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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시편52편1~9절
제목 : 악인의 멸망
다윗의 저작으로서, 저작 시기는 사울의 박해를 피하여 다닐 때의 초기 곧 도엑이 다윗의 도피를 사울에게 고하여 놉에 있던 제사장 85명을 죽일 때 피하여 다윗에게 도망한 아비아달에게서 그 사실을 들었을 때입니다.
*삼상22:20~22절 “[20] 아히둡의 아들 아히멜렉의 아들 중 하나가 피하였으니 그의 이름은 아비아달이라 그가 도망하여 다윗에게로 가서 [21] 사울이 여호와의 제사장들 죽인 일을 다윗에게 알리매 [22] 다윗이 아비아달에게 이르되 그 날에 에돔 사람 도엑이 거기 있기로 그가 반드시 사울에게 말할 줄 내가 알았노라 네 아버지 집의 모든 사람 죽은 것이 나의 탓이로다”
이때는 블레셋 첫 번 망명에서 미친 체하여 쫓겨나서(삼상21:10~15),
아둘람 굴에 있을 때 형제와 부친의 온 집이 그에게로 오고 또 400명이 모여들자(삼상22:1~2), 모압이 망명하였다가 선지자 갓의 충고로 유다 땅으로 돌아와서 헤렛 수풀에 있을 때의 일입니다.(삼상22:3~5).
다윗이 사울의 박해를 피하여 망명과 도피 생활 중 시는 전부 9편(7,34, 35, 52, 54,56,57,59,142)이 된다.
“도액”은 사울의 목자장으로서(삼상21:7),
본 것을 사실대로 고했다고 해도(삼상22:9~10)
사울이 다윗을 죽이려고 하는 것을 알고 그를 부채질 하는 일을 한 것이며,
또 제사장들 살해하는 일은 사울의 신하들까지도 싫어하였는데(삼상22:17),
도액이 제사장 85명을 비참하게 죽인 것으로 보아 그 악의가 있었다는 것을 면할 수 없으며, 다윗이 아비아달의 말을 들었을 때 “그날에 에돔 사람 도엑이 거기 있기로 그가 반드시 사울에게 고할 줄 내가 알았노라”(삼상22:22)고 한 것으로 보아 평시에 포악한 사람이었던 것이 드러납니다.
“마스길”은 교훈의 시라고 말씀드린바 있습니다.
시편 52편은 악인은 멸망한다는 교훈을 주는 것입니다.
시편 52편의 구조를 보면
1~5절은 악인의 행위와 그 벌에 대하여,
6~9절은 의인의 자각에 대하여 말씀합니다.
Ⅰ. 악인의 행위와 그 벌(1~5절)
1~4절에서는 악인이 그 혀로 범하는 죄에 대하여,
5절에서는 악인이 받을 벌에 대하여 말씀합니다.
1. 악인이 혀로 범하는 죄(1~4절)
1절에서는 악한 계획을 자랑함에 대하여,
2절에서는 간사를 행함에 대하여,
3절에서는 선보다 악을 사랑하여 거짓을 말함에 대하여,
4절에서는 잡아먹는 말을 함에 대하여 말합니다.
1) 악을 자랑함(1절)
“포악한 자여 네가 어찌하여 악한 계획을 스스로 자랑하는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은 항상 있도다”라고 하였습니다.
“포악한 자”는 도엑을 가리킵니다.
악인은 악을 행할 뿐만 아니라, 그것에 만족한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본절은 본편의 서론격으로서, 악인의 자랑하는 것은 악을 자랑한다는 것이요 하나님의 인자하신 은총은 항상 있다고 함을 말합니다.
악을 자랑한다고 함은 악행 한 것을 자랑하는 것을 뜻하고,
거기 대하여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항상 있다고 함은 그 악행으로 의인이 해를 당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으신다는 뜻입니다.
악인이 성도를 해하려고 항상 계획하고 실행하여도,
성도를 보호하시는 하나님의 은총이 늘 함께하시므로 염려할 것 없습니다.
신앙을 굴하는 일은 결단코 있어서는 안 됩니다.
“악한 계획”이란 원문에서는 “악”으로 되어 있어서 악을 자랑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성도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는 자랑할 것이 없으니(갈6:14),
*갈6:14절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고 하였습니다.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고전1:31, 고후10:17)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라고 하였습니다.(빌3:3).
