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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말하는 진실이 진정 진실인가? 나는 진실한가?
그 진실이 진실임을 어떻게 증명하실 수 있나? 그냥 믿어 달라고? 진짜 믿어도 되나?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다고 했는데. 발등 찍혀 보았나? 발등을 찍히면 참 많이 아프고
힘들다. 나는 정말 여러 차례 발등을 찍혀 보았다. 나는 그동안 나의 인생 가운데 믿어
달라고 하지 않아도 믿어주려고 노력했었고, 아니 정말 조건 없이 믿어주었지만 번번히
발등을 찍히게 되었다. 어떤 때는 거짓말을 잘하여 신뢰할 수 없는 사람이 자기 말을 믿어
달라고 할 때에도 그 사람이 부끄럽지 않게 하려고 속아주기도 했는데 막상 발등을 찍히고
나니 참 어렵고 힘들었다. 사실 이러한 것은 나에게 문제가 있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진실을 장담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언제나 말에 액션이 강하고 진짜 보다 더 진짜처럼
그럴듯하게 과장하고 힘주어 장담한다. 진행하는 일에 관하여 조급하고 서둘러서 결정을
보려고 한다. 그런가 하면 만나기만 하면 맘이 평안해지는 사람도 있다. 고등 수를 사용하는
사람이다. 만나서 한바탕하려고 칼을 갈며 만나도 얼굴 보고 나누다 보면 슬그머니 칼을
내려놓게 된다. 이런 사람들이 말하는 진실은 거의 대부분이 거짓 진실일 경우가 많았다.
이들은 기다림을 힘들어하고 초조해 하면서도 반대로 한없이 여유를 부리며 너털웃을 잘
웃고, 장담하며 과장하고 순조로운 진행을 장담하며 순진한 심령을 마비시킨다.
그래서 저의 경험으로는 진실이라는 말이 진실이 아니고 그 말이 정말 진실이 되려면
전심이 담긴 행위로 드러나게 된다는 것을 확인하게 되었다. 본심은 흔들리지 않고 전심과
행동이 함께한다. 그 진실이라는 말이 실제로 지켜져서 실재가 되었을 때 비로소 확인된
진실이라고 할 수 있다. 진실은 조급하게 서두르지 않는다
그리고 안심만을 강조하거나 결정을 압박하지도 않는다,
진실은 평안하며 기다릴 줄 알고 결정하는데 급급해하지 않는다.
진실은 결과가 실패로 끝난 것 같아도 중심이 흔들리지 않는다.
잠시 멈출 수는 있어도 잠시후에 다시 진행을 계속한다.
실제로 행동하지 않는 진실은 아직은 진실이라 할 수 없다.
그의 본심이 전심의 행위로 지켰을 때에 진실이라고 할 수 있다.
내가 한 말이 전심을 다한 실재가 아니라면 진실이 아닐 수도 있다.
내 삶으로 내 말을 증명해 내지 못한다면 그것은 아직 나의 말이
소리로 남아 있을 뿐이거나 날아가 버렸는지도 모른다.
진실은 전심으로 움직여질 때 비로소 진실임을 증명해 보일 수 있는 것이다.
당신은 지금 당신의 말에 얼마나 책임을 다하여 진실임을 증명하나? 당신의 말이 진실이라는
증거를 어떻게 확인할 수 있나? 당신의 말이 진실이라면 이제 행동으로 지켜져서 현실로
보여지는가? 지금은 말의 시대가 아니라 행동하는 시대이다. 책임 있게 보여주는 시대이다.
다시 한번 자신에게 질문해 보라. 내가 하는 말 그 말이 진실인가?
그렇다면 이제 진실이라는 것을 올바른 자세와 태도로 시작하라. 그리고 전심으로 행하여
확인을 받을 수 있도록 하라. 만약 당신이 말만 하고 움직여 행동으로 지키지 않으면 당신의
진실은 거짓이라고 선포하는 것이다. 나의 말은 거짓이니 나를 믿으면 안 된다고 선언하는 것이다.
말한 것이 실재로 행동하지 않는 다면 진실이라는 말로 자신의 거짓된 실체를 알리는 것이다.
나는 하나님께 여러차례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부도를 냈는지 모른다. 손을 꼽을 정도이다,
말씀을 읽고 묵상하면서 수없이 아버지께 약속했고, 기도하면서 더 많이 구하고, 찾고, 두드렸다.
그때마다 필요를 구하면서 조건을 달고, 목적을 위해서 약속도 하고, 설교를 하고 들으면서
아멘을 얼마나 많이 했는가? 말씀마다 아멘을 하였다. 주님의 일이라고 하면 조건 없이 아멘이었다.
힘주어 믿습니다. 하고 뛰어들고, 돌파하고, 밀어붙였다, 그러다가 참 많이도 벼랑 끝을 지나가야 했다.
