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한 제2봉 - 지리산 천왕봉]
- 지리산을 수차례 올랐지만 정상을 정복하기는 쉽지 않았다.
관광버스 등을 이용한 단체 관광인 관계로 정상정복의 기회가 없었다.
남한 2위의 높이를 자랑하는 지리산 최고봉 [천왕봉]을 한겨울에 정복한 스토리 -
☞ 2002년 1월 4일(금) ~ 5일(토) 지리산 천왕봉(1,915m) : [동오산악회] 1박2일 이벤트 등정으로 실시되었다.
회원 7명 전원이 참여를 하다.
이 모임은 IMF 외환위기가 한창이던 1997년 12월 14일에 포항동부초등학교 인근에 위치한 [방자식당]에서 모임을 결성하였다.
1996학년도에 담임을 함께한 남자 동료 5명이 모였다.
5학년이 10학급이나 되었던 당시에 서로 뜻이 통하는 남자 동료들과의 지속적인 만남의 필요성을 느껴서 모인 모임이 나중에는 산행모임으로 발전되었다.
나중에 산을 좋아하는 2명의 회원이 더 참여하여 7명의 회원이 되었다.
매달 1번의 정기 산행을 하였으며 방학 중에는 1박 이나 2박을 하는 방법으로 서울의 [관악산]과 [북한산]을 비롯한 전국 각지의 명산들을 찾아 나서는 활발한 활동을 하였다.
그러나 2013년 77차 산행을 마지막으로, 16년 동안 해오던 산행이 지금은 흐지부지 유명무실하게 되어서 아쉬운 모임이 되고 말았다.
그 이유는 회원들의 연식이 올라가니 퇴임을 하게 되었고 퇴임을 한 후 자녀들의 거주지를 따라서 수도권으로 이주를 한 박 회장님의 부재가 가장 큰 원인이 되고 말았다.
모임의 명칭은 동부초등학교 5학년들에서 따온 [동오산악회]로 정하였다.
그동안 지리산은 ‘노고단’이나 ‘뱀사골’, ‘피아골’ 등을 수차례 다녀왔지만 단체 여행으로 정해진 일정 탓에 관광버스를 타고 오는 일정이라 정작 지리산의 최고봉인 [천왕봉]은 정복 할 기회가 없었다.
‘앙꼬 없는 찐빵만 먹은 격’이었다.
☞ 탐방 코스(산행 시간 : 총 11시간) : 포항·대구고속도로 - 대구·광주고속도로 - 함양IC - 통영·대전고속도로 - 단성IC - 중산리(모텔에서 1박) - 중산리탐방안내소 - 칼바위 - 장터목산장 - 천왕봉(15:30분) - 법계사 - 칼바위 – 중산리 – 단성IC – 함양IC – 포항
- 중산리탐방안내소 → 칼바위 → 장터목대피소 → 천왕봉 → 법계사 → 칼바위 → 중산리 -
▶ 1일차 : 4일(금)
한겨울 날씨라 엄청 추웠지만 눈이 쌓인 겨울 산행을 해보는 것도 의미가 있다는 다수 회원들의 뜻에 따라서 1박2일 지리산 이벤트 산행이 시작되었다.
회원 7명은 2대의 승용차에 분승을 한 후 아침 일찍 포항을 나섰다.
대구 - 광주고속도로를 달리다가 함양IC에서 빠져나와서 인근에 위치한 ‘안의면 장터’를 찾았다.
손 순대가 유명한 집이 있다기에 찾아 나선 길이다.
전통적인 방법으로 만든 수제 순대로 점심을 해결하다.
창자 속에 넣은 여러 가지 재료와 함께 잘 어우러진 순대는 대량으로 만들어 상업화된 순대와는 질에서 차이가 나는 것 같다.
♣ 시골 장터의 맛 ‘안의 장터’ 손 순대는?
50년 전통 할머니의 손맛은 씹을수록 고소하고 담백하다.
한겨울 시골 장터는 한산했다.
날씨가 너무 추운 탓일까?
장터는 여유로운 촌로와 멀리서 온 길손들만 오가고 있었다.
호젓한 시골장터의 느긋함을 즐기며 유명 맛 집으로 소문이 난 ‘옛날 할매 순대’집을 찾았다.
식당은 약초시장 건물 앞에 자리하고 있었다.
50년간 장터와 함께해온 ‘뼈대 있는’ 순대집이라 했다.
식당 안은 손님들로 가득 차 있다.
주인인 듯 보이는 여인에게
“이 집이 50년 전통의 손 순대 집이 맞나요?”
하니 고개를 끄덕이며 얼른 들어오라고 손짓을 한다.