*빌3:3절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며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고”
악을 행하는 것 자체가 악인데 그것을 자랑까지 한대서야 말이 되겠습니까?
악을 행하고도 잘했다고 과시하는 행동입니다.
“포악한 자”는 “권력자”의 뜻으로 사용되기도 하는데
보통 사람의 악행보다 권력자의 악행은 더 큰 악행임을 보이는 것입니다.
그러고도 그것을 자랑하니 얼마나 무서운 악행이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의 인자하심은 의인이 그 악행의 해독을 입도록 두지 아니하십니다(시116:15).
*시116:15절 “그의 경건한 자들의 죽음은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귀중한 것이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인자하심은 항상 있다고 한 것입니다.
2) 혀로 간사를 행함(2절)
“네 혀가 심한 악을 꾀하여 날카로운 삭도 같이 간사를 행하는도다”라고 하였습니다.
혀는 보이지 않는 기관으로서, 아무도 몰래 꾀하는 마음속을 상징한 것입니다.
악한 자의 혀 밑에는 독사의 독이 있습니다.(시140:3)
*시140:3절 “뱀 같이 그 혀를 날카롭게 하니 그 입술 아래에는 독사의 독이 있나이다 (셀라)”
그것으로 속여 해칩니다.(행28:4)
*행28:4절 “원주민들이 이 짐승이 그 손에 매달려 있음을 보고 서로 말하되 진실로 이 사람은 살인한 자로다 바다에서는 구조를 받았으나 공의가 그를 살지 못하게 함이로다 하더니”라고 하였습니다.
그 혀의 악이 “날카로운 삭도 같다”고 하였으니,
“삭도”는 면도칼을 말하는 것으로 모든 칼 중에 가장 날카로워 살을 베지 않고 털만 깎을 수 있는 것입니다.
살을 벤다면 벤 줄도 모르게 베는 무서운 칼입니다.
도엑이 본 사실을 그대로 말하였으므로(삼상22:9~10)
*삼상22:9~10절 “[9]그 때에 에돔 사람 도엑이 사울의 신하 중에 섰더니 대답하여 이르되 이새의 아들이 놉에 와서 아히둡의 아들 아히멜렉에게 이른 것을 내가 보았는데 [10] 아히멜렉이 그를 위하여 여호와께 묻고 그에게 음식도 주고 블레셋 사람 골리앗의 칼도 주더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남을 해치는 말같이 보이지 않았는데 그 혀가
제사장들 85명을 살해하였으니 감추어져 보이지도 않는 삭도였던 것입니다.
해하는 것 같지 않으면서 해쳤으니 “간사를 행하였다”고 한 것입니다.
빌라도에게서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지 않으면 안 되도록 혀 밑에서 독한 독을 내 뿜어 성공한 유대인들의 간사한 삭도는 “가이사”였으며(눅23:2, 요19:12),
가이사의 충신이 아니라는 그 삭도에 빌라도가 베여 본의 아닌 죄를 지었으니, 오늘까지도 아니 앞으로 주님 재림하실 때까지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라는
사도신경은 고백될 것입니다.
빌라도가 무리 앞에서 손을 씻기까지 한 것이(마27:24) 무슨 효력이 있겠습니가?
악인들의 삭도인 혀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를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인자하심은 그의 계획안에 포함된 일이 아닐 때에는
결코 그 삭도에 베이지 않게 해주십니다.
3) 선보다 악을 사랑하여 거짓을 말함(3절)
“네가 선보다 악을 사랑하며 의를 말함보다 거짓을 사랑하는도다 (셀라)”라고 하였습니다.
선행은 빛입니다.(마5:16, 엡5:9)
*마5:16절“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엡5:9절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
반대로 악행은 흑암입니다.(엡5:11, 잠4:19)
*엡5:11절“너희는 열매 없는 어둠의 일에 참여하지 말고 도리어 책망하라”
*잠4:19절“악인의 길은 어둠 같아서 그가 걸려 넘어져도 그것이 무엇인지 깨닫지 못하느니라”
어두움이 빛을 싫어하는 이유가 그 악행이 드러나기 때문입니다(요3:19~20).
*요3:19~20절 “[19]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20] 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오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 행위가 드러날까 함이요”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선보다 악을 더 좋아하고 사랑하며 의를 말하기보다 거짓을 말합니다.
