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U2FI3vdoTY8
예수우리들의 밝은 빛
https://youtu.be/mN1OwTb-wYo
나의 백성이 다 겸비하여

결론 먼저 내기 :
때론 주의 백성이 이방인보다 더 무뎌질 때가 있습니다.
그것은 보이지 않는 존재들이 우리를 사방으로 우겨 쌌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들을 떠나 보낼 수 없습니다.
예수님도 그들의 시험을 당하셨고 날마다 주의 얼굴을 구하며 그들과 대적 하실 만큼 그들은 보이지 않는 능력으로 우리의 삶에 교묘히 위장하여 들어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추악한 본성이
혼자서는 능히 죄를 이기지 못할 것을 아셨기에 언약궤안에 인간들의 추악함의 결정체들을 넣어 우리 자신을 매일 돌아볼 것을 명하셨지만
우리는 그 언약궤를 되려 우상화하고
그것을 만드신 본질이신 하나님을 알라딘의 요술램프로 전락시켰습니다.
진정한 언약궤의 본질은?
예수 그리스도 한분 뿐입니다. ~!
언약궤를 잃어 버린 어미소는?
판단력이 흐려져 자신이 독약을 먹은지도 모르고 새끼에게 젖을 먹입니다.



{벧세메스의 어미 소 녹음분}
해설 ; 이스라엘을 치려던 블레셋은 출애굽에 대한 소문을 듣고 두려워하며 이스라엘과 싸우게 된다. 그러나 그런것을 모른채 더욱 두려움에 빠진 이스라엘 백성들은 주님의 언약궤가 그곳에 있어야 블레셋을 이길 것이 라고 생각해 언약궤를 메고 싸움에 임했다가 되려 언약궤를 빼앗기고 대패하게 된다.
7달이라는 시간이 흘러 여기는 블레셋의 어느 도시
아직 멍에를 메어 본 일이 없는 어미 소 두 마리는 젖 먹이던 새끼와 자신을 떼어놓는 인간들이 너무도 원망스러웠는데~ 설상가상~ 사람들은 어떤 궤를 가져다가 새 수레에 싣더니 금으로 만든 종기모양과 쥐의 모양들까지 얹어 궤 곁에 두었다. 그리고는 ~~
블레셋 간부들 ; "어미 소들아 네가 가고 싶은 대로 가거라~ 니들 새끼는 왼쪽에 있고 궤가 본래 있던 실로쪽으로 가는 길목의 저~벧세메스는 곧장가야한다.
너희가 그쪽 올라가면, 그 큰 재앙은 이스라엘의 신이 내린 것이고 ~~
너희가 새끼 있는 곳으로 가면 그것은 이스라엘의 신이 우리 블레셋을 친 것이 아니라, 우연~~히 그런 재앙을 당한 것으로 이해할 것이다.
이스라엘의 궤를 빼앗은 지난 7달동안 우리 다곤신이 궤앞에 쓰러지고 역병이 돌아 백성들이 화가 많이 나 있으니 이것으로 판가름하여 우리 블레셋 백성들에게 온 이 역병으로 인한 여론을 잠재워야 한단 말이다."
해설 ; 소는 앞서 말했듯이 모성애가 사람보다도 강한 동물! 젖을 물리던 어미소가 새끼 쪽으로 갈 것은 뻔하다 못해 200,300프로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진다.
어미소 1 ; "우리 맘대로 가라고~? 그럼 우리 새끼들에게로 가야지 ~~"
어미소 2 ; "그럼 !!! 그럼!!! 암만!!!
자 ~ 왼쪽으로 갑시다.~~"
해설 ; 곧바로 제 새끼들에게 돌아가려고 몸을 돌리던 어미소들은 알 수 없는 힘이 자신들을 벋세메스 쪽으로 끌고 가는 것을 느꼈다.
어미소 1 ; "힘쎈 송돌이 엄마 어떻게 좀 해봐~"
어미소 2 ; "나도 어쩔 수가 없슈 ~ 송순엄마~~~몸이 자꾸 다른 쪽으로 가요"
어미소 1,2 ; "에고 ~우얄꼬 ~~우리새끼들을 우얄꼬 젖이 뿔은 걸 보니 내 새끼 배고픈 시간이네~~~아이고 어쩌나 불쌍한 내 새끼들~~
엉 엉 엉"
해설 ; 미물인 소가 새끼를 떼어놓고 가보지 않은 길을 오른쪽으로나 왼쪽으로나 벗어나지 않고, 울면서도 똑바로 벧세메스 쪽으로만 갔고, 그 뒤로 블레셋 통치자들이 벧세메스의 경계까지 따라서 갔다. 그렇게 그 소들은 주께서 이끄시는 대로 자신의 상황과 처지와 감정과 의지를 언약궤에 묶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았다.
