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국제영화제 폐막작 ‘윤희에게’ 팀이 12일 폐막식 레드카펫에 섰다. 왼쪽부터 배우 김희애·나카무라 유코·성유빈·김소혜, 임대형 감독이 관객에게 인사하고 있다. BIFF 제공
모녀 여행기, 여성 버디 무비, 멜로드라마, 성장드라마….
제24회 부산국제영화제(BIFF) 폐막작으로 선정된 ‘윤희에게’를 임대형 감독은 이렇게 설명했다. 11일 오전 11시 30분께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전당 중극장에서 열린 기자회견에는 임 감독을 비롯해 배우 김희애, 나카무라 유코, 김소혜, 성유빈, 전양준 BIFF 집행위원장이 참석했다.
■2018 아시아시네마펀드 지원작, BIFF 돌아오다
임대형 감독의 2번째 장편영화로 2018년 BIFF 아시아시네마펀드(ACF) 장편 극영화 제작 지원을 받았다. 임 감독은 “전혀 폐막작으로 상영할 거라고는 생각을 못해 소식을 듣고 감격스러웠다”면서 “부산국제영화제 화이팅”이라고 외쳐 기자회견장이 웃음바다가 됐다.
전양준 BIFF 집행위원장은 “프로그래밍을 할 때 아시아의 새로운 재능을 가진 감독을 발굴하는데 역점을 둔다”면서 “특히 개·폐막작은 약 5000여 명의 관객 대상으로 야외극장에서 상영하기 때문에 영화가 우수하고 시각적으로도 모자람 없어야 하는데, 이 작품은 그 2가지를 만족해 폐막작으로 선정했다”고 설명했다.
영화는 윤희(김희애)에게 일본으로부터 한 통의 편지가 도착하면서 시작한다. 어릴적 친구인 준(나카무라 유코)이 보냈다. 편지는 딸(김소혜)이 받아 엄마를 옛 친구가 있는 일본 홋카이도 오타루로 이끈다.
윤희 역을 맡은 배우 김희애는 신인감독의 작품이지만 시나리오를 보고 같이 작업하기로 결심을 굳혔다. 김희애는 “대본 자체가 신선하고 좋아서 따로 준비를 할 필요없이 행복하게 연기할 수 있었다”면서 “첫사랑을 찾아가는 윤희지만 특별한 준비보다는 영화 촬영 전 감성을 말랑말항하게 하기 위해 다른 작품들을 많이 봤다”고 설명했다.
제24회 부산국제영화제 폐막작 '윤희에게'의 배우 김희애와 일본 배우 나카무라 유코. 심유림 인턴기자
■일본 오타루 배경의 색다른 첫사랑 이야기
윤희의 첫사랑인 준 역할의 배우 나카무라 유코는 “촬영 들어가기에 앞서 프로듀서에게 김희애 씨의 고등학교 시절 사진을 받아서 매일매일 보면서 촬영을 준비했다”며 “윤희에 대한 마음이 쌓여서 마음에 가득찰 때쯤 김희애 씨를 만나 연기를 할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그는 또 “대본을 보았을 때 국경, 성별을 넘어 나 자신은 누구이고 누구를 사랑하는 가에 대한 물음을 마주할 수 있다면 자신한테도 부드러워질 수 있고 남한테도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대본을 보고 첫눈에 반한 느낌이었고 꼭 참가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밝혔다.
윤희와 준은 오타루에서 극적으로 재회한다. 둘은 다시 만나 대화없이 눈빛으로 서로의 감정을 전한다.
임 감독은 “나카무라 배우님이 대본을 이해할 때 서점에서 <82년생 김지영>을 사서 보시고 감동을 받았고, 캐릭터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됐다고 하시더라”는 에피소드를 덧붙였다. 그는 또 김희애 배우를 캐스팅한 이유에 대해 “전형적인 한국 어머니상을 만들고 싶지 않았고 인격과 개성, 자기 취향이 있는 사람을 만들고 싶었다. 특별한 존재감이 있는 윤희 역할에 적임자라고 생각해 부탁드렸다”고 설명했다.
딸 새봄 역할은 그룹 I.O.I 소속 가수 김소혜가 맡아, 첫 스크린 데뷔를 신고했다. 한국영화계의 떠오르는 신인 성유빈은 새봄의 남자친구 경수 역을 맡았다.
김소혜는 “김희애 선배님이 현장에서 특급칭찬을 해주셔서 힘이 됐고, 현장이나 사석에서든 선배님을 닮고 싶다고 생각했다”면서 “유빈 군은 저보다 어린데 형처럼 오빠처럼 어른스런 모습을 보여줘 편했던 것 같다”고 현장 분위기를 전했다.
