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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천하만물,영상.음악. 카페 원문보기 글쓴이: 천하만물
판소리의 통성발성에 대하여
(논문 제목 오른쪽 끝에 *표시를 해서 脚註 공간에 다음 글을 삽입해주세요. 다음글: 이 논문은 졸고(1998)의 앞 부분을 조금 보완한 것임.)
이규호(중앙대 강사)
머리말
17세기 언저리에 천민 광대들에 의해 형성된 판소리는 19세기에 이르러 계층을 뛰어넘어 민족적인 지지를 획득하게 된다. 그렇게 만든 판소리음악의 미적 특질은 무엇인가?, 그 힘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판소리 음악의 3요소인 성음, 길(선법), 장단 중에서 가장 중요하게 인식되고 있는 것은 성음이다. 창자들 사이에 ‘판소리는 성음놀음이다’ ‘성음이 아니면 소리가 아니다’라는 말들이 전해지는 것이 이를 웅변한다. 왜 창자들은 판소리 음악의 제 요소 중에서 ‘성음이 아니면 소리가 아니’라고 선언할 정도로 성음을 중요하게 생각했을까? 판소리가 성악이기 때문에 성음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겠지만 ‘성음이 아니면 소리가 아니다’라고 극언한 것을 보면 그 이상의 다른 의미가 있음을 짐작케 한다.
성음은 발성법에 의해 결정된다. 그러면 판소리의 전통적인 발성법은 무엇인가?
본고는 판소리 발성법의 이론 정립을 위한 일환으로 판소리 발성법으로 인식되고 있는 ‘통성’에 대한 개념 정립을 시도하고자 한다.
판소리가 추구하는 성음
모든 성악장르는 좋게 생각하는 성음이 각각 따로 있다. 판소리는 어떤 성음을 추구하는지 살펴보자.
강도근: 목이 쉬었다 터지고 쉬었다 터지고 하면 좋은 성음인 ‘수리성’
이 생겨요.(판소리학회 1991: 261)
김명환: “강도근이 소리 연습얼 많이 했는지 목이 걍 바들 같습디다......
목성음 이 좋아, 수리성에다가.”(112)
김성태: 판소리는 수리성을 기본 음색으로 한다. 수리성이란, 정성으로
표현한 소리가 모아지는 현상과, 깔깔한 음색에서 느낄 수 있는 애원성,
그리고 쉰 듯한 음색으로 특징지을 수 있다.(1998: 51)
박동진: 나쁜 목도 많이 하면 목이 쉬면서 트이게 되는데, 이런 목이 더
좋아요.(판소리학회 1991: 233)
백대웅: 현재 판소리의 좋은 성음으로 인정받고 있는 “수리성”(1996: 131)
조동일: 판소리의 발성은, 광대의 수련과정에서 목이 쉬고 피를 토한 후
에 다시 터져나온, 듣기에는 탁한 것 같으면서도 성량이 크고 변화가 많
은 소리로 이루어져 있다.(1978: 12)
최동현: 판소리가 기본적으로 거칠고 탁한 소리에 가치를 부여하고 있
다는 점.(1994: 59)
정병욱: 가장 이상적인 ‘천구성’은 ‘수리성’(목이 약간 쉰듯한 허스키 보
이스).(1990: 66)
판소리의 미학은 수리성의 미학이라 할 만하다.(김병국외 1987: 334)
이에서 알 수 있듯이 판소리는 각고의 수련에 의해서 획득한 성량이 크고 껄껄하고 탁하면서도 변화가 많은 ‘수리성’을 제일 좋은 성음으로 친다. 수백년을 민족적인 지지 속에 이어온 판소리는 이런 ‘수리성’을 내기 위해 분명 나름대로의 발성법을 개발했을 것이다.
판소리의 발성법
서양의 발성법은 성대의 근육을 비롯한 발성기관이 완전히 이완된 상태에서 소리를 낸다. 공명이 강조되고 소리를 맑게 띄우는 이러한 ‘인위적’인 발성법을 서양 성악에서는 벨칸토(Belcanto)창법이라고 한다.(중앙일보사 1988: 38)
판소리 발성법은 벨칸토 창법과 대비된다.
김기령: 인간의 발성은 성대의 진동으로 되는 것이며 이때에 호기(呼氣)가 성문(聲門)을 빠져 나가면서 성대를 진동시키는 시간적인 차이에 따라서 부드럽고 맑은 음성(soft voice)과 쉰소리(氣息音, breathing voice) 및 딱딱한 소리(hard voice)를 내는 세가지 起聲樣式이 있는데 서양음악의 벨칸토 창법에서는 부드러운 기성양식(soft attack)이 사용되지만 판 소리에서는 딱딱한 기성양식(hard attack)에 의한 발성이 주로 사용된다.(1991: 44)
문영일: 壓迫起聲(press attack)이다. 소위 목에서만 내는 소리로 압박 받아 나는 것 같은 목소 리이다.(1986: 69) 가슴에 숨을 몰아쉬어 압박하고, 인후를 극도로 수축시켜 쥐어 짜내는 듯한 방법으로 노래하고 있기 때문에 성대에 과도한 자극을 주게되는데 이런 방법이 아 니면 그러한 박력있는 소리는 나올 수 없는 것이다. 목소리의 아름다움을 중요시한 것 보다는 “담”이라고 하는 것 즉 정신적이고 내면적이면서도 힘이 중심이 된 소리인 것이 다. 그러므로 이런 노래를 전문으로 불러온 사람들의 성대를 관찰해 보면 성대의 과도 한 자극에 의한 瘢痕조직이나 만성적으로 肥厚된 변화를 관찰할 수 있는 것이다.(1986: 201-202)
김현기 김선숙 홍기환: 성악의 공명음 발성보다는 후두를 강하게 긴장하여 발성하는 후두 긴장 발성법
을 하고 있다.(1999: 43)
위에서 알 수 있듯이 벨칸토 창법과 판소리 창법의 차이점은 발성할 때 성대의 긴장 정도에 있는 것 같다. 벨칸토 창법은 성대를 거의 긴장 안 시키는데 비해 판소리는 일상 언어활동을 할 때와 같이 성대를 자연스럽게 긴장시킨 상태에서 질러내는 발성을 그 기본으로 한다. 서양에 비해 ‘자연스런’ 발성이라 하겠다. 다시 말하면 판소리 발성은 평상시 언어활동 때의 발성법을 극대화한 것으로 볼 수 있는데, 이런 발성을 과도하게 쓰면 성대에 마찰이 심하게 일어나 목이 쉬고 염증이 생기게 되어 심한 경우 자신의 소리를 자신이 듣지 못할 정도까지 된다고 한다. 그 쉰 목으로 계속 수련을 하다보면 나중엔 염증이 사라지고 성대에 굳은 살이 박히게 되면서 수련 여하에 따라선 엄청난 성량과 구성진 성음을 얻게되어(이를 ‘得音’이라 한다), 소리를 하면 할수록 구성지고 우렁찬 성음이 폭포수처럼 나오게 된다고 한다.
