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인천에서 스페인까지
스페인으로 가기 위하여 모스크바를 경유하여 마드리드에 이르는 비행경로에 편승하였다. 러시아 소속 항공기에 몸을 싣고 4월 17일 12시 45분에 인천공항을 출발하였다. 서해바다를 가로질러 중국의 천진, 몽고의 울란바토를 상공을 날아 시베리아의 바이칼 호, 이르쿠츠크, 노보시비르스크, 옴스크, 우랄산맥을 지나 약 9시간의 비행 끝에 모스크바에 도착하니 현지시간 16시 35분이다. 해가 지는 방향으로 계속 비행했으니 해가 아직도 중천에 떠 있다.
비행 중에는 마침 날씨가 청명하였다. 다행히 비행기 좌석을 창가에 배정받아서 창밖을 내다보며 지상의 모습들을 관찰해 볼 수 있었다. 몽고지역을 지날 때는 황량한 사막이 전개되는 모습이 보였다. 고비사막의 상공을 날고 있는 모양이었다. 한없이 넓게 펼쳐진 모래밭에 푸른색을 띈 생명의 빛이라곤 보이지 않았다. 가끔 집들 몇 채가 보였다. 저것이 오아시스 마을인가? 사막의 생활을 경험해 보지 못한 나로서는 그저 의문을 가져볼 뿐이다.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무엇으로 생명을 연명하는지 자못 궁금하였다.
하늘은 맑았지만 구름들이 만들어내는 여러 가지 형상들 때문에 신비세계로 끌려가는 느낌이었다. 거대한 산의 모습도 잔잔한 호수의 모습도 만들었다. 때로는 비행기가 구름 속에 잠겨 사방을 분간할 수 없게 만들기도 하였다.
비행기 안내판이 러시아 상공임을 알려준다. 한참동안 비행하다 보니 동토의 땅 모습이 보였다. 강과 땅이 모습만 드러낸 채 완전히 얼음으로 덥혀져 있다. 4월인데도 한겨울을 벗어나지 못하고 침묵에 싸여있는 뜻한 모습이 무겁게 다가왔다. 아마도 우랄산맥 일대를 지나는 모양이었다. 저기에도 사람들이 살고 있을까? 생명체라곤 미동도하지 않은 저 땅속에도 생명이 살아 있겠지. 얼음이 녹고 땅이 풀리며 어떤 모습을 보일까? 지구라는 땅덩이에서 각각 다른 모습을 관찰하게 되니 신기함이 느껴졌다.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벗어 날 수 없는 것이 인간의 삶이다. 이러한 삶의 다양한 모습을 찾아 떠나는 것이 여행임을 생각하며 계속 시선을 창밖으로 보냈다.
모스크바에 가까워 오니 군데군데 인가들이 보였다. 산이 없고 너른 평야가 펼쳐졌다. 그러나 토질이 척박한 듯 잘 정리되지 않은 황토 빛 농경지가 황량하게 보였다. 나무들이 숲을 이루어 검게 보였다. 한 번도 와본 경험이 없는 러시아 땅이다. 왠지 멀게만 느껴지는 이 곳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가까이서 한 번 보았으면 하는 마음이 굴뚝같다.
비행하는 동안 러시아 항공 승무원들은 매우 친절하였다. 식사나 음료수 등의 서비스도 만족하였다. 여러 나라와 경쟁하다보니 자본주의 전략을 배웠나 본다. 멀리 보이는 모스크바 시가지를 뒤로한 채 승무원들의 친절한 안내와 함께 비행기가 살며시 활주로에 착륙했다. 덜컹하는 요동 한번 없이 안착하는 조종사의 비행기술에 찬사를 보내고 싶었다. 러시아 공항의 날씨는 싸늘했다. 비행기에서 내려 셔틀버스를 한참 기다려서야 공항대합실로 들어섰다. 서둘러 마드리드 행 비행기를 갈아타는데 보안검색이 까다로웠다. 시계는 물론 모자, 안경, 혁대를 풀고, 신발까지 벗어야 했다.