그 속에 쌓인 것이 악이니 악밖에 나올 것이 없는 것입니다(마12:35,눅6:45).
거짓을 사랑함은 마귀의 자식이니 마귀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저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니라”(요8:44)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악행하는 자는 마귀의 자식으로
마귀의 좋아하는 것이나 행하고 말합니다.
성도는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라”(살전5:22)고 하였습니다.
4) 잡아먹는 말을 함(4절)
“간사한 혀여 너는 남을 해치는 모든 말을 좋아하는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악한 자가 악한 말 곧 남을 해치는 말을 좋아하여 그러한 악한 말만 한다는 것을 거듭 강조함입니다.
“간사한”이란 말음 “거짓”(시17:1)을 이르는 말인데, “간교”(창27:35), “궤휼”(욥15:35), “속임”(창34:13), “궤사”(시34:13) 등등으로 번역된 것으로 보아 악질적인 거짓말을 하는 것을 가리킴이고,
“남을 헤친다”는 말은 “삼킨다”시35:25)는 말로서 “먹다”(사28:4),
“훼파하다”(사3:12), “제하다”(사25:7), “멸하다”(사25:8)등으로도 번역된 말이니 남을 멸망케 하는 악한 말들을 좋아하여 잘한다는 것입니다.
“좋아함”도 “사랑한다”(창22:2)는 말이므로 보통 좋아함보다는 연애하듯(창29:18) 심히 좋아하는 것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악을 행하지 못하면 자지 못하며 사람을 넘어뜨리지 못하면 잠이 오지 않는”(잠4:16)자이며, “자기들만 행할 뿐 아니라 또한 그 일을 행하는 자를 옳다 하는”(롬1:32) 자들입니다.
그러니 남을 해치는 말을 얼마나 좋아하겠습니까?
2. 악인의 받을 벌(5절)
“그런즉 하나님이 영원히 너를 멸하심이여 너를 붙잡아 네 장막에서 뽑아 내며 살아 있는 땅에서 네 뿌리를 빼시리로다 (셀라)”라고 하였습니다.
“그런즉”으로 번역된 말은 “그와 같이”(신12:30)로도 번역된 말로서,
영어 흠정판에는 “마찬가지로”(likewise)로 되어 있습니다.
행한대로 갚으시는 하나님의 심판 원리대로 벌하신다는 것입니다.
악인이 다른 사람을 멸망시키는 일을 좋아했으므로 그들을 멸망시키신다는 뜻입니다.
멸하되 질이 같은 것이지 양은 배도, 칠배도 더 갚으시나니 여기서는 영영히 멸망시키시겠다는 것이 됩니다. 참으로 두려운 일입니다.
“멸한다”는 말은 “헐다” “훼파하다” “파괴하다”로 번역된 말로서 건물을 헐어 버리듯 그 권력을 파괴하여 버리신다는 뜻입니다.
“장막”은 악인이 악행하는 그 권력의 근거를 일컫는 것으로서 부귀영화를 가리킨 것인데 그것을 취하여 뽑아낸다고 하였습니다.
“뽑아 낸다”는 악인의 권력의 근거를 잽싸게 뽑아 치워 버린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기간이 아니고 영원히니 다시는 그러한 짓을 못하게 함입니다.
악인에 대한 하나님의 벌은 영원한 것이므로 이는 아주 멸망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살아있는 땅”은 이 세상을 가리키며 음부와 대칭되는 말로서,
이 세상에서 뿌리를 뽑아낸다는 것은 곧 아주 죽여 버린다는 뜻이 됩니다.
이는 영원한 멸망이니 마25:41절 “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영한 불에 들어가라”고 하였습니다.
이 세상에서 뽑혀 음부에 가 있다가 대심판 후에 영원한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계20:15,21:8).
뿌리째 뽑는 것은 아주 근절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뿌리가 남아 있으면 그 뿌리에서 새싹이 나올 수 있으니까 그것까지 없애 버리는 것입니다.
박윤선 박사는 그 후손도 없어지는 전멸이라고 하였는데,
세상에는 악인도 후손이 난 이후에 죽는 경우가 있으니 악인의 후손이라도 회개한 자는 사는 것이므로(겔18:14~17) 경우가 달라질 것으로 암니다.
뿌리는 자손을 가리키지 않고 조상을 가리키는 것이므로 악의 조상 마귀도 (요8:44) 마지막 심판에서는 영원한 형벌 불못에 던지워질 것을 면하지 못합니다.(계20:10).
