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하라 찾으라 문을 두드리라
눅 11:9-13
9 내가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10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11 너희 중에 아버지 된 자로서 누가 아들이 생선을 달라 하는데 생선 대신에 뱀을 주며 12 알을 달라 하는데 전갈을 주겠느냐 13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
기도 응답을 받으려면 몇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첫째는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약 1:6-7)라는 말씀처럼 의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또 하나는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잠 8:17)라고 말씀했듯이 간절히 하나님을 찾아야 합니다. ‘구하라’ ‘찾으라’ ‘문을 두드리라’라는 말씀에는 바로 이 두 가지 의미와 함께 이제 말씀드릴 ‘기도하기만 하면’ 이라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1. 구하라 찾으라 문을 두드리라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9, 10절).
“하나님이 내 형편을 아시면서 왜 안 주시는지 모르겠어요”하고 불평을 토로한 집사가 있습니다. 이 집사 말대로 하나님은 우리의 형편을 아십니다. 필요도 아십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이 주시지 않는 이유는 구하고 찾고 두드리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예레미야 29장에도 “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며 와서 내게 기도하면 내가 너희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렘 29:12, 13)라고 했습니다. 기도하지 않아서 받지 못하는 것이지 전심으로 하나님을 찾으면 들어주신다는 말씀입니다.
다윗이 사울에게 쫓겨 다닐 때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어디에 숨으셨는지 아무런 응답이 없었습니다. 이에 다윗이 탄식했습니다. “여호와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나를 영원히 잊으시나이까 주의 얼굴을 나에게서 어느 때까지 숨기시겠나이까 나의 영혼이 번민하고 종일토록 마음에 근심하기를 어느 때까지 하오며 내 원수가 나를 치며 자랑하기를 어느 때까지 하리이까”(시 13:1, 2). 이 말씀을 보면 ‘어느 때까지’라는 말이 네 번 나옵니다. ‘잊으시나이까’ ‘숨기시겠나이까’라는 말도 있습니다. 다윗이 영혼이 번민하고, 마음의 근심으로 인해 하나님을 찾았는데 응답을 받지 못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도 다윗이 낙심하지 않고 기도하자 응답의 확신이 생겼습니다. “내가 여호와를 찬송하리니 이는 주께서 내게 은덕을 베푸심이로다”(시 13:6). ‘은덕’은 ‘갚다’ ‘보상하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언젠가는 자기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해 주실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때로는 하나님이 내 기도가 듣기 싫다는 듯이 아무런 응답이 없을 때가 있습니다. 그래도 기도를 멈추지 않는 자에게 하나님은 은덕을 베푸십니다.
욥이 하루아침에 망(亡)했습니다. 그의 아내가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욥 2:9)고 하자, 욥이 “그대의 말이 한 어리석은 여자의 말 같도다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았은즉 화도 받지 아니하겠느냐 하고 이 모든 일에 욥이 입술로 범죄하지 아니하니라”(욥 2:10)라며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욥에게 하나님이 은덕을 베푸셨습니다. “여호와께서 욥의 말년에 욥에게 처음보다 더 복을 주시니”(욥 42:12). 욥이 하나님의 은덕을 입은 이유는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고 끝까지 찾았기 때문입니다.
기도 응답을 받지 못하는 이유는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하기 때문이요”(약 4:2)라는 말씀처럼 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또한, 기도를 드리다가 도중에 중단하는 사람에게도 응답하지 않습니다. 열왕기하 13장 14절 이하를 보면 엘리사가 죽을 병에 들자 이스라엘 왕 요아스에게 화살을 집어 땅을 치라는 내용이 있습니다. 이때 왕이 세 번을 치고 멈추자 엘리사가 화를 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노하여 이르되 왕이 대여섯 번을 칠 것이니이다 그리하였더면 왕이 아람을 진멸하기까지 쳤으리이다 그런즉 이제는 왕이 아람을 세 번만 치리이다 하니라”(왕하 13:19). 요아스가 대여섯 번을 쳤다면 아람을 완전히 진멸했을 텐데, 세 번만 치고 멈추는 바람에 아람을 완전히 진멸할 기회를 잃게 되자 엘리사가 노한 것입니다.