그런데 그들의 슬픈 운명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어쩌면 어미 소들은 벧세메스에 도착해서 그곳 사람들이 궤를 보고 기뻐할 때 이제 새끼를 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곳에서 언약궤를 싩었던 나무 수레는 쪼개져 장작이 되었고,
그 어미 소들도 마치 장작처럼 번제물로 살라서 주께 바쳐졌다.
그렇게 어미소들은 다시 새끼들을 볼수 없었고 인어공주처럼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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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미 소들이 불살라진 사건은 당시 블레셋의 지도자들이 여론은 잠재우기 위해 궁여지책으로 만들어낸 일이었지만 우리는 여기에서 중요한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1.정작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크심을 인정하지 못하고 있을 때~~비록 이방인들이었으나 자신들이 업신여긴 이스라엘의 신의 위력을 인정하게 되었다는것과
2.하나님께서는 제사장 나라로써의 본질을 잊어버린 이스라엘 백성을 대신해 블레셋사람들에게 번제에 필요한 모든 것들을 준비시키셨다는 것입니다.
[대속의 죽음~~어미소들의 죽음은 누군가의 죽음과 너무도 닮아있습니다.
죄 없이 죄인이 되어 이유 없이 번제물이 되어야 했던 그 분~~ 그는 아버지께 순종하여 그저 이끄시는 대로 끌려갔고 자신이 사랑하는 제자들을 위해 변명 한번 없이 순한 어린 양 처럼 온갖 모욕과 질고를 소리 없이 당하셨습니다.
늑골이 조여와 숨통이 쪼그라들고 중력에 의해 몸은 아래로 아래로 내려가는데 손과 발엔 대못이 박혀있는 십자가형의 자비는 그 아픔을 잊게 하기 위해 주는 해면에 적신 신 포도주 한 모금입니다. 그러나 그는 그 마취제 또한 거절하며 오롯이 온전히 그리고 전심으로 그 대속을 치르셨습니다.
나의 죄가 아닌 다른 이의 죄의 대가를 치르는 것, 윤동주와 같이 육신은 죽었으나 그의 정신은 살아있는 것. 그것이 또 다른 형태의 부활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사무엘상의 기자는 병치구조를 통해 한나의 가정과 엘리제사장의 가정을 번갈아 나열하며 독자들이 이 책을 통해 무언가를 깨닫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이 시대는 사사시대~ 사사기에 나오는 인간사의 사이클
( 이스라엘 백성의 범죄 → 하나님의 경고 → 뉘우치지 않고 도리어 가중되는 범죄 → 이방 군대를 동원한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 → 이스라엘 백성의 회개 → 사사를 통한 구원 → 시간이 흐르면서 다시 시작되는 범죄로 이어지는 일련의 사이클(cycle)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
이처럼 반복되는 범죄의 역사는 내면에 잠재되어 있는 인간의 죄악성과 부패성을 적나라하게 노출시켜 줍니다. 뿐만 아니라 인간 중심의 세계관이나 인본주의적 윤리관이 인간을 구원과 행복의 길로 인도해 주기는커녕 오히려 더욱 절망과 파멸로 이끈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보여 줍니다.
동시에 오직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와 하나님중심적(신본주의적)인 삶에 자신을 복속시키는 자만이 오히려 해방과 구원의 기쁨을 맛보게 된다는 역설적 진리를 가르치고 있습니다.(라이프성경사전).)
이스라엘 백성들은 보이는 언약궤를 우상시했습니다. 사실 하나님의 마음이 없는 언약궤는 그냥 금을 입힌 궤에 불과 한 것인데 언약궤만 가져오면 블레셋을 이길 꺼라 생각한 것이 화근이었던 것입니다.
그들이 물려줄 유산은 보이는 언약궤가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었지만 그들은 그저 눈에 보이는 부와 명예만 물려주면 후손들이 잘 살꺼라고 생각했습니다.
우리는 때로 본질을 잊고 생활 할 때가 많다. 자녀가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고 내가 생각한 필요를 채워주는 것으로 위로를 받습니다. 그러나 본질은 항상 보이지 않습니다.
🤔고린도후서 4;16~18○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 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 🤔
❤에베소서 6;12.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보이지 않는 악한 영적인 능력은
그들이 파고들 인간사의 모든 욕심들을
보이지 않는 선한 능력인
오직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물리치는 방법안에 있습니다.
주님~
보이지 않는 존재가 보이는 존재를 움직이듯이 보이는 우리가 가진 보이지 않는 영적인 능력이 보이는 현상으로 나타나 벧세메스의 어미 소들을 이끌었던 능력이 예수께서 십자가의 대속으로 얻어낸 그리스도라는 이름임을 분명히 알게 하소서~
첫댓글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