"는 말이 그대로 내게로 되돌아옵니다. 반면에 "이 죽일놈아!"라고 외쳐보십시오. 그러면 상대편에서 뭐라고 응답을 합니까? "이 죽일놈아!"라고 응답합니다. 그러니까 내가 외치면 상대편에서 그대로 울려오는 것이 산울림의 법칙입니다. 이것은 인간 관계의 올바른 법칙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내가 좋은 소리를 듣고 싶다면 먼저 좋은 소리를 하셔야 합니다. 내가 섬김 받기를 원한다면 상대방을 먼저 섬기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말과 행동으로써 상대를 도와주고 섬기고 애를 쓸 때에 그것이 그대로 자신에게 돌아오는 것입니다.
특별히 저는 이 시간에 강조하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부부 사이에 말을 조심하십시오. 사실 부부간에 주고받는 말에서 받는 상처가 가장 많다고 합니다. 편하다고, 가깝다고 무심코 던진 말들이 서로에게 아픔이 되고 상처가 된다는 것입니다.
어떤 노 부부가 있었습니다. 하루는 노부부가 가볍게 걷기 운동을 하러 길을 나섰습니다. 마침 언덕길을 올라가게 되었는데 할아버지가 할머니를 등에 엎었습니다. 할머니가 할아버지에게 "영감, 나 무겁지?"라고 묻습니다. 이 말에 할아버지가 대답을 합니다. "그걸 말이라고 해. 당연히 무겁지. 머리는 돌이고, 낯짝은 철판이고, 간은 부었고…. 그러니 안 무겁겠어!" 이 말에 할머니가 기분이 상했습니다. 한참을 걷다가 내리막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할아버지가 할머니에게 엎어달라고 합니다. 그래서 할머니가 할아버지를 엎고 내리막길을 내려오는데 할아버지가 할머니에게 묻습니다. "할멈, 나 가볍지?" 이 말에 할머니가 대답을 합니다. "아니 그걸 말이라고 해요. 당연히 가볍지. 머리는 비었고, 싸가지는 없고, 속은 좁쌀이고…."
여러분,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고 했습니다. 부부간에도 결점과 단점을 들추어내는 말보다 칭찬하는 말을 해야 합니다. 서로에게 칭찬하려면 얼마든지 많이 있습니다. 자식들이 듣는데 아버지의 훌륭한 점을 말해주십시오. 어머니의 훌륭한 점을 말해 주십시오. 어떤 가정에는 아이들에게 아빠의 단점만을 이야기해 주는 엄마도 있습니다. 자식들의 마음을 혼자 도둑질해 가져서는 뭘 하겠다는 겁니까? 누가 뭐래도 아이들에게 있어서 최고의 자존감은 아버지와 어머니입니다. 이것이 무너지면 인생이 무너집니다. 인격이 무너집니다. 여러분들이 아이를 사랑한다면 아이들이 듣는데서 부부간에 자존심 상하는 말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사람이 사회 생활을 하는데도 상대방을 칭찬하는 말을 하는 사람은 잘되고 성공합니다. 남을 깎아 내리고 비판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진급도 잘 안 되고 가깝게 사귀려 들지 않고 경계하게 됩니다. 관계성에서 실패하게 됩니다.
호올 케인이라는 사람은 대장장이의 아들로 작가가 되어 크게 성공한 사람입니다. 그의 저택은 관광객들의 성지가 되고 그의 재산은 반세기 전에 250만 불이나 될 만큼 성공했습니다. 그가 성공한 것도 사실은 남의 장점을 칭찬해 주다가 크게 출세하게 된 것입니다. 당시 유명한 영국의 시인 로세티를 좋아한 나머지 그의 예술적 공적을 찬양하는 논문을 쓴 다음, 그것을 복사해서 로세티에게 보낸 것이 발단이 되어 비서로 등용되었다가 크게 출세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니까 중심으로 남을 칭찬할 줄 아는 사람은 자기도 복을 받습니다. 칭찬할 줄 모르고 결점을 들춰내기 좋아하고 남의 인격을 깎아 내리기 좋아하는 사람은 결코 성공할 수가 없습니다.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하는 말만 들으시는 것이 아니라 평상시에 우리가 하는 말도 들으시는 분입니다. 우리의 말은 하나의 신앙 고백입니다. 그러므로 불신앙의 말을 해서는 안 됩니다. 말라기 2장 17절에 보면, "너희가 말로 여호와를 괴로우시게 한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 반항하는 말, 하나님을 원망하는 말, 하나님을 믿어봤자 소용없다는 식의 불신앙의 말을 들으시고 하나님이 괴로워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아내 되시는 여러분, 남편에게 용기를 잃게 하는 것보다 더 고통스러운 것은 없다는 사실을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변변찮은 설교를 마치고 교인들의 냉랭한 표정을 보면서 강단을 내려온 어떤 목사를 생각해 보십시오. 그런데 집으로 돌아가는데 아내가, "세상에 그런 형편없는 설교가 어디 있어요!" 라고 말한다면, 이 남편은 더 이상 내려갈 데가 없을 것입니다. 그럴 때에 "여보, 오늘 설교 참 은혜로웠어요. 제게 있어서 당신은 최고예요"라고 말한다면 그는 다시금 용기를 얻게 될 것입니다. 성령을 보혜사라고 말합니다. 보혜사는 돕는 자도 되지만 격려자로도 번역될 수 있습니다. 아내가 남편을 격려할 때에 성령의 도구로 쓰이고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내가 위로자로 격려자로 살아갈 때에 나는 성령의 도구가 되는 것입니다.
