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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사무엘하22장21~28절
제목 : 공의와 깨끗함을 주추 삼아
어제 말씀에서 다윗은 하나님의 구원을 찬양했습니다.
'구원'(salvation)이라는 용어가 처음부터 마지막에 걸쳐 여러번 언급되어 있기 때문입니다(1, 4, 20, 47, 51절).
1절에서 다윗은 하나님께서 자기를 모든 원수의 손과 사울의 손에서 구원하신 그날에 하나님을 찬양합니다(1절).
4절에 다윗은 하나님께서 자기를 사랑하심을 믿으으로 구원을 찬양합니다.
20절에서 다윗은 자신을 넓은 곳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자신을 기뻐하시므로 구원하셨다고 찬양합니다.
47절에 다윗은 구원의 반석이신 하나님을 높이며 찬양합니다.
51절에서 다윗은 구원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찬양합니다.
오늘은 그 도우심이 올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 찬양합니다.
바로 하나님께서 자신을 기뻐하셨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윗은 하나님이 자신의 행위대로 갚아주셨다고 고백합니다.
특히 자신의 의로움과 깨끗함에 대해 자비로운 구원으로 응답하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1. 다윗의 의로움(21~25절)
1) 다윗은 공의에 따라 깨끗하게 살았습니다(21절).
"[21] 여호와께서 내 공의를 따라 상 주시며 내 손의 깨끗함을 따라 갚으셨으니"
다윗은 하나님 앞에서 악을 행하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자신의 손으로 무죄한 피를 흘리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자신은 공의에 결과에 따라 상을 받았다고 합니다.
“여호와께서 내 공의를 따라 상주시며”. - 여기서 '상 주시며'('가말')은 '보상하다'는 뜻으로(신 32:6;대하 20:11;시 103:10), 이는 악인 또는 의인에게 그 행한 대로 갚는 공정한 보응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따라서 다윗은 이 구절에서 자신의 구원이 결코 우연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의의 결과임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의'(義)라 함은 전혀 죄가 없는 상태,
곧 하나님 앞에서의 완전한 절대적 의를 말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여기서의 '의'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불의 또는 사악함과 대조되는 개념으로, 하나님과 지속적인 친밀의 관계를 유지해 나가는 영적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이 '의'는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믿음의 상태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내 손의 깨끗함. - 여기서 '손'은 인간의 행위를 상징합니다(Lange).
따라서 이 말은 죄와 불의로부터 떠난 다윗의 깨끗한 행위를 의미합니다(시 7:5;24:4;26:6;욥 9:30;22:30).
*시24:4 “곧 손이 깨끗하며 마음이 청결하며 뜻을 허탄한 데에 두지 아니하며 거짓 맹세하지 아니하는 자로다”
2) 하나님의 도를 지키고 그의 규례를 버리지 않으셨습니다(22,23절)
"[22] 이는 내가 여호와의 도를 지키고 악을 행함으로 내 하나님을 떠나지 아니하였으며[23] 그의 모든 법도를 내 앞에 두고 그의 규례를 버리지 아니하였음이로다"
여호와의 도를 지키고. - 다윗이 자신의 의(義)로 말미암아 여호와께 상을 받은 이유와 또한 자신의 손(행위)이 깨끗하다고 고백할 수 있었던(21절) 근거가 제시되어 있습니다.
즉 그것은 의의 길이요 정결의 길인 '여호와의 도'를 지켰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여호와의 도'란 여호와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에게 제시하신
'규례'와 '율례'를 가리킵니다(23절).
즉 그 규례와 율례의 길에서 좌우로 벗어나지 아니하고,
온전히 붙들고 좇았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여기서 '규례'(미쉬파트)와 '율례'(후카)는
하나님의 모든 말씀과 교훈을 강조하는 중언법(重言法)적 표현입니다(신 4:1).
*신4:1 “이스라엘아 이제 내가 너희에게 가르치는 규례와 법도를 듣고 준행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살 것이요 너희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시는 땅에 들어가서 그것을 얻게 되리라”
결국 구약적인 의미에서 '의'(義)란 윤리적이고 도덕적 측면보다는 법적인 뉘앙스가 더 짙은 용어로서, 하나님이 제시한 율법과 규범에 일치한 삶을 사는 것을 가리킵니다.
즉 하나님께서 제정하신 법도에 순응하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따라 의와 불의가 판가름나는 것입니다.