통성
그런데 창자들 간에 ‘판소리는 통성으로 해야 한다.’는 말이 있다. 본인은 이를 발성법에 대한 발언으로 해석한다. 그럼 ‘통성’이란 무엇인가.
박동진: “옛날 임방울 명창도 이런 말씀을 하셨지. 소리를 많이 허면 가느다란 실목이 나오느니라. 그 것을 많이 허면 그 목이 차차 굵어져서 통성이 되는디 그 단계가 어려운 것이니라 허셨는디 내가 혀 보닝께 정말 어려워요. 실목을 통성으로 변화시키기가 소리 공부에서 제일 어려운 대 목이여. 그 단계를 통과혀야만 득음을 혔다고 헐 수가 있는 거지”(김명곤 1994: 59). “여자들 은 통성으로 못해요.”(1998 객석 10월호, 58)
박헌봉: 뱃속에서 바로 위로 뽑는 소리.(1978: 143)
진봉규: 단전에서 중후하게 지르는 소리. 사람의 성대는 대개의 사람들이 그져 맑은 성음이 나오지만 판소리를 통성으로 6개월 이상 수업하면 본래의 성음이 약간 수리성(쉰소리)으로 변하고 성음 이 탁 틴 성음으로 변한다. (1984: 42)
정병욱: 목에 변화를 주지 않는 것(1990: 65)
천이두: 꾀를 부리지 않고 배에서부터 뿜어내는 힘찬 소리. 목안엣 소리와는 대조가 됨. 목안엣소리를
假聲이라고도 함.(김병국 외 1987: 351)
최동현: 통성이란 뱃속에서부터 우러나오는 소리이다. 아랫배에서부터 힘을 주어 힘차게 질러내는
소리이다.(1994b: 67)
중앙일보사: 성대의 근육과 인후를 긴장시켜서 뱃속에서 바로 뽑아내는 ‘통성’으로 판소리 특유의
약간 텁텁하고 껄껄한 소리를 토해내는 것이다. 이같은 발성법은 표현력이 강하고 극적
인 소리를 내는 데는 적합하지만, 소리하는 사람의 성대와 그 외의 공명 부위 등 발성기
관에 무리를 주기도 한다.(1988: 38)
모두 발성법 개념으로 이해하고 있다. 정리하면 성대를 긴장시킨 상태에서 아랫배 단전으로부터 ‘통째로’ 토해내는 발성법으로 이해할 수 있겠다. ‘통째로’ 토해낸다는 점이 중요하다. 중간에서 음을 거르거나 띄우지 않고 바로 토해낸다는 말이다. 바로 이 점이 다른 성악장르의 발성과 다른 점이다. 김명환의 다음 증언은 통성 개념을 더 확실하게 하여준다.
김명환: 아, 통성은...... 임방울이가 그리 말하지 않던가? 상성얼 통성으로 쓰는 사람은 송 감찰허고 (송만갑) 장판개허고 저밲에 없다구. 그래서 나 찬찬히 봤네. 임방울이가 꾀성얼 올리제. 뭔 통성으로 거시기 상성얼 올려.(80)
송만갑씨 소리는.... 소리헐 때 보면 통성으로만 헌디 동편 소리가 더 어렵지라우. 순 목, 성 음, 음정으로 휘어잡는 거니께.(82)
장판개씨는 우리가 듣기에도 송만갑씨보다 소리가 더 굵고, 쑤신 놈도 전부 같이 통성으로 쑤시고(88)
판소리는 여자가 한다는 것은 말이 아니지라우..... 여자가 판소리 다룬다 그래야 진짜 판소 리 못 다룹니다. 성음이 안돼요. 여자 신체 조건얼 보더라도 헐 음악은 가야금뿐이여. 그렇게 맨날 채색이나 허고 꼬기작꼬기작 맹글아쌓고. 그런 것이 진짜 소리가 아니제.(107)
“상성을 통성으로 쓰는 사람” “소리헐 때 보면 통성으로만 헌디” “쑤신 놈도 전부 통성으로 쑤시고” 등의 발언은 통성으로 하지 않는 소리꾼이 있다는 반증이다. 예로 든 송만갑과 장판개는 수리성의 소유자로 위에 소개한 통성발성의 설명에 부합되게 소리한 사람들이다. ‘여자들은 성음이 안된다’는 지적은 여자들은 신체 조건상 이 통성을 구사하기 어렵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통성발성이 얼마나 치열한 발성인가를 반증한다.
통성은 온몸의 기운을 통째로 강하게 토해내기 때문에 소리에 강렬한 힘이 실리게 되므로 치열한 맛을 준다. 흔히 판소리를 ‘오장육부를 쥐어짜내는 소리’, ‘돼지 멱 따는 소리’라고 표현하기도 하는데 바로 이 통성발성을 지적한 것이라 생각된다. 온몸의 기운을 성대로 모아 통째로 토해내는 이 통성발성을 장시간 지속하기 위해선 오랜 수련을 거치지 않으면 안된다. 수련을 하지 않은 보통 사람들이 통성발성을 하면 금방 목이 쉬어버려 발성을 지속할 수 없게 되고 무리하면 성대를 상하게 된다. 통성발성으로 오랜 수련을 거쳐 목을 얻으면(이를 ‘得音’이라 한다) 구성지고 우렁찬 성음이 폭포수처럼 나오고, 소리를 하면 할수록 더 좋은 소리가 나온다고 한다. 판소리에서 가장 좋은 성음으로 인식되는 수리성은 바로 이 통성에 의해서 탄생한다.
수리성
그럼 수리성은 어떠한 성음인지 살펴보자.