순대 가격은 소자가 5000원, 대자가 1만원이다. 국밥은 1인분에 5000원.
40년 단골이라는 옆 테이블 손님은
“장날이면 사람이 더 많다.”
고 한다.
“사람들이 들끓어야 더 맛있기 때문에 장날이면 사람이 더 오는 것 아니겠느냐”
고 말했다.
순대가 먼저 나온다.
까만 속이 박힌 손 순대와 꼬들꼬들해 보이는 내장이 반반씩 담겨 있다.
생각보다 양이 푸짐하다.
모락모락 김이 나는 순대 하나를 집어 든다.
첫맛이 고소하다.
그리고 부드럽게 입 안에서 녹는다.
입 안에서 꼭꼭 씹을수록 신기하게도 풀 맛이 배어 나온다.
순대 속에 양파, 정구지, 대파, 계란, 신 김치를 넣었기 때문이다.
돼지 피를 주재료로 하지만, 누린 맛보다 산뜻한 맛이 더 강하게 나는 이유가 거기에 있었다.
순대접시를 반쯤 비웠을 때 나온 순대국밥의 국물에서는 달큰하고 담백한 맛이 난다.
그 비결은 육수다.
순대 재료를 삶아낸 물을 육수로 쓰는데, 그 재료가 야채이다 보니 담백하고 달큰한 맛이 나는 것이 당연하다.
거기다 돼지 뼈를 고아서 육수로 섞어서 낸다.
24살부터 순대를 만들어 왔다는 주인 할머니는
“순대 만드는 일은 중노동이야!”
라고 말한다.
그만큼 손이 많이 간다는 뜻이다.
순대는 식당 옆 작업장에서 손수 만드는데, 매일 이른 아침에 함양 도축장에서 가져온 내장들을 냄새 나지 않도록 여러 번 씻어 손질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순대 속에 들어가는 재료들을 칼로 잘게 썰어 삶은 뒤 손질한 대창에 재료를 넣고 양쪽을 묶는 것이다.
이 집의 순대가 안의장의 ‘명품 음식’으로 꼽히는 까닭은 20대 초반부터 50년간의 인생을 오롯이 순대에 바친 할머니의 열정과 손맛, 그리고 손님을 대하는 할머니의 넉넉한 인심이 아닐까?
배가 부르게 민생고를 해결한 우리들은 부지런히 달려서 중산리에 도착하였다.
지리산 최고봉인 [천왕봉]을 오르는 코스는 몇 군데가 있지만, 우리들은 [중산리탐방안내소]에서 출발하는 코스를 택하였다.
내일 있을 거사(?)를 위하여 좋아하는 술도 오늘밤엔 간단하게 마시는 흉내만 내고 내일을 위하여 일찍 잠자리에 들다.
▶ 2일차 : 5일(토)
기상을 하니 겨울날씨라서 엄청 추웠다.
위도 상으로는 포항보다 남쪽이지만, 지리산자락에 위치한 이곳은 여간 추운 것이 아니다.
게다가 바람마저 을씨년스럽게 귓볼을 때린다.
그렇다고 여기까지 마음먹고 온 것을 포기할 수도 없고 서둘러 산행 준비를 하고 출발을 하였다.
처음 산행을 시작했을 때는 순탄한 길이 계속되었다.
그러나 시간이 경과할수록 험한 길이 연속이다.
지난번에 내린 눈이 아직도 녹지 않고 쌓여 있다.
결국은 ‘아이젠’을 착용하고 산길을 올랐다.
미끄러운 길을 오르기 위하여 많은 주의를 해야 했다.
[법계사]로 향하는 삼거리인 [칼바위]에서 우리들은 [장터목 대피소]방향으로 방향을 잡았다.
중간 중간 쉬어가면서 드디어 [장터목산장]에 도착을 하였다.
이곳에서 잠시 휴식을 하였다.
잠시 체력을 충전한 후에 다시 출발을 하다.
지난번에 내려서 쌓여있던 눈이 바람과 함께 ‘눈바람’이 되어서 얼굴을 사정없이 때리기 시작한다.
바람이 얼마나 세게 불던지 2보 전진에 1보 후퇴를 하며 정상을 향해서 걷는 수밖에 도리가 없었다.
얼굴을 때리는 눈바람 때문에 눈을 뜰 수가 없다.
그러나 정상이 코앞인데 여기서 포기할 수는 없었다.
설사 포기를 하더라도 내려가는 일도 만만치가 않았다.
바람에 섞여 날아오는 눈바람은 칼바람이 되어 볼을 떼리니 무척 힘이 들었다.
그러나 바위틈을 돌아갈 때는 바람도 잠시 잠잠 했다.
그 순간을 이용하여 살펴본 펼쳐진 설경과 고목은 한겨울의 운치를 더 하는 것 같았다.
