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인촌(外人村) / 김광균
하이얀 모색(暮色) 속에 피어 있는
산협촌(山峽村)의 고독한 그림 속으로
파아란 역등(驛燈)을 달은 마차가 한 대 잠기어 가고
바다를 향한 산마루길에
우두커니 서 있는 전신주(電信柱) 위엔
지나가던 구름이 하나 새빨간 노을에 젖어 있었다
바람에 불리우는 작은 집들이 창을 내리고
갈대밭에 묻히인 돌다리 아래선
작은 시내가 물방울을 굴리고
안개 자욱한 화원지(花園地)의 벤치 위엔
한낮에 소녀들이 남기고 간
가벼운 웃음과 시들은 꽃다발이 흩어져 있다
외인 묘지(外人墓地)의 어두운 수풀 뒤엔
밤새도록 가느란 별빛이 나리고
공백(空白)한 하늘에 걸려 있는 촌락(村落)의 시계가
여원 손길을 저어 열 시를 가리키면
날카로운 고탑(古塔)같이 언덕 위에 솟아 있는
퇴색한 성교당(聖敎堂)의 지붕 위에선
분수(噴水)처럼 흩어지는 푸른 종소리
(1939)
김광균의 「외인촌(外人村」)입니다. ‘외인촌’이라는 것은 외국인이 사는 마을이라는 의미이지요.
이런 이국적인 느낌의 외인촌 풍경을 시각적,
회화적 이미지 중심으로 묘사하는 방식을 통해서 현대인의 고독과 우수를 노래하고 있습니다.
한 폭의 수채화와 같은 느낌을 갖게 하는 이 작품은
‘종소리’ 마저 ‘푸르게’ 회화적으로 표현하여 시를
색채와 그림으로 형상화한 이미지즘의 대표적인 작품입니다.
전체적으로 저녁 무렵부터 밤까지 외국인들이 모여 사는 외인촌의
모습을 바라보는 태도를 드러내면서도 그 가운데에 고독과 우수감에 젖어 있습니다.
‘고독한’, ‘공백한’, ‘여윈’ 등이 그런 애상감을 더 해 주고 있습니다.
출처: 김광균의 「외인촌(外人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