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거울의 역사
거울의 정의는 ?
바로 빛의 반사를 이용하여 물체의 형상을 비추어보는 물건이죠!
거울[鏡]의 발명은 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면서 비롯되었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최초의 거울은 석경(石鏡)으로 제작되었을 것으로 추측되며, 거울을 ‘색경’(석경의 음전)이라고 부를 만큼 석경은 오랫동안 사용되었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우리 나라 최고(最古)의 거울은 서기전 6세기경에 제작된 것으로 보이는 동경(銅鏡)입니다.
이는 청동기시대에 제작되기 시작하여 삼국시대·고려시대 및 조선시대까지도 사용되었습니다.
때로는 은으로 만든 은경이 나타나기도 하였는데, 이들은 대부분 둥근 모양으로 한가운데 꼭지가 있고, 한쪽 면에는 여러 가지 무늬가 조각되어 있습니다.
드문 예로, 양면 거울이 있었고, 지름이 한 자 가량인 대형이 있는 반면에 한 치에 지나지 않는 휴대용도 있었습니다
큰 거울은 경가(鏡架)에 걸어놓고 사용하였는데 국립중앙박물관에 진열된 고려시대의 경가를 보면 앉아서 사용하기에 편리하도록 45°쯤 기울일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서서 보기에 편한 등신대의 경가도 있었다고합니다.
이러한 초기의 거울은 모두가 지금과 같이 선명하게 비추어지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때가 묻어도 잘 닦아지지 않는 결점이 있었습니다.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는 관아에 거울제조기술자인 경장(鏡匠)을 두어 거울을 만들게 하였으며, 조선시대에는 시전에서 거울을 판매하였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우리 나라에 현재와 같은 거울이 제작된 것은 1883년 인천에 판유리공장이 설립되어 유리가 양산됨으로써 얼굴을 비추는 면경(面鏡)이 널리 보급되었으며, 경대 및 체경도 아울러 대중화되었습니다.
한편, 옛날 거울의 용도는 사람의 용모를 비추어보는 것에만 국한되지 않고 그 사용례가 매우 다양하였는데, 무당들이 사용하던 세 가지 무구(巫具)는 칼·방울·거울로, 무당은 거울을 들여다보면서 집을 나간 사람이나 잃어버린 물건의 행방을 점치기도 하였습니다
이와 같은 사용례를 근거로 고대의 거울이 무당의 장식품이자 주구(呪具)였다고 보는 견해가 있습니다
또 한편으로 석경·은경·동경·백동경을 보면 대부분 한쪽 면만 비추어 보도록 되어 있으며, 다른 면에는 여러 가지 무늬나 글씨가 조각되어 있다.
인물·누각·신선·산·나무·꽃·새·물고기 등의 조각이 있는데, 이는 거울을 아름답게 꾸미기 위한 것이라기보다 신기로서 또는 통치자의 상징을 표현하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설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