정상이 가까워질수록 더욱 거세진 사나운 바람은 정말로 2보전진에 1보 후퇴를 해야 할 정도의 강풍이었다.
그러나 이 강풍과 설경은 겨울 산을 찾은 이유를 설명하기에 충분한 이유가 되고도 남음이 있었다.
천신만고 끝에 정상에 도착한 우리들은 기념촬영을 한 후 서둘러 하산을 하였다.
바람이 너무 세게 불어와서 오래 지체할 형편이 못되었다.
내려오는 길은 [법계사]를 지나서 [칼바위]로 오는 코스를 택하다.
우리들의 승용차가 중산리에 있기 때문에 그쪽으로 내려오는 코스를 택하였다.
총거리 12.4km에 11시간이 소요된 난코스였다.
내려갈 때의 역코스를 이용하여 어두워진 도로를 부지런히 달리다.
저녁 늦게 포항에 무사히 도착하니 남한 제2봉 정복의 스토리도 막을 내리다.
♣ 지리산은?
지리산은 금강산, 한라산과 더불어 삼신산의 하나로 알려져 왔으며, 신라 5악중 남악으로
‘어리석은 사람이 머물면 지혜로운 사람으로 달라진다.’
고 해서 지리산(智異山)'이라 불려 왔다.
지리산은 백두산의 맥이 반도를 타고 내려와 이곳까지 이어졌다는 뜻에서 두류산(頭流山)이라고 불리기도 하고, 불가에서 깨달음을 얻은 높은 스님의 처소를 가리키는 '방장'의 깊은 의미를 빌어 방장산이라고도 하였다.
지리산은 1967년 우리나라 최초의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곳으로 경상남도 하동군, 산청군, 함양군, 전라남도 구례군, 전라북도 남원시 등 3개 도, 5개 시.군, 15개 읍. 면에 걸쳐 있는 곳으로 그 면적이 440.517㎢에 이르고 있으며, 이를 환산하면 무려 1억 3천 평이 넘는 면적이 된다.
이는 계룡산국립공원의 7배이고 여의도 면적의 52배 정도로 20개 국립공원 가운데서 육지 면적만으로는 가장 넓다.
이산은 남한에서 두 번째로 높은 봉우리인 천왕봉(天王峰 : 1,915m)을 비롯하여 제석봉(1,806m), 반야봉(1,732m), 노고단(1,507m) 등 10여 개의 고산준봉이 줄지어 있고 천왕봉에서 노고단까지 이르는 주능선의 거리가 25.5㎞로서 60리가 넘고 지리산의 둘레는 320㎞로서 800리나 된다.
천왕봉에서 발원되어 흐르는 물로 계곡을 형성하고 있는 칠선계곡을 비롯하여 뱀사골계곡, 대원사계곡, 피아골 등 수없이 많은 계곡과 불일폭포, 구룡폭포, 용추폭포 등 뛰어난 자연경관은 명산으로서 전혀 손색이 없으며, 화엄사, 쌍계사, 연곡사, 대원사, 실상사 등의 대사찰을 비롯한 수많은 암자와 문화재는 이곳이 한국 불교의 산실임을 증명하고 있다.
지리산은 수많은 식물과 동물, 그리고 사람들에게 삶터를 제공해주는 생명의 산이기도 하다.
천왕봉에서 노고단에 이르는 주능선에서 마치 양손을 벌리듯 남북으로 흘러내린 15개의 능선과 골짜기에는 245종의 목본식물과 579종의 초본식물, 15과 41종의 포유류와 39과 165종의 조류, 215종의 곤충류가 자라고 있다.
지리산에서 발원한 물이 덕천강과 엄천강, 황천강을 이루고, 해발 1,000m가 넘는 봉우리가 20여개, 재가 15곳에 이른다.
또 지리산에서 솟는 샘과 이름을 갖고 있는 전망대, 바위의 숫자만도 각각 50여개, 마야고와 반야도사, 호야와 연진 등의 설화에 이상향과 신선의 전설을 안고 있다.
350여 군데에 절과 암자가 있었다는 기록, 국보만도 7점, 보물 26점에 지방문화재와 주요 사적지, 민속자료까지 헤아리지 않아도 지리산은 그 자체로서 이미 충분한 산이며, 어떤 수식도 필요 없는 산이다.
♣ 장터목대피소는?
지리산은 아름다운 곳 10곳을 지리 10경이라 하여 그 빼어남을 자랑하지만, 일반인들에게 장터목은 지리산에서 노고단과 함께 가장 많은 인파가 모이는 곳 중 한곳이다.
