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산의 국보 탐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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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리 쌍탑
경주 남산에는 국보와 보물, 사적지, 지방유형문화재, 지방기념물 등의 지정문화재 51점이 있다. 석등과 탑 등의 비지정문화재를 포함하면 700여점의 유물들이 산재해 있다. 이중 국보는 유일하게 1점이 있다. 제312호로 지정된 칠불암 마애불상군이다. 칠불암으로 가는 길은 통일전에서 서출지를 지나 남산리 삼층석탑, 염불사지를 지나 산길을 오르는 길이 가장 편하게 접근할 수 있는 코스다. 칠불암에서 300여m 오르면 보물 신선암 마애보살반가상도 만날 수 있다.
통일전에서 칠불암까지는 약 4㎞ 거리로 아주 천천히 걸으면 2시간, 왕복 4시간 거리다. 절반 가까이 마을안길 평탄한 길로 이어지는 문화재 답사길이다. 계절별로 다양한 화초와 예술활동을 하고 있는 예술인들의 삶도 엿볼 수 있다. 또한 전통 한정식과 오리요리, 칼국수 등의 다양한 음식점이 있다.
칠불암으로 가는 마을 남산리에는 최근 찻집을 겸한 카페들이 생겨나고, 펜션도 들어서면서 가족단위로 휴식할 수 있는 공간들이 늘어나고 있다. 서출지와 염불사지 등의 문화답사코스에는 삼국유사 등에서 소개하는 재미있는 전설이 있어 힐링하기 좋은 코스다.
◆서출지
칠불암을 향해 산행을 시작하는 첫 걸음에 만나는 역사문화유적이 서출지다. 통일전 주차장에 접해 있는 서출지는 마을 입구에 있는 아담한 연못이다. 백일홍이 여름 내내 붉게 타오르는 못둑은 연인들의 산책로다. 연못 안에는 연꽃들이 유역면적 4분의 3을 차지하고 있어 물보다 꽃이 많다. 연못으로 성큼 들어선 정자는 주변 풍경을 한층 운치 있게 해 포토존으로 인기다.
서출지라는 이름은 삼국유사에 기록된 전설을 배경으로 지어졌다. 신라 21대 소지왕은 고구려 장수왕의 침략에 대비해 백제와 결혼동맹을 맺고 국방을 튼튼히 하는 한편 백성들의 어려움을 헤아리려 애썼던 어진 군주로 평가되고 있다. 소지왕이 재위 12년 되던 해에 남산 기슭의 정자 천천정(天泉亭)으로 가는데 까마귀와 쥐가 계속 울어 이상하게 생각했다. 그런데 쥐가 다가와 사람처럼 말했다. “이 까마귀를 따라 가세요.” 소지왕은 신하를 시켜 까마귀를 따라가게 했는데 길에서 돼지가 싸우는 것을 보다가 그만 까마귀를 놓쳐버렸다. 당황해 오르락내리락 하고 있는데 연못에서 노인이 나타나 신하에게 봉투를 건네주었다. 봉투에는 ‘열면 두 사람이 죽고, 열지 않으면 한 사람이 죽는다’고 적혀 있었다. 임금은 한 사람이 죽는 것이 낫다고 여겨 열지 말라 하였다. 그러나 신하들이 나서 “그 두 사람은 평민이요, 한 사람은 대왕을 일컫는 것이옵니다”라며 한사코 편지를 열어보기를 권했다. 소지왕은 일리가 있다 생각하고 봉투를 열어보게 했다. 봉투 안의 편지에는 ‘거문고갑을 쏘라’고 적혀 있었다. 소지왕은 돌아와 거문고갑을 쏘았다. 거문고갑 안에는 궁에서 왕실의 복을 빌던 중이 죽어 있었다. 중이 왕비와 짜고 소지왕을 해치려 했던 것이다. 왕비도 곧 사형됐다. 편지글처럼 두 사람이 죽고 왕이 살았다. 이후부터 나라에서 정월 보름날 까마귀를 위한 제를 올리는 풍습이 이어지고 있다. 연못에서 편지가 나왔다 하여 ‘서출지’라 한다.
지금은 서출지의 위치를 두고 설이 분분하지만 정자와 연꽃, 백일홍 등의 경치가 아름다운 이 연봇을 서출지라 부르고 있다.