꺾여지고 깨졌다. 아멘 한 것을 철저하게 이행하지 못하였다.
시작도 하지 못한 것은 얼마나 많은가? 수표를 발행해 놓고 잊어버린 것도 헤아릴 수 없다.
그러면서도 가장 강력하게 진실을 선포하고 외쳤을 것이다. 38년 전 전도를 약속하고 초반에는
열심히 하는 척했는데 지금은 말만 하고 시늉만 하면서 전심으로 지키지 못하고 있다.
30대 중반에 선교사로 나가겠다고 약속하고 60대가 중반이 지난 지금까지 아직도 머뭇거리고 있다.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난 초반에는 북한에 가서 순교한다고 펄펄 뛰다가, 사우디로 가겠다고 했는데
못 가고 남태평양 피지로, 중국으로, 등등 어디든지 말씀하시면 나아간다고 했는데 아직도 나는
약속을 지키지 못하였다. 물론 상황과 환경이 꼬이고 막히고 붙잡혀 묶여서 지내야 하는 여러부분
사고 사건이 일어나고, 끈질기게 따라다니며 결박당하고 끌려다니면서 세월을 지내야 하는 사정이
있었다. 세월이 많이 지난 후 훈련팀과 함께 방문하여 그 땅을 밟고 중보하며 아버지의 나라 땅임을
선포하고 돌아다니는 것으로 대신했을 뿐이다. 아직도 그 약속을 이행하지 못한 것이 빚으로 남아서
내 마음의 진심에 찔림을 주고 부담감으로 남아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아버지께는 필요한 것만 달라고 하고 왜 안주시느냐고 불평하고,
그때 왜 그러셨느냐고 섭섭해하며 항의한다, 참 기가 막힌 아들이 바로 나이다.
이제 무슨 염치로 나의 말이 진실이라고 믿어달라고 하겠는가?
누가 나의 진실이 진짜라고 받아주겠는가? 행동하지 않은 진실이 무슨 진실인가?
세상 같으면 벌을 받아 벌금을 내든지 감옥에 들어갔어야 한다.
그래도 지금은 스스로 위안을 하면서 아버지께 적당히 합리화 하는 것은 내가
선교단체에서 사역하고 있다는 것이다. 2002년 당시에 담임 목회 13년 되었을 때였다.
부 교역자 사역을 포함하여 15년이 되었을 때였다.
당시 교회와 유치원, 실버 쎈타, 중보기도 쎈타, 제자훈련장까지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PDTS에서 훈련한 후 지금까지 머물고 있다. 1년이면 7-8국에 3주씩 선교팀을 파송하였으니
19년 동안 20여개 국 40여 지역에 120여 팀이 가서 선교 사역에 동역하였다.
내가 선교지에 다녀온 곳도 10여 개국은 되는 것 같다.
비록 장기 선교사로 나가지는 못했지만 선교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는 것으로
아버지께 변명하면서 합리화 하지만 여전히 나는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 때문에
진실하지 못했음을 고백하는 것이다. 솔직히 지금도 부담감이 있어 주님께 싸인을 구하고 있다.
당신의 진심이라는 말은 진실인가? 믿어달라고 말하지 말고 믿을 수 있게 행하라.
당신의 진심이 진실이 되게하기 위해서 전심을 다 하는 행위로 보이라.
주님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말씀하신 것이 진실임을 당신이 십자가를 짊어지시고
죽음으로 증명하셨다. 아버지의 본심을 전심으로 이루어 아버지의 진심을 세상에
선포한 것이 독생하신 성자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이다.
그리고 예수님의 성육신과 십자가로 이루신 구원 완성은 아버지의 본심이 전심으로
세상에 이루신 아버지의 진실인 것이다. 그리고 성취는 사흘 만에 부활하신 것이다.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시고 약속하신 하나님께서 말씀대로 시작하시고 말씀을
이루셔서 완성하셨다. 진실만을 말씀하시고 그 진실을 전심으로 이루어 세상에
보여주시고 증거 하셨다. 이제 나같이 말만 하고 행하지 않는 진실에는 속지도 말고
속이지도 말자. 아멘
요1서3:18-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하나님은 왜 성도들의 기도에 속히 응답해 주지 않으시고 오래 기다리게 하시는가?
신앙생활 하면서 궁금해하고 알고 싶어 하는것이다. 사람들은 기다림의 시간을 보내게
될 때 초조함과 답답함을 느낀다. 렘 48:11은 기다림의 의미를 찌꺼기를 가라앉혀 제거
하는 시간으로 묘사한다. 포도를 처음 짜면, 탁하고 걸쭉한 찌꺼기가 남는다.
조용히 놔두면 찌꺼기와 앙금은 가라앉는다.
이 포도액을 조심스럽게 다른 그릇으로 옮겨 담고, 찌꺼기는 버린다.