이곳은 사통팔달로 등산로가 열려있고, 천왕봉의 전진기지 역할을 하고 있다.
그래서 지리산 종주를 하는 이들 뿐 아니라, 천왕봉 일출을 보고자 하는 이들치고 장터목대피소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지명의 유래는 남쪽의 산청군 주민과 북쪽의 함양군 주민들이 이곳에서 장을 열고 물물교환을 하던 장소였기 때문이다.
지명 유래 때문일까?
이 장터목이 지금은 봄, 여름, 가을, 겨울 할 것 없이 등산객들로 날마다 장터를 방불케 하고 있다.
지리산은 주능선 곳곳에 샘터가 있다.
그래서 일반 능선산행과는 달리 식수를 많이 짊어지고 다닐 필요가 없다.
장터목대피소 또한 남쪽 중산리 방향 쪽으로 20m 아래 지점에 장터목샘(일명 산희샘)이 있다.
종주를 하는 사람이나 산장에서 하룻밤을 묵는 이들로 이 샘터는 물을 받기 위해 장사진을 이루는 경우가 많다.
장터목대피소에서는 남쪽으로 중산리계곡 코스가, 북쪽으로는 하동바위 코스가 연결되어 있다.
이곳에서 천왕봉에 오르는 길은 1.7km로 1시간이면 도달할 수 있다.
처음에 마주치는 경사 급한 돌비탈 길을 따라 오르면 제석봉 일대의 고사목지대를 통과하게 된다.
원래 제석봉 일대는 아름드리 전나무와 잣나무, 구상나무 등이 하늘을 가릴 만큼 울창하게 뒤덮고 있었다.
그런데 자유당 말기 대규모 도벌을 하였다.
그 증거를 없애려고 제석봉에 불을 질러 나머지 나무들마저 지금과 같이 앙상한 몰골로 비명횡사 시켜버린 것이다.
최근에는 이들 고사목마저 날이 갈수록 점차 쓰러져 사라지고 있다.
근래 제석봉 일원에 다시 구상나무 묘목을 심고 씨앗을 뿌리는 작업을 하고 있지만, 원상회복은 참으로 아득한 노릇이다.
제석봉의 처참한 모습은 사람들에 의해 황폐화된 지리산의 아픔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 법계사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곳에(해발1,450m) 위치한 법계사는 서기 544년(신라 진흥왕 5년)에 인도에서 건너오신 연기조사께서 부처님 진신 사리를 봉안하면서 창건하였다.
법계사가 흥하면 일본의 기운이 쇠퇴한다는 전설 때문에 고려 말 왜적에 의해 소실되었던 것을 1405년(조선 태종 5년)에 벽계정심선사께서 중창하였으며, 그 후 임진왜란과 1910년 한일 합방 때 또 다시 왜인에 의해 불타고 1938년에 중건 되었으나 6.25때 다시 화재를 당하여 그간 초라한 초옥으로 남아 있다가 불자와 신도님들의 발원으로 현 대웅전과 산신각을 복원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유물로는 부처님 진신사리 탑인 3층 석탑이 남아 있다.
- 눈이 쌓인 법계사 계단길 -
첫댓글 송이골님 방콕으로 심심하던차에 지리산 등정기를 재밋게 잘앍었습니다.코로나 19가 하루 빨리 진정되어 반가운 모습으로 다시 뵙기를 고대 합니다.오늘도 행복한 하루 되세요.
부회장님!
잘 계시지요?
저도 요즘엔 방콕을 가는 일이 많아서, 예전 기록을 살펴보다가 '지리산'을 또다시 오르는 기분으로 글을 올려봅니다.
오래전 글을 읽어보면 그 곳을 다시 찾는 기분입니다.
비내리는 오후도 좋은 날 되세요~~~
송이골님 잘 계시지요
너무나 달라진 일상이 적응이 잘 안되네요^^
지리산 천왕봉을 정복하셨네요
대단하십니다
전 엄두도 못냈는데
쉽게 가는 방법은 없겠죠?
ㅎ
거의 매일 후진 양성을 위한 수업을 하시다가, 달라져도 너무 달라진 일상에 적응하시기에 너무 힘드시지요?
이 또한 지나가는 것이 '자연의 섭리'지만, 견디기가 힘이 드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하루 빨리 마무리가 되고 동아리 활동이 이루어졌으면 하는 바람을 담아서...
젊은시절 두집부부 일박하고 다녀온 곳입니다.
이제는 엄두도 못내는 자신이 세월의 강을 많이 흘러왔음에 ~~
이제는 꿈일 뿐이지요.
현실에 맞게 살렵니다.
젊음은 참 좋은 것이지요.
무슨일이나 자신있게 도전할 수가 있었으므로...
세월의 무상함을 느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