◆염불사지와 양피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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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불사지 쌍탑
서출지에서 또 평지길을 남쪽으로 걷다보면 낮은 한옥들이 어깨동무를 하고 서 있다. 골목마다 주택지와 식당, 토기를 구워내는 공방, 간단한 음료 등을 판매하는 상점, 펜션 등이 있다. 주택가 사이로 삼층석탑 2기가 동서로 서서 방문객을 맞는다.
첫 번째 쌍탑이 있는 곳이 양피사지다. 남산리 삼층석탑으로 불리는데 보물 제124호로 지정된 문화재다. 서탑은 목탑을 본 떠 세운 전형적인 신라석탑의 모형이다. 서탑의 몸돌에는 정교한 조각기법으로 팔부신중상이 사면으로 돌아가며 돋을새김 되어 있다. 동탑은 팔부신중상은 나타나지 않고 벽돌모양의 큰 돌 4개를 2단으로 쌓아 전탑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남산쪽으로 치우쳐 있는 염불사지의 쌍탑은 몸돌에도 문양이 없는 밋밋한 삼층석탑 형식을 띠고 있다. 신라시대 남산 동쪽에 피리라는 마을이 있었다. 마을 이름을 따 피리사로 불리는 절이다. 이 절에는 어디에서 왔는지 이름도 모르는 스님이 한 분 있었다. 스님은 정해진 시간에 하루 몇 번씩 염불을 외웠다. 염불소리는 서라벌 17만 8천 936호에 들리지 않는 곳이 없었다고 전한다. 염불소리를 들으면 화난 사람은 화가 풀리고, 초조한 사람도 마음이 편안해지고, 근심걱정이 사라졌다고 한다. 그 스님이 입적하자 마을 사람들은 슬퍼하면서 염불사로 절이름을 고쳐 불렀다. 염불사지 쌍탑은 이거사지 탑재를 옮겨와 보충한 부분이 많다. 아직도 염불사지 쌍탑 남쪽에는 이거사지 석탑의 부재들이 많이 쌓여 있다.
이러한 전설은 삼국유사에 기록되어 있다. ‘염불소리가 17만8천936호에 들리지 않는 곳이 없다’는 기록에서 당시 서라벌의 인구가 100만이 넘었을 것으로 유추한다. 호당 가족 6명씩만 계산해도 100만 명이 넘는다. 호라는 단위가 방이라는 설과 숫자가 잘못 기록되었을 것이라는 설도 있지만 신라시대 서라벌은 100만 명이 넘는 사람이 살았고 서역과 교역하던 큰 도시였다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많다.
◆국보 칠불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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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불사지를 지나 개울을 넘어서면 본격적인 산길이 시작된다. 이 길은 비교적 평평해 산책하기에 좋다. 길이 계곡과 연접해 이어지고 소나무 숲이 그늘을 만들어 여름철에도 시원하다.
염불사지에서 칠불암으로 가는 길에는 남산 정상에서 내리뻗은 계곡이 여러개 있다. 쑥두듬골, 승소골, 천동골, 봉화골 등이 있는데 모두 전설과 석탑 등이 남아 있어 남산이 불교유적지면서 불교계에서 순례지로 답사하는 코스이기도 하다.
삼존불과 큰 바위 사면에 돋을새김된 4구의 부처를 포함해 7구의 부처가 바위에 새겨져 있다 하여 칠불암으로 불린다. 칠불암 바로 옆에는 비구승들이 공부하는 암자가 있다. 비구승들은 산행하는 사람들이 마루에 걸터앉거나 대웅전으로 들어가 커피를 마시며 쉬어가는 쉼터로 이 암자를 개방하고 있다.
칠불암을 코앞에 두고는 가파른 오르막이 시작된다. 가파른 길에 계단을 만들어 오르기 쉽게 해놓았다. 계단을 절반쯤 오르면 왼쪽에 맑은 샘물이 있다. 먹을 수 있는 깨끗한 물이 솟는 샘이다. 샘물로 목을 축이고 다시 칠불암으로 오르는 길은 양쪽에서 우거진 신우대가 아치를 만들어 마치 개선장군이 되는 기분이 든다. 머리가 땅에 닿듯 허리를 숙여 300여 돌계단을 올라서면 웅장한 바위에 새겨진 불상이 눈에 확 들어온다. 청수한 부처의 얼굴을 보면 힘들게 올라왔던 몸과 마음이 시원하게 해소된다.