최동현: 통성이란 뱃속에서부터 우러나오는 소리이다. 아랫배에서부터 힘을 주어 힘차게 질러내는 소리이다. 그러므로 통성에는 강력한 힘이 실리게 된다. 또 통성으로는 성대가 좋지 못하면 고음을 낼 수가 없다. 우리는 흔히 성대가 좋다고 하면 맑고 고운 목소리를 생각하는데, 송 만갑이나 김정문은 거친 수리성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고음의 통성을 구사할 수 있었다. 거칠면서도 높은 소리를 내기 위해서는 소리가 그야말로 무쇠처럼 단단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러한 소리를 가리켜 鐵聲이라고 한다. 이런 소리를 통하여 느낄 수 있는 것이 바 로 서슬이다. 이렇게 단단하고, 힘차고, 높고, 거친 소리로 된 철성으로 소리를 하는 것은 그 들의 치열한 예술 의식을 반영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적당히 속목(가성)으로 넘어간다든가, 교묘한 기교로 넘어가지 않고, 정색을 하고 전력을 다하는 치열한 의식의 소산인 것이다. 정 통 동편제 소리가 장단의 기교를 부리지 않는 대머리 대장단을 주로 사용한다든가, 특별한 다루(판소리에서 소리를 꺾고 떠는 기교)를 구사하는 것을 피하고, 소리를 쭉쭉 뻗어내는 것 은 바로 이러한 그들의 태도 때문이다.(1994b: 67)
정병욱: 판소리 발성에서 특히 ‘양성’을 높이 평가하지 않고 오히려 ‘수리성’을 취하는 것을 서양의 성 악에 귀익은 현대의 청중은 얼른 이해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그러나 판소리 음악 을 옳게 이해하고 감상할 줄 아는 사람들은 이 ‘양성’을 탐탐히 여기지 않는다. 그이유는 소리 가 지나치게 맑고 깨끗하면 깊은 맛이 없기 때문이다. ‘깊은 맛’이란 목성음에 살이 붙고 그늘 이 따라야 하기 때문이다.(65)
천이두: 수리성엔 그늘이 생기는데 천이두는 이 그늘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그늘이란 그 소리의 바탕에 거느리는 충충하면서도 웅숭깊은 여유, 혹은 심오한 멋 같은 것을 이르는 말이 다. 말하자면 하나의 씨가 땅에 떨어져 비와 바람을 견디며 끊임없이 자라는 과정을 시김새를 획득해 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면, 거목으로 자란 나무가 울창한 가지를 드리우며 온갖 새들을 그 품안에 싸안는 너그러운 운치를 그늘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늘은 웅숭 깊음, 신중함, 은은함, 너그러움 등으로 연결될 수 있다,’ (141)
박헌봉: 과거의 명창들은 폭포나 암굴에서 발성법을 연습하되 먼저 저음으로부터 고음까지 하성으로 부터 상성까지 몇날 몇달을 두고라도 종으로 소리를 차츰차츰 높이 지르고 횡으로 점점 넓혀 지르고 넓혀갈수록 소리가 막혀 끝내는 목 성음이 옆에서도 들리지 않을 정도로 꽉 쉬어지고 만다. 그 막힌 목성을 끊임없이 계속하여 질러가면 목에서 피를 토하게 되고 피를 토하면서도 꾸준히 장구한 시일을 두고 부단히 발성을 계속하면 최종에는 잠기었던 목이 다시 터지기 시 작하여 통달명랑(通達明朗)한 성음을 얻어 몇 시간이라도 능히 자유자재로 창할 수 있게 된 다. 그리하여 얻은 목소리는 마치 벽공을 뚫을 듯, 광활한 지역을 울려 덮을 듯 그 웅장쾌활 한 성량은 과연 신비한 영역에까지 도달하게 된다. 이와 같은 지신(至神)단계에 이르기까지에 는 적년(積年)을 두고 심혈을 다하여 공을 쌓아올려야 되는 것이다.(141-142)
벽공을 뚫을 듯 광활한 지역을 울려 덮을 듯 그 웅장쾌활한 성량, 웅숭 깊고 신중하고 은은하며 너그러운 그늘진 음색, 치열한 발성에서 느끼게 되는 서슬 등이 수리성의 매력이라 지적하고 있다. 천변만화하는 성음놀음도 물론 빼놓을 수 없다. 판소리는 이런 성음으로 기존의 성악들을 제치고 두각을 나타내게 되었고 청중을 열광케 했던 것으로 보인다. ‘판소리는 수리성의 美學이다’ ‘판소리는 濁聲의 미학이다’라는 말들이 이를 뒷바침한다. 판소리의 신비가 바로 이러한 성음에 있기 때문에 ‘성음이 아니면 소리가 아니다’ ‘판소리는 성음놀음이다.’ 라는 말 또한 성립된 것이라 생각된다.
통성에 의한 수리성은 그늘진 성음이라 했는데, ‘그늘’을 음향적으로 말하면 일차적으로 음폭이 넓은 현상을 가리킨다. 통성을 쓰면 한 音을 내는데도 두 세 개 음을 내는 것처럼 들리기 때문에 음폭이 넓어져서 ‘그늘’이 생기게 된다.
본인의 느낌으로는 통성과 그렇지 않은 발성과는 성대의 진동 정도가 다른 것 같다. 통성이 아닌 경우는 呼氣가 통과하는 성대의 일부만 진동하는 것 같은데, 통성은 성대 전체(전체는 아니더라도 상당부분)가 진동하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통성은 인간이 낼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발성법이다. 氣를 가장 많이 토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전력투구하는 치열한 발성이기 때문에 소리 천체를 통성으로 할 수는 없으나, 중심은 통성으로 잡고 나가야 한다.
소리 수련이란 결국 이 통성발성을 체득해서 수리성과 같이 구성지고 파괴력 있고 변화무쌍한 성음을 얻기(得音) 위한 과정을 뜻하는데 그것이 간단치가 않다. ‘양반 집안에서 정승 판서 나기보다 광대 집안에서 명창 나기가 더 어렵다’ ‘명창 하나 얻으려면 30년이 필요하다’ ‘판소리는 도(道) 공부와 같다’는 등등의 말들이 이를 웅변하고 있다.『조선창극사』에 소개된 명창들의 득음에 관한 일화를 보면 알 수 있듯이 목숨을 걸지 않으면 도달할 수 없는 경지인 것이다.
