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는 주두위에서 첨차와 살미가 서로 직교하여 맞춰지고 첨차와 살미가 상하로 만나는 곳에는 소로를 끼워 만든다.
그러므로 공포를 구성하는 기본부재는 주두, 첨차, 살미, 소로 네 부재이다.
첨차와 살미는 놓이는 위치와 모양에 따라 각각 달리 불리므로 매우 복잡한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구성원리를 알면 그리 어렵지 않게 각 공포부재를 이해할 수 있다.
주두
공포 최하부에 놓인 방형 부재로 공포를 타고 내려온 하중을 기둥에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주두위에서는 첨차와 살미가 십자로 맞춰지기 때문에 십자로 사갈을 트는데 그 트인부분을 '갈'이라고 한다.
그리고 주두를 입면에서 보면 상하 두층으로 나뉘는데 사갈튼 윗부분을 '운두'라고 부르며 아랫부분은 역사다리 꼴을 이루는데 이를 '굽'이라고 한다.
고구려 고분벽화에 나오는 주두 그림에서는 주두밑에 밭침목을 하나 더 끼워 넣은 경우를 볼 수 있는데 이를 굽받침이라 한다.
주두는 공포 하나에 하나만 사용하는 것이 보통이지만 이익공 형식에서는 초익공과 이익공 위에 별도로 주두를 놓기도 한다..
이때 위층 주두는 아래층 주두보다 약간 작다.
그래서 이 둘을 구분하여 밑에 있는 주두를 '대주두'또는 '초주두'라 하고 위에 있는 것을 '소주두'또는 '재주두'라고 한다.
주두는 기둥머리 위나 평방위에 놓이며 좌우로 이동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촉을 박아 고정한다.
주두나 소로는 시대에 따라서 모양이 다르다.
고려이전 건물에서는 굽이 안쪽으로 오목하게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으나 조선시대가 되면 굽을 곡선으로 각지 않고 직선으로 사절하였다.
또 고구려 주두는 굽아래에 별도의 받침목을 두는 굽받침을 볼 수 있으며 고려시대에는 양식적으로 고구려를 계승하여 별도의 굽받침은 아니지만 굽아래에 굽받침 흔적을 새겼다.
한 건물에 사용되는 주두와 소로는 모양이 같다.
소로
소로는 주두와 모양은 같고 크기가 작다.
첨차와 첨차, 살미와 살미 사이에 놓여 상부하중을 하부에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위치에 따라서 모양에 차이가 있는데 가장 보편적인 것이 '행소로'이다.
소로 운두 부분을 수직으로 홈을 파 여기에 첨차나 살미가 맞춰지도록 한 소로를 '갈소로'라고 한다.
첨차나 살미의 양쪽 끝부분에 놓이는 소로는 한쪽만 갈을 트기 때문에 '단갈소로'라고 하며 양쪽에 갈을 트는 경우는 '양갈소로'라고 한다.
한편 첨차와 살미가 삼거리, 또는 사거리 모양으로 만나는 곳에는 소로 윗면을 'T'자나' 十자 모양으로 갈을 튼다.
이것을 '삼갈소로', '사갈소로' 라고 한다.
사갈소로는 '청소로' 라고도 한다.
귀포에서는 좌우 첨차, 살미 이외에도 45도 방향으로 놓이는 첨차 역할의 귀한대가 놓이므로 갈이 많아 거의 운두가 남지 않는다.
그래서 소로를 운두없이 평평하게 만드는데 이를 '대접소로'라고 한다.
대접소로는 때로 넓은 팔각모양으로 만들기도 하는데 이를 '팔우소로'라고 한다.
또 필요에 따라서는 소로를 반쪽으로 만들어 끼우는 경우도 있는데 이를 '건소로'라고 한다.
첨차
첨차는 도리방향으로 놓인 공포부재로 위치와 모양에 따라 달리 부른다.
먼저 위치에 따라 주심상에 있는 첨차와 출목상에 있는 첨차로 구분하여 주심첨차와 출목첨차로 나뉜다.
또 출목은 내외출목이 있으며 5포이상은 출목이 여러개이기 때문에 주심을 기준으로 번호를 붙여준다.
외1출목첨차, 외2추목첨차, 외3출목첨차 등으로 구분하고 내부도 마찬가지로 내1출목첨차, 내2출목첨차, 내3출목첨차 등으로 구분한다.
첨차는 보통 2층으로 놓이는 경우가 많은데 위첨차가 아래첨차보다 길다.
따라서 위첨차를 '대첨차', 아래첨차를 '소첨차'라고 한다.
그러므로 출목에 따른 위치와 크기에 따른 명칭을 혼합하여 각각 첨차 명칭을 붙여준다.
즉 외1출목소첨차, 외1출목대첨차, 외2출목소첨차, 외2출목대첨차 등으로 불린다.
첨차의 모양은 시대에 따라 변한다.
첨차 양쪽면을 수직으로 직절하고 하단을 둥글게 굴린 것이 가장 많이 사용되었는데 그 모습이 마치 만두를 닯았다 하여 '교두형첨차'라고 하며 '호형첨차'라고도 한다.
교두형 첨차는 고려시대를 제외한 전시대에 걸쳐 폭넓게 사용되었으며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것은 조선시대 5포이상의 포식건축이다.
통일신라시대 교두형 첨차 유물은 안압지에서 출토된 회랑에 사용된 첨차부재와 쌍봉사 철감선사부도 및 실상사 백장암 석탑에 새겨진 흔적을 통해 살펴볼 수 있다.
고구려에서는 교두형 이외에 옆면은 직절하고 하단은 45도 정도로 사절한 첨차도 사용되었다.
백제에서는 첨차 전체를 구름모양으로 조각해 만든 '운형첨차'가 사용되었는데 한국에 현존하는 거슨 없지만 백제건축의 영향이라 추정되는 일본 호류지 금당과 탑 및 호키지3층탑 등에서 볼 수 있다.
고려시대 첨차는 독특하게도 옆면을 비스듬하게 사절했으며 하단은 중괄호 형태로 했다.
이를 연꽃을 닯았다 하여 '연화두형첨차'라고 한다.
이러한 형태는 현존하는 고려시대 건물 중 봉정사 극락전을 제외한 부서사 무량수전과 수덕사 대웅전 강릉 객사문 등에서 나타나는 것으로 시대적 특징이면서 우리나라에서만 나타나는 지역적 특징이기도 하다.
또 조선시대 말기에는 장식화 하면서 첨차를 연꽃 모양으로 만든 '연화형첨차'도 널리 사용되었다.
고려중기 이후 수덕사 대웅전과 강릉 객사문 등과 같은 건물에서는 기둥머리에서 보 방향으로 반쪽짜리 첨차가 빠져나와 1출목 첨차를 받치는 부재가 있는데 이것을 '헛첨차'라고 한다.
방향으로 보면 헛살미라고 불러야 합당하겠지만 헛첨차로 통용되고 있다.
아마 고려초기 이전 건물은 첨차와 살미의 모양이 같고 구분이 없었기 대문에 그렇게 불러도 무리가 없다고 생각되지만 개념상 혼동을 초래하고 있다.- 계속-
출처 김왕직의 한국건축 용어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