높이 10m의 병풍 같은 바위에 불상처럼 입체적으로 두텁게 삼존불을 새겼다. 본존여래불은 두 겹의 연꽃대좌에 앉은 당당한 풍채로 조각수법이 뛰어나 그 예술성은 현대미술계에서도 흉내내기 어려울 정도다. 특히 1천년이 넘는 세월을 비바람을 맞고 있지만 본존불의 코 끝이 살짝 훼손된 것 외에는 모두 깨끗하게 보존되어 있으며 국보 제312호다.
양쪽의 협시보살들도 두텁게 양각되어 있다. 오른쪽 협시보살은 오른손에 정병을 들고 늘어뜨리고 있고 왼손은 가슴 높이까지 들고 있는 자세다. 왼쪽 협시보살은 오른손에 보상연꽃을 들고 있고 왼손은 길게 늘어뜨리며 옷자락을 잡고 있다. 옷의 맵시나 신체의 비례 등이 잘 드러나 있어 신라불교미술사를 연구하기에도 좋은 보기가 된다.
본존불 앞에 네모난 바위가 우뚝 서 있는데 바위 사방에 부처를 새겨 사방사불로 표현했다. 동쪽에는 왼손에 약그릇을 들고 앉아 있는 약사여래를 양각으로 새겼고, 서쪽에는 상반신을 돋을새김하고 다리부분은 특이하게 선각으로 아미타여래상을 새겨 배치했다. 남쪽을 바라보는 곳에는 연꽃 위에 결가부좌로 앉아 설법인을 하고 있는 환희국의 보생여래불을 새겼다. 북쪽 바위면에는 이중으로 핀 연꽃대좌 위에 결가부좌하고 있는 설법인상을 새겼다. 칠불암에는 일반 등산객은 물론 문화재탐방객을 비롯해 불교순례자들의 발걸음이 끊이질 않는다.
◆신선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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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선암은 칠불암에서도 300여m 가파른 벼랑길을 올라야 된다. 칠불암 부처 뒤를 돌아 한 사람이 겨우 지날 수 있는 좁게 난 산길이다. 바위로 형성된 암벽길이어서 위험하다. 그러나 수천 년이 지나는 동안 큰 사고가 없어 탐방객들은 부처님의 도량이기 때문이라 해석하기도 한다. 위험을 무릅쓰고 신선암에 이르면 감탄사가 저절로 나온다.
까마득하게 높은 벼랑에 새겨진 불상의 아름다운 예술성에 놀란다. 이어 불상을 비껴 세속에서 보기 힘든 절경이 펼쳐지기 때문이다. 동이 틀 무렵 여명이 부처의 얼굴을 밝혀 오는 모습은 사진작가들의 로망이 되기도 한다.
국립공원사무소는 신선암의 동북쪽으로 접근하는 길을 최근 차단했다. 낭떠러지로 이어지는 길이 너무 위험하기 때문이다. 여름철이면 가끔 운무가 자욱하게 일어나 구름 속에 붕 떠있는 현상을 목격하기도 한다. 세상과 동떨어져 하늘 가운데 서 있는 풍경이 연출되는 것이다.
신선암의 불상은 특이한 자세와 아름다운 조각수법이 놀랍다. 얼굴의 살결은 보드랍고 표정이 풍성하며 눈썹은 하현달의 곡선을 그리고 있다. 알맞게 솟은 코와 도톰한 입술 등의 얼굴이 조화롭게 새겨졌다. 팔찌를 하고 두 손을 치켜든 모습과 유려한 선으로 얇게 늘어진 옷자락은 보는 이의 마음을 매료시킨다. 또 왼발은 접고, 오른발은 아래로 늘어뜨려 걸터앉은 반가상을 하고 있어 안정감을 준다. 신선암 마애보살반가상은 보물 제 199호로 지정 관리되고 있다. 전설따라 역사문화자원을 찾아보는 재미있는 산행길, 칠불암과 신선암 가는 길을 최고의 힐링로드로 추천한다.
첫댓글 염불사지 스님의 염불소리, 만파식적과 같은 그 소리
마음의 안식을 가져다주는 그 소리 같은 정치 만나고 싶습니다.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