이상 소개한 ‘통성’이나 ‘수리성’은 더 이상 말로 설명하긴 어렵고 실제 소리를 들으면 알 수 있다. 소리를 들어보자.
근대 5명창 시대에 수리성이면서 통성 위주로 소리한 대표적인 명창은 송만갑과 정정렬이다. 김창환, 이동백, 김창룡, 이선유 등은 수리성도 아니고, 본인의 통성 개념에 의하면 통성을 위주로 한 명창도 아니다.
먼저 정정렬의 소리를 들어보자.
(아니리) 마누라, 아이구, 우리 마누라 죽었네. 마누라
(자진머리) 아이구 여보 마누라. 우리 마누라가 죽었네. 죽은 줄을 알었으면 약 지러를 가지 말고 마누라 옆에 앉어 극락세계로 가라 염불이나 허여주지 약 쓰면은 꼭 살 줄로 (약 대리느라고 지체되어) 죽는 줄을 몰랐더니 아이구 여보 마누라. 여보시오 동네 사람들, 우리 마누라 죽었네. 아이구 어쩌리.
<콜럼비아 유성기 원반(10) 서편제 판소리 김창환․정정렬>(LG미디어 LDM-AK010, 1CD, 1996. 4.) DISC 2-4 박석티(3:08).
<한국의 위대한 판소리 명창들(1) 판소리 5명창>(신나라 SYNCD-004, 1CD) 9.어사 남원행(춘향가 중) 고수:한성준/Regal C150-B/전기녹음. *유성기로 복각.
<판소리 5명창 정정렬>(킹레코드 SYNCD-080, 1CD) 9.춘향가 박석티.
이 곡에서 밑줄 친 부분이 통성으로 들린다. 통성을 쓴 이 부분들은 감정 표출이 매우 강렬함을 느낄 수 있다.
이번엔 통성발성의 대표적인 소리꾼인 송만갑(1865-1939)의 소리를 들어보자.
(아니리) 송만갑이 십장가올시다.
(세마치) 집장사령 거동을 보아라. 형장을 고르는구나. 이놈 골라서 저리 놓고, 저놈도 골라서 이리 놓고, 그 중에 등심 좋고 손잡이 좋은 놈을 침을 밭어 두러메고, 춘향을 보고서 눈을 딱 부릅뜨며, “(꼼짝꼼짝마라) 뼈 부러지리라!” 웃 명을 태워 그랬거니와 속말로 하는 말이, “춘향아, 정심을 놓지 말고 한두 개만 견디어라.” “매우 쳐라!” “예이!” 딱, 찍. 부러진 형장 개비는 삼동에 둥 (떠)서, 춘향이는 정신이 아찔, 소름이 쫙 끼치며, 아픈 것을 억지로 참느라고 고개만 빙빙 두루 놓고, “음, 일짜로 아로리다. 일편단심 먹은 마음이 일시인들 변하리까? 가당없고 무가내오.” 두째 낱을 부쳐 노니, “이부불경 이내 심사 이도령만 생각하오나.”
밑줄 친 부분을 통성으로 볼 수 있다. 이 중 순연한 통성으로 쉽게 느낄 수 있는 부분은 ‘춘향을 보고서 눈을 딱 부릅뜨며’에서 ‘딱’, ‘꼼짝꼼짝마라 뼈 부러지리라!’ 전체, ‘매우 쳐라! 예이 딱’에서 ‘딱’, ‘춘향이는 정신이 아찔 소름이 쫙 끼치며‘에서 ‘쫙‘, ‘이부불경 이내 심사 이도령만 생각하오나’에서 ‘이도령만 생각’ 등이다. 이 부분들은 소위 ‘퍼붓는’ 성음으로 폭포수 처럼 소리가 쏟아지는 느낌을 받는다. 이런 발성은 겉목이나 뜬목으론 표출할 수가 없고 통성발성이라야 가능하다. 서슬이 느껴지는 전형적인 통성발성이다.
이번에는 통성발성이 아닌 이동백의 소리를 소개한다.
KAB0735 Victor 49025-A 沈淸傳 沈淸父親離別歌심청부친리별가(上) 獨唱李東伯 長鼓池東根
(진양) 밤은 삼경이 지나고 은하수는 기울어졌다. 촛불을 돋우켜고, 잠든 부친 옆의 앉어 얼굴도 대야보고, 수족도 만져보며, “아이고 아버지! 아버지 아버지, 날 볼 날이 몇 밤이요? 제가 철이라고 안 연후의 밥 빌기를 놓았더니만, 내일부텀은 날마도 동네 걸인이 될 것이니, 눈친들 오직허며, 욕인들 아니 헐(까). 무신 험한 팔자가 되야 칠일 전의 모친 잃고, 근근히 자러, 앞 못 보난 부친 지방으로 자러 부친조차 이별이 되니, 이런 팔자가 어디가 있느냐? 아이고 아이고 아버지! 돌아가신 우리 모친은 십오왕으로 들어가고, 나는 이제 죽거드며는 수궁으로 갈 것(이니), 수궁에서 황천까지가 몇 만 리나 되냐. 황천길 멀고 먼 디 묻고 물어 찾어간들 모친이 나를 어이 알아, 내가 어찌 모친을 알거나. 만일 모친은 이리 뵈올 제, 아이고, 이리.”
Victor 49025-B 沈淸傳 沈淸父親離別歌심청부친리별가(下) 獨唱李東伯 長鼓池東根
(중머리) 이때여 심청이 이렇듯 통곡하며 한참 이리 자탄헐 제, 천지가 사정이 없어 이윽고 원촌 계명성이 ‘꼬끼오!’ “닭아 우지 마라. 니가 울면 날이 새고, 날이 새면 나 죽는구나. 나 죽기는 설잖허나 의탁 없는 우리 부친 워찌 두고 죽잔 말이냐?” 이리 통곡하며 문을 열고 나서니, 발써 선인 등이 (십여명이) 들어오며 문전으 야단을 헌다. “심소제, 시 늦어 가네, 어서 가세.” 심청이 하릴없어 부친 전으 하직하고,
(세마치) 사당의 하직하러 들어간다. 분향재배 허고 통곡을 헌다. “불성지원 명조상님, 불초 심청은 망종 오늘 하직이요. 아부의 눈을 띄우랴고 인당수의 매신투강이 되거니와, 선영향화 인연이야 끊겼으니 불승영모 허오리라.” 이렇듯 통곡을 허(고) 다시 못 볼 문이로구나. 쇳대 끌러 문을 열고, 저희 모친 앞으로 나가보니, 우두머니 앉은 모냥 잠을 들어 몽중인 듯. 세상의 났다가 이십 전에 죽을 일이, 아이고 답□ 앞 못 보는 부친 두고 영결종천에 떠날 일을.
