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두 의학박사의 요양병원 이야기(43)
혀는 칼보다 무섭다
옛 조상들 말 중에 틀린 말이 없다는 것을 자주 느낀다.
휠체어를 탄 환자 한 분이 말씀하였다.
“제가 젊었을 때 술을 마시고 친구와 크게 다툰 적이 있습니다. 화가 나 ‘에이, 가다가 어디 차에나 받혀 죽어라’하고 악담을 했지요. 그런데 그날 밤 그 친구가 귀가하다 정말로 택시에 받혀 큰 사고가 난 것이었습니다. 등골이 오싹했습니다. 말에 씨가 있구나. 말조심을 해야겠다고 결심했지요.”
강 씨는 77세로 갑자기 안면마비 증세가 생겨 종합병원에 가 검사를 해보니 폐암 4기로 뇌에까지 전이가 되었음을 알고는 망연자실하였다.
“어떻게 특별한 증세도 없이 폐암4기가 된단 말입니까?”
찬찬히 물어보니 이분은 15살부터 담배를 피웠다고 한다. 60년 이상 담배를 피웠으니….
복(福)은 불러도 쉽게 오지 않지만 화(禍)는 스스로 불러들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부친을 모시고 온 딸이 말했다.
“종합병원의 주치의가 너무 직설적으로 말하는 바람에 아버지 마음이 크게 상했습니다.”
폐암이 뇌에까지 전이되어 치료하나 안 하나 가망이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환자는 겉보기에 신체도 건장하고 식사도 잘하여 폐암 4기라고 아무도 생각할 수 없는 상태였다. 첫 번째 항암약물치료 후 일시적으로 섬망증세가 생겨 요양병원에 입원했다. 섬망증세로 자주 넘어지자 직원들이 환자의 낙상 위험이 있다며 침상에서 못 내려오게 하여 불편했다고 한다. 기저귀를 채워 대소변을 화장실에 가서 못보게 하는 것도 큰 고통이었을 것이다.
두 번째 항암치료 후 우리 병원에 왔다.
뭐라고 위로해야 할까?
꼭 같은 내용이라도 마음 상하지 않게 전달하는 것이 기술이다.
“나이드신 분은 암 4기라고 해도 진행이 느려 5년, 10년 사시는 분을 많이 보았습니다. 10년 더 사시면 87세 아닙니까? 한국인 건강수명이 75세 정도라 그 이후에는 병들어 사는 사람이 절반 이상입니다.”
이렇게 위로하니 그분이
“그래요? 그러면 명대로 다 사는 거네요”
하면서 빙그레 웃으셨다.
종합병원에서 말기 암 환자에게 ‘환자분, 치료하지 않으면 석 달 살기도 어렵습니다.’고 말하는 경우를 종종 본다. 의사는 치료해야 된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이런 말을 했지만 받아들이는 측은 ‘석 달’이라는 시간만 기억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사람은 두 달도 아니고 넉 달도 아닌 꼭 석 달 만에 죽는 경우가 아주 많다.
혀는 칼보다 무서워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 가기도 하는 것이다.
한 분은 위암 4기였는데 병원에서 6개월 밖에 못 산다고 했단다. 6개월에 너무 집착하여 어떠한 치료도 거부하자 그 병원에 전화하여 힘들게 주치의와 통화를 하였다.
“선생님, 혹시 이분에게 6개월 밖에 못 산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까?”
“6개월이라는 말을 한 적은 없고 그때가 7월인데 치료하지 않으면 연말 넘기기가 어렵다고 말한 적은 있습니다.”
환자는 자기가 받아들이고 싶은 것만 받아들이는 것이다.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기는 어렵지만,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지는 것은 쉽다.
지인이 목 디스크가 생겨 통증이 심해 집 근처 신경외과의원을 방문했다. 긴 주사 바늘로 목 뒤쪽을 찔러 척추에까지 도달하여 스테로이드와 약물을 투여하는 치료를 받았다. 이곳저곳에서 치료했지만 통증이 가시지 않아 척추전문병원에 가서 진찰을 받았다. 젊은 선생님이 진찰을 하여 목 뒤에 보이는 주사자국을 보더니
‘이거 회를 쳐놓았구먼, 회를 쳐놓아’
라고 말했다.
지인은 통증도 참기 힘든 데다 그런 부정적인 말까지 들으니 눈물을 왈칵 쏟으며 통증이 더욱 악화되었다. 주사 한 방이면 깨끗이 낫는다고 호언장담하던 그 젊은 의사가 치료를 했지만 전혀 효과가 없었다.
말은 신체에 영향을 크게 미친다. 몸을 치료하기 전에 따뜻한 말로 환자의 마음을 먼저 위로해야 치료 효과가 더 크다. 평상시부터 부드러운 말씨, 상대를 격려하는 말을 하는 습관을 길러보자.