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문단 신인상 심사평
세상은 스스로 만들어 가는 것
조남선(시인, 본지심사위원)
누가 세상을 고해(苦海)라고 했는가? 그 어느 성현(聖賢)도 세상이니 인생이니 하면서, 마치 세상은 괴로움의 바다인 것처럼 말씀한 적이 없다. 세상은 본래 지옥과 극락천당의 구분이 전혀 없으나 각자가 스스로 이름 지어 만들어 갈뿐이다. 그것은 조금만 깊이 있는 공부를 하다보면 쉽게 체험하고 체득될 수 있는 것이다. 마음의 평정을 잃게 되면 번뇌 망상이 하루에도 수백 수천 번씩 극락천당과 지옥을 넘나들게 하는 것이다.
진정한 도(道)를 성취한 이에게는 위에서 언급한 세계 같은 것은 없다. 어째서 그러냐? 고 묻는다면, 이미 초월한 경지에 있기 때문에 늘 안락하고 편안한 것이다. 특히 인생을 어느 정도 살아온 늦깎이 문인들의 글을 보면 실상이 드려다 보인다. 그렇다고 하여 각자의 삶을 평가하자는 것은 물론 아니다. 다만 문학적인 소양과 창작성을 가늠해 볼 뿐이다. 2022년 계간문예지국제문단봄 호 신인상에 응모한 박 범인 님의 작품을 살펴본다.
"깻잎 노인"
박범인
/∼"박 노인은 세상사는 일이야/ 낏잎 한 장만 알아도 된다 며/
늘 환하게 웃는다/ 깻단을 두드려야 깨가 쏟아진다는데/ 깻단 한 번 두드리지 않고도/ 평생 쏟아지는 깨만 안고 살아왔다며/ 나보다 더 재미있게 사는 사람 있으면 나와 보라고 큰 소리쳐도/ 모두들 박 노인 앞에서는/ 입을 다물고 만다/ ∼ 불콰해진 박 노인의 얼굴은/ 검자줏빛 금산추부 들깻잎이다/ 안주삼아 손을 뻗어 깻잎 한 장 뜯어/ 조선 된장에 꾹 찍어 먹다가 팔 베게 하고/ 깻잎 향기 이불 삼아 덮고/ 혼자 잠이 들곤 한다/ 깨를 심으면 깨가 난다는 사실만 아는/ 박 노인은 나이도 모르고 산다/ 깨에 무슨 나이가 있느냐 하며./"
역시 세상살이의 달인(達人)만큼이나 가슴을 훅 치고 들어오는 묘미(妙味)를 느끼게 하여 사실상 이 한 편으로 응모자의 모든 것은 드러나 있다고 볼 수 있다. 박 노인만큼이나 낙천적이며 인생 공부가 됐다면 뉘라서 걱정을 하며 살리오.
"모란 앞에서"는 오월이 오는 모습을 어렵지 않은 예쁜 시어들로 구사하여 시적 감각을 극치에 이르게 한 것이 문학적으로 매우 높이 평가할 수 있겠다. 특히 독자들의 시심(詩心)을 자극하는데 매우 효과적이라고 생각한다.
"칠백의총 앞에서"는 순국선열과 애국충정에 대한 작가의 불굴의 의지를 다짐한 작품으로 아마도금산 땅이 작가의 고향인 듯 보이는 안타까움과 애절함 그리고 대장부로서 미래의 다짐을 하는 강한 의지(意志)의 詩라고 볼 수 있다. 다수의 작품을 응모해 왔으나 시인으로서의 소양과 문학성은 이미 “깻잎 노인”에서 결정이 됐다고 보아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이상과 같이 위 세편을 심사위원 전원이 만장일치로 2022년 계간문예지국제문단봄 호 제29기 詩 부문 신인상에 당선됨을 진심으로 축하하며 박범인 님의 창대한 문운으로 대성하기를 기원하는 바이다.
심사위원: 시인 도창회, 소설가 윤형복, 시인 이상진, 시인 조남선
심사위원장 도창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