하나님만이 절대 의를 소유하셨기 때문에 인간에게 제시한 모든 법도는 당신의 성품을 대변한 것으로서 의롭습니다.
이런 점에서 다윗이 자신의 의와 정결과 완전함을 하나님께 보임으로 인해 하나님께서 구원하시고 은혜를 베푸셨다는 본문의 말은 스스로 구원의 자격을 갖추었다는 교만의 의미로 이해되어서는 안 됩니다.
이는 다윗이 이미 구원받은 자로서 하나님의 기쁘신 뜻을 좇아 살아간 사실에 대한 하나님의 보응(상급)을 은혜로 받았음을 가리킵니다.
(창 7:9;15:6;22:12-18).
3) 그의 앞에 완전하여 스스로 지켜 죄악을 피하였습니다(24절).
"[24] 내가 또 그의 앞에 완전하여 스스로 지켜 죄악을 피하였나니"
내가 또 그 앞에 완전하여. - 여기서 '완전하여'('타밈')은 21절의 '내 손(행위)의 깨끗함'과 대조적으로 마음의 고결함 또는 순결함을 가리키는 말입니다(창 20:5;시 26:1;잠 10:9).
*시26:1 “내가 나의 완전함에 행하였사오며 흔들리지 아니하고 여호와를 의지하였사오니 여호와여 나를 판단하소서”
*잠10:9 “바른 길로 행하는 자는 걸음이 평안하려니와 굽은 길로 행하는 자는 드러나리라”
특히 이 말은 욥의 '순전(純全)한' 마음에 적용된 용어로서 그 마음에 사악한 생각이 전혀 없는 상태를 의미합니다(욥 1:1).
*욥1:1 “그 사람은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더라”
그러나 이 말이 결코 도덕적으로 전혀 무죄한 상태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며, 다만 하나님께서 그 신실함과 의로움을 인정하실 만한 순수 상태를 의미하는 것입니다(Hertzberg).
성경은 이러한 내적인 완전(순수)의 상태에서 정결한 행위가 나온다고 증거하고 있습니다(마 23:26).
*마23:26 “눈 먼 바리새인이여 너는 먼저 안을 깨끗이 하라 그리하면 겉도 깨끗하리라”
한편, 이런 맥락에서 이 말은 하나님께 희생 제물로 바칠만한 '흠(欠) 없는'정결한 동물을 가리킬 때 적용되었습니다(레 1:3, 10;3:1, 6등).
그리고 후일 사도 바울은 이 '타밈'에 해당하는 헬라어 '아모모스'를 사용하
여 신자들의 성화(聖化)를 강조하고 있습니다(엡 1:4;5:27;골 1:22).
*엡1:4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5:27]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 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라”
*골1:22 “이제는 그의 육체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화목하게 하사 너희를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그 앞에 세우고자 하셨으니”
4) 하나님께서 내 의대로, 내 깨끗한 대로 내게 갚으셨습니다(25절)
"[25]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내 의대로, 그의 눈앞에서 내 깨끗한 대로 내게 갚으셨도다"
본절은 21절의 고백에 대한 또 한 번의 확증적 증언입니다.
이러한 다윗의 이중 고백을 통하여 우리는 성도의 의로운 행위를 결단코 잊지 아니하고, 때가 이르면 반드시 갚아 주시는 상급의 원리를 깨닫게 됩니다.
따라서 이 상급의 원리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기쁘신 뜻대로 베푸시는
구원의 원리와 더불어 성도들에게 주어진 귀한 은총과 은혜의 원리입니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구원의 원리'가 무조건적인 은총의 원리라면,
'상급의 원리'는 행한 대로 갚아주시는 보응적 은혜의 원리라는 점입니다.
그러므로 이 상급의 원리는 구원 받은 자로 하여금 더욱 신실히 하나님의 뜻을 좇게 하고, 의롭게 살게 하는 원동력이 됩니다.
*황금율
2. 하나님의 신실하심(26~28절)
1)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보상은 하나님을 향한 인간의 행위 여부에 따라 달려 있습니다(26,27절)
"[26] 자비한 자에게는 주의 자비하심을 나타내시며 완전한 자에게는 주의 완전하심을 보이시며[27] 깨끗한 자에게는 주의 깨끗하심을 보이시며 사악한 자에게는 주의 거스르심을 보이시리이다"
21-25절에서 자신의 상급이 결코 우연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자신의 순전한 마음과 깨끗하고 의로운 결과임을 밝힌 다윗은 여기에서 하나의 보편적 진리(the general truth)를 도출해 냅니다.
