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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7월 21일(토), 한여름 무더위 때에 산행을 하고 싶을때는 물이 제법 흐르는 계곡산행을 하는게 바람직하다. 금년들어 원거리 및 서울근교에도 몇번을 다녀왔지만, 도봉산 계곡중에는 물이 제법 흐르는 계곡이 도봉계곡(問師洞계곡)이다. 몇년 전까지만 해도 7~8월중에 산우들과 도봉계곡(問師洞계곡)을 찾아 갔었다.
날씨가 매우 무덥고, 시원한 바람이 불지않는게 흠이었지만, 아들과 함께 배낭을 챙겨 도봉산 도봉계곡(問師洞계곡)을 찾아 나섰다. 물이 흐르는 시원한 계곡에서 막걸리를 한 잔하며 그동안 쌓였던 스트레스도 해소할까 하여 인적이 별로없는 산 계곡에서 그져 시원한 차림으로 하루중 몇 시간을 보내고 싶었고, 세족도 하고 싶었다.
오늘의 날씨는 35℃의 무더위가 지속되었지만, 미세먼지가 좋은 상태(26㎍/㎥)로 구름 한점 없이 맑은 날씨라서 전경이 먼곳까지 뚜렷이 잘 보여 내일도 다시 한번 오고싶은 마음이 앞섰다. 문사동(問師洞)은 도봉 서원 앞 계곡의 이름이다. '주례(周禮)'에 따르면 '문(問)'은 예를 갖추어 맞아들인다는 뜻으로, '問師洞'은 스승을 모시어 맞아들이는 곳이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가 있다.
수려한 계곡에서 도봉 서원의 스승과 제자들이 함께 자연을 즐기며, 학문을 논하던 장소 였음을 알 수 있다. 자연석 표면에 '問師洞'이라고 초서체(草書體)로 새겨져 있으며, 인위적인 구획을 만들지 않았다. 필획은 변화가 없이 일정하고, 운필이 비교적 부드러우며 동세가 적극적으로 표현되어 있지 않아 전체적으로 단정한 느낌을 주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문사동 바위 글씨는 정확한 제작 연원을 파악할 수 있는 자료가 없으며, 제작 시기와 글씨를 쓴 사람은 알려져 있지않고 있다.
◈ 일시 : 2018년 7월 21일(토) 10:30~
◈ 장소 : 도봉산 도봉계곡(問師洞)
◈ 산책코스 : 도봉산역-도봉탐방지원센터-도봉사-금강암-성도원-문사동-성도원-도봉서원-도봉분소-광륜사-도봉산역
◈ 동참자 : 아들과 함께
◈ 동반시 : "사랑하는 까닭" / 한용운
◈ 뒤풀이 : '닭백숙'에 막걸리 한 잔 / 집에 돌아와서
※ 동반시
"사랑하는 까닭" / 한용운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것은 까닭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은 나의 홍(紅顔)만을 사랑하지마는 당신은
나의 백발(白髮)도 사랑하는 까닭입니다.
내가 당신을 그리워하는 것은 까닭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은 나의 미소만을 사랑하지마는 당신은 나의
눈물도 사랑하는 까닭입니다.
내가 당신을 기다리는 것은 까닭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은 나의 건강만을 사랑하지마는 당신은 나의
주검도 사랑하는 까닭입니다
▣ 한용운(韓龍雲) / 1879~1944
승려. 시인. 독립 운동가. 충남 홍성에서 출생. 이름은 봉완(奉琓), 법명은 용운. 호는 만해(萬海). 1896년에 동학 운동에 가담했다가 실패하자 설악산 오세암에 피신한것이 인연이 되어 불문에 귀의하여 1905년에 승려가 되었다. 1908년에 전국 사찰 대표 52인의 한 사람으로 원흥사에서 <원종 종무원>을 설립한 후 일본에 가서 신문명을 시찰하고 돌아왔다.
1910년 국권 침탈을 당하자 중국으로 망명, 의병 활동을 격려하다가 1913년 귀국하여 불교 학원에서 교편을 잡았다. 그 해에<불교대전>을 써서 무능한 불교를 개혁하고 불교의 현실 참여를 주장하였다. 1916년 월간지 <유심>을 발간 하였으며, 3.1운동 때 민족 대표 33인의 한 사람으로 독립 선언서에 서명하고 체포되어 3년간 복역하였다.
1926년 시집 <님의 침묵>을 발표하여 저항 문학에 앞장 섰고, 이듬해 신간회에 가담하여 중앙 집행위원 겸 경성 지회장으로 활약하였다. 그 후 불교를 통한 청년 운동을 벌이는 한편, 월간지 <불교>를 인수하여 불교의 대중화와 독립 사상 앙양에 힘썼다. 1935년 장편 소설 <흑풍>을 <조선일보>에 연재한 후 <박명>등 몇 편의 장편을 계속 내 놓았다. 1937년에 불교 관계 항일 단체인 만당 사건의 배후자로 피검되었고, 그후 성북동에서 중풍으로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