이런 과정을 몇 차례 거치면서 포도액은 순수하고, 정결한 발효 과정을 거치게 되는 것이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손에서 이 과정을 통과하면서 더욱 순수하고 깨끗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오늘도 하나님은 기다리심을 통해서 백성들의 찌꺼기 제거 작업을 계속하신다.
여러 차례 과정을 거치면서 순수하고 순결한 깨끗한 자녀가 되도록 다양한 방법을 사용하신다.
기다림은 찌꺼기를 가라앉히는 시간이다. 하나님이 오늘 나에게 기다림의 시간을 주었을 때는
기다리면서 찌꺼기를 가라앉혀야 한다. 그리고 맑은 액체를 준비된 그릇에 옮겨 담아야 한다.
그런데 기다리지 못해서 움직여 버리면 찌꺼기는 다시 올라오게 되고, 하나님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자고 하신다. 시간이 연장된다. 기다림은 정화를 위해서 가치 있는 시간이다.
어떤 때는 기다림을 넘어 방해처럼 보이는 사건이 있다. 하나님은 방해같이 보이는 것을
통해서도 실제로는 정화의 단계로 인도하신다.
당시에는 일이 제대로 풀리지 않고, 막히는 것 같으나
그것이 나중에는 그분의 인도하심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하나님께서 나를 기다리신다는 것은 나를 신뢰하시기 때문이다.
나를 향한 기대 하심으로 기다리시는 것이다. 우리는 장애물을 만나게 되면,
초조해하면서 어떻게든 돌파하려고만 한다. 그러나 하나님이 기다리게 하실
때는 기다릴 필요가 있다. 조급한 것이 큰 실수와 실패를 가져오게 할 수 있다.
바울은 전도하기 위해 아시아로 가려고 했으나 성령이 막았을 때 기다렸다.
몇 번을 다시 도전했으나 나가지 못했다. 마침내 마게도냐인의 환상을 보았을 때 움직였다.
바울은 하나님의 설득하심에 순종하였다. 하나님께서도 백성들에게 주신 자유와 선택을
존중해 주시고 순종할 때를 기다리신다. 막히는 것도 인도하심이다.
막히면 기다리는 시간이다. 잠잠히 참아 기다리며 기도할 때에 기다림의 끝이 온다.
세상이 죄악으로 가득했던 노아의 때 하나님은 오래 기다려 주셨다. 당시에 하나님께서
보내신 사람들의 모습은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에 끌려 통혼을 하면서
육신이 되었다고 하였다. 죄악이 세상에 가득하였고 사람들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하였음을 보셨다. 그래서 결심하신 것은 지면에서 사람을 쓸어버리시겠다고
선포하셨다. 그럼에도 그 후 얼마나 오랜 세월을 기다려 주셨는가?
120년 전에 심판을 경고하시고 그 경고가 실제 이루어질 것이라는 계시로
노아를 통해서 수십 년간 방주를 짓도록 하신 것이다. 당시에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하나님과 함께 기다리기를 배운 사람은 노아와 8식구 가족들이었다.
그들은 기다림의 결승선을 통과하여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에서 구원을 받았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도 기다림을 배운 모델이다. 아들을 약속받고 25년 만에 이삭을 받았고
아버지로부터 믿음을 인정받는데 오랜 세월을 더 기다려 제물로 죽었던 이삭을 다시 받게 되었다.
이삭도, 야곱도, 요셉도, 모세도, 욥도, 기다림의 모델들이다. 기다림에는 반드시 하나님의
결론을 받아내는 꿈같은 일을 이룬다. 지금 기다림을 배우는 사람이라면 하나님의 결론을 기대하라.
지루하더라도, 지치더라도, 힘들고 어려워도 그럴수록 아버지 앞에서 잠잠히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며 좀 더 기다리기를 배우자 행복을 누리려면 먼저 기다리기를 배워야 한다고 하였다.
그리고 길이 열리면 한 걸음씩 나아간다. 그것이 성도의 삶이다.
기다리면서 행복을 누리는 사람은 하나님과 아웃을 깊이 사랑하는 사람이다.
말씀에 순종하고, 정직하게 자신을 드러내는 사람이다.
행복을 누리는 사람이 누구인가? 기다림을 통과하는 사람이다
바로 당신! 기다리기를 배우는 당신이다.
당신은 기다림으로 행복을 누리기에 충분한 그분의 사람이다.
주님께서 기다리심으로 맺은 열매가 당신이기 때문이다. 아멘
시 130:6 파수꾼이 아침을 기다림보다 내 영혼이 주를 더 기다리나니
참으로 파수꾼이 아침을 기다림보다 더하도다
애 3:26 사람이 여호와의 구원을 바라고 잠잠히 기다림이 좋도다
합 2:3 이 묵시는 정한 때가 있나니 그 종말이 속히 이르겠고
결코 거짓되지 아니하리라 비록 더딜지라도 기다리라
지체 되지 않고 반드시 응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