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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장 봉대산 & 죽성 황학대와 고산 윤선도 2018.1.13.
1. 산 높이 약 230m, 야트막한 야산이라 힘들지 않다. 기장역에서 이 산을 넘어서 월전, 죽성으로 간다
* 기장역-> 윤상직 국회의원 사무실쪽으로 도로를 건너간다. -> 우신네오빌 아파트-> 새찬양 교회 -> 덕밭 어린이공원 옆으로 숲길 진입로 * 15분 쯤 오르면 삼거리, 우측으로-> 정상이다. 표지석은 없고 이정표만 있다. 정상의 세갈래길 좌측으로 가면 -> 체육시설 -> 전망대가 있다. 옛 기장 남산봉수대 , 내려다 보면 죽성~대변 사이 바다가 한 눈에 들어온다. *전진하는 길은 없고 다서 조금 뒤로 물러나서 우측으로 내려 가면 대변이고, 좌측으로 내려가면 월전 죽성이다. 좌측길은 빈산에 사유지라며 멀쩡한 길에 철조망으로 막은 것이 두 군데 있다. 옆으로 살짝 우회하는 길이 새로 만들어지고 있다.
2. 대변항이 보인다.
3. 죽성리의 두호항이 보인다.
4. 정면은 일광 방향이다. 일광산 산기슭에 천지벽이 일어나고 있다. 대단지 택지가 조성되고 있다.
5. 대변과 죽성의 갈림길이다.
6. 죽성리 월전 바닷가 " 바람은 산모퉁이 우물 속 잔잔한 수면에 서린 아침 안개를 걷어 올리면서 일어났을 것이다." -정한모 <바람 속에서> 중 한구절
" 물결은 하얀 바닷새 앉은 자리 작은 깃털이 날려 조금씩 조그씩 밀려가며 파도가 됐을 것이다" 학정
7. 해변공원길이 조성되고 있는 중이다.
8. 해변공원길이 조성되고 있는 중이다.
9. 죽성 바닷가
10. 등대는 외롭지 않다.
11. 죽성 바닷가
12. 고래가 숨을 쉬러 물 밖으로 나타나고 있다.
13. 바위섬은 갈매기들의 쉼터다.
14. 죽성의 교회당 세트장
15. 세트장 안에 전시된 그림. 침 흘리게 하는 석류, 그림 속에서 반사된 곳을 가리려다 보니 흠집이 생겼다.
16. 세트장 안에 전시된 그림. 색조가 은은하다.
17. 죽성 바닷가
18.
19. 죽성 바닷가
20. 왜성이 보인다. 가등청정 부대의 진지이다. 소나무는 수령 250~300년 된 아름다운 소나무이고, 왜성은 임진왜란 국토의 상처 현장이다.
22. 죽성 바닷가
23. 마치 경주 감포 부근의 문무대왕 해중릉같은 분위기다.
24. 당집?
25. 황학대, 고산 윤선도가 노닐었던 곳이다.
26. 황학대란 양자강 하류의 이름있는 누대를 차용한 명칭이다.
27. 고산 윤선도가 왜 여기에? 때는 1616년 윤선도가 아직 벼슬도 하기 전에 대학생 신분(성균관 유생)으로 혈기있게 국정에 대하여 논박했겠다. 일컬어 <병진소>라고 한다. 당시 광해군 때 권신인 이이첨 등 일파의 잘못을 밝히는 상소였다. 그 결과 힘없는 윤선도는 귀양을 간 것이다. 먼저 함경도 경원으로 가서 한 일년 살다가 여기 기장으로 1617년에 옮겨져서 6년을 살아 경원 기장 7년간을 귀양살이 했다. 윤선도는 강직한 성품으로 할말은 하며, 정치적으로 남인이라, 서인들에게 늘 밀렸으며, 집중공격을 받았다. 그 성품으로 말미암아 화려한 벼슬은 하지 못하고, 파란만장한 일생을 보냈다. 85세 일생 동안 전후 20여년을 유배살이 했고, 또 간간히 벼슬을 그만두고 조상의 연고지 해남, 보길도 금쇄동 등지에 낙향하여 은거한 것이 19년이다.
