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2-08 주일설교
지금도 부르고 계십니다
(요한복음 1:43~51)
사람들은 누구나 무엇인가를 찾고 있습니다. 좋은 직장을 찾고 좋은 배우자를 찾습니다. 그런가하면 다람쥐 쳇바퀴 같은 일상에서 벗어날 새로움을 찾기도 합니다. 사람들이 이렇게 더 좋은 것을 찾는 것은 악한 욕심일까요? 저는 그렇게 나쁘게만 보지 않습니다. 사람들의 소원을 한 마디로 줄이면 행복입니다. 행복하기 원해서 돈과 지식과 명예 등을 찾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행복의 수단들이 쉽게 손에 들어오지 않는 것입니다. 더 큰 문제는 원하는 것들을 어느 정도 가져 봐도 기대했던 만족이 생기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현대인들이 한 가지 발견한 것이 ‘소확행’이라는 덧입니다.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느껴보자는 것이죠. 푹푹 찌는 여름에 한 잔의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소확행입니다. 진눈개비가 날리는 골목길에서 뜨거운 오뎅 국물 한 잔도 소확행이죠. 저는 지난주에 그 동안 살까 말까 망설이던 셀카봉 삼각대를 질렀는데 저의 소확행입니다.
그런데요, 소확행은 잠깐의 위안일 뿐 진짜 행복은 아니죠. 우리는 진짜 행복은 예수님을 만나는 것임을 다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렇게 노래합니다.
그대가 만일 참된 행복을 찾거든 예수님을 만나 보세요.
그분으로 인하여 참 평안을 얻으면 나와 같이 고백할거요
난 예수가 좋다오 ~
“예수님이 행복의 근원입니다.” 그런데 소수의 은혜 입은 사람들은 이 사실을 알지만 더 많은 사람들은 이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은 이 두 종류의 사람 모두에게 행복의 길이 되시며 그 양쪽 모두의 사람을 향해 이렇게 부르고 계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 11:28)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빌립과 나다나엘은 각각 행복의 길을 알고 찾는 사람과 모르고 찾는 사람의 대표자입니다. 예수님은 이 두 사람 모두를 불러 주셨습니다. 예수님이 빌립과 나다나엘을 부르신 과정을 통해서 여러분도 예수님이 참 행복의 길임을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또한 여러분의 ‘나다나엘’에게 예수님을 소개하는 ‘빌립’이 되시기 바랍니다.
1. 예수님을 빌립을 부르셨습니다.
예수님이 빌립을 부르시는 장면은 너무 단순해서 좀 의아합니다. 예수님이 “나를 따르라”고 하시자 곧 빌립은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습니다(43절). 빌립이 왜 이렇게 쉽게 예수님을 따랐을까요? 빌립이 준비된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44절을 보면 빌립이 안드레와 베드로와 같은 동네 사람이라고 합니다. 안드레는 원래 세례요한의 제자였다가 세례요한의 소개로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된 안드레는 자기 형 베드로에게 예수님을 소개했습니다(40-41절). 베드로 및 안드레와 한 동네 사람인 빌립은 예수님 소문을 듣고 제자가 되고 싶던 차에 예수님이 빌립을 불러주신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예수님이 직접 불러주시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1) 저와 같이 합신에서 공부한 여자 집사님이 있었습니다. 아무도 이 분을 전도하지 않았는데 혼자 성경을 읽다가 교회에 나왔습니다. 그런데 교인들이 전도를 하지 않는 것을 보며 마음이 불타서 유모차를 끌고 다니면서 전도를 했습니다. 이 분은 서울대학교 약학대학을 나오신 분이었는데 약사를 그만두고 신학을 공부하여 목사님이 되었고 지금은 남편과 아들도 목사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이런 분은 하나님께서 직접 부르신 분입니다.
(예2) 제가 서울 석촌동의 성심교회에서 부목사로 있을 때 스스로 교회로 찾아오신 60대 여자 분이 있었습니다. 그 분은 몸이 아파서 병원에 다녀 보고 굿도 해 보고 불공도 드려보다가 소용이 없어서 교회로 오신 분입니다. 그 분이 석촌동의 교회마다 가서 문 앞에 서 있었지만 아무도 이끌어주지 않았는데 제가 그 분을 교회로 이끌어 드렸더니 저를 구원의 은인처럼 고마워하고 제가 개척했을 때 용인까지 와서 전도를 도와주기도 했습니다.