‘수족도 만져보며, 아이고 아버지!’에서 ‘아버지’의 ‘지’가 假聲이다. 통성에 가깝다고 느껴지는 부분은 ‘수궁에서 황천까지가 몇 만 리나 되냐’(진양)에서 ‘황천’, ‘내가 어찌 모친을 알거나’(진양)에서 ‘내가 어찌’, ‘의탁 없는 우리 부친’(중머리)에서 ‘의탁’, ‘사당의 하직하러 들어간다’(세마치)에서 ‘하직하러 들어간다’, ‘불성지원 명조상님 불초 심청은’(세마치)에서 ‘심청은’, ‘이렇듯 통곡을 허고’(세마치)에서 ‘이렇듯’ 등이다. 이렇듯 부분적으론 통성을 쓰나 전체적으론 미미해서 통성으로 소리한다고 말할 수 없다.
Columbia 40026-B(20552-1) 沈淸傳 沈奉事와沈皇后相逢(심봉사눈는데) 李東伯 長鼓李興元
【자진몰이】 그때야 심봉사 황훈지 궁년지 아무런 줄 모르고, “아버지란 말이 웬 말이여? 나는 아버지 말 헐 이 없소! 출천대효 심청 날로 하야 인당수에 죽인 지가 삼년인디, 어느 누가 애비라고 헌단?” “아이고 아버지! 천신이 감동하고 용왕이 인도하사 제가 다시 살아 황후까지 되얐시니, 아버지 저를 눈을 떠서 어서 보시오!” “그러면은 보자!” 심봉사 눈을 뻔뜻허니(뻔쩍거리고) 왈칵 떴지.
【중중머리】 “지화자자 지화자, 지화자 좋구나. 딸에 얼굴을 처음 보니 자식 보자고 공들일 제 꿈에 뵈던 선녀로구나. 내 딸일시 분명하야 얼씨구나 좋네. 너의 어머니 (윗긴) 후로 그렇게 고생이 장차 되기에, 후세는 잘 될 줄 알고 매우매우 좋았더니, 오늘 날에야 마침내 지화자자 좋다. 어진 내 딸 재상하야 황성의 배필 돼, 요조숙녀의 귀한 배필 금실우지가 장관이요, 이내 몸이 고생타 천자 사위를 얻었으니 부원군이 장관이요, 안맹천지 떠돈 곳 도로 보니 장관이요, 금관조복에 학창의 입어보니 장관이요, 온갖 진미 선과등물 먹어보니 장관이라. 지화자 좋다. 짚었던 지팽이 내더리고 대명천지에 좋은 날에 거덜거리고 놀아보자. 지화자 좋네.” 아이고 심봉사가 우니, “우리 마누래, 슬픈 각시 우리 마누래! 나는 이대지 살아서 이런 존 일을 보건마는, 우리 마누래 황천객이 되야서 워찌되야 (지제)줄꼬, 아이고 여보 마누래. 에.”
이번엔 역시 통성 발성이 아닌 김창룡을 소개한다.
(중머리) 아이구 다리야 아이구 내가 무슨 팔자로 황성 맹인 잔치 가는가. 에이 모진 목숨 죽지는 아니허고 무슨 경황에 황성을 가느냐. 도화동아 잘 살어라. 무릉촌도 잘 있거라. 이게 내 고향이지마는 내게는 웬수같다. 현철허신 우리 곽씨부인 이곳에서 죽고 출천대효 심청이도 이곳에서 죽고 없으니 도무지 내게 웬수로구나. 불쌍한 우리 곽씨부인 동방산하 ....... 내가 .....어떡하려고 ....이 나는 가네. 세상댁 마님들 우리 딸 심청이를 .......... 간다고 하직도 없이 내가 가네.
‘도무지 내게 웬수로구나’와 끝 부분의 ‘내가 가네’ 정도가 통성에 가깝게 들리고, 나머지는 통성이 아니다.
정정렬과 송만갑은 성음에 그늘이 있다. 그리고 긴장감이 있어서 강렬함을 느끼게 한다. 한마디로 소리가 푸지다. 이에 비해 이동백과 김창룡은 그늘이 없다. 그리고 소리의 긴장감도 떨어져 강렬한 맛이 덜하다. 이렇듯 통성의 구사 여부는 음악적 표출에서 상당한 차이를 가져 온다.
옛 명창들의 성음
옛 명창의 성음은 어떠했을까? 그들도 통성으로 치열한 발성을 하였을까, 아니면 밝고 고운 성음을 구사하였을까? 『조선창극사』와 19세기 양반들의 관극시를 주목해보면 그 해답을 찿을 수 있을 것이다. 『조선창극사』에 소개된 명창들의 일화 가운데 성음과 관련된 것을 살펴보자.
송흥록: 폭포 밑 공부, 선지피 토하고 소리가 폭포 밖으로 튀어나갔다.
모흥갑: 평양 연광정에서 판소리를 할 때에 덜미소리를 질너내여 십리밖까지 들니게하였다.
방만춘: 황해도 봉산군 어느절에 가서 사년간을 고심탁마할 때에 성음수련으로 주야없이 목을 써서 성대가 극도로 팽창하여 발성을 못할 경우에 이르렀다. 모는 고동상성으로 송은 귀곡성으로 방은 아귀상성 살세성으로 당세독보하여서 지금까지 유명하다. 적벽火戰의 장면을 할 때에는 그 광경은 좌석이 온통 바다물과 불빛 천지로 化하였다 한다.
고수관: 성음이 극히 미려하여 딴 목청을 자재로 발휘함은 타인의 만만불급처이였다 한다.
박유전: 목청이 절등하게 고와서 당시 비주가 없었다.