28. 고산 윤선도는 정철, 박인로와 더불어 조선 3대 가인이라고 평가 될만큼, 문학의 대가였다. 아직 대학생 신분의 윤선도가 경원 또는 기장의 귀양지에서 지은 시조 6수중 하나다. <우후요? 雨後謠, 비개인 뒤의 노래>는 의미가 심장하다. 이 황학대는 지금은 매립으로 육지 속에 볼품이 적지만, 옛날에는 그럴듯한 섬이었던 모양이다. 이 사진만 해도 오래전 것인듯 바다에 연하여 있다.
29. 고산 윤선도 오우가
< 고산 윤선도 연고지 >
1. 서울 이화동 ; 1587년 탄생지. 윤유심(예빈시 부정)의 아들, 윤유기(강원도 관찰사, 유심의 동생)의 양자로 감. 서울 마로니에 공원에는 생가지 기념비가 있음. 2. 해남 녹우당 ; 해남 윤씨 종가 고택인 녹우당. 선조 어초은 사당, 고산 사당, 추원당, 유물전시관 등이 있다. 해남은 선조들의 고향. 고산은 중앙 정치 무대에서 밀려나면 고향에 은거함. 3. 함경도 경원, 부산 기장 ; 1616년 성균관 유생 신분으로 병진소를 올려 귀양 간 곳. ~1623년까지 4. 완도의 보길도 ; 병자호란 후 제주도로 가다가 경치에 이끌려 정착 개척한 곳. 부용동에 처소인 낙서재와 원림인 세연정을 세우고, 어부사를 창작한 곳. 마지막 85세로 별세한 곳도 낙서재이다. 5. 해남 금쇄동 ; 보길도 시절에 새로 개척한 곳. 문학 활동, 고산의 묘소도 금쇄동에 있다. 6. 영덕 ; 병자호란이 끝난 후 왕에게 문안인사를 드리지 않았다는 죄로 1638년 1년간 귀양 간 곳. 7. 경기도 양주 고산 ; 1652년 고산이 예조참의로 임명됐으나, 서인들의 모략으로 사직하고 은거한 곳. 孤山은 그의 호가 됨.
30. 황학대 암벽에 진사 방치주를 소개한 암서
31. 죽성의 작은 어항은 두호항이구나!
32. 두호항
33. 두호항
34. 갈매기는 생업중/ 가만이 기다림은 먹이를 잡으려는 인고의 시간이다. 그러므로 갈매기의 생업이라고 할 수있다.
35. 갈매기의 명상
36. 오리들이 황금을 캐는지, 미끄러지는지?
37. 기장남산 봉수대
38. 전망이 좋은 옛 기장남산 봉수대 자리다. 복원되어 있지는 않다.
39. 기장남산 봉수대. 이상한 키재기.
40. 바닷가 전망이 좋은 정상. 옆에는 이상한 그림자 하나.
41. 정자의 난간이다. 기장향인들이 시산제를 지내고 있는 곳이다.
42. 아주 박력있는 분과 함께.
43. 다정하고 행복한 순간들.
44. 누가 얼른 와서 끼었지?
45. 조심, 조심!
46. 해녀상이 멋지다.
47. 눈이 밝은 두 분.
48. 의연한 두 분.
49. 봉대산 체육시설 옆에서. 아주 최근에 마련된 탁자다. 산이라기 보다는 조그만 동산이다. 우리 나이 안성맞춤인 곳이다. 기장역에서 한시간 반 정도 넘어, 월전에서 바다장어 맛이 좋다.
50. 기장역에서 봉대산으로 오는 도중에 길가 민가형 작은 암자벽에 반야용선도가 그려져 있는 것을 봤다. 창녕관룡사 용선대 불상이 떠 올라 FOCUS 한 장면 꾸며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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