(예3) 우리교회 이윤경 성도님도 하나님께서 불러주신 분입니다. 평생 예수 믿지 않던 분이 예수님을 믿고 싶다는 생각이 생긴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마음입니다. 손 권찰님이 그런 마음을 알고 우리 교회로 인도해서 지금 아름답게 신앙생활도 잘 하고 있습니다.
(예4) 저도 빌립처럼 자연스럽게 주님 앞에 나왔습니다. 제 아내도 중학생 때 스스로 성경책을 사서 교회에 찾아간 사람입니다. 여러분 중에도 빌립 같은 분이 계실 것입니다. 이처럼 빌립을 부르신 예수님은 계속해서 또 다른 빌립을 부르시고 계십니다.
2. 빌립을 부르신 예수님은 나다나엘도 부르셨습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된 빌립은 너무 행복해서 나다나엘을 찾아갔습니다. 우리교회 손윤찬 권찰님도 아무나 만나면 우리교회 가자고 하시는데 빌립처럼 전도의 왕이 되실 줄로 믿습니다.
빌립은 평소에 나다나엘이 성경에 약속된 메시아를 갈망하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48절에서 말하는 “무화과나무 아래”는 고대 이스라엘에서 율법을 읽던 장소입니다. 이스라엘은 덮지만 건조한 기후라서 그늘만 있으면 매우 시원합니다. 그런데 무화과나무는 잎사귀가 넓어서 그늘이 짙고 무화과나무의 향도 좋아서 최적의 휴식과 묵상의 장소였습니다.
나다나엘은 자주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성경을 읽으며 하나님이 약속하신 메시아를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지금 빌립이 와서 메시아를 만났는데 나사렛 출신 예수라고 했습니다. 예수가 메시아라는 말을 나다나엘은 선뜻 받아들이기 어려웠습니다. 당시 대부분의 유대인들이 그랬듯이 나다나엘이 보기에도 예수님은 성경에 예언된 메시아가 아닌 것 같았습니다. 메시아가 나려면 예루살렘에서 나야 하고 제사장이나 왕족 중에서 나야 하는데 나사렛 촌 동네에서 어떻게 메시아가 나는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나다나엘이 메시아를 기다린 것은 현대인이 행복을 갈망하는 것과 같은 마음입니다. 나다나엘이나 현대인들이나 모두 자기 인생의 문제를 해결해 주고 자기를 행복하게 해줄 그 누군가 혹은 그 무언가를 찾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나다나엘이 그랬듯이 대부분의 현대인들은 예수님이 바로 그 문제의 해결자이며 참 행복을 주실 분이라는 것을 이해할 수 없어서 받아들이기 어려워합니다. 우리 주위에도 빌립처럼 마음이 열린 사람보다는 나다나엘처럼 마음을 닫고 있는 사람도 많습니다. 이렇게 마음을 열지 못하는 나다나엘을 위한 빌립의 처방은 의외로 간단했습니다. 직접 와서 예수님을 만나 보라는 것이었습니다(46절). 나다나엘이 예수님을 만나자 바로 바로 믿음을 고백했습니다(49절).
(교회가 예수님이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할까요? 오늘날에는 예수님이 안 계신데 어떻게 와서 예수님을 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예수님의 얼굴을 보여주지 못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몸은 보여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몸은 어디에 있습니까? 바로 교회입니다.
예수님은 교회의 머리이고 교회는 예수님의 몸입니다. 예수님은 안 보이지만 교회는 보입니다. 그러므로 교회가 바로 보이는 예수님입니다. 교회라는 공동체를 보여주는 것이 바로 예수님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교회를 보여 준다고 과연 사람들이 예수님을 만나고 예수님을 믿게 될까?” 이렇게 걱정되는 분이 계시나요? 그러나 여러분은 그런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 걱정은 우리 몫이 아니고 예수님 몫입니다. 사실 저와 여러분도 예수님의 얼굴은 못 보고 예수님의 몸만 보았지만 믿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의 몸을 보면 예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물론 구원받을 그 영혼을 위해 기도를 많이 해야 합니다. 또 우리 교회가 성경적인 올바른 교회가 되도록 노력도 기울여야 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노력해도 우리가 완전하지는 못합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교회를 보고 예수님을 만납니다. 그것 말고는 예수님이 주신 다른 비결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걱정하는 것은 예수님께 맡겨드리고 와서 보라고만 하면 됩니다. 사실, 우리의 가족이나 친구가 예수님을 알게 되고 믿게 되는 것은 우리보다 예수님이 더 원하십니다. 그런데 우리가 나다나엘을 데려왔는데 설마 예수님이 나다나엘을 만나주지 않으실까요? 중매쟁이는 처녀와 총각을 만나게만 해 주면 사랑은 당사자끼리 하는 것입니다.