마드리드 행 비행기는 19시 20분에 이륙하였다. 밤이어서 밖을 관찰해 볼 수 없었다. 짐작컨대 비행 항로가 폴란드와 독일 그리고 프랑스의 상공은 지나고 피레네 산맥을 넘는다고 생각되었다. 약 5시간의 비행 끝에 마드리드 공항에 착륙했다. 이번에도 비행기는 요동 한 번 없이 살포시 안착하였다. 마드리드 공항에 도착하니 현지 시각은 22시 40분. 현재 섬머 타임이 실시되고 있어서 우리나라와 7시간 차이가 났다. 섬머 타임은 3월 마지막 일요일애서 10월 마지막 토요일까지 실시한다. 섬머 타임이 아닐 때는 시차가 8시간이 된다.
마드리드 공항 명칭은 아돌프 슈아레스 공항이라고 했다. 스페인 초대 총리 이름이다. 오랫동안 지속되었던 프랑크 총통의 독재 체제를 벗어나 스페인을 민주사회로 이끈 공로를 기리기 위하여 그의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한 때 스페인은 프랑코에게 모든 권력이 집중된 독제국가였다. 스페인 내전이 종식된 후 정권을 잡은 프랑코 총통은 정권이 정통성 문제로 비난을 받고, 국제적으로 고립되었다. 이에 왕실을 이용하여 정권의 정통성을 세우려고 다시 왕조를 재건하였다. 후안 카르로스 1세를 왕자로는 지명하였다. 그러나 왕으로는 추대하지는 않았다. 이와 같은 편법을 이용하여 프랑코가 총통 겸 수상으로 모든 권력을 장악하여 독재체제를 유지하였다.
1975년 프랑코가 세상을 떠나고, 후안 카르로스 1세가 비로소 왕으로 추대되자 그가 중심이 되어 오늘날의 민주화를 이루었다. 이때 스페인의 민주화에 초석을 깔도록 주도한 인물이 아돌프 슈아레스 총리였다.
현재 스페인의 정치체제는 입헌군주국이다. 왕은 신성불가침의 절대 권력을 갖지만 그것을 행사하지 않고 헌법에 따라 의회와 내각에 위임하고 있다. 스페인의 지방 행정조직은 17개의 자치주와 각 자치주를 구성하는 50개의 주로 나뉘어져 있다. 역사적으로 지방마다 자치의식이 강하여 각각의 자치주가 강한 권한을 갖고 있다.
스페인은 면적이 50만 6천 평방킬로미터로 서유럽에서는 프랑스 다음으로 큰 나라이다. 남한면적의 5배정도이나 인구는 4천 750만 명, 평균수명이 81세 정도이며, 1인당 GDP가 3만 불 정도로 우리나라와 비슷하다.
기후는 북부지방은 임야가 많고 비가 많으며, 중부지방은 해발 600m의 고원을 이루고 있어서 기온차가 심하다. 동부의 카탈루니아 지방과 남부의 안다루시아지방은 지중해성 기후로 기온이 온화하다. 이에 따라 지역별로 산업의 형태나 생활양상이 다르고 지역마다 독특한 역사와 문화를 형성하였다.
스페인은 정열의 나라이다. 플라멩코와 투우의 나라로 알려졌다. 플라멩코는 격렬한 춤과 노래로 스페인의 정서를 나타내며, 투우는 스페인 사람들의 삶의 철학을 담고 있다고 한다. 가장 남성적인 동물인 검은 수소와 가장 남성적인 인간 투우사 사이의 대결이 투우이다. 그 외에 대중적인 음식이 파에야, 대표적인 와인이 리오하, 안토니오 가우디의 건축작품, 지방마다 벌어지는 축제 등 다양함이 스페인의 특색이다.
공항에서 입국수속을 마치고 나오니 한국인 가이드와 스페인 기사가 우리를 맞이하였다. 공항인근에 있는 공항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다음날부터 기나긴 여행이 시작되었다.
스페인은 17개 자치주 (지방)와 자치주를 구성하는 50개 주로 나누어져 있음
첫댓글 상세하게 쓰시는 여행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최상순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