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에스겔 37:1-14
제목; 하나님이 하시면 됩니다.
지난해까지 성탄절과 송구영신예배는 원하든 원치않든 한껏 고조된 분위기 속에 예배를 드렸었습니다.
그런데 코로나 바이러스가 전 세계에 퍼지며 지금껏 경험해 보지 못했던 새로운 세상이 우리 앞에는 펼쳐져 갑니다.
다다익선(多多益善)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많을수록 좋다는 의미입니다. 많을수록 좋은 것은 뭐가 있을까요?
그렇죠? 뭐니 뭐니해도 돈은 많으면 좋습니다. 교회도 사람이 많이 모이면 부흥했다고 말합니다. 건강도 왕성(많으면)하면 좋습니다.
이외에도 많으면 좋은 것들이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면 많기는 많지만 직접 대면하고 싶지 않는 것을 본문 1-2절에서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1.여호와께서 권능으로 내게 임재하시고 그의 영으로 나를 데리고 가서 골짜기 가운데 두셨는데 거기 뼈가 가득하더라 2. 나를 그 뼈 사방으로 지나가게 하시기로 본즉 그 골짜기 지면에 뼈가 심히 많고 아주 말랐더라”(에스겔 37:1-2) 한번 상상해 보세요. 좌우지간 뼈는 보는 사람의 기분을 좋게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뼈가 아주 많은 골짜기로 하나님의 손이 에스겔을 붙잡고 가셨습니다.
그런데 더욱 기막힌 것은 하나님께서 에스겔에게 하시는 3절의 질문입니다.
“인자야 이 뼈들이 능히 살수 있겠느냐”(겔37:3上 )
기가 막힌 하나님의 질문에 대답하는 에스겔의 답변 또한 대단합니다.
“주 여호와여 주께서 아시나이다”(겔37:3下)
현대인의 성경은“ 주 여호와여, 주께서만 아십니다”라 번역하고 있습니다.
직접 화법이 아닌 간접 화법을 택하는 에스겔에게 하나님께서는 피할 수 없는 선택을 요구하시는 말씀이 4절-6절입니다.
그것은 마른 뼈들을 향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마른 뼈는 무엇을 상징할까요? 37:11절에 마른 뼈에 대한 설명이 나옵니다.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이 뼈들은 이스라엘 온 족속이라 그들이 이르기를 우리의 뼈들이 말랐고 우리의 소망이 없어졌으니 우리는 다 멸절되었다 하느니라”
하나님께서는 에스겔 선지자를 통하여 에스겔 당시의 이스라엘 백성들의 상태를 3가지로 묘사합니다. ❶ 우리의 뼈들이 말랐다. 더 이상 악화될 수 없는, 회복 불가능한 상태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표현이라 하겠습니다.
❷ 우리의 소망이 없어졌으니,
민족의 미래에 대한 기대가 사라졌다는 말입니다.
내일에 대한 희망이 사라졌음을 ❸ 우리는 다 멸절되었다 라 자조 섞인 탄식을 합니다.
그러한 마른뼈 상태같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에스겔 선지자에게 그들을 향해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예언)하라는 것입니다.
구약시대 선지자를 예언자라 불렀습니다.
그런데 성경의 예언은 하나님의 뜻(계시)을 백성들에게 알리는 것을 말합니다.
타 종교의 예언과는 질적 차이가 나는 부분입니다. 그런점에서 예언자는 개인의 길흉화복을 말하기도 하지만 그것은 하나님의 뜻과 계시를 알려주는 연장선상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왕상 13장 참조)
그러나 대부분의 예언은 하나님의 말씀(계명)대로 살 것을 예언하는 사람을 선지자라 합니다.
그런데 마음이 굳고 목이 곧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보여준 모습은 하나님의 뜻보다 자기의 유익과 욕망을 쫓아 살아가는 모습들을 보여줍니다.
본문 역시 마른 뼈 같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상태를 에스겔 선지자에게 보여 주시며
그럼에도 하나님의 말씀을 그들에게 전하라 하십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진정한 하나님의 사람은 멸시와 핍박과 조롱당함은 피할 수 없는 길임을 알아야 하고 각오해야 함을 배우게 됩니다.
말씀을 전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대언했더니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37:7-8절입니다.
7. 이에 내가 명령을 따라 대언하니 대언할 때에 소리가 나고 움직이며 이 뼈, 저 뼈가 들어 맞아 뼈들이 서로 연결되더라 8. 내가 또 보니 그 뼈에 힘줄이 생기고 살이 오르며 그 위에 가죽이 덮이나 그 속에 생기는 없더라
그렇습니다. 마른뼈가 살아날 수 있습니다. 그것도 아주 마른뼈라 할지라도 살아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마른뼈가 살아날 수 있는 전제 조건은 여호와의 말씀이 그 심령속에 들어갔을 때(말씀이 바르게 전해 졌을 때)입니다.
본문을 자세히 보면 마른 뼈들이 제 짝을 찾아서 자리를 잡고 살을 입히며 사람 골격을 갖추어 가는 모습을 바라보던 에스겔 선지자의 마음은 얼마나 감격과 감동에 취했겠습니까?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말씀이 마른뼈들에게 전해지고 사람의 모습은 갖추어 졌는데
그들에게 부족한 것이 있더라는 것입니다.
“그 속에 생기는 없더라”
.생기로 번역된 '네솨마'는 '영혼'(잠 20:27), '호흡'(사 2:22), '기운'(욥 33:4) 등으로도 번역되었습니다. 일반적으로는 인간의 '혼'을 의미하나 여기서는 모든 생명체의 '기식'(氣息)을 의미합니다.
인상적인 점은 하나님의 말씀이 마른뼈에 들어가자 마른뼈 조각들이 서로 맞추어졌고, 나아가 인체구조가 완성되어졌음에도 그 속에 여호와의 기운이(호흡)이 없으니 생명체가 아니더라는 것입니다.
본문의 말씀을 보며 연상되어지는 신약의 말씀이 바로 요한복음 1:14절입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생기가 들어가도록 명령했더니 마른뼈들은 지극히 큰 군대가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전인적 인간,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라는 말은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숨결이 우리속에 고스란히 녹여진 모습을 간직하는 형태를 말합니다.
그래서 옛날 어르신들은“사람이면 다 사람이냐? 사람다워야 사람이지”라 하셨던 이유 역시 인간 안에는 하나님의 말씀과 숨결이 호흡할 때만이 진정한 사람 구실을 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2021년을 시작하는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우리 앞에 놓인 현실은 마른뼈들 같습니다. 그것도 아주 말랐더라 와 같은 상황입니다. 그럼에도 오늘 선지자를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우리 앞에 새로운 역사를 보여 주시겠다 하십니다.
에스겔 37:12-14절입니다.
12. 그러므로 너는 대언하여 그들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내 백성들아 내가 너희 무덤을 열고 너희로 거기에서 나오게 하고 이스라엘 땅으로 들어가게 하리라 13. 내 백성들아 내가 너희 무덤을 열고 너희로 거기에서 나오게 한즉 너희는 내가 여호와인 줄을 알리라 14. 내가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가 살아나게 하고 내가 또 너희를 너희 고국 땅에 두리니 나 여호와가 이 일을 말하고 이룬 줄을 너희가 알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렇습니다. 비록 무덤에 있다 할지라도 만군의 여호와께서 무덤을 여시면 무덤은 열립니다. 그리고 무덤속에서 나올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하나님의 말씀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여시면 열리고, 닫으시면 닫힙니다. 그래서 성도는 이렇게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하시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