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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 聖霊の実(九つの徳目)。( 2024년 12월 15일 주일예배)
본문 갈 5:22~26
갈 5:22 ○그러나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기쁨과 화평과 인내와 친절과 선함과 신실과 23 온유와 절제입니다. 이런 것들을 막을 법이 없습니다. 24 그리스도 예수께 속한 사람은 정욕과 욕망과 함께 자기의 육체를 십자가에 못박았습니다. 25 우리가 성령으로 삶을 얻었으니, 우리는 성령이 인도해 주심을 따라 살아갑시다. 26 우리는 잘난 체하거나 서로 노엽게 하거나 질투하거나 하지 않도록 합시다.
22. これに対して、霊の結ぶ実は愛であり、喜び、平和、寛容、親切、善意、誠実、23. 柔和、節制です。これらを禁じる掟はありません。24. キリスト․イエスのものとなった人たちは、肉を欲情や欲望もろとも十字架につけてしまったのです。25. わたしたちは、霊の導きに従って生きているなら、霊の導きに従ってまた前進しましょう。26. うぬぼれて、互いに挑み合ったり、ねたみ合ったりするのはやめましょう。
지난 주일에는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을 통해 얻은 자유로 성령을 따라 행하라는 주제로 말씀을 들었습니다. 아울러 주님이 주신 자유를 육신의 욕망을 추구하는 구실로 삼을 때 나타나는 각종 부도덕과 죄악의 현상들에 대한 경고도 함께 들었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주님께서 가르쳐 주시는 대로 말씀과 기도를 통해 성령님께 순종하는 일상을 감당하는 건강하고 거룩한 풍요로운 인생을 살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오늘의 본문은 그 유명한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를 가르쳐 주시면서 동시에 다시금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 것을 강권하고 계시는데요. 성령의 열매에 대해서 혹은 성령님을 따르는 삶에 대해서 종종 오해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성령님이 하실 일을 마치 자신의 노력과 행실로 증명하고 나타내야 할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지요. 어쩌면 세속의 가치관과 세계관을 신앙생활이나 교회생활로 치환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것일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을 읽고 고백하면서도 소망과 기쁨, 그리고 기대하는 마음보다 부담과 한숨, 그리고 자책의 생각을 갖게 되는 분들도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그 어느 곳에서도 우리에게 스스로 노력하여 자신을 구원하라는 말씀이나, 혹은 수행을 통해 자신을 거룩한 사람으로 만들어 갈 수 있다고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우리는 전혀 소망이 없는 존재이며, 영생을 위해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가르쳐 주고 계시지요.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엡 5:8)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롬 3:10-12)
성경은 우리의 상태에 대해서 아주 단호하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노력이나 실력으로 자신의 영혼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이 전혀 없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것이 이른바 죄인임을 인정하고 죄를 인식하는 것이지요. 우리는 완전히 죄에 절어 있어서, 끊임없이 죄를 뿜어내는 죄의 장아찌라고 누군가는 표현합니다. 이런 스스로의 상태를 인정하고 자신이 짓는 죄를 인식하고 고백하는 것이 회개의 시작인 것이지요.
그러므로 오늘 성경 본문이 기록하여 말씀하고 계시는 이 아홉 가지 덕목을 우리의 영적인 활동의 노력이나 수행을 통해 맺는 열매라고 하지 않고, 성령의 열매라고 표현하고 계시는 것이지요. 따라서 우리가 할 것은 이 아홉 가지 덕목이 내 안에서 열매 맺고 자라고 있는 것을 살펴보며 발견하는 즐거움을 갖는 것이라고 할 것입니다.
제가 집에서 블루베리 화분을 키우는데요. 지금은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시기라서 잎파리가 변색되고 떨어지고 있는 시기입니다. 그러나 이제 곧 봄이 오면 가지 끝에 눈이 달리고, 꽃이 피는 시기가 오겠지요. 그럼 모든 가지에 온통 하얀색 방울처럼 생긴 꽃이 달립니다. 그러다가 그 꽃의 꽃잎이 변색되고 떨어지면 그 꽃이 떨어진 자리에서 열매가 부풀어 오르기 시작합니다. 열매가 맺는 것이지요. 열매를 맺을 시기에 베란다에 있는 화분을 보면 신기하고 신비롭습니다. 어쩌면 경제적인 목적으로 그 화분을 키우지 않기 때문에 더욱 신비롭게 여겨지는 것 같습니다. 계절과 화분의 상태가 순조롭게 지켜지면 열매를 찾을 수 있지요. 열매를 맺는 시기에 블루베리 나무를 보면 거의 같은 시기에 꽃이 피고 꽃잎이 떨어지지만 가지마다 열매를 맺는 타이밍은 조금씩 다릅니다. 그래서 매일 그 열매를 찾아내는 재미가 있습니다. 그래서 종종 마트에서 과일을 사 먹고 나면 씨앗을 발아시켜서 화분에 심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일지 모르겠습니다.