곧 그것은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보상은 하나님을 향한 인간의 행위 여부에 따라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다윗은 이러한 진리를 그동안의 생의 경험을 통하여 확신하고, 여기서 이 진리를 자신 있게 선포하고 있습니다.
자비한 자.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하시드'는 '인애', '사랑'이란 의미의 단어 '헤세드'의 변형이며, 따라서 이 말은 '사랑을 품은 자'를 의미합니다. 그러나 여기에서의 사랑은 인간 사이의 일반적인 사랑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경건한 사랑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이 말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경견한 자'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신 33:8;시 4:3;12:1;50:5).
완전한 자. - 24절의 '완전하여'와 동의어입니다. 24절 주석 참조.
깨끗한 자. -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나바르'는 본래 '분리시키다', '쪼개다', '선택하다'는 뜻의 동사 '바라르'의 분사형입니다.
따라서 이 말은 자신을 온갖 세속의 더러움과 죄로부터 분리시켜, 날마다 의로움과 순수함을 추구하는 '거룩한 자'를 의미하는 말입니다(사 52:11;시 18:27;단 11:35).
사특한 자. -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익케쉬'는 '굽다', '뒤틀리다'란
뜻의 '아카쉬'에서 파생된 말로, 곧 생각과 행동에서 하나님의 뜻으로부터
벗어나 왜곡되고 삐뚤어진 자를 의미합니다(욥 9:20;잠 28:18).
주의 거스리심을 보이시리이다. - 이에 해당하는 '티타팔'의 기본 동사
'파탈'은 '역겨움을 느끼다', '붙들고 싸우다', '심술궂음을 보이다', '거칠게 대하다'란 뜻입니다.
곧 이는 하나님의 말씀과 뜻에 대해 비뚤어지고 왜곡된 행동을 하는 사특한 자에게 역시 하나님께서도 거칠고 심술궂게 대하사 그를 낭패와 절망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을 것이라는 말입니다.
2) 주께서 곤고한 백성은 구원하시고 교만한 자를 낮추십니다(28절).
"[28] 주께서 곤고한 백성은 구원하시고 교만한 자를 살피사 낮추시리이다"
26, 27절에서 언급된 보편적 진리를 재확인하는 구절입니다.
즉 다윗은 겸손한 자와 교만한 자를 대조시켜 의인과 악인에 대한 하나님의 공정한 보상을 명확하게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잠 6:17;21:4;30:13;시 101:5).
*잠6:17 “곧 교만한 눈과 거짓된 혀와 무죄한 자의 피를 흘리는 손과”
*잠21:4 “눈이 높은 것과 마음이 교만한 것과 악인이 형통한 것은 다 죄니라”
*잠30:13 “눈이 심히 높으며 눈꺼풀이 높이 들린 무리가 있느니라”
*시101:5 “자기의 이웃을 은근히 헐뜯는 자를 내가 멸할 것이요 눈이 높고 마음이 교만한 자를 내가 용납하지 아니하리로다”
여기서 '곤고한 백성'은 억압받는 경건하고 겸손한 무리들을 의미하며
'교만한 자'는 부와 권세를 자랑하는 경건치 못한 무리들을 일컫는 말입니다(Keil, Lange).
그리고 '교만한 자'는 시 18:27에는 '교만한 눈'이란 말로 표현되었습니다.
*시18:27 “주께서 곤고한 백성은 구원하시고 교만한 눈은 낮추시리이다”
한편, 다윗은 이 시에서 자신을 '곤고한 백성'의 범주에 포함시켜 곤고한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보상을 자신의 과거 경험을 통해 확신 있게 진술하고 있습니다.
다윗이 구체적으로
1) 여호와의 길을 걸으며 하나님을 떠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강조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행한대로 갚으시는 하나님 이십니다.
다윗이 공의와 깨끗함을 따라 행할 때 하나님께서는 그를 건지시고 인도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은혜의 하나님이시지만 동시에 보응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수학적 정밀성을 가지시고 사소한 것 까지 갚으시는 심판의 하나님이십니다.
