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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 바이러스
심신의 무거움을 털어주는 새벽산행을 즐긴 지 오래 되었다. 읍내동 E아파트에 거주할 땐 해원정사 뒤편으로 난 등산로 걷기 운동을 했다. 지금 사는 마을로 거처를 옮긴 후에도 산행을 그만 둘 수 없었다. 집에서 조야동을 넘는 함지산 능선까지 오가는 발걸음을 내 디딘지 이십 년이 지났다. 산행을 거르는 날은 몸이 찌뿌듯하여 하루를 견디기가 힘들다. 이젠 습관으로 굳어졌다. 능선에 올라 체조로 몸을 풀고 경사진 산길을 내려가면 발걸음이 가볍다. 이슬 젖은 수풀에서 묻어나는 향기를 맡으면 머리가 맑아진다. 일상의 행복을 느끼는 몇 분간이다.
삼 사 십대 시절엔 쪼들린 살림에다 일에 잡혀 아등바등 사느라 정신이 없었다. 얄팍한 월급봉투로만 살아 가다보니 주머니가 두둑해지면 행복이 절로 찾아 드는 줄 생각했다. 아내는 무대(舞臺) 옷을 짓는데 필요한 천을 자르는 부업을 수년 동안이나 했다. 가계부를 깨알같이 기록하였다. 덕분에 몇 평 더 큰 집으로 옮기고 없던 차를 구입해도 그건 잠시 동안의 즐거움에 불과했다. 공사나 금융기관에서 일하는 친구들에 비해 상대적 빈곤을 느꼈다. 가끔 주택복권을 구입하며 망상에 젖기도 했다. 돌이켜보면 참으로 아둔한 자신이었다. ‘현재 가진 것에 만족할 줄 아는 사람이 진정한 부자’라는 걸 지천명이 조금 지나서야 깨달았다. 행복의 파랑새를 크고 먼 곳에서 잡는 것보다 일상의 작은 일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은 그 보다 뒤 늦게 깨달았다.
행복은 무엇이며 어떻게 해야 행복해지는 가를 조금이나마 알게 된 건 연금공단의 상록자원 봉사단 김 선생에게 들은 ‘행복인문학’ 강의의 영향이 컸다. 고교에서 재직하다 퇴직한 후 퇴직공무원을 대상으로 ‘행복’에 대한 강의를 하고 있는 그는 해피 바이러스(Happy virus)전파 운동가다. 느닷없이 웃으며 개다리 춤을 추는 그의 모습을 처음 봤을 때 코미디언처럼 느껴졌다. 첫 날 두 시간 강의를 듣고 나니 과민성 대장 증상으로 우울한 기분에 젖어 있는 나의 마음 상태를 좀 밝게 해줄 수 있을 것 같았다. 행복 전도사로 여겨져 가까이 다가갔다.
그는 해피바이러스 운동 실천으로 “우리 모두 행복해집니다”라는 스티커를 수강생들에게 나눠 줬다. 다른 이들보다 훨씬 많은 매수를 받았다. 스티커에는 행복해지기 위한 다섯 가지 실천 덕목이 기재되어 있다. 기쁨의 원천인 ‘감사하기’, 자존감을 심어주는 ‘칭찬하기’, 행복 호르몬을 분비하는 ‘사랑하기’, 건강한 자아상을 심어주는 ‘긍정 언어’, 행복 힐링이 되는 ‘크게 웃기’ 등이다. 그 중에서 나는 ‘크게 웃기’를 먼저 시도하여 자신을 바꿔 보려고 헛웃음을 치기도 했다. 강의를 받은 지 일곱 달이 지난 지금은 처음보다 자연스런 웃음을 웃을 수 있게 되었다.
김 선생이 준 스티카에 기재된 다섯 가지 실천 사항을 되 뇌어보다 뭐가 한 가지 빠진 듯했다. 다섯 가지 항목도 중요하지만 그 외에 행복을 심어주기 위해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이다.
그것은 사람에게 먼저 마음의 문을 여는 것이었다. 가장 좋은 방법으로 ‘먼저 인사하기’라는 일상적인 화두를 떠올려봤다. 그렇지만 ‘먼저 인사하기’란 말처럼 쉽지 않다. ‘장유유서’라는 유교적 관습이 마음 저변에 자리 잡고 있어서 나이 많은 사람이 적은 사람에게 먼저 인사를 건네는 경우가 드물다. 또 직장에서는 나이와 관계없이 지위나 신분이 높은 사람이 낮은 사람에게 먼저 인사를 하지 않을 때가 많다. 먼저 본 사람이 먼저 인사 하면 되지만 실제는 나이가 적은 사람이 많은 사람에게, 지위가 낮은 사람이 높은 사람에게 먼저 할 때가 많다.
