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박한 바둑기사의 참으로 아름다운 마음!
나는 잡기를 잘 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좋아하는 잡기가 있다면 바둑이다. 그래서 국내 유명 바둑기사들의 대국을 즐겨 감상한다. 다른 많은 바둑 메니아들과 마찬가지로 나는 남자기사라면 당연히 지금 세계최강이며 ‘신공지능’이라 불리는 ‘신진서’의 대국을 즐겨보고 여성기사라면 당연히 여성기사 세계 1위인 ‘최정’의 대국을 즐겨본다. 솔직히 말해 최정선수의 기풍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남녀를 떠나서 너무 전투적이고 싸움바둑 같은 강력한 수들이 나에겐 좀 거북하게 다가 왔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최정의 그 담대함, 끝까지 집중하여 곧 질 것 같았던 대국을 상대방의 대마를 잡고 역전시키는 그 반전의 짜릿함은 최정 선수가 아니면 누구한테서도 잘 볼 수 없는 것이어서 최정선수의 대국 즐겨보게 된다.
거저께 화제의 <삼성화재배> 결승 대국을 보았다. 이 대회는 중국의 응씨배, 일본의 후지쯔배 등과 함께 메이저 세계대회이다. 우승 상금은 3억, 준우승 상금은 1억이 주어지는 바둑대회로써는 세계 최고라고 할 수 있다. 이번 결승은 내가 좋아하는 신진서와 최정 두 선수의 대국이어서 더욱 흥미진진했다. 이번 삼성화재배는 참으로 화제거리였다. 바둑 세계 대회에서 여성기사가 결승에 오른 것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여성으로서 메이저 세계대회에서 역사상 가장 좋은 기록을 낸 선수는 중국의 ‘루이 나이웨이’선수였다. 그녀는 삼성화재배 4강(준결승)까지 올랐던 적이 있었다. 그리고 그 기록은 결코 깨어지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런데 한국의 최정선수가 당당히 결승에 오른 것이었다. 그리고 그 과정은 결코 순탄하거나 행운이 작용한 것은 아니었다. 16강에서는 일본 1위인 ‘이치리키료’를 이겼고, 8강에서는 중국 5위이자 떠오르는 별인 양딩신을 이겼고, 4강에서는 한국 2위인 변상일을 이겼다. 참고로 최정의 세계랭킹은 78위이며, 한국랭킹은 24위이다. 물론 여성으로서는 이 순위가 세계 1위이다. 여성 1위가 남녀 혼성에서는 78위에 위치한다는 것은 바둑이 축구 이상으로 여성이 남성에 비해 불리한 정신적 스포츠라는 것을 말해준다.
아마도 이러한 랭킹 순위가 말해주는 것은 최정이 이번 대회를 준비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였고 마음과 정신을 집중하였는지 또 승부에 대한 열망이 얼마나 간절하였는지를 보여준다. 비록 결승에서 신진수 선수를 넘어서지 못하고 준우승에 그쳤지만 그녀는 중반까지는 승부를 가늠하기 힘든 신진서 선수와 대등한 대국을 두었다. 여성기사가 세계 최고의 메이저 대회에서 <결승>에 올랐다는 이러한 성적은 여성에 대한 편견을 깨어주는 놀라운 사건이 되었다. 그래서 이번 대회에서는 이례적으로 결승전이 끝난 이후에 우승선수와 준우승선수가 함께 나란히 인터뷰를 하였다. 이번 대회의 과정을 지켜보면서 바둑을 관전하는 그 즐거움보다 훨씬 큰 기쁨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것은 최정선수의 참으로 아름다운 모습들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그 중에서 3-4가지 일화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 4강에서 한국 2위인 변상일 선수와 대국할 때였다. 대국이 막판으로 치달으면서 변상일 선수가 실수를 몇 번 하고 결국 패색이 짖어졌다. 그러자 변상일 선수가 눈물을 훔치는가 하면, 자신의 뺨을 때리기도 하고 또 얼굴을 책상에 파묻고 흐느끼는 등 프로선수로서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행동을 하였다.
그만큼 자신의 바보 같은 실수가 얼마나 뼈아픈 것이었는지를 말해주고 있다. 하지만 그러한 행동은 함께 대국을 하는 상대방에게 엄청난 심적인 부담을 준다. 게다가 아직 바둑이 삼분의 일 정도는 남아 있었다. 바둑의 특성상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닌 것'이 바둑이다. 만일 축구경기라면 페널티라도 줄 수 있는 행동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당연히 네티즌들의 비난이 쇄도하였다. 그런데 변상일 선수를 이해하고 감싸주면서 팬들에게 이해해줄 것을 부탁한 것은 최정선수였다.
•그리고 여성으로서 무적이었던 ‘루이 나이웨이’ 선수의 기록을 넘어섰는데 소감이 어떤가 하고 기자가 물었을 때, 최정의 답변은 역시 프로다운 멋진 답변을 하였다. 그녀는 자신이 오늘 그 자리에 있을 수 있는 것은 ‘루이 사범’과 같은 롤모델이 있었기 때문이었고, 또 지금도 무한히 존경하며 연전히 자신의 롤모델이라고 하였다. 얼마나 아름다운 마음인가?
•그리고 결승전을 마치고 마지막 인터뷰를 할 때였다. 우선 준우승 선수에게 먼저 인터뷰를 하였는데, 최정 선수로서는 준우승을 한 것도 너무나 감격한 순간이었다. 솔직히 우승한 신진서에게는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지만, 최정선수에게는 마치 작은 기적이 일어난 일과 같았기에 눈물을 흘린다고 해서 전혀 이상한 일도 아니었다. 그래서 인터뷰 도중 몇 번이나 울먹였고 눈물을 흘릴 뻔 했지만 결국 눈물을 흘리지 않았고 참았다고 한다. 나중에 기자가 왜 억지로 울음을 참았냐고 묻자 “오늘의 주인공은 제가 아니라, 우승자인 신진서 선수였기 때문”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신진서는 최정의 그 모습을 보고 참으로 놀랍고 또 고마웠다고 솔직히 말했다고 한다. 얼마나 아름다운 마음인가!
나는 최정 선수의 모습이 마치 성경의 말씀을 행위로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순히 말로만 그렇게 말하는 것이 아니라, 최정선수의 그 깊은 진정성이 마음에 와닿았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사랑은 (...)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고린1, 13:4-7)라는 말씀이었다. 바로 이러한 스포츠정신, 정말 깨끗하고 당당하고 명예로운 정신 때문에 내가 바둑을 좋아하는 것 같다.
※ 여기 사용된 모든 사진들은 KBS인터넷 뉴스에서 켑춰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