귀에 못이 박이도록 기도하라고 말을 해도 쇠귀에 경 읽기처럼 기도하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10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기도 응답이 하루아침에 오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하나님을 믿고 기도하면 반드시 응답해 주십니다. 그러므로 열심을 내어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2. 성령을 구하라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13절).
이 말씀과 병행 구절인 마태복음을 보면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마 7:11)라고 되어있습니다. 마태는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주신다고 기록한 반면, 누가는 ‘좋은 것’을 ‘성령’이라고 했습니다.
바울이 에베소에서 어떤 제자들을 만나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행 19:2)라고 묻자 “아니라 우리는 성령이 계심도 듣지 못하였노라”라고 했습니다. 오늘날 기독교인 중에 성령이 계시는지 모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하지만 성령을 구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돈이 좋고, 건강이 좋은지는 알아도 성령이 좋은지는 모르기 때문입니다.
박윤선 목사님은 ‘좋은 것’이란 영적인 것으로 “성령님의 뜻에 합당하고 또 성령님이 주시는 것들인데 그것이 물질일 수도 있고, 물질이 아닌 다른 것일 수도 있다”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성령을 구하면 물질건강평강이 따라오게 됩니다.
성령을 구하라
13절을 보면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 성령 받기를 위해 오로지 기도에 힘썼습니다. “여자들과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과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쓰더라”(행 1:14). 그 결과 그들 모두 성령의 충만함을 받았습니다.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행 2:4). 성령은 하룻밤 구한다고 해서 받는 것은 아니지만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행 1:5)라고 베드로가 말한 것처럼 구하기만 하면 몇 날이 못 되어 아버지께서 성령을 부어 주십니다.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고 있는 이때 우리를 지켜주시고 보호해 주시는 분은 성령님이십니다. 그뿐만 아니라 “그리하여 온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 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 가고 주를 경외함과 성령의 위로로 진행하여 수가 더 많아지니라”(행 9:31)라는 말씀처럼 교회가 부흥하는 것도 성령께 있습니다. 이사야 32:15절에는 “마침내 위에서부터 영을 우리에게 부어 주시리니 광야가 아름다운 밭이 되며 아름다운 밭을 숲으로 여기게 되리라”(사 32:15)라고 했습니다. 폐허가 된 남유다에 성령을 부어주심으로 광야는 아름다운 밭이 되고 이로 인해 하나님의 백성은 더욱 번성하게 될 것이라는 뜻입니다. 이 말씀은 신약시대인 지금 성령의 역사로 교회가 부흥하고, 성령의 은혜로 가족이 화목하며, 성령의 충만으로 살맛 나는 삶이 될 것이라는 예언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이런 성령님을 기도로 받을 수 있다는 것은 은혜중의 은혜입니다. 그런데도 불안과 두려움에 떨며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성령을 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기도를 한다고는 하지만 먹을 것과 입을 것을 구하는 사람도 인생이 힘들고 피곤한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기도란 성령을 구하는 것인데, 먹을 것과 입을 것을 구하는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제부터는 성령을 구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야만 ‘예수 믿고 좋아 좋아 살판났네’라는 어느 책 제목처럼 여러분의 영과 육이 그리고 가정과 교회가 살판나게 됩니다. 이 점을 명심하고 늘 깨어 성령을 구하시기 바랍니다.
▮결론
가난이 문제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취업하지 못해 걱정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보다는 기도하지 않는 것이 문제요, 성령으로 충만하지 않는 것이 문제입니다. “사람의 일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 외에 누가 알리요”(고전 2:11)라는 말씀처럼 성령님은 우리의 사정을 아시고 도우시고, 인도하시고, 영육간에 좋은 것을 주기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아니라 우리의 형편과 사정을 아시는 성령님을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주야로기도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