(결국 구원 얻는 믿음으로 변화한다)
나다나엘과 예수님의 대화 중 마지막 부분은 약간 설명이 필요한 말입니다. 51절에서 예수님은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천사들이 예수님 위에 오르락내리락 하는 것을 볼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창세기 28장에 나오는 야곱의 꿈을 생각하면 이해될 수 있습니다. 야곱은 꿈에 하늘에 닿은 사닥다리를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위에 천사들이 오르락내리락 했습니다. 천사들이 예수님 위에 오르락내리락 할 것이라는 말은 바로 예수님이 하늘과 땅을 연결해주시는 분이며,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로 갈 수 있는 길이라 하는 말입니다. 나다나엘이 지금 당장은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하지만 조금만 지나면 그것을 깨닫게 될 것이라는 뜻입니다.
사람들이 처음부터 예수님이 구원자임을 다 알고 나오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그런 분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듣다가 점점 예수님이 바로 하나님께로 가는 유일한 길임을 깨닫고 구원 얻는 믿음으로 변화될 것입니다. 바로 저와 여러분이 지금 그렇게 믿고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것이 바로 천사들이 예수님 위에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을 볼 것이라는 말입니다.
3. 예수님을 지금도 사람들을 부르고 계십니다.
우리 가운데는 빌립처럼 부름 받은 분도 있고 나다나엘처럼 부름 받은 분도 있습니다. 우리 친구들 중에는 빌립도 있고 나다나엘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 모두는 행복을 찾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 모두에게 주님이 필요합니다.
매일 스치는 사람들, 내게 무얼 말하나?
공허한 그 눈빛은 무엇으로 채우나?
모두 자기 고통과 두려움 가득, 감춰진 울음소리 주님 들으시네.
그들은 모두 주가 필요해. 깨지고 상한 마음, 주가 여시네.
그들은 모두 주가 필요해. 모두 알게 되리. 사랑의 주님.
우리가 나다나엘 같은 친구를 만날 때 교리논쟁을 하는 것은 효과가 없습니다. 내가 예수님으로 인해 참된 행복을 찾은 사실을 있는 그대로 말해 주고 와서 보라고 하면 됩니다.
옛날 제가 청소년일 때는 교회 가면 재미있다는 말에 친구들이 따라왔다가 믿음이 생겼습니다. 그런데 요즘 청소년들은 그것도 쉽지 않죠. 청소년이나 어른들이나 교회 와서 예수님을 만나면 행복을 얻을 수 있다고 소개해 주어야 합니다. 교회에 와서 그들의 소원이 이루어지지 않아서 실망하면 어쩌나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믿음이 생기면 그들이 변화되고 성숙해서 소원이 바뀔 것입니다.
전도보다 먼저 여러분이 예수님을 만나고 행복해야만 합니다. 여러분이 먼저 “난 예수가 좋다오” 고백하면서 또 다른 나다나엘에게 예수님을 소개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은 나다나엘이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는 것을 보았다고 하셨습니다(48절). 나다나엘이 메시아를 고대하는 것을 알고 있었다는 말입니다. 지금도 예수님은 사람들이 메시아를 갈망하고 있는 사실들을 알고 계십니다. 그리고 여러분을 통해 그들을 부르고 계십니다.
빌립이 나다나엘에게 갈 수 있었던 것은 친구였기 때문입니다. 친구는 마음문은 열지 않아도 현관문은 열어줍니다. 카카오톡 메시지도 받습니다.
그분들이 예수님을 만나고 행복을 찾으면 여러분보다 더 열정적인 제자가 될 것입니다. 그분들은 결국 여러분에게 매우 감사할 것입니다. 여러분을 통해 여러분의 모든 친구들이 나다나엘처럼 예수님을 만나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