성유빈은 “낯을 많이 가려 걱정했는데 누나가 편하게 대해줘서 금방 친해질 수 있었고 김희애 선배님은 일본에서 뵐 때마다 말도 걸어주시고 엄마처럼 해주셔서 좋은 현장이었다”고 말했다.
한편, BIFF는 12일 폐막식을 열고 폐막작 ‘윤희에게’를 상영한다. 이를 끝으로 열흘 간의 영화 축제는 막을 내린다.
조영미 기자 mia3@busan.com
---------------------------------
[BIFF 리뷰] 폐막작 ‘윤희에게’-김이석 영화평론가
24회 BIFF 폐막작인 ‘윤희에게’는 윤희와 준이라는 두 여인에 관한 이야기다. 영화는 편지 한 통에서 시작된다. 조카 준의 방을 정리하던 고모는 탁자 위에서 부치지 못한 편지를 발견한다. 수신자의 이름을 확인한 고모는 조카 몰래 그 편지를 우체통에 넣는다. 홋카이도에서 부친 편지는 바다를 건너 한국에 도착하지만, 그 편지를 받은 사람은 윤희가 아닌 그녀의 딸 새봄이었다. 호기심에 편지를 뜯어본 새봄은 이제껏 몰랐던 엄마의 비밀을 알게 된다.
‘윤희에게’는 임대형 감독의 두 번째 장편영화다. 영화 속의 영화라는 독특한 형식과 죽음을 앞둔 중년 남자의 심리를 섬세하게 묘사한 연출력으로 주목받은 데뷔작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모’로 BIFF 넷팩상을 수상한 바 있는 임대형 감독은 두 번째 작품으로 BIFF 폐막작에 선정되는 영광을 누리게 되었다.
‘윤희에게’는 어긋난 사랑을 다룬 로맨스 영화이자 잃어버린 자신을 되찾는 성장 영화다. 그런데 어긋난 인연이 제자리를 찾고 상처받은 자아가 회복되는 결정적인 계기를 제공한 것은 발신자와 수신자가 어긋난 편지였다. 우연의 중첩이라는 판타지 영화를 연상케 하는 설정에서 출발하지만 영화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섬세하고 진중하다. 이런 전개를 가능하게 만든 일등 공신은 배우들이다. 비밀을 가슴 깊이 묻어둔 채 살아가는 윤희 역의 김희애와 남몰래 엄마의 상처를 다독일 계획을 세우는 새봄 역의 김소혜의 연기는 이 영화에서 가장 돋보이는 요소다. ‘메리 크리스마스…’에서 기주봉이 연기력을 마음껏 뽐낼 수 있는 무대를 만들어냈던 임대형 감독은 이번 영화에서도 연기자들의 역량을 십분 끌어내고 있다.
영화의 주인공은 윤희이지만, 사실상 이야기를 이끌고 가는 인물은 새봄이다. 윤희와 새봄은 정반대의 성향을 가진 인물처럼 보인다. 윤희가 우울하고 예민한 탓에 주위 사람을 외롭게 만드는 인물이라면, 새봄은 십 대 특유의 건강한 에너지를 뿜어내는 인물이다. 또한 버려진 물건 하나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로 섬세하고, 남몰래 엄마가 옛 연인과 재회할 수 있는 계획을 세울 정도로 담대하다. 이런 차이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새봄이 엄마를 닮았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한때 새봄처럼 밝고 담대하고 섬세했던 윤희는 왜 주위 사람을 외롭게 만드는 사람으로 변해버린 것일까? 그 해답의 단서는 윤희와 비밀을 공유했던 준의 말을 통해서 드러난다. 준은 료코라는 인물에게 “여태까지 숨기고 살아온 게 있다며 앞으로도 계속 숨기고 살아가라”고 말한다. 이를 통해 윤희와 준이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벽을 만들고 그 안에 숨어들었음을 알아차릴 수 있다. 준의 집 주변에 쌓여있던 눈더미는 윤희와 준의 얼어붙은 마음을 대변하고 있다. 사람들은 그 벽 바깥에서 외로움을 호소해왔지만, 정작 벽 안에 몸을 숨긴 윤희와 준의 외로움은 아무도 헤아리지 못했다. 그들을 둘러싸고 있던 차가운 벽을 녹아내리게 만든 것은 ‘새봄’이었다. 서로를 그리워하면서도 만나지 못했던 두 사람은 새봄 덕분에 마침내 재회하고, 얼어붙은 채 살아가던 윤희는 그 만남 이후에 비로소 희미한 웃음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