성경이 우리에게 성령님께 순종한 삶의 결과에 대해서 아름답고 신실한 열매의 덕목을 말씀하시는 데에는 이런 신비로움과 기대하는 마음과 즐거움을 주시려 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하게 됩니다. 만일 우리가 이 아홉 가지의 성품과 덕목을 증명하기 위해서 노력하고 애쓰고 몸부림을 쳐야 한다고 하면 과연 우리는 예수님께서 주신 자유를 누릴 수 있을까요? 과연 우리는 구원받아 기쁘고 감사하며 기도로 주님과의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싶을까요? 우리 가운데 누구도 그런 부담과 억눌림 속에서 살기를 원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성령님께 순종하는 자에게 이런 아홉 가지 덕목과 성품의 증거가 나타날 것을 약속하시고, 가르쳐 주시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래서, 저는 우리가 이 아홉 가지 열매의 모습으로 나타나는 덕목과 성품에 대해서 잘 기억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다만 그것이 우리가 자신의 노력으로 내가 이런 성품을 가져야 해.. 라고 스스로를 얽어매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맺히고 있는가를 발견하는 기쁨과 재미를 얻기 위해 알기를 원하는 것이지요.
새번역에서는 사랑, 기쁨, 화평, 인내, 친절, 선함, 신실, 온유, 절제라고 하는데요. 개역성경은 사랑, 희락, 화평, 오래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입니다. 물론 모두 같은 뜻으로 단어의 표현만 다르지요. 중요한 것은 이 아홉 가지가 어떤 것은 있고, 어떤 것은 없는 식의 각각 다른 종류로 맺는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성령님을 따라 살고, 그 말씀에 순종하면 이 아홉 가지 성품이 우리 안에서 함께 자라난다는 뜻이지요. 그래서 “난 사랑은 많은데 인내하지 못해...”라던가, “난 오래 참기는 되는데 충성하지는 못하겠어”라는 표현은 성령의 열매를 오해하는 것입니다. 어쩌면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로 표현된 이 덕목을 단지 육신적으로 좋게 보이는 행위로 생각하기 때문에 생기는 오해인 것이지요.
그러므로 이런 좋은 성품과 덕목이 열매 맺는 삶을 살게 되는데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단지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겠다는 의지와 소망을 주님께 드리면 되는 것이라고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마태복음 13장에는 씨앗을 뿌리는 비유(1~9절)가 나옵니다. 여러분도 잘 아시다시피 씨앗이 좋은 밭에 떨어지면 30배, 60배, 100배의 열매는 맺는다고 하시지요. 그러면서 여기서 씨앗은 말씀이라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해석해 주십니다(11-23절). 그리고 밭은 우리의 마음이라고 하십니다.
이에 덧붙여 24-30절에는 천국은 좋은 씨를 밭에 뿌린 사람과 같다는 비유로 가르쳐 주시는데요. 좋은 씨를 뿌린 밭에 원수가 몰래 와서 가라지를 뿌리고 갔다는 비유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과 관련해서 본다면 바로 성령님께 순종하며 사는 삶은 좋은 씨앗이 뿌려진 삶이고, 육신의 욕망을 따라 사는 것은 가라지를 뿌리는 삶과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어느 씨앗이든 추수때가 되면 그 정체가 드러납니다. 그 때 주님은 이렇게 심판하겠다고 하십니다.
둘 다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라 추수 때에 내가 추수꾼들에게 말하기를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고 곡식은 모아 내 곳간에 넣으라 하리라 (마 13:30)
또한 씨앗은 그 열매가 자라기까지 그 열매를 키우는 아버지 외에 그 어느 누구도 그 내막에 대해서 명확히 알 수 없다고도 하셨습니다.
또 이르시되 하나님의 나라는 사람이 씨를 땅에 뿌림과 같으니 그가 밤낮 자고 깨고 하는 중에 씨가 나서 자라되 어떻게 그리 되는지를 알지 못하느니라 (막 4:26-27)
그렇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어떤 열매를 맺고 있는지 스스로는 현실적으로 명확하게 알기 어렵습니다. 다만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육신의 욕망을 따라 본능적으로 사느냐, 성령께 순종하며 영적으로 사느냐 일 뿐이지요.
지난 주일에도 말씀을 드렸듯이 성령을 따라 살기 위해서 말씀과 기도로, 주님과 친밀하게 동행하며 사는 것이 죄인인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영생을 사는 최선입니다. 유일한 방향이며 태도와 자세이기도 하지요.