박만순: 임실군 어느 瀑布下에 가서 성음의 수련을 積工하느라고 피도 다량으로 吐하였거니와 필경 은 聲量이 人語難分咫尺間에서 聲出千峰萬壑間 境遇에 도달하였다. 이석정談, 수마장인 자기 서당까지 목소리가 툭툭 떨어졌다. 全力을 다 하여서 한번 내지르면 그 細細通上聲이 宛然히 半空에서 떨어져 나려오는 듯하고,
이날치: 수리聲인 성량이 巨大하여 춘향가를 할 때에 라팔을 倣唱하면 완연히 實物로 부러내는 소리 를 내이고 잉경은 「뎅뎅」하면 꼭 실물의 잉경 소리가 一村一洞에 響應하였다 한다. 심청가중 심청이가 그 부친의 눈 띠이기를 위하여 供養米三百石에 몸이 팔여서 인당수 祭物로 惡魔같 은 南京船人들에게 끌여갈 제 그 부녀간 서로 永訣하는 장면! 그 앞 못보는 孤獨한 부친을 村人들에게 愛護하여달나는 遺托의 哀辭! 피눈물을 흘니면서 허둥지둥 인당수에 몸을 던지는 광경! 그 悲絶慘絶한 인생의 最後를 如實히 哀詞悲調로 표현하였다.
윤영석: 탁성과 중성은 없고 세세사사성으로 질너내여서 사람을 경탄케하였다.
김창록: 성음이 원래 老鶴聲인데 烏鵲의 소리를 高高通上聲으로 “가옥가옥”하고 내질느면 오작의 소 리가 완연히 碧空에서 떠오르는 듯 하였다.
서성관: 성음이 양성인 만큼 적벽가를 특별히 잘하였다
황호통: 목청이 양성이고 우렁차서 호통 기운이 많음으로 호통의 별호를 얻어서
송재현: 성음이 미려하여 광대의 자격을 충분히 구비하였고
김창업: 성량이 洪鐘과 같아서 호랑이 別號를 얻었다.
박기홍: 그 특색인 성조를 한마디 뽑아 질러내니 완연히 碧空에서 떨어지듯한다. 장내 공기는 변환 하여 하품하고 졸든 看官들은 귀를 번쩍 들고 지수는 소리 좌우에서 쏟아져나온다. 緩急長短 抑揚反覆을 법도에 맞도록 唱去唱來할 제 듣는 사람의 정신을 昏倒한다.
송만갑: 둥글고 맑은 통상성으로 내질러 떨어트리는 聲調는 과연 前人 未踏處를 개척하였다
이동백: 성음이 극히 美麗하거니와 그 각양각색의 목청은 들을 때마다 淸新한 느낌을 준다. 하성의 웅장한 것은 당시 비유가 없다.
채선: 성음의 웅장한 것
강소춘: 웨장목의 聲量은 남창을 압도할만하였다
박록주: 聲量이 거대하여 광대의 本色을 발휘하여 將來의 囑望을 붙이거니와
『조선창극사』에 소개된 명창들의 일화가 대부분 득음 과정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다. 19세기에 판소리의 담당층이나 수용층이 성음을 어떻게 생각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증거다. ‘폭포 밖으로 소리가 튀어나갔다’ ‘십리밖까지 들렸다’ ‘적벽화전의 장면을 할 때에는 그 광경은 좌석이 온통 바다물과 불빛 천지로 화하였다’ ‘수마장 떨어진 곳까지 목소리가 툭툭 떨어졌다’ ‘성량이 거대하여 라팔을 방창하면 꼭 실물의 잉경 소리가 일촌일동에 향응하였다’ ‘그 부녀간 서로 永訣하는 장면! 그 앞 못보는 孤獨한 부친을 村人들에게 愛護하여달나는 遺托의 哀辭! 피눈물을 흘니면서 허둥지둥 인당수에 몸을 던지는 광경! 그 悲絶慘絶한 인생의 最後를 如實히 哀詞悲調로 표현하였다.’ ‘고고통상성으로 내지르면 오작의 소리가 완연히 벽공에서 떠오르는 듯하였다’ 등등의 표현을 보면, 엄청난 성량과 구성진 성음을 발휘하였고 변화를 많이 줄 수 있는 극적인 발성을 구사했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이는 통성에 의한 수리성의 특성과 부합한다. 더구나 피를 토했다는 것이나 목이 쉬었다는 등의 언급을 볼 때 통성발성을 구사하기 위해 수련했음이 틀림없다. 화평한 발성이나 고운 성음으로는 청중들에게 위와 같은 느낌을 주기가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19세기에 양반층이 판소리에 견인된 것(김종철 1993: 99 참조)도 바로 이 성음에 기인한 것이 아닌가 한다. 양반들의 관극시를 살펴보자.
*광대 배희근이 한 번 심청가를 부르면
자리에 앉은 이들 모두가 ‘어찌할꼬’ 부르짖네(이건창 ‘賦심청가’ 중)
*아지 못게라 시골 아낙네 무슨 일로
슬픔에 빠졌다가 또 기뻐 날뛰는지(송만재 ‘관우희’ 중)
*高宋廉牟는 호남의 이름난 광대
미칠 듯한 기쁨이 나를 詩囚에서 풀어내네(신위전집)
*제갈공명은 동남풍 부르고
주유는 조조를 쳐부수는데
문득 화염이 날아오르고
파도조차 휩쓸어 오르네(유최진)
청중들로하여금 ‘어찌할꼬’ 부르짖게 만들고, ‘기뻐 날뛰게’하며, ‘화염이 날아오르고 파도조차 휩쓸어 오르’ 도록 느끼게하려면 강한 발성인 통성이라야 가능하다. 고운 성음으로는 그렇게 느끼게 하기가 불가능하다.
이와같이 양반층이 ‘아정하고 절제된 태도를 벗어나 판소리에서 극도로 고양된 감정을 느꼈다는 것’은 판소리가 바로 ‘그러한 유인력을 강하게 갖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창과 아니리의 교체 반복을 통한 긴장과 이완의 연속적 반복, 상황적 정서에의 몰입, 평범한 주인공의 파란만장한 운명의 대서사시적 전개, 고도의 음악적 기교 등등이 수용자의 감정을 끊임없이 자극하고 고양’시켰을텐데(김종철 1993: 133), 음악적인 측면에선 성음이 가장 큰 영향을 미쳤으리라고 본다. 가곡 가사 시조창에선 느낄 수 없는 거대한 성량과 구성진 성음, 그리고 변화무쌍하고 치열한 극적 발성에 양반층도 열광했던 것이 아닐까.