가만히 보면, 어떤 부부는 서로를 자기에게 맞도록 길들이고 고치려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래서 매일 싸움이 일어납니다. 또 어떤 부부는 늘 비교하고 바라기만 하는 부부가 있습니다. 이것 또한 파멸을 가져옵니다. 태초에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라는 부부를 허락하셨을 때에 그들은 서로가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 아니했다고 했습니다. 저는 이것이 부부의 행복지수를 높여주는 방법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자기의 약점이 드러났을 때에도 지적하고 고치려하거나 인격적으로 수치심을 주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를 용납하여 주는 것이 지금 우리의 가정에 필요합니다. 신혼 초기에는 상대에 대한 신비감이 있어서 사랑하게 되지만 시간이 지나면 신비감이 사라지고 상대의 모든 것이 드러납니다. 권태가 나기 쉽습니다. 그럼에도 그 약점들을 그대로 사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말은 우리 가정에 엄청난 영향을 줍니다. 말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가정이 행복해 질 수도 있고, 불행해 질 수도 있습니다. 말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마귀가 들끓는 가정이 될 수도 있고,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임마누엘의 가정이 될 수도 있습니다. 부부의 삶은 자녀에게 보여주는 실물 교육입니다. 현장학습이라는 말입니다. 우리는 부모에게 좋은 것보다 좋지 못한 것을 더 많이 배우며 자라왔습니다. 말은 잘하지만 삶은 그렇지 못하니 다시 자녀들이 배우게 되는 것입니다. 가장 좋은 자녀 교육은 부부가 위에서 말한 성경 말씀의 원리대로 사는 것입니다. 부부가 행복해 할 때에 자녀들도 행복해 합니다.
러시아의 문호 톨스토이의 아내는 임종할 때 머리맡에 딸들을 불러놓고 다음과 같이 고백했다고 합니다.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신 것은 내 탓이었었다."
사실 톨스토이의 생애의 비극의 원인은 아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의 아내는 화려함을 원하는데 그는 그것을 경멸하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사회적 명성이나 칭찬을 갈망하고 있었으나 그에게 있어서 그런 것은 아무 의미도 없는 것이었습니다. 아내는 부를 동경하고 있었으나 그는 부를 죄악시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저서의 인세도 받을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 일로 아내는 화를 내고, 울기도 하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몇 년 동안 집요하게 그에게 정신적으로 고통을 주었습니다.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이 있으면 발작을 일으켜서 그를 위협했습니다. 1910년 10월 어느 눈 내리는 날 밤, 83세의 톨스토이는 가정의 불화를 참고 견딜 수 없는 나머지 정처없이 집을 나오고 말았습니다. 그로부터 11일 후 그는 어느 역에서 숨을 거두었습니다. 죽음을 눈앞에 둔 그에게는 아내를 절대로 곁에 오지 못하게 해달라는 것만이 유일한 소원이었다고 합니다. 물론 그녀의 입장에서도 불평을 말할 만한 이유는 충분히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결혼 생활은 비극으로 끝이 났습니다.
아이들이 조립품 로봇을 사다가 조립하는 것을 구경할 때가 있습니다. 조립을 하다가 잘 안되면 본드로 붙여버리는 것을 봅니다. 그렇습니다. 기계는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기계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내 마음대로 뜯어고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는 겁니다.
어떤 부부가 부부 싸움을 하고는 몇 일 동안 서로 한마디도 하지 않았습니다. 하루는 남편이 아침 일찍 회사를 가야했기 때문에 부인에게 먼저 말을 걸기가 싫어서 테이블 위에 메모를 남겼습니다. "아침 6시에 깨워 줘." 다음날 아침 남편이 침대에서 일어났더니 시간이 10시가 다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화가 난 남편이 부인을 찾으러 일어나는데 테이블 위에 메모지가 놓여있었습니다. "6시에요. 빨랑 일어나서 나가요!"
탈무드에 나오는 글에 보면, 아버지가 시집을 가는 딸에게 하는 말이 있습니다. 이 글을 여러분에게 전하면서 오늘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딸아, 만일 네가 남편을 왕처럼 존경한다면 그는 너를 여왕처럼 우대할 것이고, 만일 네가 너무 자존심을 내세워 그에게 봉사하기를 싫어하면, 그는 힘으로 너를 하녀같이 부릴 것이다.
만일 남편이 친구 집을 방문하러 갈 때는 목욕도 하게 하여 몸치장을 잘해서 보내도록 할 것이고, 남편의 친구가 놀러 올 때는 극진히 대접할 것이다.
그렇게 하면 남편으로부터 사랑을 받게 될 것이다. 언제나 가정에 마음을 쓰고 그의 소지품을 귀중히 여겨라. 남편은 기꺼이 네 머리 위에 관을 씌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