Ⅱ. 의인의 자각(6~9절)
6~7절에서는 깨달은 것을 말함이고,
8~9절에서는 행사에 대한 자각을 말함입니다.
1. 깨달은 것을 말함(6~7절)
6절은 두려워하며 비웃음이고,
7절은 악으로 든든케 하던 자라고 함입니다.
1) 두려워하며 비웃음(6절)
“의인이 보고 두려워하며 또 그를 비웃어 말하기를”이라고 하였습니다.
악인을 심판하심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로우심을 기뻐함임니다.
의인 곧 성도는 하나님의 의로우신 심판을 볼 때처럼 기쁠 때가 없을 것이고 동시에 더욱 하나님을 경외하게 될 것입니다.
*말1:5절에 “너희는 눈으로 보고 이르기를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 지역 밖에서도 크시다 하리라”하였고,
*출14:31절 “이스라엘이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들에게 행하신 그 큰 능력을 보았으므로 백성이 여호와를 경외하며 여호와와 그의 종 모세를 믿었더라”하였으니 이를 잘 나타낸 것입니다.
강포한 자가 득세하여 날뛸 때에, 하나님께서 잠잠하시므로(시50:21)
의인들은 곤경에 처하여 답답하였으나,
이제 하나님께서 의로우심으로 그 악인들을 심판하시니 그때의 의인의 기쁨은 말할 수 없이 크려니와 하나님께 대한 경외심이 더욱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두려워 하며”가 이를 나타냄이니 겁내는 두려움이 아니고 공경하는 두려워함임니다(시2:11).
“저를 비웃어”는 악인을 저주함이 아니고 그 악의 가소로움을 나타냄이니 이도 일종의 하나님의 의를 기뻐하는 일입니다.
다윗은 사울의 전사한 소식을 들었을 때에 도리어 슬퍼하였으니(삼하1:19~27)이를 알 만하지 않는가?
*잠24:17절에 “네 원수가 넘어질 때에 즐거워하지 말며 그가 엎드러질 때에 마음에 기뻐하지 말라”하였고,
*마5:44,눅6:27절에 주님께서는 “원수를 사랑하라”하셨으며,
*롬12:20절에서도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우라”고 하였고,
욥도 욥31:29절에서 “ 내가 언제 나를 미워하는 자의 멸망을 기뻐하고 그가 재난을 당함으로 즐거워하였던가”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이는 그 안하무인으로 날뛰던 악이 징계됨을 인하여 그 가소로움을 웃는 것뿐입니다.
2) 악으로 든든케 하던 자라 함(7절)
“이 사람은 하나님을 자기 힘으로 삼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 재물의 풍부함을 의지하며 자기의 악으로 스스로 든든하게 하던 자라 하리로다”라고 하였습니다.
의인은 악인의 징계당하는 것을 보고도 교훈을 받습니다.
하나님의 의를 깨닫고 더 경외하게 될 뿐 아니라, 여기서는 악인의 징계받는 그 악이 무엇임을 깨닫게 되므로 자신은 그러한 악에 빠지지 않도록 힘을 쓰게 됩니다.
곧 이 악인(강포한자 - 권력자)이 하나님을 의지 않고 자기 재물로 인한 부귀 영화를 의지하여 악행한 자임과 그 악행으로 자기 지위를 더욱 견고케 한 자임을 알았고 그것 때문에 또한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된 것을 깨달았습니다.
“힘”이란 말은 “견고하다”, “견고한 성”, “산성”, “보장”,“보호자”,“피난처”로도 번역되는 말로서, 하나님을 의지 않았다고 함은 하나님을 산성으로, 피난처로 여기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오직 자기 재물의 풍부함을 의지하며 자기의 악으로 스스로 든든하다고 하는 아주 교만한 자입니다.
예레미야17:5~8절을 보면 “[5]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무릇 사람을 믿으며 육신으로 그의 힘을 삼고 마음이 여호와에게서 떠난 그 사람은 저주를 받을 것이라 [6] 그는 사막의 떨기나무 같아서 좋은 일이 오는 것을 보지 못하고 광야 간조한 곳, 건건한 땅, 사람이 살지 않는 땅에 살리라 [7] 그러나 무릇 여호와를 의지하며 여호와를 의뢰하는 그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라 [8] 그는 물가에 심어진 나무가 그 뿌리를 강변에 뻗치고 더위가 올지라도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그 잎이 청청하며 가무는 해에도 걱정이 없고 결실이 그치지 아니함 같으리라”고 하였습니다.