‘먼저 인사를 하는 건 먼저 마음을 주는 일이다’. 그런 생각을 되 뇌이다 어느 날 새벽, 만나는 사람들에게 먼저 인사를 했다. 자주 만나는 사람에게는 해피바이러스 인증 스티카를 건네주었다. 그런 행동을 지켜본 어떤 이는 내게 ‘장차 정치에 나가면 인사를 나누고 있는 이들의 표는 따 놓은 당상’이라며 농담을 했다. “저는 단지 솔잎을 먹는 송충이에 불과합니다. 제 그릇에 적합한 것을 채워야 행복해지지요.”라며 솔직한 심정을 털어놨다. 사실 자신의 그릇에 채워질 수 없는 것을 채우려다 불행해진 이들을 봤기 때문이다.
행복바이러스를 전파하기 위한 다섯 가지 실천 항목 중에 어려운 것이 ‘긍정 언어’와 ‘칭찬하기’이다. 흔히들 긍정언어로 생각하는 말 가운데 ‘부정’의 이미지를 나타내는 말이 많기 때문이다. 격려와 위로의 뜻으로 무심히 던지는 말로 얼핏 들으면 긍정언어로 들린다. 나도 그렇게 말할 때가 있다. 흔히들 말 하는 ‘아프지 마’, ‘병들지 마’, ‘애 태우지 마’, ‘고생 하지 마’, ‘걱정하지 마’, ‘고민하지 마’, ‘슬퍼하지 마’ ‘울지 마’, ‘오해하지 마’ 등으로 표현되어지는 말이다. 그런 말을 자주 쓰거나 들으면 부정용어로 인해 행복을 느끼는 데 장애가 될 수 있다.
부정적 심리를 유발시키는 말 표현 보다는 ‘건강해’, ‘나아질 거야’, ‘마음 편히 가져’, ‘기뻐 해’, ‘웃어 봐’, ‘이해 해’ 등의 긍정언어를 쓰는 편이 듣기 좋지만 일상적인 부정 언어에 길들여져 있어서 긍정언어가 잘 나오지 않는다.
또한 칭찬의 방법이 어려워서인지, 칭찬 받기를 좋아해서인지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남을 칭찬하는 데 인색하다. 세상은 칭찬이나 덕담보다는 잘못을 지적하거나 험담을 하는 데 익숙해 있다. 남을 욕하는 것은 곧 자신을 욕하는 것이다. 나 또한 남의 잘못을 비난하거나 욕한 적이 있었다. ‘눈을 조심하여 남의 그릇됨을 보지 말고 맑고 아름다움을 보라’는 글귀를 수차례 보고 들었음에도 왠지 실천이 잘 안 된다.
모든 사람들이 궁극적으로 바라는 삶은 행복이다. 저마다의 삶의 가치를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행복을 일구는 요소들이 천차만별이겠지만 김 선생이 벌이고 있는 ‘행복 바이러스 전파 실천운동’은 일상의 삶에서 행복을 찾자는 것이다. 지난날 오랜 시간을 마음속에서 행복을 찾으려하지 않았다. 서른 세평 이상의 아파트에 살며 중대형차를 굴리고 주머니가 두둑한 가장으로 아이가 좋은 대학에 들어가 좋은 직장을 잡는 가정을 한때 꿈꾸기도 했다. ‘소유하는 물건이 크고 주머니가 두둑하면 행복해질 수 있다’는 물질적 행복 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런 생각을 가졌던 건 쓰라린 가난에서 벗어나려는 생각에만 젖다보니 안빈낙도하는 방법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평범한 삶속에서 행복을 찾지 못했던 자신이 부끄럽다. 뜻밖의 불행한 일이 일어나지 않는 것을 행복으로 여길 줄 몰랐다. 식물인간이 된 사람이나 말기 암 선고를 받은 젊은이, 갑작스런 사고로 가족을 잃은 이들을 본다. 그렇다! 행복 바이러스는 크고 많은 것으로부터 반드시 전해지지는 않는다. 일상의 사소한 일일지라도 감사하고, 사랑하고, 칭찬하고, 긍정하고 크게 웃으며 전해보는 건 어떨까. 불행한 일이 일어나지 않는 그 자체를 행복으로 여겨야 할 것이다
2016. 10. 12
첫댓글 편견과 이기심으로 오염되지 않은 긍정의 행복 바이러스를 서로가 서로에게 전하고 전파하며 후손에게 물러 주어야 하겠지요.
햄복한 맘으로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최상순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