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허금현 베드로 형제님과 이숙자 소피아 자매님댁이 수락산 ME회장직을 맡게 되었습니다.
회장님의 제안으로 매월 ME부부 현재 6쌍 각 가정을 돌기로 하였는데,
가정에 부담을 주지 않는 방법으로 음식 한가지씩을 준비해 매달 모였습니다.
모두 음식 솜씨도 좋으셔서 매 번 너무나 화목하고 풍성한 식탁에 감사하며 행복한 시간을 나누었습니다. 꽃 피는 따뜻한 5월 기다리던 성지순례를 떠났습니다.
토요일 아침 성당에서 만나 본당 신부님께 인사를 드리고 출발~~gogo~!
요셉, 베드로 형제님의 수고로 차 2대가 출발하여 중간에 여주 휴게소에서 만나자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서로 어긋나 만나지 못하게 되자 마리아 자매님이 그 근처 감곡에 있는 매괴성당에 들르자 하셔서 저는 이름 낯설은 매괴성당엘 가게 되었습니다. 매번 순례지에 갈 때마다 좋았지만 오늘 또한 대단한 축복을 받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감곡매괴성모순례성당
‘매괴’라는 이름을 들은적은 있었도 갸우둥했었는데.. 장미꽃다발을 뜻하는 ‘로사리오(Rosario)’ 묵주기도- 로사리오의 중국식 번역 한자어가 ‘매괴’라는걸 알았습니다.
우리나라가 중국으로부터 천주교를 받아들일 당시 이 용어를 함께 받아들여 사용했었다합니다.
감곡본당은 1896년 설립되어 115년이 넘는 역사를 간직한 곳입니다.
임가밀로 신부님에 의해 설립된 이 성당은 충청북도에서는 가장 오래된 성당으로
민족의 아픈 역사, 일제강점기와 6.25전쟁을 함께 하였고 일제강점기엔 청년들과 학생들에게 한글교육을 통해 민족의식을 고취하고, 민족의 맥을 이어주었고, 6.25전쟁 때엔 성모상이 수난을 당하기도 했답니다.
성당 홈페이지 소개에 따르면 초대 본당 신부였던 임가밀로는 프랑스인으로 1894년 사제품을 받고 우리나라로 와서 여주 부엉골에 부임하셨습니다. 이후 새로운 사목지를 찾던 중 장호원에서 대궐같은 멋있는 큰 집 을 발견했답니다. 그는 이후 “이 집을 성당으로 삼을 수 있게 해달라고, 그러면 마리아성모님을 주보(수호성인)로 모실 것”이라고 매일 성모님께 간절히 기도하셨답니다. 마침내 그 기도는 이뤄져 1896년 10월 그 자리에 본당을 세울 수 있었고. 이후 1930년에 다시 지은 것이 지금의 성당이랍니다.
수락산 ME부부 회장댁 베드로, 소피아부부의 다정하신 모습
임 가밀로 신부님
매괴 성모성지 ‘영성의 집’ 앞에는 임가밀로(Camille Bouillon, 1869~1947) 신부의 동상과 그 발아래 한 줄의 글이 새겨진 돌이 있습니다. "나는 여러분을 만나기 전부터 사랑했습니다."이는 임 신부님이 평소 성당 신자들에게 자주했던 말이라고 합니다. 임 신부님은 지금의 자리에 감곡성당을 마련하고, 51년 동안 감곡본당에서 사목생활을 하셨다합니다. 한국을 진심으로 사랑했던 그는 본래의 사명인 복음 전파뿐 아니라 민족교육, 민족의식 고취를 위해 힘썼던 사제이셨기에 매괴 성모성지 곳곳에는 그 분의 향기가 많이 남아 있습니다.
임 가밀로 신부님은 1947년 “성모여, 저를 구하소서”라는 마지막 말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셨다합니다.
명동성당과 너무나 닮아 놀라움을 준 멋진고딕성당
신발을 멋고 들어간 성당, 모두들 기도를~!
매괴 성모상은 프랑스 루르드에서 제작하여 1930년 대성전 건립시 제대 중앙에 안치 되었는데
한국전쟁 때 인민군의 총을 7발이나 맞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총알 자국이 그대로 보이네요. ㅠ.ㅠ
(가까이 사진을 찍을 수가 없어 엽서를 찍어 올리니 화질이 좋지않네요.~^^;;)
석조 건축물, 매괴박물관
성당 옆으로는 매괴박물관이 있습니다. 이 건물 또한 1930년대 지어진 오래된 석조건축물로 화려하지는 않지만 자연스러운 멋이 느껴집니다. 조심스레 박물관 문을 열어 내부로 들어서니 박물관은 지하 1층, 지상 2층이 구조로 이뤄져 있었습니다. 1층 전시실에는 1930년대에 사용됐던 성세대를 비롯해 정약종이 쓴 교리서 ‘주교요지’, 신구약성서 한지 필사본 등 다양한 천주교 유물들이 전시돼 있었습니다.
임 신부님은 입국할 당시 고종 황제로부터 태극기 하나를 받았는데 그는 일제강점기 때 이 태극기를 제의장 밑에 깔고 미사를 돕던 사람들에게 가끔씩 보여주셨다합니다.
당시는 일제의 감시로 사람들은 태극기를 만들지도, 마음대로 꺼내기도 어려웠던 시기. 이에 임 신부님은 우리 민족에게 태극기를 보여줌으로써 민족의식을 일깨우고자 했던 것이며 정말로 마음 깊숙이 한국을 사랑했고, 한국의 신자들을 사랑했던 마음이 느껴졌습니다.
임 신부님이 50년이나 신으셨던 신발이라고 합니다. 얼마나 청빈하게 사셨는지 고개가 절로 숙여집니다.
성광
성체현시, 성체강복, 성체행렬등에 성체를 보여주는데 쓰는도구
1914년 제1회 성체현양대회를 시작으로 현재가지 사용하고 있답니다.
박물관에서 내려다 본 감곡성당
요셉, 마리아 부부
베드로, 소피아부부
남편 바오로씨와 저 프라안젤리카
안젤라자매님, 전임 회장댁 시메온, 아나스타시아부부
(아직 세례를 받지 않으셨다고 사진을 안찍으시겠다는 형제님덕에?~)
총무를 맡아 많은 준비로 감동을 주신 ME얼짱부부 미카엘, 미카엘라님
안젤라 자매님부부 빠지시고~^^;;
소피아, 마리아 자매님
미카엘라, 안젤라 자매님
박물관 옆으로는 산을 따라 묵주기도길과 십자가의 길 14처가 이어져 있다는데 가보지를 못했습니다. 그리고 산 꼭대기에는 산상 십자가가 세워져 있는데 멀리서도 이 십자가가 보일 만큼 크고 높게 세워져 있습니다. 성지를 둘러보고 외국인 신부님의 사랑이 전해져 마음이 따뜻하고 졸지간에 이렇게 좋은곳을 안내하신 ME부부 자매,형제님들과 무엇보다도 저희를 이곳으로 인도해 주신 성모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성당 주차장에서 마을을 바라보니 장호원 유명한 복숭아마을답게 아름다운 복사꽃이 화사하니 아름답습니다.
-소식일부 천지일보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