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26일 최옥란 열사 11주기 추모제와 전국장애인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서울행 열차를 탔다. 서울까지 가는 두 시간 동안 많은 생각이 지나갔다. 1년 전 발달장애인법제정, 장애인권리보장법제정, 장애등급제폐지 등 같은 이야기로 서울행 기차를 탔었다. 하지만 1년이란 시간이 지난 지금 변화된 건 무엇인가?
함께 자립생활을 꿈꾸며 활동했던 친구들이 하나 둘 죽음을 맞이하고 슬픔을 추스를 시간도 없이 지난해 8월21일부터 '더 이상 죽이지 말라'는 슬로건 아래 서울 광화문광장 해치마당 지하도에 천막을 치고 현재까지 226째 농성을 하고 있다. 무엇 때문일까? '장애등급폐지, 장애인권리보장법제정'을 말하고 있다.
하지만 농성장에서 시민들에게 장애인 차별 사슬인 장애등급제 폐지를 위해 서명을 해달라고 하면 '왜'라는 반문이 돌아오곤 한다. 장애등급제 폐지와 관련해 오해가 많아 질답 형식으로 이해를 돕고자 한다.
질문1: 학생들은 내신등급이 있고 군대를 가기 위한 신체검사를 받아도 등급이 나오며 신용도도 등급이 있다. 등급은 장애인에게만 있는 게 아니다. 행정 제도상 필요해서 쓰는 건데 왜 이 난리를 치는지 모르겠다. 장애인이 되면 혜택이 많은 게 사실 아닌가. 국민 세금으로 혜택을 주는 건데 철저하게 해야 한다. 장애등급이 그렇게 싫으면 장애인 등록 안하면 되지 않나?
답변: 학생들 내신등급과 신용등급 같은 것은 지표에 불과하지만 장애등급은 자격증이 아니라 신분증이다. 만약 학교생활에서 내신등급별로 3급 이하는 학교버스도 못타고 4급 이하는 급식도 못 받게 한다면 어떻게 될까. 인권의식 등급 매겨서 등급 낮은 분들은 공공장소 출입 못하게 한다고 하면 인권의식이 높아질까.
또한 혜택이라는 말은 맞지 않다. 복지제도가 혜택은 아니다. 비정규직이 된다고 혜택을 받는 것은 아니다. 실업급여 같은 것은 혜택이 아니라 사회적 안전망이다. 사회 안전망이 없다면 사회의 유지가 힘들 정도로 절망적인 세상이 될 것이다. 국민세금으로 지원하는 것인데 철저히 해야 한다. 하지만 장애인의 삶에 필요한 것이 무엇이지 알아보고 장애에 맞는 복지서비스를 해야 함에도 대충 등급 매겨 놓고 장애등급 1급은 오케이(OK), 장애등급 2급은 노(NO). 이런 복지가 무슨 철저한 복지인가. 장애에 대한 사회적 이해는 배재된 채 오로지 장애등급으로 획일적인 복지서비스를 하는 곳은 한국밖에 없다.
질문2: 우리나라가 예산이 넘쳐나는 것도 아닌데 부족한 예산을 효율적으로 쓰려면 등급제가 필요하다. 그리고 사람마다 장애 정도가 차이가 나는데 등급에 따라 지원 하는 게 맞지 않나. 중증장애인에게 더 많은 혜택을 주려면 등급이 잘 나뉘어져야 한다.
답변: 우리나라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을 자랑하며 선진국이라고 하지만 정작 복지수준은 다른 가입국과 비교도 안 된다. 복지예산이 OECD 국가 중 꼴찌라는 것은 불편한 진실이다. 예산을 효율적으로 쓰기위해 장애등급제가 있는 게 아니라 거꾸로 예산을 죽이기 위해 장애등급제가 있는 것이다. 장애등급제가 없어지면 현재 활동지원이 꼭 필요한 35만 명에게 예산이 효율적으로 돌아갈 것이다. 예산 때문에 수혜 대상자를 5만 명으로 잘라낼 근거가 없어질 것이다.
또한 사람마다 장애정도와 환경이 다르다. 시력이 좋지 않은 사람과 지능지수가 낮은 사람이 무슨 근거로 1급·2급 장애인이 되는가. 비슷한 정도의 몸 상태라고 해도 선천적 장애인, 중도장애인, 독거장애인, 중복장애인 등 장애유형과 환경이 다르다. 장애등급이 같으면 장애인의 상태가 비슷하다고 믿어야 하나. 그래서 의사의 소견도 필요하지만 다른 나라처럼 장애등급은 폐지하고 복지제도를 신청하고 이용할 때 주변 환경들을 함께 고려하자는 것이다.
현재 장애운동을 하면서 느끼는 건 누군가 죽어야 법이 생기고 누군가 또 죽어야 조금씩 변화되는 현실이 슬퍼진다. 많은 장애인들이 죽음을 맞고서야 주어지는 복지제도는 비극이 아닐 수 없다. 위의 질문들도 대부분 장애인에 대한 편견과 왜곡된 차별로 인해 발생하는 것이다. 우리가 장애등급을 폐지하려는 것은 이제 근본부터 장애인복지가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해서다. 예산의 문제도 중요하고 그로 인한 양적인 확대는 기본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한국 복지제도의 근본적 문제는 장애등급제로 상징되는 행정편의주위, 그리고 도가니로 상징되는 시설보호중심의 복지제도이다. 복지를 행정편의를 위한 장애등급기준이 아니라 장애인의 생활환경에 맞추어 제공하자는 것. 시설에 격리수용 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도록 하자는 것이 지금 장애인운동에 있어서 혁명적 목표이다. < 저작권자 © 옥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