이렇게 볼 때 19세기 명창들의 성음은 밝고 고운 성음보다는 통성에 의한 수리성이 주류였다고 하겠다. 물론 청중의 기호는 다양하고 창자들의 발성도 통성만은 아니었을 것이므로, ‘미려하고’ ‘고운’ 성음을 구사한 명창도 있었음을 『조선창극사』는 보여준다(권삼득, 고수관, 박유전, 송재현, 이동백.). 그러나 통성을 구사한 명창들(송흥록 방만춘 박만순 이날치 박기홍 송만갑...)을 더 비중있게 소개한 것을 보면 통성이 주도했다고 해도 큰 무리는 없을 것이다.
창자들이 통성에 의한 수리성을 개발한 이유는 ‘한 사람의 성악가가 작품 속에 나오는 모든 인물의 성격이나 감정 또는 행동을 이면에 맞게 표현해야 한다는 판소리 예술의 본질적인 특징’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정병욱 1990: 70). 성량이 크고 그늘지고 변화무쌍한 수리성만이 이러한 판소리예술의 본질적인 특징을 감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통성발성은 판소리의 형성과 더불어 개발되기 시작한 것인 듯하다. 만약 그 이전에도 있었다면 창극사에서 그렇게 자주 명창들의 득음 과정에 대해 언급하진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요즘의 경향
그런데 요즘 수리성에 비판적인 견해들이 있어 주목된다.
김소희: 요즘 사람들은 다 깨져서 뚝배기 뭔 소리 나듯이 이러니까 듣는 사람이 흥미도 없을 뿐 아니 라 하는 사람도 힘들어 요. 그래서 목을 열어서 될 수 있는 대로 맑은 음을 내도록...(판소리학 회 1991: 245)
백대웅: 19세기 초기 명창들의 특징 가운데서 가장 관심을 끄는 것은 발성법이 20세기 명창들과 다르 고, 그 미적 기준도 다르다는 점이다... 현재 판소리의 좋은 성음으로 인정받고 있는 “수리성” 이라는 개념과는 상당히 차이가 있는 표현이 대부분이다. 곧 19세기 초기 명창들의 성음은 목 이 쉰 듯한 걸걸한 소리가 아니라 아주 우렁차고, 혹은 밝고 고운 목청으로 묘사된 것이 일반 적 특징이다. 권삼득의 “천애의 절등한 고운 목청”, 송흥록의 “여산 폭포”, “호풍환우”, 권삼득 의 창법을 모방했다는 모흥갑의 “천재적인 음악성과 목청”, 십리 밖에서도 들렸다는 모흥갑의 소리, “성음이 미려”하다는 고수관, “벌목정정”하다는 주덕기, 軟美浮輕해서 “斜風細雨”라는 칭호를 얻었다는 신만엽, 목청이 절등하다는 박유전 등 초기 명창들의 성음에 대한 묘사는 우 리가 흔히 알고 있는 판소리의 성음과는 거리가 먼 표현들이다.
이러한 성음은 우리가 송만갑의 유성기 음반을 통해서 그 실체의 단면을 확인할 수 있다. 가성(falsetto)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낮은 소리부터 높은 음역까지 쩌렁쩌렁 울려나는 송만갑 의 성음은 바로 동편소리의 특징으로 꼽히는데, 서편소리의 대표적 명창인 정정열의 성음과 좋은 대조를 이루고 있다.
그러나 명고수 김명환(1913-1989)에 의하면 서편소리라고 해서 성음이 모두 정정열과 같은 것이 아니고 19세기 말에 “세상을 울렸던” 서편제의 이날치는 송만갑을 능가할 정도의 목구 성이었다고 한다. 그것은 김명환이 이날치의 소리를 직접 확인한 것이 아니다. 어느 날 김명 환이 송만갑의 우렁찬 소리에 탄복하자 송만갑이 “내소리는 이날치의 소리에 비하면 모기소 리여! 이날치의 소리는 집다발만한 소리였어.”라고 했다는 것이다.
김명환이 평소 “판소리는 이제 없어졌다”고 말한 내용에는 계면바닥으로 판을 짜는 20세기 판소리에 대한 비판과 함께 판소리다운 성음의 부재가 그 핵심이다. [조선창극사]의 정정열 항에도 목이 궂여서(나빠서) 자살하려고 했다는 이야기가 있는 것을 보면, 판소리 성음에 대 한 20세기의 미적 평가는 분명 왜곡된 면이 있다는 것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 이것은 20세기 에 판소리가 쇠퇴기를 거치면서 좋은 목청(성음)을 갖춘 명창이 매우 드물다는 사실과 관련이 있을 뿐이지, 원래 판소리의 성음이 그런 것은 아니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131)
둘 다 수리성보다는 고운 성음을 선호하고 있다. 먼저 수리성을 좋은 성음으로 여기는 20세기의 미적 평가가 왜곡된 것이라는 백대웅의 견해를 검토한다. 백대웅은 19세기 명창들의 성음이 수리성이 아니라 ‘아주 우렁차고, 혹은 밝고 고운 목청으로 묘사된 것이 일반적 특징’이라고 하면서 ‘여산 폭포’, ‘호풍환우’, ‘십리 밖에서도 들렸다는 모흥갑의 소리’, ‘벌목정정’ 하다는 표현들을 제시하였다. 이를 보면 수리성은 쉰 듯한 걸걸한 소리일 뿐 우렁찬 성음이 아닌 것으로 백대웅은 인식하고 있는 것 같다. 이는 수리성에 대한 오해이다. 앞에서 살폈듯이 수리성이야말로 가장 거대하고 우렁찬 성음을 낼 수 있는 음색인 것이다. 따라서 위의 묘사들은 오히려 수리성을 소유한 명창들의 성음에 대한 표현으로 봐야 할 것이다.
정정렬에 관한 언급도 그렇다. 수리성을 좋은 성음으로 인정하는 20세기의 미적 평가가 왜곡됐다고 하면서 정정렬이 목이 궂어서(나빠서) 자살하려고 했다는 것을 근거로 제시했는데, 정정렬이 자살하려고 했던 것은 공부 도중의 이야기이지 목을 얻은 후의 일이 아니다. 타고난 성음이 좋지않아서 수련 과정에선 남다른 고생을 많이 하였지만, 득음한 후의 정정렬은 상청을 내진 못했으나 남다른 공력으로 얻은 푸짐한 수리성을 가지고 다양한 음악어법을 구사하여 수용층으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았다.