때문에 선한 일을 행하다가 어려움을 당해도 우리는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22장 앞부분의 말씀처럼 하나님께서 우레소리를 내시며 달려 오실 뿐만 아니라 반듯이 보응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2) 또한 악인의 형통함을 부러워 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갚으시고 반듯이 허무실 것입니다.
불의를 불의로 갚고자하는 마음도 참으십시오.
하나님께서 그 마음을 무두 살피고 기억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성도의 삶은 "호람대오" 즉 하나님 앞에서 사는 삶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완전한 길을 걸어 갈 때 하나님께서 책임지시는 또한 하나님의 구원이 임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3) 역전의 하나님을 믿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26~27을 살펴보면 다윗은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찬양합니다.
찬양의 이유가 28절에서 이렇게 절정을 이룹니다.
하나님께서는 곤고한 백성은 구원하시고 교만한 자를 낮추시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다윗은 바로 이런 역전의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상황을 바꿀 수 있는 하나님을 믿은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영광과 기쁨이 되었습니다.
만약 고난과 실연의 때에 있다면 낙심하지 마십시오.
그곳에서 견디는 자체가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을 들어내는 믿음의 고백인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승리하는 방법은 반듯이 문제를 이기고 상황이 변화되는 것 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믿음으로 견디는 내게 상황이 오히려 지는 것, 불복하는 것 이 또한 승리입니다.
성도는 구하실 주님, 역전의 주님을 믿으며 그런 방식으로 승리하는 사람입니다.
뿐만 아니라 역전의 하나님을 믿는 것은 또한 우리가 교만 할 수 없는 근거가 됩니다.
언제나 하나님께서 높아진 우리를 낮출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떠나 높아진 자리에 있다면 다시 주인 되신 주님께 자리를 내어 드리십시오.
그럴 때 그분께서 우리 삶을 높이시고 견고히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1) 요셉의 발이 차꼬에 차여 종으로 팔려간 고난의 시간은 "곤고함"이었습니다(26~28절).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 땅에서 무법자들의 손에 받은 학대와 고통도 '곤고함'이었습니다(출22:23).
고관들이 가난한 자의 물건을 탈취하고 그들을 짓밟은 것 역시 '곤고함'이었습니다(사3:15).
성경이 이렇듯 곤고한 자들의 고통과 눈물을 먹물 삼아 그들의 애환을 낱낱이 기록합니다.
다윗은 자신의 삶과 믿음의 조상들이 지나온 삶을 바라보며, 하나님은 끝내'곤고한 백성을 구원하신다'라고 고백합니다.
우리 하나님은 환난 중에 구원이 되시고 고통 중에 위로가 되시며, 악인에게 고난 당하는 의인을 높여주시지만 교만한 자를 낮추시는 역적의 하나님이기때문입니다.
미약하고 미욱한 자들의 신음에 귀기울시는 '긍휼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곤고한 자의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그를 모든 환난에서 구원하시는 그분의 이름은 바로 '여호와 하나님'입니다.
그러니 내일에 대해서 우리가 어떤 희망적인 장담은 할 수 없지만 하나님이 내일도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것만은 말할 수 있지 않을까요?
내게 주시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1) 사람의 품격이나 됨됨이를 일컫는 마음의 자세를 우리는 '마음가짐'이라고 부릅니다(21~24절).
오늘 다윗은 우리에게 '영적인 가짐'을 들려 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인생의 방향과 행로를 결정짓는 영적인 태도와 자세로, 본문의 표현에 의하면 '공의'와 '깨끗함'입니다.
사사로움과 치우침 없이 공정하게 판단하는 외면적 가치의 척도가 '공의'라면, 마음을 가지런히 정돈하여 항상 흐리지 않고 맑게 유지하는 내면의 속살은 '깨끗함'입니다.
'공의와 깨끗함'을 두 주추 삼아 다윗은 여호와께 나아가는 모든 인생의 귀감이 되고 있습니다.
다윗은 공의를 지키려는 노력 속에서 무르익은 열매와도 같이, 또 젖을 떼는 아이와도 같이 성숙해가는 자신의 인생을 발견한 것입니다.
오늘도 이웃에 '공의'를, 마음에 '깨끗함'을 이루어가는 '영적인 가짐'으로 여호와의 성전에 함께 올라갑시다.
내 마음 씀씀이와 행동 방식은 하나님이 기뻐 받으실 만한 것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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