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슴과 혼인하여 일가를 이룬 오동, 창원시 오동동
오동동(午東洞)은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에 있는 동의 이름이다.
‘오동동’이라는 이름이 붙은 데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한다.
옛날 진주의 어느 마을에 최 대감이 살고 있었다.
그에게는 ‘오동’이라는 이름의 외동딸이 있었다.
딸은 자라 혼인할 나이가 되었으나 최 대감은 애지중지 시집보내길 꺼렸다.
들어오는 혼담을 모두 거절하며 딸을 아꼈다.
하지만 오동은 돌쇠라는 최 대감댁 머슴과 여러 달째 정을 통하고 있었다.
둘은 사람들의 눈을 피해 몰래 만나며 사랑을 키워갔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알게 된 최 대감은 불같이 화를 냈다.
양반집 딸이 미천한 머슴과 정을 통한다는 것은 용서할 수 없는 노릇이었기 때문이다.
귀하게 여기던 딸이 외려 가문에 먹칠했다고 생각한 최 대감은 하인들에게 명령했다.
“저 둘을 묶어 광에 가두거라.
물 한 모금이라도 주는 자에게는 엄벌을 처하겠다.”
최 대감의 부인이 울면서 매달렸다.
“대감, 어리고 미숙한 딸이 잘못 생각한 겁니다. 부디 용서를 해주세요.”
그러나 대감은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여러 날이 지났다.
아무것도 먹지 못한 오동과 돌쇠는 어두컴컴한 광에서 정신을 잃어가고 있었다.
그때 광문이 열리며 최 대감의 부인이 조심스럽게 들어왔다.
부인은 쓰러진 딸을 일으켜 세우며 말했다.
“얘야, 이걸 먹고 정신을 차리거라.
여기 얼마간의 노자와 패물을 준비했으니 이걸 가지고 돌쇠와 함께 떠나 아무도 모르는 곳에 가서 살거라.
어떻게든 잘 살아야한다.”
“어머니, 죄송합니다.”
부인과 오동은 붙들고 한없이 울었다.
집을 떠나 정처 없이 방랑하던 오동과 돌쇠는 마산의 작은 포구에 도착했다.
그곳이 퍽 마음에 들었던 둘은 어머니가 준 패물을 팔아 살림을 차렸다.
돌쇠는 옹기를 구워 팔았고 그사이 오동은 아들 하나를 낳았다.
부지런히 일하며 살림을 불려 나가던 둘은 몇 년 후가 되자 상당한 재산을 모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렇다 할 족보가 없어 하나밖에 없는 아들에게 떳떳한 이름을 줄 수 없음이 늘 마음 아팠다.
“아들에게 성 씨 하나는 물려주어야 할 터인데, 어찌 방법이 없겠습니까?”
부부는 의논 끝에 한양에 있는 이조판서를 찾아가기로 했다.
돌쇠는 의관을 잘 갖추어 입은 후 돈을 가득 챙겨서 한양으로 올라갔다.
이조판서를 만나 많은 돈을 주고 참봉이라는 벼슬을 얻을 수 있었다.
그렇게 돌쇠는 김 참봉이 되었다.
세월이 흘렀다.
오동과 돌쇠의 아들은 무럭무럭 자라 과거 시험을 볼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
부부를 닮아 부지런하고 영특한 아들은 열심히 공부하여 장원급제를 하였다.
금의환향한 아들을 보며 부부는 눈물을 흘리며 기뻐했다.
“진주에 계신 부모님이 이 사실을 알면 얼마나 기뻐하실까요?”
오동은 진주에 있는 부모님이 몹시 그리워졌다.
살림을 일구고 아들을 잘 키운 자신을 보여드리고 싶었다.
“무얼 고민하십니까, 부인.
장인어른을 뵈러 당장 진주로 갑시다.”
오동과 돌쇠 그리고 그의 아들은 진주로 길을 떠났다.
한편 최 대감 부부는 딸을 그렇게 쫓아내 버린 후 이십여 년을 눈물로 세월을 보냈다.
“어디서 잘 살고는 있는지. 죽지는 않았는지.” 항상 걱정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아버지, 어머니, 제가 왔습니다. 오동이가 왔어요.”
그리운 목소리가 대문 간에서 들려왔다.
최 대감 부부가 맨발로 뛰쳐나가 보니 오동과 돌쇠 그리고 늠름한 손자가 서 있는 것이 아닌가?
최 대감 부부는 오동을 부둥켜안고 울음을 터뜨렸다.
오동과 돌쇠가 살던 마산 마을에 이 사연이 퍼졌다.
신분을 가리지 않고 훌륭하게 일가를 이룬 오동에 대한 칭송이 이어졌다.
이후 오동과 돌쇠가 살던 마을을 오동마을이라고 부르며 오동의 행실을 기억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