오늘의 본문은 우리가 이미 우리의 정욕과 욕망이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다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짊어지고 십자가에 달리셨다는 말씀은 곧, 나의 육신적인 태도와 자세가 이미 심판을 받았다는 뜻과 같습니다. 우리가 이미 함께 나누었던 말씀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갈 2:20)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실 때 우리의 육신적인 욕망과 탐욕, 그리고 모든 육체적인 본능의 태도와 자세도 함께 못박혀 심판을 받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삶은 겉으로 나타나는 것은 육신의 삶, 즉 인생이지만, 내면적으로는 영적인 삶, 즉 영생이라고 당당히 고백할 수 있는 것이지요.
오늘 본문의 마지막 구절은 성령을 따라 사는 일상에서 성도가 가져야 할 인간관계와 공동체를 향한 기본적인 자세를 권면하고 계십니다. 곧 잘난 체 하거나, 서로 노엽게 하거나, 질투하지 않도록 스스로를 조심하자는 것입니다.
이는 우리의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 세우신 교회, 그리고 가정, 또한 우리가 속한 사회에서 만나고 인간관계를 맺는 모든 이웃들과 친구들을 대하는 태도일 것입니다. 그래서 마지막 절을 한 마디로 정리하라고 한다면... “사이 좋게 지내라”는 표현이라고 여겨집니다.
성령님은 우리의 관계를 갈라 놓기 위해서 오신 것이 아닙니다. 성령님은 우리의 관계가 갈등하고, 다투고, 지배하고, 무례하고, 무시하도록 부추기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오히려 잘난 체하는 것을 제어하고, 노엽게 하지 않고, 질투와 시기를 없애시는 분이신 것을 믿습니다.
이 세상 여러 곳에서 여전히 전쟁과 반목과 폭력과 미움과 무례와 모욕이 힘을 모으고 있습니다. 남이 한 대를 때리면 나는 두 대를 때리고 싶은 마음이 치고 올라옵니다. 하지만, 여러분도 잘 아시는 대로 예수님께서는 절대로 원수를 대적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이 땅의 모든 죄악과 부조리, 불의는 주님께서 친히 심판하셔야 하기 때문이지요.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 하시고 또 다시 주께서 그의 백성을 심판하리라 말씀하신 것을 우리가 아노니 (히 10:30)
그러므로 우리가 할 일은 오직 성령님께서 말씀을 통해, 그리고 기도할 때의 감동을 통해 주시는 명령과 가르침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반드시 주님께서 우리의 억눌림과 고통과 분노에 합당하게 심판하시고, 죄와 악행에 대한 처벌을 행하실 것입니다. 성경은 마지막 때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불의를 행하는 자는 그대로 불의를 행하고 더러운 자는 그대로 더럽고 의로운 자는 그대로 의를 행하고 거룩한 자는 그대로 거룩하게 하라 (계 22:11)
죄인이 회개하지 않는 것은 멸망하기로 작정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믿고 회개하여 죄사함을 얻어 거듭나서 영생을 사는 인생인 우리들은 어떤 어려움과 걸림돌과 방해가 있어도 거룩하게 살기를 포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마침내 풍성한 열매를 맺고, 알찬 곡식을 거둘 것입니다. 좋은 씨앗을 뿌리신 주님께서 우리의 마음 밭에서 열매를 맺기까지 멈추지 않으십니다. 우리는 다만 그 성령의 열매가 지금 어떻게 자라고, 어떻게 열매를 맺고 있는가를 기대하며, 기다리면서 기도로 자신을 지킬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저와 여러분은 육신의 욕망에게 지지 않고 성령의 인도하심에 순종함으로 하루하루 풍성하게 맺고 있는 일상을 발견하는 천국의 주인공으로 살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령의 열매는 죄의 장아찌와 같은 우리가 맺는 것은 아니지만, 저와 여러분의 현실에서 발견할 수 있다는 오늘 주신 말씀의 약속을 믿습니다. 나는 할 수 없으나 하나님은 하십니다. 그러니 지금 당장 이 아홉 가지의 덕목과 성품이 드러나지 않는다고 낙심하지 않기를 소망합니다. 지금 당장에 열매가 없는 것 같아 한숨 쉬거나 좌절하지 않기를 갈망합니다. 육신의 감각과 기분으로 반응하기 전에 찬란하게 빛나는 천국의 보화와 같은 주님의 시선을 의식하는 연습에 승리하도록 기도합니다. 저와 여러분이 일상적인 삶의 터전에서 찬란하게 빛나는 주님의 시선과 성령의 열매를 발견하는 기쁨과 재미를 누릴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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