김명환이 ‘판소리는 이제 없어졌다’ 또는 ‘판소리는 이제 죽었다’라고 하는 말을 본인도 여러번 들었다. 백대웅은 그 이유를 판소리다운 성음의 부재에서 찿았는데 본인도 그렇게 받아들였다. 문제는 김명환이 어떤 성음을 판소리다운 성음으로 인식했느냐이다. 백대웅은 밝고 고운 성음으로 생각한 듯하나, 필자는 그 반대로 통성발성에 의한 수리성으로 이해하고 있다.
이상을 종합해 볼 때 19세기 초기 명창들의 성음이 수리성이 아니라 밝고 고운 목청일 것이라는 추정과, 수리성을 좋게 인식하는 20세기의 미적 평가가 왜곡됐다고 하는 견해는 성급한 판단이 아닌가 한다.
김소희는 ‘뚝배기 뭔 소리 나듯’하는 성음은 듣는 사람도 흥미 없어 하고 하는 사람도 힘들다면서 맑은 소리를 내도록 제자를 가르친다고 했다. ‘뚝배기 뭔 소리 나듯’한다고 하는 것은 통성을 지칭하는 듯한데 과연 청중들이 흥미 없어 하는지는 주관적으로 쉽게 판단할 일이 아니다. 그리고 힘들기 때문에 기피한다는 것은 예술가로서 취할 태도가 아니라고 본다.
여하튼 요즘 일부 창자들이 맑고 고운 성음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심지어 다음과 같은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오늘날과 같은 판소리 교육 형편으로는 명창의 맥을 잇기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명창의 시대는 끝났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더구나 20세기말에 이르러 전기 음향 장치가 발달하자, 육성으로 공연을 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이제는 성량을 늘리려고 폭포에 가서 소리 공부를 할 필요가 없어졌다. 이제는 세밀한 기교 위주로 공부하여 확성장치를 이용하여 공연하거나, 뮤직 비디오 형태로 출반하게 되면 소리 현장보다도 더 잘 전달 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전인평, “창극의 미래를 위하여,” 판소리학회 1998년도 하계 연구발표회, 8월 24일, 국립극장 소극장.)
명창 없는 판소리 문화가 성립하는지, 성음 수련 없이 기교 위주로 하는 판소리를 청중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궁금하다.
맺음말
‘판소리는 성음 놀음이다’ ‘성음이 아니면 소리가 아니다’라는 말이 있듯이 판소리 음악에서 성음은 핵심적인 요소인데 아직 발성법이 정리되지 않은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이에 본고에선 ‘판소리는 통성으로 해야 한다.’라는 말에 주목해서 통성을 판소리의 기본 발성으로 보고 그 개념 정리만을 시도해 보았다. 판소리 발성법 연구는 임상을 통해 과학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음성 언어의학과 음향학 그리고 심리학적인 측면에서 종합적으로 분석 관찰 해석해서 발성이론을 정립해야 한다. 이는 시급한 과제다.
요즘 젊은 소리꾼들의 소리를 들어보면 그저 소리하기 편하게 겉목을 주로 써서 기교 위주로 짜나가는 것을 흔히 보게 된다. 성음의 파괴력은 찿아보기 어렵다. 청중은 소리꾼이 힘 쓰는 만큼 반응하는 법인데 소리꾼이 힘을 못쓰니 자연히 판이 시들해지고만다. 이런 시들한 소리판이 지속되면 판소리는 머지않아 도태되고 말 것이다.
우리 것이란 말만 들어도 감격하던 시절은 지나갔다. 국제화 개방화 시대를 맞이해서 판소리도 이젠 경쟁력을 갖추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가 없게 되었다. 판소리가 경쟁력을 가지려면 판소리만의 독특한 생명력인 성음을 복원해야 하며 결국은 명창의 배출로 현실화 된다. 판소리를 살릴 수 있는 방법은 구성지고 파괴력 있는 성음을 구사할 줄 아는 명창을 배출하는 것이다. 송만갑이 이 시대에 부활한다면 판소리 중흥은 시간 문제다. 판소리를 알건 모르건 그의 소리를 들으면 누구든 그 엄청난 성량과 변화무쌍한 성음에 열광할 것이기 때문이다.
앞으로 발성법에 대한 논의가 활발히 이어지길 기대하며, 김명환의 말로 이 글을 맺는다.
정말 좋은 소리 좀 들어 봤으면 좋겠어. 신명이 나서 북을 치고 감복할 만한 소리 좀 들어 봤으면 좋겠어. 그런디 인제는 그런 소리 듣기는 틀렸어. 인제 판소리는 죽었어... 예전 선생님들의 소리에 비하면 요새 소리는 소리라고도 할 수도 없어. (김명곤 1994: 208-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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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About 'Tong-seong' vocalization in Pansori
Lee, Gyu-Ho
Professor of Choong-Ang University
It was rounded among the Pansori Singer that Pansori have to be vocalized Tong-seong. The Tong-seong vocalization means sounding in Pansori. This study was wrote to define the Tong-seong vocalization.
The Tong-seong vocalization is sounding method straining the vocal cords naturally as in speaking and sounding wholly. It is important sounding wholly.
It sounds continuously and directly without skipping and interval. After along times sounding through the Tong-seong vocalization, the singer's nodule appears in vocal cords. The nodule prohibits vocal cords close adherence when sounding. Then the voice change coarse and husky.
The coarse and husky voice is so called Soori-Seong which is the best voice in Pansori. Soori-Seong is born from Tong-seong vocalization. Soori-Sung has a timbre which is deeply, deliberately, faintly, tolerantly and shadowy.
If a singer who get Soori-Seong sings through the Tong-seong vocalization, the magnificent voice and intense mettle can be manifested. Then the words, 'Pansoriis the esthetics of Soori-Sung and Pansori is the esthetics of harsh and husky voice were produced.
The Tong-seong vocalization is the best vocalization that a human can manifest. That can spit out the most energy. Even though the every parts of song can not be vocalized by the Tong-seong because of intense sound, the important part must be composed by the Tong-seong vocaliz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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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y Word: Tong-seong, Soori-Su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