2. 행사에 대한 자각(8~9절)
8절에서는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의지하겠다 함이고,
9절에서는 주의 이름을 기다리겠다 함입니다.
1)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의지하겠다(8절)
“그러나 나는 하나님의 집에 있는 푸른 감람나무 같음이여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영원히 의지하리로다”라고 하였습니다.
성도가 악인이 하나님 의지하지 않고 세상 부귀영화 의지하고 권력 부리다 멸망하는 것을 보고, 자기는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영영히 의지하여 푸른 감람 나무가 상천함같이 영생하겠다고 합니다.
감람나무는 성전 뜰에 심은 감람나무를 가리키는데 이는 다른 데 있는 것보다 특별 관리와 보호를 받습니다.
그와 같이 성도는 하나님 의지하여 하나님의 특별 보호와 관리를 받아 구원의 반열에 서서 사시 청청하기를 원한 것입니다.(시15:1,23:6,27:4,36:8).
이러한 자는 종려나무 같이 번성하고 레바논의 백향목같이 발육한다고 하였으니(시92:12) 최상의 복된 것으로 비유한 것입니다.
감람나무는 기름 발리운 자의 상징이니(슥4:14) 성별을 뜻합니다.
다윗은 이렇게 악인의 징계됨을 보고 자신은 그러한 징계 입지 않도록 하나님 의지하여 성별된 자로서의 복을 누리기를 원하였으니 진실로 귀한 신앙자입니다.
“인자하심을 영영히 의지하리로다”라고 하였으니 끝까지 하나님의 긍휼히 여기시는 은혜를 의지하여 구원될 것을 바람입니다.
여기“인자하심”이란 말은 51:1절에서 “긍휼히”로 번역된 말로서 구원은 항상 하나님의 긍휼에 의하여서만 되는 것임을 나타낸 것입니다.
인간이 하나님 앞에서 무엇을 가지고 내세울 수 있겠습니까?
그것 의지하다 멸망하는 것을 보았으니 다윗은 영원히 하나님의 긍휼만을 의지하겠다는 것입니다.
2) 주께 찬송하고 주의 이름을 기다리겠다(9절)
“주께서 이를 행하셨으므로 내가 영원히 주께 감사하고 주의 이름이 선하시므로 주의 성도 앞에서 내가 주의 이름을 사모하리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원문은 “내가 당신께 영원히 찬송하리니 이는 당신이 행하였기 때문이요 또 내가 당신의 이름을 기다리니 이는 당신의 성도 앞에서 선하심을 인함이니아다”로 되어 있습니다.
“행하였다”함은 악인을 징계하신 것을 가리키고,
“감사하다”는 말은 “찬송한다” “고백한다”는 뜻도 있는 말로서 찬송으로 감사와 전파하는 일을 하겠다는 뜻입니다.
“주의 이름”은 속성을 이름이니 여기서는 의로우심과 긍휼하심을 이르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성도 앞에서 선하다고 하였는데,
선하다고 함은 “유쾌하다”, “기분 좋다”, “좋다”는 뜻을 나타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긍휼하심이 성도를 기분 좋게 후대하여 복되게(민10:29,32), 은혜되게(출18:9, 삿8:35), 형통하게(신23:6) 곧 구원하여 주셨기 때문에 그 이름을 바라보겠다는 것입니다.
“사모하리이다”는 “바란다” “기대한다” “앙망한다”로 번역된 소망을 뜻하는 말입니다.
여기서 성도가 하여야 할 여기서 두 가지를 말씀합니다.
첫째는 영원히 주께 감사하겠다 즉 찬양하겠다 함이고,
둘째는 주의 이름을 사모하겠다 즉 기다리겠다고 함입니다.
감사와 찬양할 이유는 하나님께서 악인을 징벌하심이라고 하였고,
주의 이름을 사모할 이유는 주의 이름이 성도 앞에서 선하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긍휼을 입어 구원되어 성도가 된 자로서 그 긍휼을 계속 바라겠다는 것이니, 신앙의 계속도 하나님의 긍휼에 의해서만 되는 것을 이 성도 다윗은 잘 알고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